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사랑하는 어머니의 생신이었다.
어머니는 음력으로 생신을 쇠시는데 금년엔 이브와 같은 날이라 의미가 더욱 각별했다.
오전에 바쁜 일들을 서둘러 끝내놓고 점심 직후에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출발했다.
고향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를 위해 아내는 전날부터 몇가지 반찬들을 정성스럽게 준비했다.
고마웠다.
어머니는 금년에 신축한 마을회관(경노당)에서 여러 어르신들과 함께 지내고 계셨다.
그곳에서 같이 식사도 하고 얘기꽃도 피우시면서 즐겁게 겨울을 나고 계셨다.
마을회관에 계신 분들을 위해 과일 박스를 건네드렸고 한 분 한 분께 성탄절 인사도 드렸다.
언제 만나도 반갑고 고마운 분들이었다.
별것은 아니었지만 동네 어르신들은 작은 선물에 소녀들처럼 좋아 하셨다.
집으로 이동해서 어머니와 또 한참 동안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깔깔거렸다.
사위가 어두컴컴해질 무렵 어머니 휴대폰이 울렸다.
장로님이셨다.
빨리 나오시란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교회 승합차가 우리집 대문 앞까지 와 있었다.
매번 교인들을 모셔 가고, 모셔 오신다.
참 고맙고 살가운 분들이다.
성탄절 이브다 보니 여느 때보다 더 다채로운 행사들이 준비되어 있다고 하셨다.
행복과 감사는 결코 멀리에 있는 게 아니었다.
8년 전에 아버지께서 소천하신 이후로 5남매가 매월 어머니께 생활비를 보내드리고 있다.
어느 누구도 단 한번의 불이행도 없이 그 약속을 준수하고 있다.
그런 형제들이 있어 고맙기 그지없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한평생 자식들을 사랑과 희생으로 양육해 주신 고마운 어머니께 자식들이 마음을 담아 전해 드리고 싶은
작은 보답의 일환이었다.
어머니가 교회차를 타러 가시기 전, 당신의 작은 몸을 꼬옥 안아 드렸다.
"어머니,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그러면서 준비해 간 봉투를 건네드렸다.
날이 갈수록 더 작아지시는 당신의 몸집과 체구가 내 가슴팍에 그대로 쏘옥 들어왔다.
오십대 중반을 향해 가는 아들의 마음은 자꾸만 저려왔다.
어머니도 가방 속에서 봉투를 꺼내 둘째 며느리에게 건네시면서 말씀을 전해주셨다.
"내일이 니들 결혼기념일인데, 따뜻한 식사라도 함께 하려므나. 늘 건강 조심하고. 메리 크리스마스다"
"아참,현관 앞에 니들에게 주려고 배추와 콩 등 몇가지 농작물을 준비해 두었으니 꼭 챙겨가고"
"....."
늘 그렇듯이 어머니의 사랑앞에서 더이상 할말이 없었다.
부모의 사랑과 기도는 그런 것이었다.
항상 웃음꽃이 만발하신 장로님은 친조카를 대하듯이 우리 부부를 반갑게 맞아주셨고 어깨를 두드려 주셨다.
그러면서 새해 덕담도 잊지 않으셨다.
고향 어르신들은 그렇게 교회와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알콩달콩한 삶을 순박하고 향기롭게 엮어가고 계셨다.
그 분들은 모두가 주름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하회탈같은 환한 미소를 머금고 계셨다.
하나같이 멋진 인생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귀한 모습들 속엔 언제나처럼 잔잔한 금강의 물결이 깃들어 있었고 해맑기 그지없는 고향의 푸른 하늘이 서려 있었다.
어머니는 교회로 가셨고 우리도 집을 나섰다.
성탄절이 우리의 결혼기념일이었다.
벌써 25주년.
우리 둘만의 아늑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호텔에 체크인 하고 식사를 했다.
커피를 마시며 쏜살같이 흘러간 지난 숱한 세월들을 회고했다.
연애 8년, 결혼 25주년.
부모님 슬하에서 20년, 한 여인의 다정한 미소와 따뜻한 손길에 감사하며 33년째다.
뜻깊은 밤, 오순도순 대화가 쉼없이 이어졌다.
대화내용은 거의 동일했다.
서로에게 보내는 '信賴와 感謝'였다.
그렇게 겨울밤은 자꾸만 깊어 가고 있었다.
푹 자고 일어나 호텔 커튼을 젖혀 보니 세상에나 어쩌면 그리도 하늘이 맑고 햇빛이 투명할 수 있을까.
