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 새벽 서울 서초구 드루킹 특검사무실에서 두 번째 조사를 마치고 나오던 김경수 경남지사가 50대 남성에게 뒤통수를 가격당하고 있다. | |
ⓒ 연합뉴스 |
현직 도지사가 폭행을 당했다. 뒷덜미가 잡혀 질질 끌려갔다. 핸드폰으로 머리를 가격까지 당했다고 한다. 특검의 조사를 마치고 건물을 빠져나오는 길이었다. 카메라가 즐비했고, 기자들이 질문을 이어가던 순간이었다. 그 '그림'이 고스란히 뉴스 카메라에 담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상파 메인 뉴스들은 이 '그림'을, 아니 현직 도지사의 폭행사건을 외면하다시피 했다. 10일 새벽 5시경 두 번째 소환조사를 마치고 특검 사무실을 빠져나와 귀가하던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당한 이 폭행사건을 두고,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같은 날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한탄했다.
"김경수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책임을 다했다. 이제 그만하면 됐다. 그만하라. 병원에 갔다고 해서 놀래서 전화를 했더니 '제가 뭐라고 하기도 그렇고요. 액땜한 셈 치려고요' 하는데 와락 눈물이 났다. 이게 뭐란 말인가?
사진을 보니 더 화가 난다. 살이 패였다. 왜 경수에게만 이리 모진가. 백색테러다.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처리해야한다."
그러면서 기 의원은 김 지사의 목덜미에 난 상처가 찍힌 사진을 공개하며 폭행사건을 "백색테러"로 규정했다. 상처도 상처지만, 눈길을 끈 것은 "왜 경수에게만 이리 모진가"라는 질문이었다. 그 한탄스런 질문은, 김경수 지사의 폭행사건을 다룬 방송사의 보도행태에도 고스란히 적용할 수 있어 보였다. 지상파 3사와 JTBC의 보도가 그랬다.
폭행사건 외면한 KBS와 SBS, 김경수 사건 보도 안 한 MBC
▲ 지난 10일 KBS <뉴스9> 보도. | |
ⓒ KBS |
<특검, 송인배·백원우 소환 임박... 김경수 구속영장 검토> (KBS <뉴스9>)
<드루킹 "중기장관 후보 댓글도 부탁"... 김경수 '전면 부인'> (SBS <8뉴스>)
10일 지상파 메인뉴스가 보도한 김경수 지사 관련 보도들이다. 김경수 지사와 '드루킹' 김아무개씨의 대질심문 내용이나 특검의 김 지사 구속영장 검토 여부, 현직 청와대 비서관들의 소환 여부 등을 다뤘을 뿐, 김 지사의 폭행사건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 지사가 특검 사무실을 빠져나오는 그 현장 그림은 빠뜨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같은 시각 이뤄진 폭행사건만은 쏙 빼놓은 것이다. MBC <뉴스데스크>는 이날 김 지사 관련 소식을 일절 다루지 않았다.
JTBC <뉴스룸>은 조금 달랐다. 이날 <김경수-드루킹, 쟁점마다 '충돌'... 대질 끝낸 특검, 다음은?>이란 보도를 통해 대질 심문 내용과 향후 특검 수사 전망을 짚은 동시에 보도 말미 폭행사건을 간략히 언급했다. 특검 사무실에 나가 있는 기자와의 전화 연결을 통해서였다.
"마지막으로요. 김 지사가 조사를 받고 나올 때, 폭행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전해주시죠." (앵커)
"오늘 새벽 조사를 마치고 나온 김 지사가 취재진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자신의 차로 걸어가는 중이었는데요. 50살 천모씨가 갑자기 뒤에서 달려들면서, 자신의 휴대전화로 김 지사의 머리 뒷 부분을 한 대 때렸습니다. 그리고 옷도 끌어당겼는데요. 근처에 있던 경찰에게 바로 제압됐는데 천씨는 이번 김 지사 소환 조사와 관련해 1인 인터넷 방송을 진행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기자)
폭행사건 보다 이재명 지사와의 연관이 더 중요?
▲ 지난 11일 MBC <뉴스데스크>의 '이슈콕' 보도. | |
ⓒ MBC |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각 이뤄진 폭행사건은 아예 다루지 않은 지상파 3사와 달리 JTBC는 이날 폭행사건을 언급한 이후 '비하인드 뉴스'를 통해 폭행사건 현형범과 이재명 경기도지사와의 연관성을 짚기도 했다. <TV조선>을 비롯해 보수언론이 '김경수 지지자 vs. 이재명 지지자'와의 갈등으로 부각시켰던 보도행태와 다른 결을 내려는 스탠스로 읽힐 여지가 다분했다.
