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암호화폐(코인) 시장은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코인 시장 가치가 전년 최고점 대비 50% 이상 주저앉았고 거래량도 반 토막이 났다. 각국 긴축 정책으로 유동성이 빠르게 회수되면서 위험자산 선호도가 추락했고 ‘루나 사태’ ‘FTX 파산 사태’ 등 악재가 끊이지 않았다. 코인 시장 약세를 뜻하는 ‘크립토 윈터(Crypto Winter)’ 삭풍에 투자자들은 오들오들 떨었다.
하지만 겨울이 끝나고 봄은 오기 마련. 해가 바뀌면서 코인 시장에도 ‘훈풍’이 불어오기 시작한 모습이다. 2월 23일 기준 비트코인(47%), 이더리움(38.9%), 에이다(57%) 등 주요 코인이 연초 대비 상승률 두 자릿수를 기록 중이다. 테조스(102.8%), 솔라나(145.2%), 파일코인(160.9%) 등 2배가 넘는 상승을 보인 메이저 코인(시총 10억달러 이상)도 수두룩하다. 지지부진 하락장을 이어가던 지난해와는 완연히 달라진 분위기다.
‘크립토 윈터’의 끝, 이른바 ‘크립토 스프링(Crypto Spring)’에 진입한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투자자 사이에서는 ‘이제 다시 들어갈 타이밍’이라는 논의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온기가 감돌기 시작한 2023년 코인 시장을 전망해본다.
어떤 코인이 많이 올랐나
낙폭 컸던 메이저 코인 ‘급등세’
당장 대장주인 비트코인이 연초부터 기세를 올리기 시작했다. 1월 1일 개당 가격 1만6500달러(약 2150만원)에서 출발한 비트코인은 1월 중순부터 급격한 우상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하더니 2월 21일에는 2만5000달러(약 3250만원)를 터치했다. 비트코인이 2만5000달러대를 탈환한 것은 지난 2022년 6월 이후 8개월 만이다. 가격이 급락하며 2만5000원대가 ‘무너졌던’ 당시 상황과는 그 방향성이 정반대다. 같은 기간 이더리움 가격도 1200달러대에서 1700달러까지 빠르게 올랐다.
다른 알트코인 상승세는 훨씬 더 가파르다. 시총 상위 20위권 내 코인 중에서는 에이다(7위, 57%), 폴리곤(9위, 85.6%), 솔라나(11위, 145.2%), 아발란체(15위, 89.5%)의 약진이 눈에 띈다. 네 개 코인 모두 ‘플랫폼 코인’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다른 코인을 생성하는 ‘툴’ 역할을 하는 코인으로 PC나 스마트폰으로 비유하면 윈도우나 iOS 같은 운영체제(OS) 역할을 한다. 이들은 느린 속도, 취약한 보안 등 과거 이더리움이 지닌 여러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출범한 코인으로 이른바 ‘이더리움 킬러’로 분류돼왔다. 지난해 이더리움 처리 속도와 채굴 방식을 개선한 ‘이더리움 2.0’ 업데이트 이후 저마다 큰 폭으로 하락했지만 최근 코인 시장 훈풍을 타고 무서운 속도로 가격이 오르는 중이다.
최근 호재가 분명한 코인들은 더욱 큰 폭으로 올랐다. 연초 대비 상승률이 200%가 넘는 코인들도 수두룩하다. ‘콘플럭스(CFX)’는 무려 1254%라는 기록적인 상승률을 보이는 중이다. 중국계 코인으로 2022년 내내 0.02달러대에서 횡보해왔지만 지난 2월 블록체인 기반 SIM 카드인 BSIM 카드 구축 계획을 발표, 가입자가 4억명에 달하는 중국 2위 이동통신사 차이나텔레콤과 제휴를 맺은 소식이 알려지면서 가격이 급등했다.
싱귤래리티넷(AGIX)은 최근 장안의 화제인 ‘챗GPT’ 수혜주라고 보면 이해가 쉽다. 홍콩에서 시작한 코인 프로젝트로 AI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코인이다. AI와 머신러닝 프로그램을 블록체인과 연결해, 현재는 극소수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AI 생태계를 넘어 ‘범용 인공지능’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목표다. 싱귤래리티넷 연초 대비 상승률은 802%에 달한다.
연초 대비 상승률 290%를 기록하며 단숨에 시총 30위권 코인으로 부상한 ‘앱토스(APT)’는 메타(구 페이스북)에서 퇴사한 개발자들이 모여 만든 코인이다. 지난해 10월 상장한 비교적 신생 코인으로 올해 1월에는 전고점(9.8달러, 지난 10월) 2배가 넘는 18.9달러를 터치하기도 했다. 현재는 14달러대 가격을 유지 중이다.
이 밖에 비트코인의 느린 처리 속도를 보완하는 레이어2 플랫폼 코인 ‘스택스(302%)’, 최근 마이크로소프트 클라우드 서비스 ‘에저’와 파트너십을 체결하며 가격이 급등한 웹 3.0 인프라 코인 ‘앵커(232%)’ 상승세도 뜨겁다.