정녕 은혜로운 성탄절 아침이었다.
1층 레스토랑에서 조식을 마치고 체크아웃.
차를 몰아 신성리 갈대밭으로 갔다.
공동경비구역 JSA, 추노 등 여러 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소개된 이후로 유명 관광지가 되어버린 곳.
충남 서천군의 명물이자 금강가 북쪽 드넓은 고수부지에 자리잡고 있는 유명한 갈대밭이다.
파아란 하늘, 깊고 푸른 금강물결 그리고 부드러운 강바람에 하늘하늘 살랑거리는 갈대밭 고유의 풍경과 향연이
그곳에서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었다.
春夏秋冬, 각 계절마다 색다른 옷을 입고 다른 모습, 다른 느낌으로 낭만과 감동을 선사하는 멋진 곳이다.
강 너머, 금강 남쪽 강가에 연해 있으되 서로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동네가
바로 나와 아내의 고향이니 이곳 신성리도 고향의 산천이나 다를 바 없었다.
어려서 서해바다에 물이 빠지면 강 중간에 모래톱들이 많이 드러났는데 그곳에서 조개도 잡고 뛰어 놀기도 했었다.
어느 땐 수영으로 강 안켠을 건너다니기도 했던 금강하류 지역이었다.
아내와 팔짱을 낀 채 갈대숲 사이 사이를 걷고 또 걸었다.
행복했다.
지나 온 25년에 대한 감사만큼이나 앞으로 엮어갈 25년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해맑은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물결들처럼
그렇게 맑고 푸르게 투영되고 있었다.
점심은 처가 어머니와 함께 했다.
가끔씩 들렀던 가든에서 오리백숙을 먹으며 한참을 웃고 떠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커피 세 잔을 앞에 두고도 여전히 깔깔 껄껄 대화가 멈추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축복 그리고 한없는 감사가 뜨끈한 구들장처럼 쌀쌀한 세밑을 훈훈하게 덥혀주고 있었다.
부모와 자식은 肉身의 유전 뿐만 아니라 영혼과 價値觀의 DNA도 닮는다고 했던가.
만고불변의 인생 지침같은 名文이다.
인사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 어머니는 또 바라바리 뭔가를 챙겨주셨다.
주시고 또 주셔도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 하시는 모습 앞에서 우리의 작은 용돈봉투는 참 낯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일박이일 간, 양가 어머니를 뵙고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기념일을 맞이하여 감사의 시간을 보냈다.
상경하는 길.
인생의 길과 부모의 덕행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부모는 德을 많이 쌓아야 한다.
어느 누구에게나 단 한 번 뿐인 귀하디 귀한 인생 길에서 이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여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만 그 善業들이 후대에게 祝福이란 이름으로 향기롭게 꽃을 피고 열매 맺어 다시 후대로 전해지리라.
양가 부친은 이미 소천하신지 오래고 모친들도 자꾸만 연로해 가신다.
건강도 별로 안 좋으신 상태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와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더불어 우리도 그 누군가의 父母일진데 인생의 방향은 잘 잡고 있는지, 덕은 시시때때로 잘 쌓으며 살고 있는지를
겸허히 뒤돌아 보고 싶었다.
모두가 저마다 바쁜 인생을 살면서 과연 무엇에 집중하고, 어떤 방향을 위해 진정으로 기도해야만 하는 지를
下心의 마음으로 계속 성찰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여러 번 다짐했던 시간이었다.
기념일의 의미는 부부가 서로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하는 데 있다고 믿는다.
그날만의 또 하나의 가치는 길고 긴 삶의 여정 속에서 두 사람이 함께 바라보는, 인생의 좌표와 方向에 대해
진솔하게 의견을 나누고 한번 더 점검해 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갈대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휠망정 자연 속 어떤 환경 속에서도 좀처럼 부러지거나 끊어지진 않는다.
그래서 종종 '外柔內剛'의 상징이자 표상으로 회자되기도 한다.
바람이 불면 몸을 한껏 낮추어 바람에 순응할지라도 절대로 단절과 파열로 이어지지 않는 갈대들.
신성리 갈대밭의 그 정경과 품새 그리고 느낌표들이 내 가슴속에 진하게 남아 있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리라.
앞으로 결혼할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이겠지만
이미 가정을 이룬 이 땅의 수많은 부부들에겐 더없이 소중하고 귀한 '자연의 전언'이자 '神의 한 수'가 아닐까 싶다.
이 땅의 모든 가정에 성탄의 축복과 은총이 가득하기를 기원해 본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