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킬 자를 찾는 우는 사자 앞에서~~
어느 날 딸아이가 전화해서 고충을 토로합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예술 계통(?)의 자유분방한 모습에 아이는 적잖이 놀랐나 봅니다.
왜 그러느냐 했더니, 명색이 기독 사학인 학교인데 채플을 마치고 나간 남학생들 중에는 건물 바로 앞에서 담배를 피우더랍니다.
학교 측에서 그런 행위에 제재를 가하지 않느냐 했더니, 아이 말에 의하면 분명 관계자분들이 알 것임에도 아무런 조치가 없다합니다.
나아가 아이 말이 더 걸작입니다.
“하기야 어마 무시한 학비를 받았으니 그렇게까지 간섭은 못하겠지”
낯선 땅에 딸아이만 홀로 남겨 두고 아내와 함께 양구로 오는 차안에서 마음이 참 복잡했었습니다.
그저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요게벳의 노래 후렴구 가사의 고백처럼 “딸 아이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께 맡기는 것”외에 방법이 없습니다.
험한 세상을 처음 경험할 딸아이를 보면서 사도 베드로가 권면했던 우는 사자가 떠 올랐습니다.
한편으로는, 어쩌면 이 시대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우는 사자 앞에 노출된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우는 사자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리스도인으로서 사자 앞에 노출이 되었을 때 취할 수 있는 선택은 세 가지 일 것입니다.
1. 거리에 사자가 있다고 집안에서만 사는 것입니다.
잠언 22;13절에 “게으른 자는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사자 밥이 될 것”이라는 핑계를 대며 집안에 거하는 것을 정당화 함을 알려줍니다.
2.사자와 정면승부 하다가 본인도 사자가 되는 경우입니다. 일컬어 스톡홀름 증후군입니다.
<‘인질(피해자)이 납치범(가해자)에게 동조하고 감화되어 납치범(가해자)의 행위에 동조하거나 납치범(가해자)을 변호하는 심리 현상’이라고 주장되나, 학술적으로는 검증된 바 없는 대중심리학적 용어. 즉, 스톡홀름 증후군은 정식으로 검증된 현상이 아니다.>(나무위키 참조)
세상을 변화 시키겠다며 세상에 맞서 싸우다가 오히려 세상에 동화되어 더 악해져가는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3. 다니엘의 믿음화입니다.
거대한 제국의 왕인 다리오의 조서에 왕의 직인이 찍힌 것을 알고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일사각오의 신앙을 보여주었던 다니엘은,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바벨론 같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의 표본이라 하겠습니다.
메대와 바사의 규례를 내세우며 다니엘을 제거하려는 정적들의 흘기는 눈과 계략임을 알면서도, 나 주님만을 섬기리 라며 사자굴에 던져지는 다니엘의 신앙적 결단은 연약한 우리들을 부끄럽게 합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견본으로 보여주었던 다니엘의 신앙적 삶은 말하기는 간단하지만 그대로 따라하기는 결코 쉽지 않는 길입니다.
바벨론 같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이땅의 많은 신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다니엘을 지켜 주셨듯이 보호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나아가 마음이 민첩하고 충성스럽게 맡은바 직임에 신실했던 다니엘의 삶을 보며,
그리스도인답게 산다는 것을 깊이 질문하며 응답하는 삶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 딸 아이 보민이가 사리분별있게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기를, 도움 주고 도움받을 수 있는 믿음의 동역자를 만날 수 있기를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