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스토리] 도연명 편: 제3회 궁핍과 벗하고
(사진설명: 도연명의 석상)
화재가 나서 벌건 화염이 하늘을 덮었다. 도연명의 아홉 칸짜리 초가집은 불에 타서 하루 밤 사이에 폐허가 되었다. 적씨가 눈물을 흘렸다.
“이제 모두 다 사라졌으니 어떡해요? 곧 겨울인데 우리 어떻게 해야 하나구요?”
도연명이 아내를 위로했다.
“괜찮소. 초가집이 불에 타면 다시 지으면 그만. 다행히 애들이 다 무사하지 않소.”
초가집은 불씨만 만나면 화재에서 구하기 힘들다. 불의 신 축융(祝融)의 왕림으로 집을 잃은 도연명은 울며 겨자 먹기로 아내와 애들을 데리고 고향인 도촌(陶村)으로 돌아갔다. 고향에서 그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웠다. 하지만 도연명은 여전히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했다. 단 하나, 더는 술을 살 돈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애주가인 도연명으로 말하면 술이 없는 일상은 참으로 힘들었다.
어느 날 도연명은 초대장 하나를 받았다. 도연명이 초대장을 가지고 온 사람에게 말했다.
“가서 나리에게 보고하시오. 내가 농사가 다망해서 잔치에 갈 수 없으니 마음만 받겠다고 말이오.”
그 사람이 돌아가자 적씨가 물었다.
“누가 잔치에 초대했는데요?”
“강주(江州) 자사(刺使) 왕홍(王弘)이요. 아마도 나와 인연을 맺고 벼슬이라도 주려는 것 같소. 다시는 벼슬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으니 그런 술을 마시러 갈 수 없소.”
적씨가 웃었다.
“당신은 이렇게 외지고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는데 벼슬아치가 당신과 인연을 맺으려 하고 당신에게 벼슬을 준다구요? 왜요?”
도연명이 정색해서 대답했다.
“뜻이 높고 품성이 고상한 사람은 자연히 사람들의 존경을 받기 마련이오. 다만 내가 시골에 은둔해 있는 것은 명예를 추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오. 하지만 그가 나를 초대하는 것은 나를 빌어 자신의 몸값을 올리려는 것이니 이 술은 마셔서는 안 되는 술이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연명은 여산(廬山)으로 가다가 중도에서 왕 자사의 초대장을 가지고 왔던 그 관리를 만났다. 그는 길가의 정자에 풍성한 술과 안주를 차려놓고 도연명을 초대했다.
도연명이 물었다.
“무슨 뜻이오? 내가 누구라고 그대가 직접 나를 기다리시오?”
“저의 나리의 마음입니다. 나리는 다만 선생을 존경해서 알고 지내고자 한 것뿐이지 다른 의도는 없습니다.”
“미안하군 그려. 나는 무회씨(無懷氏)와 갈천씨(葛天氏) 시대의 사람이니 벼슬아치의 술은 받지 못하겠소.”
무회씨와 갈천씨는 모두 전설 속 상고시대의 제왕으로 그들이 집권한 사회는 순박함이 대표였다. 도연명은 벼슬을 원하지 않고 자유롭고 편안한 생활을 하려는 자신의 뜻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을 이 두 제왕이 세상을 다스리던 때의 사람이라고 말한 것이다.
말을 마친 도연명은 술상에 눈길도 주지 않고 지팡이를 짚고 여산으로 향했다.
도연명이 여산에서 돌아오자 동씨 노인이 자체로 빚은 술 한 단지를 들고 도연명을 찾아왔다. 두 사람은 술을 마시면서 생계를 논의했다.
도연명이 익살스럽게 말했다.
“저에게 아들 다섯이 있는데 모두 붓과 종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서(舒)는 벌써 16살인데 누구보다도 책 읽기를 싫어하고 15살 선(宣)은 문학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또 옹(雍)과 단(端)은 모두 13살인데 아직도 육(六)과 칠(七)을 분간하지 못하고 9살짜리 통(通)은 배와 밤을 찾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매일 술을 마실 수밖에요.”
“자네 이렇게 궁핍하니 배를 불리지 못한 애들이 어떻게 공부에 열중하겠나? 해진 옷을 입고 누추한 초가집에 사는 것이 산중에 은둔해서 여유롭게 사는 것인가? 이 세상이 원래 시비곡직과 흑백을 가리지 않으니 벼슬이나 하게. 그래야 애들을 고생시키지 않지.”
농사를 하는 동씨 노인이 벼슬을 권장할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도연명은 하는 수 없이 자신의 뜻을 확실히 밝혔다.
“노인장의 호의에 깊이 감사 드립니다. 하지만 나는 천성적으로 자유를 좋아해서 관리들의 분위기에 흘러 들지 못합니다. 이는 마치 마차를 모는 것처럼 머리를 돌려 다시 벼슬길에 오를 수는 있지만 천성과 뜻을 어긴 것이니 마차가 기로에 들어선 것과 같지 않겠습니까? 우리 신나게 술이나 마시지요! 저의 마차는 이미 전원에 들어서서 벼슬길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동씨 노인이 웃었다.
“고생을 사서 하는군 그래. 그렇게 고생을 좋아하니 계속 가난을 즐기게!”
궁핍한 삶은 하루하루 이어져 도연명은 가끔 돈을 빌리기도 하고 또 가끔은 걸식도 했지만 여전히 마차를 돌려 벼슬길에 들어서는 일은 하지 않았다.
한 번은 오래된 벗인 안연(顔延)이 시안군(始安郡) 태수(太守)로 부임하러 가는 길에 심양을 지나다가 도연명의 집을 찾아와 술을 나누었다. 그는 떠나는 길에 살림에 보태라고 2만 전(錢)을 남겼다. 하지만 도연명은 그 돈 전액을 술집 주인에게 맡겼다.
“이 돈은 술값입니다. 후에 내가 술 사러 오면 이 돈에서 까시오!”
그로부터 도연명은 한 동안 또 술을 마실 수 있었다.
도연명의 집에는 무현금(無絃琴) 한 대가 있었다. 농한기 때 술을 마신 뒤에 도연명은 거문고를 타며 즐겼다.
도연명의 아들이 물었다.
“아버님, 현도 없고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거문고를 타시다니요? 그게 무슨 재미가 있습니까? 제가 보기에 아버님은 허세를 부리며 고생 속에서 즐거움을 찾으시는 것 같습니다.”
도연명이 아들의 말에 대꾸했다.
“거문고에는 현이 없지만 내 마음 속에는 현이 있다. 거문고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나는 거문고 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나는 허세를 부리는 것은 아니지만 고생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니 네가 어찌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