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대는 지명이 아닙니다
상고대란?
늦가을 산을 오르다 보면 환상적인 광경을 볼 때가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넋을 잃을 정도다.
눈이 만들어낸 설화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얼어붙어 만들어진 얼음(서리) 꽃이어서인지 신비롭기까지 하다.
그래서인가?
사진작가들이 자연사진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 상고대라고 한다.
기상청이나 공군기상단이 주최하는 기상사진 공모전에서도 수상을 몇 번 차지한 기상현상이 상고대다.
사전에서 상고대는 “대기 중의 수증기가 승화하거나 0℃ 이하로 과냉각 된 안개‧구름 등의 미세한 물방울이 수목이나 지물(地物)의 탁월풍이 부는 측면에 부착·동결하여 순간적으로 생긴 얼음으로 수빙(樹氷)이라고도 한다.”고 나와 있다.
상고대는 산악인들이 부르는 통칭이며 순수한 우리말이다.
기상용어로는 무빙(霧氷)이라고도 부른다.
상고대는 기온이 낮고 습도가 높은 날에 잘 만들어진다.
늦가을 이동성고기압의 영향으로 대기가 안정하게 되면 안개가 발생한다.
높은 산 지역에서 만들어진 안개가 나무 잎이나 가지에 달라붙어 얼면서 나무서리를 발생시킨다.
서리와의 차이는 많은 양이 지표면보다 높은 나무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상고대의 대표적인 것이 나무 서리로 수상(air hoar, 樹霜)이라고 부른다.
높은 산과 추운 지역에 많이 나타나는 상고대로 결정은 눈 모양과 비슷한 침상·판상·수지상(樹枝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개가 있을 때는 안개입자가 함께 부착되어 성장하기도 한다.
바람이 약한 맑은 밤에서 이른 새벽 사이에 나무나 물체의 바람을 받는 쪽에 생긴다.
상고대중 나무서리는 해가 뜨면 바로 녹아 없어지기에 부지런한 산악인이 아니면 볼 수 없다.
온 산의 나무에 하얗게 내린 서리상고대의 모습은 아름답기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서리가 아닌 얼음이 나무에 붙어 발생한 상고대를 수빙(樹氷)이라고 부른다.
나뭇가지에 얼음으로 얼어붙어 만들어진 상고대는 백색 투명의 부서지기 쉬운 얼음이다.
수빙상고대는 주로 한겨울의 갑자기 추워지는 날에 생긴다.
비나 눈이 온 다음날 푸근했던 날씨가 밤새 갑자기 기온이 급강하하면 공기 중의 수분이 얼면서 나무에 달라붙어 상고대가 생긴다.
바람에 눈가루가 날려 상고대에 붙으면 점점 두꺼운 상고대로 발달한다.
이 상고대는 서리상고대와 달리 바람이 강할수록 풍상 측에 크게 성장한다.
얼음의 끝은 새우꼬리와 같은 모양을 한다.
과냉각의 정도가 강한 물방울이 얼어붙어 만들어진 백색의 불투명한 상고대를 연한 상고대(soft rime)라고 한다.
새우꼬리 모양을 잘 보여주는 상고대가 연한 상고대며, 과냉각 정도가 약하고 입자가 큰 물방울이 얼어붙어 만들어진 반투명 또는 단단한 상고대를 굳은 상고대(hard rime)라고 한다.
만들어지는 매커니즘(machanism)이 비슷한 것 중에 항공기 착빙이 있다.
이것도 상고대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상고대는 과냉각(過冷却) 물방울이 영하의 기온에 놓여 있는 항공기와 충돌하여 만들어진다.
과냉각 물방울은 충돌과 동시에 항공기 표면에 얼어붙는다.
이 상고대층은 얼음 입자들 사이에 공기를 함유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얼음 입자 사이의 응집력이 비교적 적다.
약간의 충격만 있어도 상고대는 물체로부터 쉽게 떨어진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항공기에 얼음이나 서리가 부착되면 항공안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항공사들이 항공기 표면에 발생한 약간의 결빙도 다 없애는 것은 이 때문이다.
상고대가 만들어지는 조건
시인들은 상고대를 매서운 찬바람을 맨몸으로 맞던 앙상한 나뭇가지가 하얀 솜옷을 걸쳤다는 표현을 쓴다. 하늘을 보면 너무나 맑은 하늘이다.
