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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4 상가눗사띠~아나빠나사띠 (위뿔라냐니 식카와띠님)
<아비담맛타상가하> 9장 깜맛타나(kammaṭṭhāna. 수행 주제)
연습문제 70번
70-2. 붓다, 담마, 상가 아눗사띠의 뜻이 무엇입니까?
붓다눗사띠, 담마눗사띠는 지난 시간에 했고, 상가눗사띠(승가 공덕 상기)는 승가의 공덕을 상기하는 것입니다. 붓다, 담마, 승가의 공덕이 각각 9개, 6개, 9개, 969라고 이야기합니다. 승가의 공덕이 9개입니다.
① 숩빠띠빤노(suppaṭipanno)
바르게 잘 수행한다는 뜻이니 번뇌를 제거하도록 잘 수행한다. 번뇌를 제거하도록 잘 수행하는 승가라는 뜻입니다. 번뇌를 제거하도록 잘 수행하고 있는 승가, 바르고 곧게 수행한다는 뜻입니다. 잘못되게 수행하지 않고 바른 방법으로 번뇌를 제거할 수 있는 바른 방법으로 수행하는 승가라는 뜻입니다. 잘못된 방법이 아니라 '잘'이라는 뜻입니다. “수(su)”는 곧은, 곧게 수행하는 잘못된 방법이 아닌, 바른 방법으로 수행하는 승가라는 뜻입니다.
② 우줍빠띠빤노(ujuppaṭipanno)
아주 곧게 수행한다는 뜻입니다. 곧게 수행하고 아주 곧게 수행하고. 번뇌를 제거하도록 잘 수행하는 승가이고, 숩빠띠빤노는 ‘잘’이라는 뜻입니다. 바르게 잘 수행하는 승가이고, 우줍빠띠빤노는 곧게 수행하는 승가이다. 거짓이나 왜곡 없이 바르고 곧게, 잘못하지 않고 아주 똑바르게 수행하는 승가라는 뜻입니다. 수행 방법이 바르다는 거죠. 다른 게 아니라 수행 방법이 바르다는 것입니다. ‘번뇌를 제거하도록 잘 수행한다’는 뜻이에요. 바른 방법으로 제거할 수 있는 바른 방법으로 수행하는 승가이고, 우줍빠띠빤노는 곧게 왜곡 없이 거짓 없이 똑바로 수행하는 승가입니다.
③ 냐얍빠띠빤노(ñāyappaṭipanno)
지혜를 얻을 수 있도록 바르게 수행하는, 열반의 지혜(냐야)를 얻을 수 있도록 바르게 제대로 수행정진하는 승가.
④ 사미찝빠띠빤노(sāmīcippaṭipanno)
존경 받기 합당하게 잘 수행하는 승가입니다. 사마디가 생길 만하게 잘 수행하는 승가라는 뜻입니다. 네 가지를 통틀어서 보면 번뇌를 제거하도록 바르게 수행한다는 뜻이죠. 번뇌를 잘라서 제거하는 것과 번뇌를 누르고 번뇌를 보지 않는 것은 다른 겁니다. 사마타는 번뇌를 보지 않는 겁니다. 보지 않고, 다른 쪽으로 좋은 대상 쪽으로 선한 마음이 생기도록 마음을 돌리는 거죠. 마음의 방향을 돌리는 겁니다. 붓다눗사띠, 담마눗사띠, 승가눗사띠 이런 좋은 대상을 떠올려서 험한 내 마음이 좋은 대상을 보고 마음이 좋아지도록 돌리는 겁니다. 아눗사띠(anussati) 10가지는 사마타 수행이죠. 이건 번뇌를 제거하는 수행이 아니라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다른 쪽으로 마음을 돌려서 기분 전환하는 겁니다. 이런 수행은 번뇌를 잘라서 제거하는 수행이 아니죠. 번뇌를 제거하려면 번뇌를 정면으로 보고 번뇌를 칼로 치듯이 잘라쳐야 합니다. 아눗사띠나 사마타 선정이 아니라 잘라서 제거할 수 있는 수행을 해야 합니다. 열반을 얻으려면 번뇌를 정면으로 보며 제거해 나가는 수행이 아닌 좋은 대상을 보는 번뇌를 회피하는 수행, 군인이 전쟁터에 나가서 앞으로 돌격하지 않고, 참호에 숨어서 화살을 피하고만 있으면 절대 승전할 리 없습니다. 기분 좋아지는 대상 쪽으로 마음을 돌려서는 열반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열반의 지혜를 얻으려면 번뇌를 정면으로 보고 번뇌를 칼로 자르듯이 자르며 싸우는 겁니다. 위빳사나는 번뇌와 싸우는 겁니다.
