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구 명륜동 112번 길 9에 위치했던 동래읍성의 서문에는 '심성루(心成樓)'라는 현판이 있었습니다.
서문을 통해 바라본 동래읍성에는 여러 주요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건물로는 객사, 동래부 동헌, 그리고 다양한 부속건물들이 있었습니다. 객사는 임금을 상징하는 전폐 등을 모시고, 출장 온 관리들의 숙소로 활용되었으며, '봉래관'이라고 불렸습니다. 동래부 동헌은 동래부사가 업무를 보던 중심 건물로, '충신당'이라고 불렸습니다. 부사의 생활공간에는 독경당, 완대헌, 연심당 등이 있었고, 부속건물로는 충신당 양옆의 동의랑, 서의랑, 대문, 정원루, 식파루 등이 있었습니다.
동래읍성의 주요 청사에는 고을의 수령(사또)을 보좌하는 자치행정기구인 향청과 일반 행정을 맡은 향리들이 근무하는 장관청, 군관청, 교련청, 별무사청, 수첩청 등의 무청이 자리했습니다. 또한, 약방도 함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각 관청의 업무를 지원하던 노비소, 소동방, 관노방, 사령방, 교방 등이 주로 충신당 주변에 있었습니다.
창고는 백성들로부터 거둬들이는 곡식과 세금을 저장하며, 무기, 옷감, 보물 등을 보관하던 장소로 활용되었습니다. 여기에는 관청, 사창, 사령수직고, 접위청, 군기고, 대동고, 공방, 지대고, 고마청, 수성청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특히, 동래부의 창고에는 다른 지역과는 다른 특별한 성격의 것들이 있었습니다. 지대고와 접위청은 외교상 일본인 접대비용 마련과 관련이 있었으며, 수성청은 동래부의 국방상 중요성 때문에 설립되었습니다.
조선시대의 객사는 왕을 상징하는 '전'자를 새긴 패를 모시고 지방 수령이나 군사 책임자가 휘하 사람들과 함께 초하루와 보름마다 절을 올리는 망궐례가 진행되었습니다. 객사는 또한 멀리서 온 관리들과 방문객들을 대접하고 숙소로 제공되며, 회의실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봉래관'이라고 불린 동래의 객사는 읍성 안에서 가장 중요한 관청 건물로, 39칸 규모였습니다. 대문인 식파루 등도 있었으나, 이들은 일제강점기 동안 사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