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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한 권의 책이 세상을 움직인다”
1998년 에런라이크는《하퍼스매거진》의 전설적인 편집장 루이스 래팜으로부터 ‘빈곤’을 주제로 한, 독특한 콘셉트의 기사 하나를 청탁받는다. 미국이 ‘골디락스 경제’에 한껏 취해서 ‘깊어지는 풍요의 그늘’을 외면하고 있던 때였다.
“분노는 유쾌하게 글은 치밀하게”
그러나 그의 이런 분노와 슬픔에는 유머가 곁들여지고 자신의 위선에 대한 고백이 끼어든다. 1998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로 위장 취업했던 시절, 감정과 존엄성을 말살하는 노동 환경에 대해서 말할 때 “난 가끔 내가 작은 잘못을 저지르고 그에 대한 속죄로 백성 하나하나에게 손수 음식을 먹여야 하는 벌을 받은 공주라고 상상했다”고 이야기하면서도(39쪽), 무단 퇴사를 하고 나오면서 억울한 누명을 쓴 외국인 직원 ‘조지’를 도와주지 못한 것에 마음 아파한다.
나만 실망스럽게 일을 끝낸 데 그치지 않고 조지에게 내 팁을 주는 것조차 잊고 말았다. 그리고 그 부분이 가장 마음 아팠다. 어쩌면 게일이나 엘런처럼 열심히 일하고 관대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그 이유를 이해할 것이다. 나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눈물샘이 아직 거기에 있고, 언제라도 임무를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본문 76쪽〉
70세가 넘은 나이에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에 참여한 에런라이크는 운동가들에게 합법적으로 ‘소변’을 볼 수 있는 화장실을 소개받는다. 밤에 눈에 띄지 않게 쭈그리고 앉아 일을 볼 수 있는 골목길을 안내받는 순간, 그가 떠올리는 건 ‘과연 노숙인들은 길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이다.
절박하게 가난한 사람들은 합법적인 미국 본토박이 시민이지만, 생존하는 데에 가장 기본적인 활동마저도 금지당한 채 ‘불법 이민자‘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소변이나 대변, 혹은 자신의 지친 몸으로 공공장소를 더럽히면 안 된다. 특이한 옷차림이나 체취로 풍경을 망쳐서도 안 된다. 사실 그들은 죽어야 할 사람들이다. 옮기고 처리하고 화장시켜야 할 몸을 남기지 않고 죽어 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본문 422~423쪽〉
마흔과 여든 사이 써 내려간 글들에서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사회의 밑바닥에서, 부조리의 속살에서, 자신을 대변할 ‘언어’조차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치지 않고 분노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도 언제든 그 자리에 설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자신 또한 편향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진 않은지 끊임없이 성찰한다.
그러다가 문득 요즘 젊은이들 말로 ‘내가 누리는 특권 점검하기’를 해 봤다. 그리고 이제는 비교적 잘살게 된 나 같은 사람은 최저 임금이라든가, 도시 거리에 다니는 다람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하는 사람들 문제, 혹은 공원 노숙인에게 벌금을 물리는 일에 관해 글을 쓸 수 있는데 반해서 실제 그런 생활을 하고 있거나 그런 생활을 금방이라도 해야 하는 사람들은 그럴 여유가 없다는 것이 모순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본문 18쪽〉
이 책의 서문에서 에런라이크는 “빈곤 혹은 피부색, 성별, 성적 지향 때문에, 혹은 너무 어리거나 너무 나이가 많아서 글을 발표할 수 없는 저널리스트들”을 위해 이 책을 “성화 봉송의 정신으로” 바친다고 썼다. 에런라이크에게 ‘성화 봉송’이란 어떤 의미일까. 어쩌면 그것은 현실에 ‘지지 않기 위해 쓰겠다’는 에런라이크의 투쟁 정신이자, 맨 앞에 서서 ‘가려진 진실’을 훤히 드러내고야 말겠다는 다짐일 것이다.