어디서도 눈은 내리지 않는다.
그런데 나무의 솜옷은 커져만 간다.
공기 중의 수증기가 승화되어 나뭇가지에 들러붙기 때문이다.
상고대의 가장 대표적인 서리상고대의 모습이다.
앞의 이야기는 서리상고대가 만들어지는 기상조건을 잘 보여준다.
서리상고대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기온이 낮아야 한다.
바람이 약하게 불어야 한다.
공기가 안정하고 안개가 발생해야 한다.
특히 안개가 끼면 상고대가 생길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
안개가 자주 끼고 산의 기온이 뚝 떨어지는 늦가을에 상고대가 잘 피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기온이 크게 낮지 않을 때는 한밤에 상고대가 피었다가 해가 떠 기온이 올라가면 바로 녹아버린다.
이런 기상현상이 생기는 조건은 이동성고기압권내에서이다.
상고대는 영하 6도 이하의 기온과 90% 이상의 충분한 상대습도, 여기에 초속 3m 정도의 바람이 불어주어야 한다.
서리상고대는 모양이 눈과 비슷하다.
모양새는 비슷하지만 만들어지는 원리는 전혀 다르다.
상고대는 이런 조건을 갖추었다고 해도 항상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보니 상고대를 보기는 쉽지 않다.
상고대가 내리는 시기는 늦가을에서 초겨울 사이, 그리고 이른 봄이다.
통상 해발 1,000m 이상의 고산지대에서 주로 발생한다.
낮에는 따뜻했다 밤에 기온이 급강하하는 지역이 이 정도 높이의 산이다.
따라서 아름다운 상고대를 보기 위해서는 산에 오르는 수고를 마다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 상고대가 유명한 산으로 소백산과 덕유산이 있다.
소백산은 겨울철이면 하얀 눈을 머리에 이어 소백산이라고 불린다.
북동에서 남서 방면으로 뻗어 내린 능선의 영향으로 상고대가 아름답기로 이름나 있다.
지형적인 영향으로 서해상에서 만들어진 눈까지 불어올라치면 설화가 활짝 피어 환상적이 된다.
덕유산은 겨울이면 습한 대기가 큰 산을 넘으면서 눈을 뿌린다.
남부지방임에도 눈이 많이 오는 산이다.
아울러 바람에 날린 습한 대기가 나뭇가지에 얼어붙어 하얀 산호 같은 상고대가 만들어진다.
이 외에도 한라산과 태백산, 오대산이 상고대가 아름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의 나무에 하얀 꽃이 핀다고 다 상고대는 아니다.
눈이 쌓인 것은 설화(雪花), 쌓였던 눈이 얼면서 얼음 알갱이가 줄기에 매달리는 것은 빙화(氷花)로 부른다. 가끔 한겨울 눈이 내린 뒤에는 설화, 상고대, 빙화가 복합적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산에 오르지 않고도 상고대를 볼 수 있는 곳들이 있다.
바로 댐 주변이다.
습기가 많이 공급되면서 기온이 많이 내려가는 댐 주변에는 아침에 환상적인 상고대를 만날 수 있다.
춘천이나 충주 댐 주변이 대표적이다.
특히 춘천의 소양 3교와 소양 5교는 사진작가들에게는 명소로 손꼽힌다.
그러나 산에 피는 서리상고대와 마찬가지로 해가 뜨면 바로 사라지기에 찰나의 순간을 잘 포착해야 한다.
상고대가 사라진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는 상고대에게도 영향을 준다.
기온이 상승하면서 상고대가 점점 사라지기 때문이다.
유엔정부간 기후위원회(IPCC)의 보고에 따르면 세기말까지 전 지구의 평균기온은 4.6℃ 상승할 것으로 추정한다.
우리나라 기상청은 한반도 기온이 세계 평균보다 더 높이 상승하여 5.7℃상승을 예상한다.
이럴 경우 남한에서는 태백산맥의 일부지역을 제외하고 전지역이 아열대기후구로 바뀐다.
겨울이 사라지고 여름이 길어지는 아열대기후구가 되면 우리나라 식생도 대폭 바뀔 것이다.
당연히 춘천댐의 상고대는 사라지고 태백산맥의 상고대도 관측하기가 어려워 질 것이다.
미래에는 자연의 아름다운 작품인 '상고대'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후손들에게 그림책에 나와 있는 상고대를 보여줄 수밖에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