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가서
봄의 한가운데 절기 춘분을 맞았다. 아침방송 뉴스 기상 게스트는 제주도를 시작으로 저녁엔 남부지방에 비가 내릴 것이라고 했다. 봄이면 신경이 더 쓰이는 미세먼지는 보통 수준이라니 그리 쾌정한 날은 아닐 성 싶었다.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정한 출근 시각에 현관을 나서 걸었다. 퇴근길 강우가 예상된다고 했으나 우산은 챙기지 않음은 학교에 둔 여분의 우산이 있어서다.
반송중 근처에서 신호등을 건너니 보도에선 회사로 출근하는 사원들이 줄을 서서 통근버스를 기다렸다. 나는 반송소하천을 따라 걸어 용지 사거리에서 또 하나의 신호등을 건너 창원스포츠파크로 갔다. 창원스포츠파크는 종합운동장과 실내체육관에이 주 시설이다. 거기에다 경륜장과 실내수영장이 있다. 동문 출입구 롤러스케이트장과 인접한 보도 따라 걸어 대상공원 입구로 갔다.
용지동에서 교육단지 뒷산을 거쳐 충혼탑과 시티세븐에 이르는 야트막한 산등선의 도심 숲을 대상공원이라 불렀다. 나는 내가 사는 생활권에서 땅이름에 관심을 많다. 무릇 지명에는 그 걸맞은 연원이 있게 마련인데 ‘대상’은 무슨 뜻으로 붙였는지 궁금했다. 원주민은 만날 길 없고 인근 주민자치센터로 전화해 물어보고 싶어도 누구를 바꿔 달라고 하는 절차가 복잡할 듯해 단념했다.
이럴 때는 나는 특유 연상과 유추가 발동된다. 교육단지 일대를 두대동이라 그러고 그 곁은 대원동이다. 나는 혼자 속으로 짐작컨대 대상공원은 두대동 뒷동산에 해당하는 산등선이라 ‘대상’이라 불리나 싶었다. 또 다른 설은 대상(帶狀)이라는 보통명사에서 왔을 수도 있지 싶었다. 그 대상은 ‘띠처럼 좁고 길게 생긴 모양’ 이란 뜻이다. 산등선이 좁고 길게 띠처럼 생겨 보일 수 있다.
대상공원 들머리는 폴리텍대학 후문과 가까웠다. 공원 입구 운동기구엔 매일 아침 인근 주민들이 다리 근력을 키우는 운동을 하였다. 내보다 나이가 더 들어 뵈는 현업에서 은퇴한 분들인 듯했다. 내가 폴리텍대학 캠퍼스를 들어설 때 구내는 절간처럼 조용했다. 저만치 산기슭 아래 기숙사에서도 학생들 움직임은 없었다. 도서관도 개관 시간이 일어 문이 닫혔고 불은 켜지질 않았다.
대상공원과 가까운 폴리텍대학 도서관 주차장 모서리엔 며칠 전부터 눈 여겨 살피는 나무가 한 그루 있다. 그 나무는 벚나무 같긴 한데 개화시기와 색깔이 좀 달라서다. 우리 지역 벚나무들은 대개 삼월 하순에 꽃이 핀다. 나무가 심겨진 자리가 볕이 바른지에 따라 약간 차가 있긴 하다. 이즈음 가지마다 꽃망울이 몽글몽글 부풀고 있다. 그러다가 금세 활활 피는 게 벚꽃의 속성이다.
주말 이틀을 보내고 평소와 마찬가지로 월요일 아침 출근길 폴리텍 대학 도서관 앞을 지났다. 지난주부터 낌새가 조금씩 달라지더니 마침내 그 나무에선 가지마다 아주 붉은 꽃송이를 펼치고 있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양지 바른 뜰에도 벚꽃은 아직 피질 않고 망울만 부풀고 있었다. 그럼에도 폴리텍 대학 도서관 인근 한 그루 벚나무에선 꽃이 열흘 정도 일찍 피고 색깔도 무척 붉었다.
매화라면 홍매화가 있는데 매화는 이미 응달이나 산기슭이라도 절정을 지났다. 살구꽃이라고 보기엔 특유의 연분홍색보다 붉었다. 살구꽃도 볕이 아주 바른 자리라야 이제 꽃잎을 펼칠 기세인데 그곳은 볕이 잘 드는 남향도 아니었다. 잎보다 먼저 붉은 꽃이 피는 나무로는 홍도가 있다. 홍도화는 말 그대로 붉게 피는 복사꽃인데 나무의 높이로 보거나 수피를 살펴도 분명 거리가 있었다.
겉으로 봐서는 벚나무 같은데 꽃을 보니 홍매화나 홍도화 같아 헷갈렸다. 나는 요염하게 피는 선홍색 꽃을 바라보면서 벚나무에도 몇 가지 변이종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미쳤다. 하나 아쉬움이 있다면 나는 작년에도 그 꽃을 보았는데 그냥 예사로 스쳐 지나고 말았다. 나는 그 나무에서 꽃이 지고 잎이 돋아 녹음이 무성할 때가 기다려진다. 버찌일까, 매실일까, 복숭아일까, 살구일까? 17.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