‘비숙련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만으로 실제 생활이 가능할까?’ 우리가 궁금했던 것은 복지 개혁으로 노동 시장에 내몰린 약 400만 명의 여성이 시간당 6달러나 7달러를 받아 과연 살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때, 나는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할 말을 했다. “누가 옛날식으로 기자 정신을 발휘해야 해요. 그렇죠.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체험 취재를 할 필요가 있어요.”
내가 말한 ‘누구’는 당연히 나보다 젊고 시간도 많은, 의욕에 찬 신참 기자를 지칭한 것이었다. 그러나 래팜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그때까지의 내 인생에 적어도 한참은 이별을 고하게 만든 한마디를 내뱉었다. “당신이 해야죠.”
-《노동의 배신》 중에서
복지개혁법의 실효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에런라이크가 선택한 방법은 저임금 비숙련 노동자로 ‘언더커버 취업’을 하는 것이었다. 그 프로젝트 목표에는 단순히 신분을 숨기는 것뿐 아니라 ‘일을 구하고 그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음식을 사고 잠자리를 구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것’까지 포함됐다. 이리하여 에런라이크는 50세가 훌쩍 넘은 나이에 관광지에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와 호텔 청소부로, 또 가정집 청소부, 요양원 보조원, 월마트 매장 직원으로 최저 임금을 받으며 3년간 일한 후, 그 경험을 담아 2001년《노동의 배신》을 출간하기에 이른다.
《노동의 배신》이 보여 준 것은 ‘가난하기에 돈이 더 많이 들고, 그래서 더 일해야 하고 빚을 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쳇바퀴’ 즉, 살아보지 않고는 결코 알 수 없는 ‘워킹 푸어’의 총체적 현실이었다. 책은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10년 동안 미국에서만 150만 부 이상 팔렸다. 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북 프라이즈’(2002년)을 비롯한 다수의 상을 휩쓸었을 뿐 아니라 《가디언》이 발표한 ‘21세기 가장 뛰어난 책 100권’에 선정되면서 ‘현대의 고전’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수많은 찬사와 수상 경력보다 더 유의미한 것은 이 책 한 권이 현실을 바꾸는 ‘기폭제’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빈곤층의 사람들이 결코 게으르거나 일을 하지 않아서 가난한 게 아님을, 그들의 빈곤이 중산층이 누리는 안락함의 토대임을 섬뜩할 만큼 몸으로 보여 주었기에 미국 사회가 받은 충격은 실로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책은 예일대를 비롯한 600여 개 대학의 필독서로 선정됐고, 수많은 지역 모임에서는 책을 대량 구매해 시의회 및 주의회 의원들에게 배포했다. 책 내용을 토대로 다큐멘터리와 연극도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이 책은 미국 내 ‘생활 임금 운동(living wage movement)’의 큰 동력이 되었다. 그 결과로 29개 주가 최저 임금을 인상했고 100개 이상의 도시에서 생활 임금을 지급하라는 법령이 ‘통과’됐다. 그리고 마침내 2007년 7월에는 ‘연방 정부’가 최저 임금을 인상하기에 이른다.
‘체험형 글쓰기 대가’의 탄생
에런라이크의 이런 글쓰기 스타일은 어쩌면 그의 출신 배경 그리고 작가로 전향한 계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몬태나주의 작은 광산 마을에서 광부의 딸로 태어난 에런라이크는 ‘블루칼라 노동자 계층 일가’에서 최초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화이트칼라 과학자’가 된다. 그런 그가 작가로 전향한 것은 1970년에 첫아이를 낳은 후다. 출산을 겪고 나서야 ‘여성 의료’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 두 눈으로 목격한 에런라이크는 ‘여성 건강 운동’을 펼치는 동시에 이를 고발하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때 저술한 《마녀, 조산사, 그리고 간호사: 여성 치유사의 역사(Witches, Midwives, and Nurses)》라는 작은 책은 이른바 ‘언더그라운드 베스트셀러’가 된다.