"천씨는 한때 보시는 것처럼 이재명 지사의 지지자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대선 경선 이후에 지지를 철회하고, 오히려 이 지사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이재명 지사 측도 이 같은 이야기를 저희 취재진에게 해 주면서 '천씨는 성남시장 때부터 최근까지 매일 도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해서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안 보여서 더워서 그런가보다 했더니 오늘 봤더니 이렇게 특검사무실 앞에 갔었던 거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연유에서 글을 올린 것이라고 하면서, 해당 글을 보고 여러 관측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 지사 측은 '수사를 통해서 폭력행위의 실체가 밝혀지기를 바란다. 이 이유 말고는 특별한 사유가 없다.' 이런 입장임을 밝혔습니다."
<김경수 폭행범을 '알 수도 있는 사람'>라는 제목의 JTBC <뉴스룸> '비하인드 뉴스' 내용 말미는 이랬다. 반면 파장이 이어진 11일에도 지상파 3사는 폭행사건에 침묵하거나 뒤늦게 언급하는 데 그쳤다. 대부분이 대질신문에서 말을 바꾼 '드루킹'의 진술 번복과 임박한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비서관들의 소환 조사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날 KBS는 <'말 바꾼' 드루킹... 김경수 대질 조사서 진술 거부·번복>이란 보도를, SBS는 <"드루킹 입장 번복" vs "추가 정황 제시" 정반대 주장>이란 보도를 내보냈다. 반면 MBC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지난 한 주 동안의 이슈를 살펴보는 '이슈 콕' 시간"에 김경수 지사의 특검 소환 소식을 갈무리하며 짤막하게 폭행 사건을 언급한 게 전부였다. 그렇게 현직 도시자가 특검 사무실 앞에서 당한 폭행사건은 지상파 3사에서 외면 받다시피 했다.
그렇다면, 김성태 폭행사건 때는?
▲ 지난 10일 <뉴스룸> '비하인드 뉴스'. | |
ⓒ JTBC |
정치인이 일반인에게 당한 폭행 사건은 수없이 많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한 '커터칼' 폭행도 있었고, 더 멀리는 계란 세례를 맞았던 YS나 정원식 전 국무총리 사건도 있었다. 피해 정도와 사안의 심각성은 각기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김경수 지사 폭행사건과 같이 지상파 뉴스가 홀대했던 사건은 없었다고 무방하다. 시계를 조금만 돌려보자.
<김성태, 단식 농성 중 '폭행' 당해... 원내대표 회동 불발> (KBS <뉴스9>)
<한국당 김성태, 30대 남성에 피습... "단식 투쟁은 계속"> (SBS <8뉴스>)
<김성태, 단식 투쟁 중 폭행당해 병원행> (MBC <뉴스데스크>)
지난 5월 5일, 지상파 3사는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국회 앞에서 당한 폭행을 '당연히' 주요뉴스로 다뤘다. 이튿날인 6일까지 폭행범에 대한 경찰의 신속한 구속 수사 등 후속 기사를 쏟아냈다.
특히 MBC <뉴스데스크>는 <한국당 "정치 테러" 릴레이 단식... 국회 정상화 '난항'>과 <김성태 폭행 30대 "혼자 꾸민 일"... 구속영장 신청>라는 뉴스가 그날의 메인을 장식했다. 김경수 지사의 폭행사건을 외면하거나 그 주의 이슈로 짧게 언급한 것과는 완벽히 대조되는 보도태도가 아닐 수 없다.
김경수 지사가 특검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 때문일까. 아니면, 드루킹 김아무개씨와의 대질심문이나 현직 청와대 비서관들의 소환 조사 소식이 더 위중하다는 판단에서일까. 그도 아니면, 폭행 정도가 경미하다는 판단에서였을까.
김성태 원내대표 폭행사건과 비교한다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거대 보수야당 원내대표와 현직 도지사라는 직위의 차이인가. 행여,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이라 불리는 김 지사가 특검 수사를 받고 있다고 한들 엄연히 일어난 폭행 사건과는 다른 사안 아니겠는가.
그러는 사이, <TV조선>을 비롯한 보수 언론들은 폭행범이 과거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지지자였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는 선정적인 보도를 일삼았다. 그래서 더더욱 묻고 싶다. 지상파 3사가 특검 사무실 앞에서 현직 도지사가 폭행을 당한 이 사건을 메인뉴스에서 외면하거나 홀대한 이유를. 도지사 김경수와 야당 원내대표 김성태의 차이는 무엇인가.
▲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10일 새벽 특검 사무실에서 나와 차량 있는 곳으로 가다가 천아무개씨한테 폭행을 당해 목 부분이 패이는 상처를 입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