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점령지에서 철수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포기하겠다는 뜻을 밝히면 “내일이라도 기꺼이 우크라이나와의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타스 통신이 14일(현지시간)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15일 스위스에서 열리는 ‘우크라이나 평화회의’ 개막을 하루 앞두고 속셈을 드러낸 것이다.
주요 7개국 정상회의(G7) 참석차 이탈리아를 방문 중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현지 방송 인터뷰를 통해 푸틴의 발언이 “히틀러가 하던 것과 똑같은 짓”이라며 “휴전 조건 제안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젤렌스키는 “이는 과거와 다르지 않은 최후통첩 메시지”라며 “이제 나치즘이 푸틴의 얼굴을 갖고 나타났다”고도 했다.
젤렌스키가 지적한 히틀러의 사악한 수법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히틀러와 나치, 심판대에 선 악마'(6부작) 3편 '히틀러의 집권'과 4편 '파멸의 길'을 통해 생생하게 돌아볼 수 있다. 히틀러는 강대국들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면서 독일의 재무장 족쇄를 풀었고, 불가침 조약을 맺어 열강을 속이는 교활함에서 앞섰다. 조금만 영토를 할양하면 더 이상의 침략은 없을 것이라고 속임수를 썼고, 나중에 자신감이 붙으면 협정을 종잇조각처럼 구겨버렸다. 3편 '히틀러의 집권'은 독일 내부를 완벽하게 통제했다고 믿은 나치당이 1936년 3월 라인강을 따라 늘어선 프랑스 국경 가까운 라인란트에 군대를 파견, 베르사유 조약을 형해화했다고 지적했다.. 독일인들은 다시 독일이 위대해졌다고 열렬히 환영했다. 영국과 프랑스 일부는 자신들이 지나쳤다고 오히려 독일을 동정했고, 히틀러는 자신감을 얻었다.
동맹으로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끄는 이탈리아를 선택한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독립 지지를 철회하도록 무솔리니를 설득한 다음 1938년 2월 12일 쿠르트 슈슈니크 오스트리아 총리를 베르크호프 은신처로 불러들여 친나치 오스트리아인을 정부 요직에 앉히라고 강요했다. 슈슈니크는 국민 투표에 부쳤는데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침공을 준비했다. 다음달 독일군은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히틀러는 빈 대중 연설을 통해 "독일 동쪽 영토가 이제 새로운 땅을 얻었다"고 선포했다.
4편 '파멸의 길'은 프랑스 쪽으로의 군대 전진, 같은 혈통의 오스트리아 합병과 차원이 다른 나치의 침략을 다룬다. 1938년 히틀러는 체코에 주데텐란트 할양을 요구했다. 주데텐란트는 체코 국토의 서쪽으로 독일계 주민이 많이 살고 있었다. 히틀러가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협박하자 위기감을 느낀 영국 등 다른 강대국들이 개입했다. 그해 9월 독일 뮌헨에서 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 4대국 정상이 모여 회의를 연 끝에 ‘체코는 주데텐란트를 독일에 인도하고, 독일은 더는 영토 확장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협정을 체결했다. 체코는 눈물을 머금고 주데텐란트를 독일에 넘겨야 했다.
그러나 ‘더 이상 영토 확장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히틀러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나치 독일은 이듬해 3월 체코의 남은 국토까지 전부 병합한 데 이어 폴란드에도 영토 할양을 요구했다. 폴란드가 이를 거절하자 1939년 9월 독일군이 폴란드를 공격하며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푸틴을 히틀러에 비유한 젤렌스키의 발언은 바로 이 ‘뮌헨의 교훈’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 뿐만 아니라 폴란드 침공의 정지 작업 차원에서 독소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가 나중에 소련 진격을 하며 협정을 종잇조각으로 만들었다.
이번에 러시아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인다 해도 전쟁을 멈추기는커녕 결국 우크라이나의 남은 영토까지 다 차지하려 할 것이란 얘기다. 또 히틀러가 체코에 이어 폴란드를 침공한 것처럼 푸틴도 우크라이나 외에 다른 인접국까지 침략해 땅을 빼앗으려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1937년 11월 5일 작성된 호스바흐 메모는 히틀러가 총리 관저에서 진행된 비밀 회의 도중 몇몇에게 "우리가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를 합병할 것이다. 생활 공간(레벤스라움)을 정복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우리는 국민으로서 실패할 것이고 살 자격이 없으니 멸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히틀러는 마치 유언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아리아인들, 독일인이 살아나갈 생활공간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히틀러의 야심에 핵심 동인이었던 셈이다. 사실 이런 히틀러의 야욕은 맥주홀 봉기 실패 후 수감됐던 감옥에서 집필하던 '나의 투쟁'에도 어느 정도 드러나 있었는데 미국과 유럽 열강들은 이를 과소평가하다 2차 대전과 유대인과 민간인의 무참한 살상을 막지 못했다. 우리는 푸틴의 야심이 어디까지 뻗칠지에 대해 90여년 전처럼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