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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4: 36. 아무도 모른다. - 이스라엘의 회복
마 24: 36. 아무도 모른다. -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
1]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하나님의 뜻은 재림의 시간을 알려주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그것을 알려고 해서는 안 된다.
주께서도 사도행전 1: 7에서,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라고 말씀하셨다.
2] 아무도 모르나니,
예수께서 감람산으로 올라가서 예루살렘을 굽어보시며 앉아 계실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와서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마 24: 3)하고 여쭈었다.
주의 재림과 말세의 '시기'와 '징조'에 해하여 질문한 것으로 '때'와 '장소'도 알고 싶다는 뜻이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이었다. (4절)
'나는 그리스도라'하고 '때가 가까왔다'하며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는 거짓 그리스도를 좇지 말라고 하셨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따라서 처처에 기근이 만연하고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이 일어나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겠으나 이것은 재난의 시작이라고 말씀하셨다. (8절)
주의 재림의 징조를 설명하신 예수는 그의 재림의 임박한 때와 그 준비에 대하여 '무화과나무'(눅 21: 29)의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깨어있으라'라고 경고하셨다.
(1) 재림의 시기는 오직 하나님께서만 아신다.
예수님의 재림의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몰라서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그날과 그때를 안다고 예언하여서도 안 되며, 경거망동하여도 안 된다는 말씀이다.
예수님 자신도 아버지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에 대하여 일임한 자세로 재림하실 때를 기다리신다. 예수의 재림의 날과 시간은 비밀 속에 감추어진 초월적인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처럼 등불과 기름을 준비하고 깨어서 기다리는 신앙이 필요하다. '깨어 있으라'고 하신 경고는 주께서 어느 날 어느 시에 오실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깨어 있으라'란 말의 원뜻은 문자 그대로
① 기도로 깨어 있으라.
* 눅 21: 36 -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② 은혜중에 깨어 있으라.
* 마 25: 4 -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③ 성결함에 깨어 있으라는 뜻이다.
* 롬 13: 12 -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2) 노아의 때와 같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임하심도 노아의 때와 방불하여 홍수의 심판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도 홍수가 나서 저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다.
이처럼 예수의 재림 시에도 방탕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져 교회의 문이 닫히고 불의 심판이 나타나는 그 최후의 순간까지 깨닫지 못하게 되리라는 말씀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 세상이 천년만년 갈 줄 알고 평안하다 생각하여 세상의 일만 경영하고 있다. 그들은 세상의 종말은 없다고 믿고 있으며, 육체적 향락에서 만족을 찾고 있다.
노아 시대보다 더 타락해 가고 있다. 성도들은 이 세대에 물들지 말고 노아처럼 의를 선포해야 할 것이다.
(3) 도둑같이 생각지 않은 때에 오시기 때문이다.
만일 도둑이 언제쯤 침입할지 집주인이 알고 있다면 깨어 있어 방비하고 있기에 도둑이 그 집을 뚫지 못하는 것처럼 항상 주의 재림을 맞이하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다면 생각지 않은 때에 주께서 오실지라도 기쁨으로 영접할 수 있다.
마치 충성되고 지혜로운 청지기처럼 예수께서 승천하시며 부탁하신 성도들을 맡아 때를 따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하는 경건한 종이 있다면 주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복이 있다고 하셨다.
주께서는 그러한 종들에게 천국의 모든 직무를 맡기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반대로 사악하고 사특한 종과도 같아서 주의 재림이 더딜 것이라 짐작하고 동역자들을 오해하고 비속한 종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며 타락한 생활을 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주께서 재림하사 징벌하시고 바리새인들과 같은 위선자들이 받는 형벌대로 심판하시겠다고 하셨다.
여기 '생각지 않은 때에'는 '상상하지 않은 때에'로서 안일과 방탕에 빠져 있는 순간의 만족이 깨어지는 시간을 의미한다.
