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 요코의 음악에는 현대 모든 민족 문화의 사운드가 들어 있다. 그녀는 진정 세계적인 아티스트이다.” ―프리재즈 음악가 오네트 콜먼 ‘세상의 모든 여자들로부터 존 레논을 빼앗은 마녀!’ 이것이 지금껏 우리가 기억하는 오노 요코의 수식어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오노 요코의 음악이 전혀 다른 평가를 받는다는 점은 아주 흥미롭다. 이제야 사람들은 그녀가 얼마나 진보적인 음악가였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녀의 음반들은 발매 당시에는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여러 가지 관점에서 볼 때 선구적인 요소가 있다. 음악가이며, 영화 제작자이며, 설치 미술가이며, 행위 예술가인 오노 요코는 1933년 2월 18일에 도쿄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상류층 집안에서 교육을 받았고 부모님이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덕에 미국에서 음악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가부장적인 문화는 오노 요코의 무한한 꿈을 실현시켜주지 못했다. 그래서 오노 요코는 마치 입센의 인형의 집에 나오는 노라처럼 남편과 딸을 두고 떠난다. 이때 한창 전세계적으로 현대 전위 예술이 시작되고 있었다. 플럭서스와 팝 아트, 해프닝과 액셔니즘 등의 파괴적이고 자유로운 예술 표현 방식이 오노 요코의 영혼에 불을 당겼다. 오노 요코는, 존 케이지나 마르셀 뒤샹 등의 예술가들과 예술적 관계를 맺고 활발하게 퍼포먼스와 작품 활동을 한다. 이 책에는 오노 요코의 예술 작품 사진들이 약 50컷 정도 들어 있다. 이 사진들을 통해서 실제 오노 요코의 예술 작품이 어떠한지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즈음에 오노 요코는 팝 음악이나 비틀즈, 존 레논에 대해서 잘 몰랐다고 한다. 레논의 입장에서 보면 이상한 일일 것이다. 이미 레논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때 존 레논은 자신의 활동 분야인 음악뿐만 아니라 조형 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오히려 레논이 오노 요코를 통해서 플럭서스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이 책을 쓴 저자 클라우스 휘브너는 말하고 있다. 오노 요코의 예술 활동 중 가장 인상적인 이벤트는 영국 트라팔가 광장의 석조 사자상을 흰 천으로 휘감아버린 사건이다. 그것은 예술 작품이 아니라 거의 사건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 석조 사자상은 프랑스 스페인 함대를 무찌른 넬슨 제독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으로 영국인의 콧대 높은 자존심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휘감아 가린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어리석은 전쟁을 벌이고, 게다가 그 승리를 기념하기까지 하는 남성들의 세계에 대한 조롱이었다. 그녀에게 쏟아진 영국민들의 비난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마녀, 미친 여자, 전 세계인이 가장 혐오하는 여자…” 그러나 오노 요코의 이러한 행위 예술에는 폭발성이 매우 강한 정치적 사회비판적 화약이 들어 있었고, 그것은 이제 와서야 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에게서 인정을 받게 되었다. 마녀에서 예술가로, 그것도 온 일생을 바쳐 투쟁한 예술가로 제 길을 찾게 되었다는 의미가 이 책 속에는 잘 들어 있다. 또한 이 책에는 현대 예술 사조와 예술가들에 대한 설명을 중간중간에 삽입하고 있어서, 기괴하고 파괴적이면서도 아주 흥미로운 현대 예술의 세계를 재미있게 안내하고 있다. 올해 고희를 맞은 오노 요코는 현재 뉴욕에 살고 있다. 오는 6월 20일부터 서울의 로댕 갤러리에서 오노 요코 전시회가 열리므로, 이 책을 읽고 전시회도 본다면 그 감동이 더해질 것이다. [인터파크 제공]

