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서적 최종 부도…출판계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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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 부도난 서울 종로서적 입구에 철제
셔터가 굳게 내려져 있다. 지나가던 시민이 '매장내부공사중'이라고 적혀 있는 안내문을 읽고 있다. 황석주 기자stonepo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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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형 서점인 종로서적이 4일 부도를 냈다.
종로서적은 지난 3일 주채권 은행인 외환은행 종로지점에 돌아온 어음 2000만원과 국민은행 광교지점에 돌아온 어음 40만원을 결제하지 못해 1차 부도를 낸 데 이어, 4일
추가로 만기가 돌아온 2800만원을 막지 못해 최종 부도를 냈다.
종로서적 쪽은 이날 5천여만원을 결제하더라도 5일 만기가 예정된 6억여원 규모의 어음을 막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해 부도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종로서적과 거래하는 2천~3천여 출판사들이 피해를 보는 등 출판계에 적지 않은 후유증이 예상된다.
종로서적은 1907년 탄생한 기독교서점을 모태로 해 31년 `종로서관'으로 출범했으며,
교통이 편리한 종로 한복판에 자리잡아 국내 서점의 상징으로 자리잡아 왔다. 그러나
현대식 매장과 지하철에 바로 연결되는 뛰어난 접근성을 갖춘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
주변 큰 서점들과의 경쟁에서 밀린데다, 인터넷 서점의 급격한 팽창을 비롯한 서점업계의 환경변화에 대처하지 못해 자금난을 겪어 왔다.
종로서적은 2000 회계연도 한햇동안 234억5700만원의 매출에 2억2400만원의 적자를
내는 등 6억5200만원의 누적적자를 안고 있다. 종로서적이 은행권에서 빌린 부채는 외환은행 7억원을 비롯해 모두 20억원에 이른다.
허미경 이재성 기자carmen@hani.co.kr
71년 책방역사 추억속으로
종로서적은 책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문화의 장소로, 숱한 장삼이사들의 `만남의 장소'로 지난 70년 남짓 동안 한국인들에게 자리매김해왔다. 또 지난 1931년 지금의 자리에 `종로서관'이란 이름으로 문을 연 이래 70년대까지 국내의 최고 책방으로 군림했다.
80년대 이후 교보문고와 양대체제를 구축해왔으나, 90년대 이후 교보·영풍문고의 약진 속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최근 들어선 온라인 서점 매출 순위 4~5위까지 떨어지는
수모를 겪어왔다.
종로서적이 쇠퇴의 길로 접어든 원인은 경영진의 내부불화 속에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가장 컸다고 출판가에선 지적한다.90년대 초중반 단일매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했으나, 책을 고르기가 불편한 층층매장을 고집했고, 최근엔
종각앞 종로타워빌딩에서 종로서적과 손잡고 서점을 유치하려 했으나, 종로서적쪽은
이를 거부했다.
여기에, 주 독서층이 20대에서 30·40대로 바뀌면서 주차시설 미비로 `자가용족'들을
경쟁사인 교보·영풍문고에 넘겨주어야 했다.
96년까지는 당기순이익을 냈으나, 이후 교보·영풍문고와의 경쟁과 아이엠에프를 거치면서 매출이 급감했다. 최근엔 하루 매출액이 지난 95년에 비해 5분의1로까지 줄기도 했다. 여기에, 지난해 6월 구조조정으로 200여명이던 직원이 60여명으로 줄었으며
이 과정에서 퇴직준비금을 둘러싸고 노조와 큰 마찰을 빚었다. 종로서적의 금융권 현금자산은 노조 쪽에서 퇴직준비금 등으로 가압류해 논 상태다.
지금까지 종로서적의 정확한 부실규모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현재 서적을 납품하고 있는 출판사가 2천~3천여곳에 이르고 있어 적잖은 피해가 예상된다. 이에 따라 출판사
영업자들의 협의체인 출판인영업자협의회와 노조 등 채권단들이 부실 청산위원회를
만들어 현 경영진의 퇴진 등 대책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출판계에선 종로서적이라는 브랜드 가치가 워낙 큰 만큼 새로운 인수자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출판인들은 “종로서적은 책읽기 문화를 이끌어온 상징적 공간이자 추억의 장소”라며 “어떤 형태로든 종로서적이라는 이름(서점)을 살려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허미경 임주환 기자carmen@hani.co.kr /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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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바뀌는 거겠지요
억지로 되는 일이 있겠습니까?
-_-; 김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