위빳사나는 사띠라는 칼로 번뇌를 정면으로 보고 피하지 않고 잘라내야 됩니다. 그래야 번뇌가 제거되겠죠. 잡초가 한쪽에서 자라고 있는데 잡초가 자라지 않는 다른 쪽을 보면 잡초가 자라고 있는지도 모르겠죠. 미얀마는 비오는 우안거 기간에 이끼가 엄청 낍니다. 이끼가 낀 쪽을 안 보고 하늘만 보면 됩니다. 위험한 이끼를 제거해야 한다는 경각심 없이 살 수 있습니다. 이끼가 끼어 있든 말든 하늘만 보고 있으면 이끼가 낀 것도 모르고 마른자리만 디디고 다니면 되죠. 그러다 미끄러지면 큰일납니다. 그게 아눗사띠 10가지이고, 사마타 수행입니다. 이끼는 끼고 잡초는 자라고, 언젠가 피할 수 없이 마주해야 될 때가 있겠죠. 그런 사마타 수행하는 무리가 아니라 번뇌를 제거하는 수행, 번뇌를 마주하고 번뇌를 분명하게 자르는 수행, 번뇌 뿌리까지 자르는 바른 수행을 하는 무리들이 승가입니다. 열반이라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 번뇌를 제거하면 열반을 봅니다.
제거하는 단계가 있죠.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이렇게 번뇌를 제거하는 단계. 그래서 각 단계마다 한 번씩 제거할 때 열반을 봅니다. 열반은 똑같습니다.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의 열반이 똑같은데, 위로 올라갈수록 번뇌가 적어지니까, 열반은 번뇌가 없는 상태에서 볼 수 있는 대상입니다. 번뇌가 완전히 없을 때만 볼 수 있는 대상인 거죠. 수다원보다 사다함은 더 번뇌가 적고, 아나함은 사다함보다 적고, 아라한은 번뇌가 아예 없으니까 수다원이나 사담이나 아나함보다 훨씬 더 열반을 보는 데 용이하겠죠.
수다원이나 사다함은 평소엔 번뇌가 있죠. 수행을 열심히 하면 다시 사띠를 키우면 열반을 볼 수 있겠죠. 번뇌가 없는 상태, 열반을 향해서 참되게 수행하는 승가입니다.
수행을 해보면 알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이것저것 수행을 해보면 ‘이걸 하면 번뇌가 사라지는구나.' '이걸 하면 번뇌를 보지 않고 외면하고 내가 기분 좋은 상태로 있을 수 있구나. 빨리 기분전환이 되는구나.' 이 두 가지의 차이점을 알 수 있는, 타고난 지혜가 있는 사람들이 바른 수행을 할 수 있겠죠. 이 두 가지의 차이를 모르면 뭐가 바른 수행인지 구분할 수 없어서 바른 수행을 할 수가 없습니다.
9가지 공덕 중에서 네 가지는 바르게 수행하는 승가, 번뇌를 제거하고 열반을 볼 수 있는 바른 방법으로 수행하는 승가, 이것이 승가의 공덕입니다.
