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메니데스-다른 [탐구의] 길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없다는 사태가 인정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대에게의 길은 전적으로 걸을 수 없는 길이라고 말하노라. 왜냐하면 그것은 도무지 실현 불가능한 것이니, 그대는 비존재자를 알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기 때문이라. [파르메니데스, 단편] 절대 무의 개념을 실행 불가능한 것이라고 선언
플라톤 - 우리가 있지 않은 것을 말할 때, 우리는 있는 것과 대립되는 어떤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것을 말하는 같네 [소피스테스, 2576] 사람들이 말하는 비-존재가 있는 것의 반대인 없 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어떤 있는 것과 다른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없는 것은 사실은 다른 것이지 정말로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라이프니츠-지금까지 우리는 단순히 물리학자로서만 얘기해 왔다. 이제는 비록 일반적으로 적용되지는 않지만, 충분한 근거가 없이는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는다고 하는 대 원리(충분근거율)를 사용하여, 형이상학의 영역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그 원리는 사물을 충분히 인식하는 사람이라면, 왜 그것이 그러하고, 다르 지 않은지를 규정하기 위해 충분한 그런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이 원리가 정립되고 나면, 반드시 제기될 수밖에 없는 첫 번째 물음은, '왜 무가 아니고 어떤 것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일 것이다. 왜냐하면 무는 그 어떤 것보다 더 단순하고 더 쉽기 때문이다. <형 이상학 논고> 형이상학이 존재자 전체에 대해 그 존재의 근거를 물을 때도 근거가 물어지는 존재 사태의 반대되는 상황이 상정되어 있다. 존재자 전체의 반대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절대적 허무다.
베르그송 -절대무의 관념은 자기 파괴적인 관념, 거짓 관념, 단순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만약 한 사물을 제거하는 것이 다른 것으로 대치하는 것이라면, 사물의 부재가 다른 어떤 것의 현존에 대한 다소간 명확한 표상이라면, 그리고 삭제는 무엇보다도 대치를 의미한다면 전체의 삭제라는 관념은 사각형으로 된 원의 관념만큼이나 부조리하다. 그 부조리성이 눈에 띄지 않는 이유는 삭제할 수 없다고 가정 되는 어떤 특수한 대상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으로 개개의 사물을 차례로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사람들은 그것들을 전부 한꺼번에 제거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결론짓는다. 사람들은 개개의 사물을 차례로 삭제하는 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들을 매번 다른 것으로 대치하는 것임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전체의 제거라는 조작은 그 실행을 가능하게 한 조건 자체를 파괴하는 일이기 때문에 진정으로 용어상의 모순을 함축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창조적 진화] 무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각인의 주관을 투영해 무를 만들어낸다
니시다 기타로 -@ 니시다가 말하는 절대는 절대적 의미의 아무것도 없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유를 감싸 안아 모든 유를 만들어 내는 근원이다
사르트르-G 사르트르가 말하는 무는 논리적인 부정 을 출현하게 하는 근원적인 무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무는 다르게 표현해서 끊임없는 미래로 기투하는 가능성(자유)를 지칭한다. 이렇게 이해된 무는 사물의 존재방식을 지칭하는 즉자와 대비되어 인간의 존재방식인 대자를 구성하는 개념이다. 그에 있어서 대자(인간)는 현재성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미래로 기투하며 무화하기 때문에 즉자로 환원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