2023년 코인판, 어떻게 흘러갈까
강달러 호재…제도권 편입은 ‘변수’
최근 주요 코인이 반등한 이유는 무엇일까.
‘2023년 들어 코인 투자 시장을 둘러싼 거시 환경이 개선됐다’는 것이 전문가 중론이다. 미국 물가 상승률 둔화, 금리 인상 속도 조절, 달러 가치 약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얘기다. 특히 코인 가격이 우상향하기 시작한 1월은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최근 1년 내 최저점을 찍은 시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인플레이션이 둔화하면 코인을 비롯한 위험자산 투자가 늘어난다. 달러 약세 영향도 크다. 현재 대부분 코인은 달러로 거래된다. 달러 약세 국면에서는 같은 금액으로 더 많은 코인을 살 수 있어 투자 시장이 활발해진다. 유로화·엔화 등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지난해 9월 말 115까지 오른 이후 올해 1월까지 내림세를 유지했다. 방인성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코인 반등 현상에 대해 “최근 미국 경기가 경착륙을 넘어 상당 기간 호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무착륙(No Landing)’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 경기 호조에 따른 달러 강세 기대감으로 위험자산 투자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최근 코인 반등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코인 시장 내 강화된 스테이블코인 규제가 시장에 오히려 호재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올해 2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스테이블코인 BUSD 발행사 ‘팍소스’가 미등록 증권을 판매했다고 보고 제소 전 해명을 요청했고 미국 뉴욕 금융감독국(NYDFS)도 팍소스에 BUSD 발행 중단을 명령했다. 스테이블코인은 다른 코인을 사고파는 데 쓰이는 일종의 ‘카지노 칩’ 같은 역할을 한다. 최근 규제 강화로 ‘스테이블코인을 갖고 있는 것보다 다른 코인으로 바꿔놓는 것이 낫다’는 분위기가 퍼지면서 코인 시장 상승을 이끌었다는 평가다. 윤두성 서울대블록체인연구회 대표는 “최근 코인 가격 상승 이유 중 하나는 SEC의 팍소스와 BUSD 규제라고 본다. 스테이블코인을 지갑에 보유하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 생긴 투자자들이 늘어나면서 스테이블코인 유동성이 코인 시장으로 대거 이동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루나 사태’와 ‘FTX 파산 사태’가 예방 주사 역할을 했다는 의견도 눈길을 끈다. 시장 감독 수준과 규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시장이 한 번 정화되는 계기가 됐다는 말이다. 그간 부실 의혹을 받던 코인들이 상폐 절차를 밟았고 시총이 크고 업력이 긴 ‘장수 코인’에 대한 신뢰가 다시금 쌓이며 최근 상승장을 견인했다는 분석이다.
2월 16일 오전 서울 강남구 빗썸 고객센터 모니터에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의
실시간 거래 가격이 표시돼 있다. 이날 오전 비트코인 가격은 3100만원을 훌쩍
넘어 거래되고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지금 투자해도 될까’다. 당장 시장 분위기가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전문가 전망은 다소 엇갈린다.
‘코인 시장 제도권 진입 여부’는 올 한 해 코인 생태계에서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올해 초 정부의 STO(토큰형 증권) 가이드라인 발표로 코인의 제도권 진입이 가시화된 상황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 모두 존재한다. 윤두성 대표는 “기존 코인 시장에 부정적 입장을 취하던 증권사, 은행, 보험사 등 전통 금융사가 STO 가이드라인 발표 이후 오히려 코인 시장 플레이어로 변모 중인 점은 시장에 긍정적”이라면서도 “다만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 규제가 강화되면서 향후 신규 알트코인 상장 문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방인성 애널리스트 역시 “SEC와 주요 중앙은행이 정부에서 주도하는 ‘디지털 화폐’와 ‘민간 코인’ 사이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냐에 따라 시장 방향성이 전환될 수 있다”며 코인 시장 제도화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크립토 윈터 4년 주기설’도 올해 시장 전망에는 긍정적이다. 연초 대비 연말 가격 증감률을 기준으로 2014년(-58%), 2018년(-73%) 그리고 2022년(-65.6%)을 제외하면 2009년 이래 13년 동안 비트코인 가격은 한 번도 마이너스를 기록한 적이 없다. 지난해 최악을 경험했으니 올해는 오를 것이라는 기대 심리가 시장에 작용할 수 있다.
다만 올해까지 크립토 윈터가 이어질 것이라는 비관론도 없잖다.
이병욱 서울종합과학대학원 교수는 “루나·FTX 사태 등을 겪으며 기관 투자자가 코인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 포트폴리오에 코인을 다시 대대적으로 편입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며 “무엇보다 최근 상승장과 지난해 11월 코인 가격이 폭락했던 시점을 비교하면 현재 거래량이 터무니없이 적어 건전한 상승으로 보기 힘들다. 최근 상승은 자본 시장에서 늘 나타나는 변동성에 따른 결과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98호 (2023.03.01~2023.03.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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