1933년 2월 18일 일본 도쿄에서 부유한 은행가의 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자유로운 예술가를 꿈꾸던 오노 요코는 1953년 아버지를 따라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피아노를 배우던 중 1957년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난한 일본인 음악가와 결혼하였다.
그 뒤 뉴욕에서 미술가 라우션버그(Robert Rauschenberg)·뒤샹(Marcel Duchamp)·백남준(白南準), 작곡가 케이지(John Cage), 무용가 커닝엄(Merce Cunningham) 등과 교류하면서 1960년대 초에 일어난 국제적인 전위예술 운동인 플럭서스(Fluxus) 예술가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뚜렷한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해 예술적 방황을 거듭하다가 1962년 법적 이혼 수속을 밟지도 않은 채 화가이자 음악가인 콕스(Anthony Cox)와 결혼한 뒤, 1967년 비틀스(The Beatles)의 멤버인 레넌(John Winston Lennon)과 세 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1964년 전쟁 반대를 호소하며 전라가 될 때까지 사람들이 자신의 옷자락을 조금씩 잘라가도록 한 행위예술 '컷 피스'(Cut Piece) 이래, 런던의 트라팔가광장에서 넬슨(Horatio Nelson)이 프랑스 함대를 물리친 것을 기념해 세운 전승기념비를 흰 천으로 감싼 '포장 이벤트'(1967), 남자들의 엉덩이를 끊임없이 보여주는 영화 《궁둥이》(1967), 레넌과 함께 침대 위에서 벌인 '평화를 위한 침대시위'(Bed In For Peace, 1969), 여성운동을 위한 노래 《여성은 세상의 검둥이》(1970)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오노 요꼬와 아들 션 레넌
여담이지만. 션 레넌이 존 레넌과 오노요코의 사랑을 듬뿍받고 자란것에 비해
줄리언 레논은 어린시절 부모의 이혼을 지켜봐야 했다.
폴 메카트니가 션의 이복형 격인 어린 줄리언 레넌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노래 Hey Jude 라는 명곡도 있음.

“사람들 눈에 요코가 어떻게 보이든 나한테는 최고의 여성이다.
비틀스를 시작할 때부터 내 주변에 예쁜 애들은 얼마든지 널려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 나와 예술적 온도가 맞는 여자들은 없었다.
난 늘 ‘예술가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을 꿈꾸어왔다.
나와 예술적 상승을 공유할 수 있는 여자 말이다.
요코가 바로 그런 여자였다!”
난 태어났노라! 살았노라! 요코를 만났노라!”
비틀즈 아니면 오노요코 난 둘중 하나를 택해야만 했다
- 존 레넌 -

그룹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의 ‘4년간의 은둔’ 동안의 행적이 밝혀졌다. 이는 비틀즈 전기 작가인 필립 노먼이 존 레논의 삶을 재조명하며 미망인 오노 요코를 인터뷰한 내용을 최근 영국 데일리메일을 통해 공개하며 알려졌다. 존 레논과 오노 요코는 ‘잃어버린 주말’이라고 불리는 14개월간의 별거 기간 후 다시 신혼으로 돌아갔다. 이때 행위예술가인 오노 요코는 일보다는 가정에 집중하려 했고, 존 레논도 술, 여성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 그런 노력의 결과 그들에게 아이가 생기자, 존 레논은 40대 임산부인 부인의 손발이 되어 헌신적으로 그녀를 위했다. 존 레논은 태어난 아이에게 ‘신의 선물’이라는 의미의 ‘숀’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음악 활동은 물론 모든 외부활동을 중단하고 아들을 돌보는 것에만 집중했다고 한다. 물론 이는 부인 오노 요코가 남편을 대신해 모든 일을 대행해서 가능했다.
존 레논에게 아들 숀의 양육은 각별한 의미였다고 한다. 부모님께 버림받았던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보상이었고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줄리안을 제대로 돌봐주지 못한 미안함의 표시이기도 했다.
그는 아들이 잠들 때까지 옆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었고 숀의 낙서 하나하나까지 소중히 간직하며 애정을 보였다. 결국 4년은 존 레논에게 은둔의 기간이 아니라 아들과 함께하며 그 어느 때보다 행복으로 가득 찬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음악적으로 많이 지쳐있었던 존 레논에게 평온한 휴식의 시간이었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YokoOno-GoodbyeSadness.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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