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과 그 인근 지역에는 전설의 형성과 전승을 추적할 수 있는 좋은 자료로 삼을 수 있는 곳들이 있다. 신라의 마지막 왕은 경순왕이다. 그는 나라를 본존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신하들과 함께 고려에 투항하였다. 그리하여 신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과정에서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는 고려로 투항하는 것에 대하여 극렬한 반대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의태자’란 말 그대로 ‘삼베로 만든 옷을 걸친 태자’라는 뜻이다. 임금의 자리를 이을 임금의 아들이 비단옷을 입지 않고 삼베옷을 걸친 것이다. 이는 마의태자가 가진 확고한 의지의 시각적 묘사와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한다. 설화에 의하면, 마의태자는 신라가 고려로 투항하자 통곡하며 금강산에 들어가 삼베옷을 입고 바위에 의지하여 집을 짓고 초근목피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정비석도 그의 수필집 <산정무한>에서 금강산에 있는 마의태자 묘를 언급하기도 했다.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떠날 때 그와 동행한 인물이 그의 누나였던 덕주공주다. 그 여정 중에 그들 중 덕주공주는 제천 월악산에 덕주사를 짓고 마애불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 마의태자는 충주지역에 미륵불을 만들어 두 불상이 서로 마주보게끔 했다는 설화가 있다. 이 설화는 제천과 그 인근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강한 지역성과 신라 말이라는 시대성을 가지고 있다. 또 마애불과 미륵불이라는 증거도 존재한다. 따라서 제천과 그 인근 지역의 마의태자관련 설화는 전설의 형성과 전승을 추적할 수 있는 좋은 자료로 삼을 수 있는 곳들이다.
마의태자와 덕주공주관련 설화도 다양한 변형을 하였다. 제천 덕주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신라를 합병하면서 덕주공주를 감금했던 곳이라 한다. 왕건은 이곳에 덕주공주를 감금하고 세 겹으로 성을 쌓았으며 이곳에 이만여 명의 병사를 주둔시켰다고 한다. 덕주사 인근의 마방골이라는 곳이 바로 그 당시 고려의 말과 군사들이 주둔했던 곳이라 한다. 또한 왕건은 마의태자를 충주의 미륵사에 감금을 했다. 이렇게 강요에 의해 떨어져 살게 된 남매는 서로를 그리워하였다. 이런 그리움을 표시한 것이 두 개의 불상이다. 하나는 덕주공주에 의해 조각된 제천의 마애불이고, 다른 하나는 마의태자에 의해 조성된 충주의 미륵불인 것이다. 그래서 제천의 마애불은 마의태자가 있는 남쪽을 향하고, 충주의 미륵불은 덕주공주가 있는 북쪽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제천과 충주의 인근인 강원도 원주에도 경순왕에 의해 조각되었다는 미륵산의 미륵불도 있다. 또 이런 설화도 있다. 마의태자가 권토중래하기 위하여 강원도 오대산에서 병사를 양성하려고 하였다. 마의태자 일행이 오대산을 향해 길을 가던 중 경북 문경의 한 계곡에서 잠을 청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의태자는 꿈속에서 관음보살을 만났다. 관음보살은 마의태자에게 “이 곳에서 서쪽으로 고개를 넘으면서 서천에 이르는 한터[大垈]가 있으니 그 곳에 절을 짓고 석불을 건조하도록 하라. 또한 그 곳에서 북두칠성이 마주보이는 자리에 영봉을 골라 마애불을 이루면 억조창생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마의태자가 덕주공주에게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하자, 덕주공주도 마의태자와 같은 내용의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에 다음날 한터에 도착한 마의태자 일행은 북두칠성이 마주 보이는 곳에 석불입상을 세우고 그것과 마주보는 영봉 밑에 마애불상을 조각했다. 그런 후 마의태자 일행은 이곳에 미륵사를 짓고 팔 년을 머물렀고, 그 때 마의태자의 많은 신하들이 법도에 귀의하여 승려가 되었다. 덕주공주는 마의태자를 붙잡고 이곳에서 정착하기를 권했으나 마의태자는 애초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자신의 신하 중 일부를 데리고 오대산을 향해 떠났다. 덕주공주는 이후로도 미륵사에 머물며 마의태자의 안녕을 빌며 평생을 지내다가 입적 하였다고 한다.
제천과 그 인근 지역에서 나타나는 마의태자와 덕주공주관련 설화는 사찰연기설화다. 사찰연기설화는 불사창시설화라고도 한다. 사찰연기설화는 사찰이나 암자 등의 창시 유래, 사찰 터를 잡게 된 유래, 그리고 사찰 이름의 명명 등에 관련된 불교설화 중의 하나다. 대체로 사찰연기설화는 문헌설화로 전해지고 있으나 구전설화도 많다. 구전설화의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제천 덕주사와 충주 미륵사와 관련된 마의태자와 덕주공주관련 설화다. 문헌자료는 대개 사찰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지(寺志) · 사적기(事蹟記) · 중수문(重修文) · 비명(碑銘) · 탑기(塔記) 등에 기록되거나 조각되어 전해진다.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는 64편이나 되는 사찰연기설화를 수록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문헌설화나 구전설화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보아 크게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사찰연기설화를 만드는 이유는 해당 사찰의 신성화를 통한 불교의 대중화, 불교 사상의 생활화로서 불타에 귀의하게 하려는 종교적 목적에서 이루어진다. 마의태자와 덕주공주의 설화에서도, 마의태자의 많은 신하들이 법도에 귀의하여 승려가 되었다는 내용이 그런 주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설화 형성의 계기가 되는 것은 해당 사찰의 창건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다는 사실들이다. 이렇듯 제천과 그 인근 지역에 퍼져있는 마의태자와 덕주공주 설화는 전설의 형성과 전승을 추적할 수 있는 좋은 자료로 삼을 수 있는 곳들이다. (옮겨온 글)
첫댓글 이곳은 역사의 현장인 하늘재인데 포암산으로 해서 힘든곳을 산행하셨네요.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동안 소식없어 사실은 많이 궁금하였답니다.
잘 지내셨죠?
이젠 살만 합니다 만 그래도 덥습니다.
만나뵈어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