이렇게 바르게 수행하는 네 쌍, 여덟 분이죠. 수다원의 도와 과, 사다함의 도와 과, 아나함의 도와 과, 아라한의 도와 과에 있는 존재, 여덟 존재, 네 쌍인 거죠. 이들이 앞에 말한 네 가지 바른 수행, 그리고 곧은 수행, 열반을 향해서 바르게 가는 수행, 존경받기에 합당하게 하는 수행, 이 네 가지를 제대로 아는 존재들은 이 8명인 거죠. 나머지 범부인 승가들은 어떻게 알겠습니까? 열반을 봐야지 알겠죠. ‘이게 진짜 열반을 향해 가는 수행이구나.’라고 알겠죠. 그래서 제대로 확실히 아는 여덟 분을 승가라고 합니다.
‘네 쌍으로 여덟 분이 계신 그 아리야 승가들, 이들이 부처님의 제자들인 승가이다.'
(야디당 짯따리 뿌리사유가니 앗타 뿌리사뿍갈라 에사 바가와또 사와까상고
yadidaṃ cattāri purisayugāni aṭṭha purisapuggalā esa Bhagavato sāvakasaṅgho)
이 네 쌍인 여덟 명의 존재들, 이들이 부처님의(바가와또Bhagavato) 제자이신 승가이다(사와까상고sāvakasaṅgho). 여덟 분이 붓다의 제자이신 승가라고 불릴 만한 존재라는 이 존재들은, 앞에 네 가지 공덕을 이미 갖췄고, 제대로 아는 존재들은 이 네 쌍 여덟 분입니다. 이들을 붓다의 제자 진정한 승가라고 부를 수 있고, 그리고 이들은 다음의 다섯 가지 공덕을 갖추었다.
⑤ 아후네요(āhuneyyo)
멀리서 가지고 온 공양물을 보시 받기에 합당한 존재이다. 멀리서 귀하게 가지고 온 공양물, 옛날 부처님 시대에는 까시 지방의 고급 비단, 어느 지방의 좋은 쌀 등 멀리서 가지고 온 공양물을 받기에 합당한 승가이고
⑥ 빠후네요(pāhuneyyo)
손님들을 위해서 따로 아껴놓은 합당한 공양물을 받기에 합당한 승가이고
⑦ 닥키네요(dakkhiṇeyyo)
이번 생이 아니라 다음 생을 위해서 정성을 다해드리는 공양물을 보시 받기에 합당한 승가이다. 부모님이나 조상들의 명복을 빌면서 승가에 보시하지 않습니까? 승가에 정성스럽게 보시해서, “이 정성으로 나의 조상과 부모님들 좋은데 태어나시기를. 명복을 빕니다.” 내가 이런 마음으로 보시를 하니까 이 마음을 받은 돌아가신 부모님과 조상들이 좋은 곳에 나시겠죠. 돌아가셔서 귀신계를 떠도시는 조상이 좋은 곳에 태어나시기를 바라면서 선업을 지어 회향할 때, 그 공양물을 어디에 보시하든 그 선업의 회향을 받아 좋은 데 태어날 수 있다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그렇게 내생을 위해서 올리는 공양물을 받아서 그 결과로 귀신계를 떠도는 분들이 좋은 곳에서 태어나게 하려면 보시를 받는 대상이 5계를 지키는 분이어야 한다고 나옵니다. 승가는 아니더라도 오계는 지키는 재가자에게 지은 선업이어야 그 선업이 회향될 만큼의 무게를 가집니다. 5계는 지키는 분에게 선업을 짓고 그 보시 의도를 내 조상들에게 회향해야 합니다. 그런 보시를 받기에 합당한 승가가 닥키네요입니다.
⑧ 안잘리까라니요(añjalikaraṇīyo)
합장하여 올리는 예경을 받기에 합당한 승가이다. “안잘리”는 손이라는 뜻입니다. 손을 모아서 합장해서 올리는 예경을 받기에 합당한 승가, 여덟 분의 성인 제자들.