《노동의 배신》을 출간한 이후에도 에런라이크의 ‘현장에서의 글쓰기’는 계속됐다. 블루칼라 노동자 계층의 여성으로 태어난 그에게 ‘노동, 빈곤, 계층, 페미니즘’ 문제는 “먼 산 보듯 무심하게 얘기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었다. 또한 과학자로서 실험 조건과 변수를 정해두고 “매일 발생하는 자연의 혼돈 속에 빠져들어 가장 일상적인 수치들을 꾸준히 기록하는 작업은 불가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실험 과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닌가. 실험 과학자는 그냥 책상에 앉아서 이론을 생각해내지 않는다. 혼란으로 가득한 자연의 세계에 뛰어들어 측정할 때마다 튀어나오는 놀랄 만한 사건들에 대처해야 한다. 어쩌면 직접 해 봐야지만 저임금 노동자들의 세상에 존재하는 비밀스러운 경제학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본문 28~29쪽〉
그리고 그 결과 자신의 암 치료 체험에서 시작되어 긍정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공생 관계를 파헤친《긍정의 배신》, 화이트칼라 구직자로 위장해 ‘중산층 몰락 대참사’ 실태를 고발한《희망의 배신》 등을 출간하면서 ‘체험형 글쓰기의 대가’ ‘자본주의의 이면을 파헤치는 최고의 글쟁이’ ‘베테랑 진실 폭로자(veteran muckraker)’라는 수식어를 얻게 됐다.
이 책 《지지 않기 위해 쓴다》에서 에런라이크가 제기하는 매우 예민한 사회적인 의제들 역시 책상머리에서 도표로 흘러나온 게 아니라 모두 35년간 그의 ‘생생한 경험’을 거쳐 나온 것들이다. 불법 이민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에런라이크는 미국과 멕시코를 가르는 거대한 담 앞에 서 있다(89쪽). 사회 안전망과 복지 제도의 민낯을 논할 때, 그는 푼돈이라도 받기 위해 담당자 앞에서 모욕을 견디는 복지 수혜자들 옆에 있다(111쪽). 유명 스타들의 미투 운동이 널리 퍼질 때, 그는 미용사, 웨이트리스, 가사 도우미들과 이야기하며 음소거된 목소리를 증폭시킨다(275쪽). 에런라이크에게 ‘체험형 글쓰기’는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자,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뒤섞인, ‘행동하는 실천가’로서의 그 자신이다.
“그의 글은 어떻게 시대를 예측할 수 있었나”
《지지 않기 위해 쓴다》는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저널리스트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1984년부터 2018년까지 《가디언》 《타임》 《뉴욕타임스》 《허핑턴포스트》 《네이션》 등 16개의 세계적인 매체에 기고한 글들을 망라한 것이다. 또한 서문에서 밝혀 놓은 것처럼 “도덕적 분노에 불을 지피는” 불씨가 되었던 글 모음집이기도 하다. 저자를 세계적인 밀리언셀러 자리에 올려놓은 워킹푸어 체험기, 《노동의 배신》의 집필 계기가 되었던 《하퍼스매거진》칼럼을 비롯해, ‘빈곤’ ‘건강’ ‘남성’ ‘페미니즘’ ‘종교’ ‘계층’까지 이 책에서 다루는 6가지 주제, 37개의 글은 실제 그가 발표한 수많은 단행본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는 그가 현장에서 길어 올린 ‘사회 변화에 대한 통찰’이다. 예컨대 2016년 겨울, 트럼프의 당선이 유력해지자 미국 대표 지식인 폴 크루그먼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우리가 틀렸다. 우리가 공유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가치에 동의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특히 시골의 많은 백인)이 있었다”고 책망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1년 전, 에런라이크는 잡지 《게르니카》에 기고한 칼럼에서 “일부 백인들은 경제적 후퇴를 한 반면, 흑인들은 진보를 이루었다. 그 결과 백인들이 누려 왔던 ‘심리적 보상’이 감소했다”며 블루칼라 백인 계층들이 “도널드 트럼프 같은 사이비 포퓰리스트를 지지하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120쪽).
