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할 원수가 없다.
채필(彩筆) 묘공공불염(描空空不染) 이요
이도(利刀) 할수수무흔(割水水無痕) 이니,
인심안정(人心案靜) 여공수(如空水) 인댄
여물(與物) 자연무원은(自然無怨恩) 이라.
허공에 물감을 칠한들 허공이 물들 것이며
칼로 물을 끊은들 물이 어찌 끊어지리오.
사람 마음 안정됨이 이와 같으면
원망이나 애착, 어디에도 없으리.
금감경에 보면, 가리왕이 산에 사냥하러 갔는데 뭐 한숨 자고 피곤해서 조금 잘 동안에
궁녀들이 어디로 가니깐-에 신선 같기도 하고 도인 같기도 하고 그런 사람이 앉았는데
그게 가서 법문을 듣는다고 궁녀들이 하나도 없다.
그래 나중에 찾아보니 거기 가서 법문을 듣는다고 모두 꿇어앉고 절을 하고 모두 그 지경이라.
너사 뭣이길래 모두 궁녀들을 앉혀놓고 뭣을 얘기하고 뭐 하는 사람이고? 이래 물었다.
‘나는 인욕선인(人辱仙人)입니다. 뭣을 잘 참는 인욕선인입니다.’
그 인욕선인이 잘 참는다고 하니 가리왕이 ‘그래? 니 얼마나 잘 참는가 보자.’
칼로 가지고 코를 베고, 귀를 베고, 대처 수족을 베고 이랬다. 말이다.
이러니 하늘에서 제석천왕이 보고 그 바람을 일으켜-가지고 그 돌을 날리고 모래를 날리고
뇌성벽력을 하고 온통 야단을 치니깐 에, 아 겁이 나서 잘못했다고 사정하고 빌고 그런다. 말이다.
그래 인욕선인이 됐을 때 가리왕에 관한 말이여.
임금은, 가리왕은 칼로 가지고 내 수족을 베고 귀를 베고 코를 베고 이렇게 했지마는
나는 지금으로부터서 대도를 성취해-가지고,
가리왕의 가슴 가운데 탐진치 삼독과 팔만 사천 진뇌심, 그 그물을 내가 끊어주겠다. 라고 이랬어,
나쁜 생각을 그 망상 그 쇳덩어리보다 더 여문 그런 것을 다 끊어주려고 했다. 말이다.
그 말이 참 도저히. 아직도 대도를 이루지 못했지만, 신선의 경지에 가-가지고 그래 말로 했어.
그래 인제 제석천왕이 내려와서 전단 토를 가지고 귀 떨어진 거,
코 떨어진 거, 팔 수족 끊어 놓은 걸 발라가지고 본래대로 떡 해놨다. 말이다.
본래 끊어지지 않았을 때와 같이 만들어 놨어.
해도, 도할(塗割)에 양무심(兩無心)이라,
그 베고 칼로 가지고 수족을 베고 코를 베고 귀를 벤 그것에 가리왕에 대해서
조금도 원한 한 생각이 없고 또 제석천왕이 내려와서
전단 토를 해-가지고 본래대로 그 몸을 만들어 놓아도 그래도 다른 생각이 없어. (진흙, 칠할 도/塗)
베고 바르는데 두 생각이 없어. 그 한쪽에는 감사하다 할 거고,
한쪽에는 원수로 맺고 그럴 건데 그 원망하는 원수가 없다 이 말이야.
내가 요새 글로 써달라면 이래 써준다.
채필(彩筆)로 묘공공불염(描空空不染)이라,
채색 붓으로 가지고 허공에다가 그림을 그리려고 그려봐도 허공이 묻지 안해.
오색 가지 그 빛으로 가지고 묻혀-가지고 그려봐야 종이에 그리든지 나무에 그리든지 그러면
그게 나타날 건데 허공에 그리니깐 묻어지나? 그리긴 그렸는데 허공에 오색 가지 물을 안 받아.
이도(利刀)로 할수수무흔(割水水無痕)이라,
칼날로 아주 잘 듣는 보검으로 가지고 물을 베는데 물이 흔적이 없어,
물을 암만 베도 어데 물이 끊어지나. 끊을 때는 끊어지는 게, 칼 빼면 본래대로 된다 이 말이야.
인심안정(人心案靜)이 여공수(如空水)인댄,
사람의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한 안정한 것이 허공과 물과 같으면,
여물(與物)로 자연무원은(自然無怨恩)이라,
물건과 더불어 자연히 원수스럽고 은혜스러울 아무것도 없는 거라 이 말이다.
공과 이 허공과 물과 같으면 인심이 안정, 그와 같이 되면 그 원수스러운 것도 없을 거고,
또 은혜스러운 것도 없을 거고. 그게 다 떨어진 이 말이다.
그게 인제 세상 사람이 글씨 한 장 써 달라고 하면 그거로 혹 써줘.
- 경봉 스님 법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