⑨ 아눗따랑 뿐냑켓땅 로깟사(anuttaraṃ puññakkhettaṃ lokassā)
세상의 위없는 복밭인 승가입니다. 여덟 분이신 아리야 승가. 바른 수행 방법을 알고 바르게 수행하고 열반을 향해서 가는 어떤 길이 맞는지 알고, 그것을 아는 존재들은 여덟 분이고, 그 여덟 분들은 이런 다섯 가지 예경을 받기에 합당한 승가라따나(saṅgha-ratana), 승보(僧寶)라는 겁니다.
70-3. 무엇을 실라, 짜가, 데와따 눗사띠라고 합니까?
1) 실라눗사띠(sīlānussati)
실라는 자기가 지킨 실라(sīlā)에 대해서 떠올리는 겁니다. 계를 잘 지키고 산 사람들이 내가 지금까지 계를 잘 지키고 살았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탐욕 쪽으로 휩쓸리지 않고 5계를 잘 지키면서 살아왔는데, 이렇게 자신의 지계 공덕을 떠올립니다. 내 계가 부러지지 않고 구멍 나지 않고 얼룩지지 않고 그리고 건너뛰지 않고 계속 지속적으로 계를 지켜왔다. 이렇게 상기하는 겁니다. 자신의 계에 대해서 상기하고 마음이 뿌듯한 것, 실라눗사띠입니다.
2) 짜가눗사띠(cāgānussati)
짜가눗사띠는 자신의 보시 공덕, 자기가 보시하고 기부하고 베푼 공덕에 대해서 떠올리는 겁니다.
3) 데와따눗사띠(devatānussati)
데왓따눗사띠, 천신에 대한 상기. 천신이나 범천을 앞에 두고 나의 선업도 그들 못지않다. 이렇게 거듭해서 떠올리는 것. 신심, 지계 그리고 경전에 대한 해박함, 보시, 지혜, 불선업에 대한 부끄러움, 불선업에 대한 두려움, 이런 선근 있는 이들의 담마로 내가 가득 찼구나. 이래서 내가 이생에서 죽으면 다음 생에 천상계, 범천계에 태어나겠구나. 이렇게 떠올리면서 행복해하는 것. 이게 천신에 대한 상기입니다.
70-4. 무엇을 마라나, 까야가따, 아나빠낫사띠라고 합니까?
마라나눗사띠(maraṇānussati), 죽음에 대한 상기.
까야가따사띠(kāyagatāsati), 몸의 32가지 혐오스러움에 대한 상기입니다. 머리털, 몸의 털, 손발톱, 이빨, 피부로 시작하죠. 그것에 대해서 떠올리는 것.
아나빠낫사띠(ānāpānassati), 들숨날숨에 대한 상기, “들이쉬고 있구나, 내쉬고 있구나.” 이렇게 상기하는 것입니다.
1) 마라나눗사띠(maraṇānussati)
마라나눗사띠는 '죽음에 대한 상기'인데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의 날숨이 나갔다 들어오지 못할 수도 있고, 내가 오늘 집 나갔다가 못 돌아올 수도 있고, 자다가 죽을 수도 있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이것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하는 지혜라고 합니다. 상웨가(saṃvega. 경각심)라고 하는데, 두려움과 함께 하는 지혜입니다. 두려움과 함께 하면 보통 분노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두려움이라는 것은 무서움이라는 것은 분노죠. 성냄이죠. 그런 두려움과 함께 하는 성냄이 아니라, 두려움과 함께 하는 지혜를 상웨가라고 합니다. 두려운 것을 보고 내가 두려워하기만 하면 성냄이고, 두려운 것을 보고 “내가 죽음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되겠다, 이렇게 두려워하다가 계속 이렇게 죽으면 안 되겠다.” 이렇게 지혜가 생기고 그리고 “그것에 대한 준비를 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지혜입니다.