계층 양극화에 대해서도 1986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에런라이크는 “같은 계층끼리만 결혼”하는 ‘동질혼’의 확산으로 “결혼이 계층을 뒤섞는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됐다고 진단한다(381~382쪽). 또 “부자들이 더 부자가 될수록, 중간 소득 계층이 소비하는 것들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특히 주택이 그 좋은 예다”라며 양극화가 부동산 가격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내다본다(386쪽).
중산층 몰락 현상에 대해서도 에런라이크는 자신이 1977년에 제시한 새로운 용어 ‘전문직-경영인 계층(Professional-Managerial Class)’ 줄여서 ‘PMC(대학 교육을 받은 전문직 종사자들, 특히 법조인, 의사, 교수, 저널리스트, 예술가)’를 언급하며, 이들이 계층 형성에 실패했고, 1980년대 블루칼라 계층의 전철을 밟기 시작하면서 벌어진 것이라고 지적한다(358쪽).
고명한 엘리트 지식인들이 정제된 현실을 보고 고담준론을 쏟아낼 때, 에런라이크는 현장에서 보고 들은 것을 근거로 세상을 진단하고 예견한다. 이는 그가 비숙련 저임금 노동자, 최하층의 복지 수혜자, 한때 중산층이었으나 무너진 사람들의 삶으로 직접 뛰어 들어간 덕분이다.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손과 발을 움직여 사회가 가진 인식의 간극을 메웠기에 시대를 앞선 글은 탄생했다.
열심히 일하셨나요? 더 가난해지셨습니다
1998년 6월 초, 나는 자존심을 달래고 몸을 유지하는 데 일상적으로 필요한 모든 소유물(집, 커리어, 반려자, 평판, 현금 인출 카드)을 뒤로하고 저임금 노동자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그곳에서 나는 몇몇 가정에서 가사 도우미로 일한 것 말고는 아무런 경력도 없는 전업주부 출신 이혼 여성의 이력서를 가진, 다시 말해 직업적인 존재감이 훨씬 줄어든 바버라 에런라이크로 변신했다. 처음에는 내 정체가 밝혀질까 봐 두려웠다. 복지 개혁이 효력을 발휘하면서 생활 보조금에 의존해 온 한부모 가정 여성들이 매달 5만 명씩 발을 들여놓는 세상, 그곳을 탐험하는 중산층 저널리스트로서의 내 정체 말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내 두려움은 전혀 근거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빈곤과 고된 노동을 견뎌 내며 생활한 한 달 동안 내 이름을 알아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을뿐더러 내 이름을 불러 주는 사람조차 거의 없었다. 우리 아버지가 광산을 떠나지 않고, 내가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은 평행 우주에서 나는 ‘야’ ‘아가씨’ ‘거기 금발 머리’ 등으로 불렸고, 그중에서도 ‘야’라고 불리는 경우가 제일 많았다.-〈본문 24쪽〉
변태적인 가학피학성 공공 정책
둘째, 복지 혜택과 매질을 결합한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시행된 어떤 근로 복지 제도보다 훨씬 저렴하다. 복지 수급자 전체를 노동 시장에 진입하도록 준비시키는 데 드는 비용이 적게 잡아도 1년에 500억 달러라는 추산이 나와 있다. 현재 복지에 들어가는 돈의 대략 2배 정도 액수인 이 돈의 절반가량은 보육에 사용될 것이다. 그러니 복지 수급자들을 훈련시키고 집 밖으로 내몰아서 무슨 낙을 볼 수 있다는 말인가? 복지 수급 대상자에 해당하는 1000만 명에 달하는 어린이들, 현재 집에서 엄마들이 돌보는 이 어린이들을 보육 시설로 보내 다른 가난한 여성들의 돌봄을 받는 사이 아이들의 엄마는 데이터 입력이나 햄버거 패티를 뒤집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결국 얻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취학 전 아동들을 이리저리 이동시키는 결과뿐이다.-〈본문 82~83쪽〉
