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6 : 14 주의 권능으로 - 고전 6 : 18 사람이 범하는 죄
고전 6 : 14 주의 권능으로 -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위하셨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사람이 되셔서 우리의 연약성을 아셨고 우리를 동정하셨고(히 4: 15), 친히 우리를 위해,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고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우리의 몸을 예수님의 영광스런 부활의 몸과 같이 부활시키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심같이 그 동일한 능력으로 모든 죽은 성도들을 영광스럽게 다시 살리실 것이다. 주의 재림의 날에 성도들은 영광스럽게 부활할 것이다.
1]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바울은 성도의 육체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따라 함께 부활할 것을 강조함으로써 육체를 경시하여 성적인 방종에 빠진 자들을 경고한다.
바울은 예수의 부활을 부정 과거 시상으로 기록함으로써(*, 에게이렌, '살리셨고') 부활이 역사적 사건으로서 이미 단회적으로 성취되었음을 시사한다.
2]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반면 성도의 부활 사건은 미래 시상으로 기록하여(*, 엑세게레이, '살리시리라')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살리실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초대 교회에서 이미 그리스도의 부활 사상이 교리화 되었으며 고린도 교인들도 예수의 부활 사건에 대하여 믿고 있음을 시사한다.
예수의 부활은 단순 동사(*, 에게이로)로 기록한 반면 성도의 부활은 합성 동사(*, 엑세게이로)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부활의 질적인 차이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부패하지 않은 그리스도의 몸과, 흙으로 돌아가서 무덤 속에서 부패하고 썩어 문드러진 인간의 육신(肉身)을 구별하기 위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Lenski).
여기서 전치사인 '에크'(*, '...부터', '...밖으로')는 죽음의 무덤으로부터 우리를 부활시켜 구원하실 하나님의 능력을 암시한다.
3] 바울은 말한다.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예수님의 영광스런 부활의 몸과 같이 부활시키실 것이다.
(1) 몸의 죽음은 인류에게 가장 큰 적이다.
장례식은 인생에게 가장 슬픈 시간이다.
죽인다는 말은 인간에게 가장 큰 위협이며 사형은 죄수들에게 가장 두려운 벌이다.
얼마 못 살고 죽을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은 환자나 가족에게 가장 충격적인 말이다.
(2)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셨다.
한번 죽었다가 영원히 다시 산 자는 예수님 외에 세상에 아무도 없다.
장사했던 시신이 영원히 다시 살아난 예는 예수님의 사건뿐이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
(3) 하나님께서 그 능력으로 우리도 다시 살리실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실 것이다.
그는 모든 죽은 성도를 예수 그리스도처럼 영광스럽게 다시 살리실 것이다.
성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섭리의 한 절정적 사건이다.
성도가 영광스럽게 부활할 그 날, 그 시간은 인류의 역사상 참으로 놀랍고 감격적인 날과 시간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위하실 것이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
고전 6 : 15 그리스도의 지체 -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
더 놀라운 사실은, 구원 얻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의 몸을 거룩하게 지켜야 하고, 자기 몸을 창녀와 결합하여 더럽혀서는 안 된다.
1]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몸을 아무렇게나 방치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이기 때문이다.
'지체'(*, 멜레)라는 말은 손, 발 등과 같은 신체의 일부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일반적인 용어로서 다른 곳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연합체를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되었다.
* 고전 12: 12 -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 엡 5: 23 -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본 절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과 연합한 성도는 그리스도의 일부라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창기와 더불어 음란한 육체적 방종에 빠져 스스로 그리스도의 지체이기를 거부하는 자들에게 경고를 주고 있다.
이는 13절에서 언급한 '주와 몸'의 관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으로서 지체된 몸의 일부는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지시에 따라 주를 위하여 사용되고 움직여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3]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이는 강조 어구(*, 메 게노이토)로서 신약성경에서 주로 바울이 사용하였으나 본서에서는 여기에서만 등장한다.
고린도 교인 중에는 창기와 더불어 방탕(放蕩)한 생활을 하면서도 그리스도의 지체로부터 제거되기를 거부한 자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두 주인을 섬기려는 자들에 대한 바울의 태도는 너무나 단호하다. 결코 그리스도와 창기를 겸하여 섬길 수 없기 때문이다.
고전 6 : 16 창녀와 합하는 자 -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
바울은 창 2: 24에 기록된 부부의 성적 결합에 대한 표현을 인용함으로써 창기와 더불어 음란한 방종에 빠진 자들이 그들과 한 몸이 되어 창기와 같은 신분이 되었음을 시사한다.
1] 창기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합한다'(*, 콜로메노스)와 '한 몸'(*, 헨 소마)이라는 표현은 그들이 성적 행위를 통하여 '하나의 신분', 또는 '같은 범죄', '더 나아가 동일한 멸망'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타락한 육체와 연합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생명으로부터 분리되어 더 이상 그리스도의 통제를 받지 않는 죄악의 종이 되어 버렸다.
