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설계자 선정 장악… ‘공공 커넥션’ 우려
이주·철거 땐 ‘뒤꽁무니’… 조합에 책임 전가
전문가 “도정법 77조 활용 못하고 권한만 요구”
이주·철거 땐 ‘뒤꽁무니’… 조합에 책임 전가
전문가 “도정법 77조 활용 못하고 권한만 요구”
서울시가 내달 1일 주거환경개선정책 자문위원회가 내놓은 ‘정비사업 프로세스 혁신안’을 확정·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가 처음부터 자문위에 동참해왔던 만큼 혁신안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 혁신안은 공공관리자 도입 등 공공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동안 민간방식에 의존하면서 나타난 업체 선정을 둘러싼 비리나 세입자와의 갈등 등을 풀기 위해 전지전능한 공공이 개입해야 한다는 논리다. ‘민간=악’ ‘공공=선’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공공은 권한만, 책임은 조합이=공공의 적극적인 개입이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민간방식보다 비교 우위를 보여야 된다. 이는 기본전제인 것이다. 특히 공공이 개입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투명성이나 사업의 신속성, 비용절감 등에서 장점이 발휘돼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우선 투명성 부문이다. 지난 10일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포항시 전·현직 공무원들이 재건축·재개발 인·허가를 대가로 거액의 뇌물을 받은 것과 관련해 무더기 실형 선고를 내렸고, 지난달에는 서울중앙지검이 서울시 8개 자치구 공무원과 의회 관계자 23명을 기소하는 등 공무원들의 ‘검은 돈잔치’는 계속되고 있다. 신뢰받지 못하는 게 당연한 상황이다.
또 인·허가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업이 신속하게 추진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 공공이 사업시행자로 참여하고 있는 안양 덕천마을 등의 사례에서 보면 오히려 민간방식보다 사업이 장기화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비용절감 측면에서도 저급의 값싼 공공주택만 양산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도 서울시 혁신안은 공공에게 권한만 부여하고 실제로 공공의 개입이 필요한 부문에 대해서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또 책임을 회피하는 공공이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이에 대한 처벌 규정도 없다.
추진위원회 승인 이전에 지정되는 공공관리자는 업체 선정 등 전권을 행사하게 된다. 하지만 막상 관리처분이나 이주·철거 등 공공의 중재자 역할이 기대되는 단계에서는 은근 슬쩍 뒤꽁무니를 빼고 있다. 주민의지와 관계없이 강제로 사업파트너가 되는 독점적 지위를 누리다가도 갈등이 심화되는 단계에서는 주민의 선택사항으로 바뀌게 된다.
중재자 역할 보다는 오히려 잿밥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실제 업무 모호… 공공 줄대기 우려도=공공관리자는 설계자나 시공자 선정업무를 지원한다는 명분하에 막강 파워를 가지게 된다. 문제는 공공관리자가 업체 선정과 관련해 어떤 업무를 하겠다는 것인지 모호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업체 선정 총회를 진행하겠다는 것인지, 입찰공고문을 작성하겠다는 것인지 등 불분명하다.
또 협력업체의 선정은 이미 법에서 기준이 정해져 있는데도 공공이 개입하게 함으로써 기준 자체를 부정하는 셈이 된다. 〈정비사업의 시공자 선정기준〉 이나 오는 8월 7일 시행 예정으로 국토해양부가 작성중인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 선정기준〉 등이 그것이다. 업체 선정마다 공공관리자의 개입이 이뤄지면서 수주를 위한 업체들의 줄대기도 우려되고 있다. 민간에 맡겨 생긴 비리가 공공으로 넘어가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아가 사업초기 진입장벽에 대한 특혜를 받은 SH공사나 주공 등 공공관리자가 사업시행자 지정 동의서를 징구하는 것도 우려되고 있다. 이럴 경우 공공이 정비사업을 독식하게 된다. 실제로 성남시의 경우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에 ‘순환정비방식에 의해 정비사업을 시행할 필요가 인정되는 때 주택공사 등을 사업시행자로 지정해 사업을 시행할 수 있다’는 규정을 악용해 전체 사업시행을 주공이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있는 칼’도 못 쓰면서 ‘더 큰 칼 달라’는 꼴=〈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77조는 업계에서 ‘수퍼 77조’로 통한다. 제77조에 따르면 국토해양부장관, 시·도지사, 시장·군수·구청장은 명령·처분 등에 위반될 경우 그 처분의 취소·변경 또는 정지, 공사의 중지·변경, 임원의 개선권고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또 국토부장관은 점검반을 구성해 분쟁조정, 위법사항의 시정요구 등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막강한 권한이 주어졌음에도 공공은 인력난과 시간 등을 이유로 권한을 행사하지 않았다. ‘있는 칼’도 제대로 못 쓰면서 ‘더 큰 칼을 달라’고 떼를 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 정비사업 전문가는 “공공개입이 주민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공공이 시행중인 정비사업 현장에서 실제 민간보다 나은 점을 보여주면 된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공공이 민간보다 나은 점을 증명할 수 없는 현 상황에서는 공공시행에 대한 면밀한 실태조사를 실시해 장단점을 파악하는 게 먼저”라며 “이후 시범적으로 운영한 후 제도도입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첫댓글 좋은지적, 공감합니다.
[권력]재개발지역에 살다보니 개발법령 보다 정치적인 부분이 많아 보인다.
공무원에게 권력을 집중시켜 놓고 , 투명성을 확보했다 ,,, 생각의 차이는 있지만, 정말 우려됩니다.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감시를 하면서 하는 것을 좋을 듯한데, 운영하기 나름 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