암의 왕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유방암 환자를 어린아이에 비유하는 듯한 분위기는 그 이유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런 유아적 테마는 곰돌이로 그치지 않는다. 리비 로스 재단Libby Ross Foundation에서 (컬럼비아 장로교 메디컬 센터 등을 통해) 유방암 환자들에게 나눠 준 선물 가방에는 에스티로더 보디 크림, 핫핑크 새틴 베개 커버, ‘화학요법 치료를 할 때 도움이 되는 명상 프로그램’이 담긴 오디오테이프, 박하사탕이 든 작은 통, 유리가 박힌 싸구려 팔찌 세 개, 분홍 줄무늬가 쳐진 ‘그림 일기장’ 그리고 (조금 충격적이게도) 크레용 한 상자가 들어 있었다. 리비 로스 재단의 창립자 중 한 명인 말라 윌너(Marla Willner)는 크레용을 “다양한 기분과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그림 일기장에 사용하라고 넣은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도 자기는 한 번도 크레용으로 일기를 써 보는 시도를 해 본 적이 없다고 인정했다. 어쩌면 아이처럼 의존적이 되는 상태로 퇴행하면 길고도 괴로운 치료를 견뎌 내는 데 더 적합한 마음 상태가 될 것이라는 논리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사회 일각에 팽배한 특정 젠더 이데올로기의 버전에 따라 여성성이 본질적으로 다 자란 성인의 개념과 배치된다는 개념, 성장이 멈춘 상태라는 개념에 기초한 것일 수도 있다. 전립선암 진단을 받은 남성이 미니카를 선물로 받는 일은 없지 않은가. -〈본문 137~138쪽〉
나는 ‘나’에게 감사합니다
항상 감사의 마음을 갖는 것이 적절한 태도일까? 그에 대한 답은 누가 감사를 하고, 누가 감사를 받는지에 달려 있다.ㅡ혹은 양극화가 심한 미국 같은 사회에서는 그런 태도가 넓고도 넓은 부의 격차를 얼마나 메울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시급 8달러를 받으며 일하는 월마트 직원인데 올해 회사 지시로 기본 시급이 9달러로 인상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월마트 소유주이며 미국에서 가장 부자인 월턴가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할까? 혹은 기본 연봉 약 100만 달러에, 아칸소 벤턴빌의 10만여 평 대지에 지어진 호화 저택에 사는 월마트의 CEO에게 감사해야 할까? 거의 반사적으로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는 사람들은 ‘얼간이’라고 무시당하는 경우가 있다. 위의 예도 그 단어가 딱 어울리는 상황이다.-〈본문 191~192쪽〉
마침내 신남성이 도래하다
남성들의 억울함과 분노의 원인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개척 시대에는 남성을 길들여 문명의 세계로 이끄는 역할이 여성들에게 주어졌다.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여성들은 이전 역할에 덧붙여 남성들에게 재정적으로 의존하게 됐다. 냉소적인 남성의 시각에서 보면 결혼은 남성이 여성을 먹여 살리는 의심스러운 특권을 얻기 위해 자신의 자유를 포기해야 하는 제도다.