2] 바울은 말한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바울은 더욱 더 놀라운 사실을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게 하셨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었다. 여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이 거룩하고 존귀하듯이, 우리도 거룩하고 존귀한 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성도가 어떻게 자기의 몸을 창녀와 결합하므로 더럽힐 수 있겠는가!
성도는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
고전 6 : 17 주와 합하는 자 -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
‘주와 합한다’는 말은 영적 연합을 가리킨다. 그것은 요한복음 15장에서 주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말씀하신 뜻과 같고 성경에 자주 나오는 ‘주 안에’ 혹은 ‘그리스도 안에’라는 말씀의 뜻과 같다.
이것은 주님과 우리의 인격적 구별을 부정하는 말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사람과 하나님의 실체적 연합은 불가능하다. 유한한 인간과 무한하신 하나님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주와 한 영이 된다는 말씀은 단지 영적, 정신적 의미일 뿐이다.
1] 주와 합하는 자는
주제는 '몸의 연합'에서 '영의 연합'으로 옮겨진다. 즉 창기와 합한 자는 창기와 한 몸이지만 주님과 합한 자는 영적으로 주님과 하나가된 자라는 것이다.
이는 성적 타락으로 더럽혀진 죄악의 상태와 성도의 거룩한 신분을 선명하게 대조시키고 있다.
고린도 교인들의 성적 부도덕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고 성도들의 참된 지향점은 그리스도와 합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나가는 것임을 암시해 준다.
여기서 바울은 주와 '합한다.'는 것도 앞 절과 같은 분사 '콜로메노스'(*)를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영'의 연합을 몸의 연합과 같은 선명한 표현으로 묘사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사역 때문이다.
성령은 성도들이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해주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그 몸과 영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신비적 연합을 이룸으로써 모든 삶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거룩한 인격을 닮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 엡 4: 13 -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그리고 신비적 연합을 통하여 '한 영이 된다.'는 것은 성도의 영이 그리스도에게 흡수된다거나 또는 그리스도의 영과 성도의 영이 혼합 내지는 융화된다는 것이 아니다.
이는 양자(兩者)의 영이 어느 하나의 특성을 무시하지 않는 인격적 연합을 이룸을 의미한다(Lenski).
2] 한 영이니라.
‘주와 합한다.’는 말씀은 영적 연합을 가리킨다. 그것은 요한복음 15장에서 주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말씀하신 비유가 의미하는 바이다. 성경에 자주 나오는 ‘주 안에’ 혹은 ‘그리스도 안에’라는 말씀이 뜻하는 바이다.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는 말씀은 주님과 우리의 인격적 구별을 부정하는 말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주님과의 연합은 본질적, 실체적 연합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과 신, 피조물과 창조주의 본질적 연합은 불가능하다.
무한하신 하나님과 유한한 인간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주와 한 영이 된다는 말씀은 단지 영적으로 하나가 된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고전 6 : 18 사람이 범하는 죄 -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의 지체이기 때문에 자기 몸을 음행에 내어주어서는 안 된다. 음행을 피해야 한다. 음행은 다른 죄들과 달리 자기 몸을 더럽힌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인 우리의 몸을 음행으로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1] 음행을 피하라.
바울은 몇 가지의 비유적인 표현을 마무리하면서 접속사를 사용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명령형을 사용한다.
'피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퓨게테'(*)는 복수 현재 명령형으로 한순간의 도피나 연기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음행의 유혹으로부터 철저하게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음행으로 가득한 고린도 도시 속에서 이러한 유혹으로부터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과거의 한 순간에 거부했던 것만으로 안심할 수 없으며 미래의 생활 속에서도 안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음행을 피하라'는 것은 그 유혹이 있을 때마다 강하게 거부할 수 있는 현재적(現在的)인 행동을 요구한다.
2]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바울은 여기서 '몸'(*, 소마)이라는 말과 '죄'(*, 하마르테마)라는 단어를 특이하게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몸'은 단순한 육체를 뜻하지 않는다.
그는 '썩어 없어질 육체'를 의미하는 '사륵스'(*) 대신 '소마'를 사용하고 있다(Lenski).
이는 음행이 단순히 육체에 행하는 자해적인 것 이상으로 인간의 전인격을 손상시키는 치명적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시사한다.
3]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일반적으로 '죄'는 '하마르티아'(*)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본 절에서 바울은 '하마르테마'를 사용하여 죄의 행위 자체보다는 그 죄로 인하여 초래될 결과, 즉 인간의 생명 작용까지도 악화시키고 타락시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Morris).
성도는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한 몸이다. 그리스도의 지체이기 때문에 자기의 몸을 음행에 내어주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음행을 피해야 한다. 특히, 음행은 다른 죄들과 다른 성격이 있다. 다른 죄들은 비교적 자기 몸 밖에서 이루어진다.
살인이나 도적질은 손으로 행하는 죄일지라도 타인의 생명을 해하거나 타인의 재산에 손해를 끼치는 것이다.
거짓말도 혀로 행하는 죄이지만 남에게 해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음행은 자기 몸을 더럽힌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지체인 우리의 몸으로 음행의 죄를 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