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뜬금없이 ‘리젠시<섭정, 攝政>’를 명품 브랜드로 쓸까?
조선 말. 왜국 등 외세의 침략에 나라가 바람 앞 촛불 같았던 시기. 임금 고종과 왕비 명성황후, 임금 아버지 대원군(이하응)의 삼각정치
대하드라마는 1863년 철종 사망에 따른 신정왕후 조씨의 수렴청정에서 비롯한다. 섭정(攝政)이 된 왕후는 대원군과의 비밀약속대로 고종을 왕위에
올린다. 다음해 1월에는 대원군이 섭정에 나선다.
섭정은 임금이 직접 통치할 수 없을 때 그를 대신해 나라를 다스리는 것 또는 그
사람을 가리킨다. 12세 고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두 번의 섭정을 겪는다. 나중에는 ‘정치9단’이라는 평을 듣기도 한 고종이지만 어렸을 적에는
하릴없이 섭정의 말을 따라야 했던 것.
임금의 어머니나 할머니 같은 여성이 섭정인 경우, 그 형태를 동양에서는
수렴청정(垂簾聽政)이라고도 했다. 발(簾)을 늘어뜨리고(垂) 정치(政)를 듣는다(聽)는 뜻. 여성이 앞에 나서지 않는 동양의 전통이 빚은
‘그림’이다. 사극의 소재로 일반에도 비교적 익숙한 단어지만, 그 속뜻을 알면 상황이 더 명확해진다.
길고 가는 대를 줄로
엮거나, 줄 따위를 여러 개 나란히 늘어뜨려 만든 것으로 주로 무엇을 가리는 데 쓰는 물건이 발이다. 구슬을 꿰어 만든 발은 주렴(珠簾)이다.
섭정의 뜻 영어 ‘리젠시(regency)’는 상품 이름으로도 쓰인다. 미술사에서도 리젠시 스타일이란 용어가 있다. 프랑스어로
regence(레장스)로도 읽는다. 필립 2세가 루이 15세의 섭정을 했던 1720년께의 프랑스 미술의 경향을 말한다. 화려한 실내장식과 공예가
특징인데, ‘예술의 프랑스’ 이미지 조성에도 한몫했던 그 개념을 브랜드로 응용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