혹은 H.L. 멘켄(H.L. Menken)의 말을 빌리자면 결혼은 남성이 “더 나은 상대를 찾을 가능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자기에게 눈을 돌린 첫 여성에게 자신의 자유와 재산과 영혼을 바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여성이 결혼 생활에 전통적으로 기여하는 것은 집안일처럼 하찮은 일이나 정서적 지원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었다. 남편은 전통적으로 자신의 임금 전부 혹은 상당 부분을 결혼 생활에 투자하는데 이 부분은 필수적인 요소라고 인정을 받고 측정도 가능하다. 물론 동네 술집이나 다른 여자에게 이전하는 것도 가능한 부분이다.-〈본문 216쪽〉
나는 고학력이며 계층 상승 중인 남성들에게 특별한 종류의 감수성이 있다는 개념이 생긴 게 상당 부분 언어의 효과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적어도 감수성을 보이는 어휘는 남성다운 예의범절의 일부가 됐다. 신남성이라면 무감각하다거나 고의로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감수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자신의 감성을 돌보는 데서 오는 치유적 효과에서는 멀어지고 소비 지상주의를 더 잘 받아들이는 것, 다시 말해 마음 가는 대로 쇼핑해 대는 행태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풍조로 와전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본문 226~227쪽〉
포르노 반상회를 개최합니다
나는 여성에게 해가 되는 자료를 찾는 작업에 착수한 우리 시민 모임이 성경부터 검토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읽은 책이니 이 세상의 사악함과 모종의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단순한 원리를 적용했을 뿐이다. “이리 모여 보세요.” 나는 동료 시민들에게 말했다. “미즈 위원회의 그 용감한 사람들이 구강성교 놀이나 채찍과 사슬의 쾌락을 보고도 견뎌 냈으니 우리도 용기를 내서 창세기를 견뎌 봅시다.”-〈본문 249~250쪽〉
신처럼 ‘보이는’ 것들에 대하여
그러나 수많은 비평가의 의견과는 달리 우리는 〈프로메테우스〉의 엄청난 혼란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신처럼 보이는 것, 가령 천사들의 합창 소리를 배경 음악으로 깔고 별빛을 흩뿌리며 불의 전차를 타고 하늘에서 강림하는 존재를 목격하더라도 그가 우리의 친구나 구세주일 것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 침입자를 경계의 눈초리로 지켜봐야 한다. 경외하는 자세로 무릎을 꿇는 것이야말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본문 276쪽〉
발과 십자가, 그리고 가족의 가치
아버지의 세계관에는 또 다른 두 개의 중요한 범주가 자리 잡고 있었다. 바로 멍청한 사람들과 똑똑한 사람들이다. 그들을 가르는 선은 계층이나 공교육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사기꾼들에게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은 모두 멍청한 사람들이었다. 아버지가 보기에는 멍청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뷰트에서 멀어질수록 그 수가 정비례했다. 적어도 뷰트에는 특정한 종류의 불손한 태도가 강하게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멍청해지지 않기 위한 가장 좋은 예방 주사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가능한 한 모든 것에 대해 공부하고 배우는 것이었다. 그에 더해 아버지는 내게 “항상 왜라는 질문을 던져라”라는 요구를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마지막 부류는 부자와 빈자였다. 아버지는 가난하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덕을 갖추는 것은 아니지만(부모님은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부에는 항상 부정행위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을 했다. 나는 부자들이 가까이 오면 지갑을 쥔 손에 힘을 더 주라고 배웠다. 아버지는 으르렁거리듯 말하곤 했다. “생각해 봐. 애초에 그 돈이 어디서 났겠니?”-〈본문 343쪽〉
두 개의 미국이 온다
미국 사회가 양극화되는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양극화 현상에는 그 나름의 역학 관계가 생기고, 불행한 역설이지만 그 역학 관계는 사태를 향상시키기보다는 악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한다. 무엇보다 부자들(상위 5분의 1이라고 해 두자)은 빈곤의 늪으로 점점 더 깊이 빠지는 절박한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를 위해 공립 학교, 공원, 대중교통 등의 공공 서비스와 공공장소를 피하고, 그에 따라 점차 그 장소와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 그런 현상이 계속되면 빈곤층이 이용할 수 있는 생활 조건과 그들(중간 정도의 소득층도 함께)이 누릴 수 있는 기회들이 점점 악화되는 결과를 낳는다. 물론 가난한 사람들의 상황이 더 나빠질수록 부자들은 자신들만의 ‘좋은’ 동네 밖으로 나오지 않고 민간 서비스에 더 많은 돈을 쓰게 된다.
잘사는 사람들이 공공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게 되면 공동체 전체에 도움이 되는 공공 지출에 대한 정치적 지지도 약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