두려움과 함께하는 지혜(경각심)로 두려운 것을 보고, 그냥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기만 해서 뭐 합니까? 보려 하지 않죠. 분명히 있는데 죽음은 분명히 올 것인데, 두렵고 무서우니까, 피하고 다른 데 마음을 쓰죠. 다른 데 기분 좋은 5욕락에, 영화를 본다거나 다른 기분 좋은 5욕락의 즐거움을 찾는다거나 거기서 좀 더 지혜가 있으면 선업을 짓습니다. 보시를 한다거나 아눗사띠 10가지 같은 좋은 대상을 상기한다거나, 봉사를 하러 간다거나, 선업을 지으러 다니는 것, 이런 일들을 하면 지혜가 있는 거고, 그냥 그게 무서워서 다른 쪽으로 마음을 돌리면 성냄을 회피하는 거죠.
그게 아니고 이 상웨가에서 바른 수행으로 넘어가면, 지혜가 완전히 채워지면, 열반을 얻게 되겠죠. 죽지 않는 길로 들어가는 겁니다.
죽음에 대한 상기를 떠올린다는 것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죽음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데 두 가지 방법으로 세울 수 있습니다.
1. 세간 선업을 짓는 방법으로 세울 수 있고,
2. 죽음을 넘어서는 방법으로 세울 수 있습니다. 죽지 않은 방법으로 대책을 세울 수 있겠죠.
이게 마라나눗사띠의 이익입니다.
2) 까야가따사띠(kāyagatāsati)
그다음에 까야가따사띠는 32가지 몸의 혐오스러운 것들을 떠올려서 몸에 대한 애착을 버리는 것입니다. 몸을 아끼느라고 큰일, 수행하는 것을 못하는데, 몸을 아끼느라고 다리 아플까 봐 겁나서 허리 아플까 봐 겁나서 수행 못하는데, 이렇게 써도 죽고 저렇게 써도 죽습니다. 이왕이면 더 가치 있는 것에 쓰다 죽으면 더 나은 결과가 다음 생에 올 텐데요.
나무는 그냥 있어도 나이가 들어서 죽고, 100년 200년 살다 장작으로 사용돼도 죽고, 자라기 전에 잘려서도 죽고 어떻게든지 죽습니다. 잘 죽으려면 좋은 데 쓰이고 죽으면 제일 잘 죽는 거죠. 몸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하는 게 까야가따사띠입니다. 까야가따사띠도 마라눗사띠도 애착을 끊는 것이 목적입니다.
3) 아나빠낫사띠(ānāpānassati)
아나빠낫사띠는 들숨날숨에 마음을 두는 겁니다. 숨 하나는 날숨이고 또 하나는 들숨입니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쉬는 숨이 날숨이랍니다. 들숨이 아니라 엄마 뱃속에 있다가 나와서 제일 먼저 가지고 나온 공기를 뱉습니다. 날숨 먼저 쉬고 그다음에 들숨, 아나(āna)는 날숨, 빠나(pāna)는 들숨 이렇게 됩니다. 들숨날숨을 보는 겁니다.
오늘 여기까지 하고 마치겠습니다.
회향하겠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공덕이 우리를 번뇌의 소멸로 이끌기를.
이러한 우리의 공덕을 모든 존재들에게 회향합니다.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사-두 사-두 사-두
편집자: 담마삐야
* 2023-07-24 인터넷
(https://us05web.zoom.us/j/4694074327?pwd=b2pNRUk4VzExbWFMSitFa1Jkc0wyUT09)으로 하신 법문을 필사하였습니다. 필사 후 위뿔라냐니 식카와띠님께 보여드리고 요약, 수정, 추가한 부분이 있습니다.
https://cafe.naver.com/dhammadipakorea/526
일부용어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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