인신(人身)의 오척(五尺)·육척(六尺)의 얼도
일척(一尺)의 얼굴에 나타나고·
일척(一尺)의 얼굴의 얼도
한치의 눈속에 담겨져 있나이다·
또 일본(日本)이라고 하는 이문자(二文字)속에
육십육개지방(六十六箇地方)의 인축(人畜)·전답(田畓)·상하(上下)·귀천(貴賤)·칠진만보(七珍萬寶)·
하나도 빠짐 없이 포함(包含)되어 있소이다.
그와 같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제목(題目) 속에는
일부팔권(一部八卷)·이십팔품(二十八品)·
육만구천삼백팔십사(六萬九千三百八十四)의 문자(文字)·
일자(一字)도 누락되지 않고·
빠짐 없이 갖추어져 있나이다.
그래서 경(經)에는
제목(題目)이고
부처에게는 눈이라고
낙천(樂天)도 말하였소.
기(記)의 팔(八)에 약(略)해서 경제(經題)를 드는데
현(玄)에 일부(一部)를 포함(包含)한다고
묘락(妙樂)도 해석하셨습니다.
뜻은 약(略)하여
경(經)의 이름만을 들어도
일부(一部)를 포함(包含)한다고 하는 문(文)이로다,
일체(一切)의 일에 있어서
구극(究極)·간요(肝要)라고 하는 것이 있으니,
법화경일부(法華經一部)의 간심(肝心)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제목(題目)이외다.
조석(朝夕)으로 부르시면 틀림없이
법화경일부(法華經一部)를 진독(眞讀)하시는 것으로 되며,
두번 부르면
이부(二部) 내지
백(百) 번은 백부(百部)·
천(千) 번은 천부(千部)·
이렇게 불퇴(不退)로 부르신다면
불퇴(不退)로 법화경(法華經)을 읽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묘호니부인답서(妙法尼夫人答書)
어서 1402쪽~1403쪽
젊은날의 일기
1950년 7월 9일 (일) 맑음 -22세-
오늘은 시원한 하루였다.
선생님도 나도 하루하루 악전고투의 연속이다. 선생님의 사업이 날이 갈수록 곤경에 빠지는 것을 명확히 느낄 수 있다.
선생님의 건강 상태도 좋지 않다는 것을 깊이 느끼고 있다.
도다 선생님의 후계는 나밖에 없다.
죽어서는 안 된다. 쓰러져서는 안 된다.
파도는 장애를 만날수록 그 완고함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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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7월 9일 (금) 개인 후 흐림 –26세-
오후, 본부 면접 담당.
도합, 30수 명을 지도하고 마쳤다.
지도를 받고 과연 상대방은 납득할 수 있었는지, 아니면 없었는지 ―.
미숙한 내 자신을 빨리 성장, 향상시키지 않으면.
6시 30분부터 10시까지 참모 회의.
―. 부대 강화에 관한 건
―. 교학 연찬에 관한 건
―. 조직 확충에 관한 건 등
돌아오는 길에 같이 나카노(中野)에서 K씨를 문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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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7월 9일 (수) 흐림 –30세-
37.8°C의 미열. 속이 조금 쓰리다.
한결같은 신심으로 전진하는 길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오후 1시 30분발 급행을 타고 총본산으로. 도다 조세이 선생님의 백일 법요. 납골.
5시 조금 전, 유족 분들과 함께 다이세키 사 도착.
7시부터 대강당에서 추선 대법요.
법주 상인에게서 지도를 받았다.
추억담도 들었다. 새로운 결의를 생명 깊숙이, 조용하게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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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7월 9일 (목) 맑은 뒤 흐림 –31세-
청년부장 교체식. 본부 대강당에서.
청년부 간부 모두, 중대한 결의를 품고 미래로 나아가는 광포를 맹세했다.
지금은 청년지도자들이 용감하게 돌파구를 여느냐 못 여느냐 하는 중대한 때이다.
저녁에 나카노공회당에서 열린 여자부 간부회에 참석하였다.
어떤 회합이든, 한 사람이라도 두 사람이라도 신심과 사명감을 자각하고 일어설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 가자. 이것이 위대한 절복임을 ―.
첫댓글 감사합니다
매일
매일 의노고에 깊이깊이
감사드립니다
노고많으셨습니다
~^^~
또,하나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