① 그러므로 우리는 재림 대망의 신앙을 간직하여야 한다.
* 딤후 4: 8 -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② 빛의 갑옷을 입고, 술취하지 않고 방탕하지 않아야 한다.
* 롬 13: 12-14 –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4) 한 사람은 버려두고 한 사람은 데려가기 때문이다.
재림의 그날에 두 사람이 밭에서 함께 일하다가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한다.
두 여자가 밭을 갈고 있다가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다. 노아처럼 준비하는 사람은 구원받고 예비치 않은 사람은 심판받게 되리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주의 재림 때에 구원을 받을 자들도 있고, 구원받지 못할 자들도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주님의 재림 때까지 성도들과 불신자들이 육신의 사업에 있어서는 함께 활동한다는 의미이다.
또 우리가 이 세상의 육신의 사업을 하는 중에 주님의 재림이 있으니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범죄하지 말아야 할 것을 의미한다. 이상의 말씀에서 주님께서는 종말과 재림에 대비하라고 경계하셨다.
그러므로 준비되지 않고 깨어 있지 않은 자에게는 주의 재림이 멸망의 그날이 되지만 준비한 자에게는 구원의 날이요 은혜의 날이 될 것이다.
3]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전통 사본에는 '아들도'라는 말이 없다. 그러나 마가복음 본문엔 전통 사본에도 이 말이 들어 있다.
어떤 이들은 '아들도 모른다.'는 말은 재림의 시간을 알리는 것이 아들이 전달하라고 받은 내용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는 뜻이라고 한다.
전달하라고 무엇을 받지 못했다는 말과 무엇을 모른다는 말은 확실히 서로 다르다. 오히려 우리는 크리소스톰이나 칼뱅과 같이 이 말을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것으로 이해하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으로는 전지(全知)하시지만, 인성으로는 지식에 제한성을 가지신다. 그가 재림의 정확한 시간을 알지 못하신다는 것도 그 제한성을 나타낸 것이라고 본다.
아버지의 뜻은 주의 재림의 시간을 알려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것을 알려고 해서는 안 된다.
* 행 1: 7 -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만일 2천 년 전에 재림의 시간을 2천년 후라고 알려주셨더라면, 많은 성도가 해이해지거나 혹은 낙망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 비밀은 오히려 성도들에게 유익하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나 그 날이 확실히 오리라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이스라엘의 회복
* 마 24: 32-35 - 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35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 막 13: 28-31 - 28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29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31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 눅 21: 29-33 - 29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30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31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33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공관복음서에서 공통적으로 다루어진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배경, 내용, 적용에 대하여 유의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비유의 배경을 살펴보면 본문을 해석하는 길잡이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유를 해석할 때에는 이 세 가지의 요건에 충족하여야 그 의미를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다.
1. 서론
(1) 비유의 배경
대 환란 후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을 가르치신 후에 나온다. 공통적으로 주님의 재림에 대비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2) 비유의 내용
무화과나무의 자연적 현상을 통하여 설명하고 있다. 주님의 재림도 이와 같은 징조 속에 이루어질 것을 암시한다.
(3) 비유의 적용
비유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에 대하여 주님의 확신에 찬 언약임을 알아야 한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경솔하게 재림의 날짜를 예측하는 것은 절대 금하라. 그리고 항상 깨어 있어 주의 날을 예비하여야 한다.
2. 여러 견해
저자 명 : 저자들의 견해
강 병도 : 재림의 징조를 누구나 발견할 수 있다.
이 병열 : 유대교가 종말을 고하고 기독교의 도래를 의미한다.
김 득중 : 예수가 말한 징조들이 그의 재림의 증거이다.
최 갑종 : 재림의 확실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한 정건 : 대 환난의 징조들을 보면 재림의 징조로 알라.
이 상근 : 징조들로 임박한 재림의 징조로 알라.
박 윤선 : 재림의 징조들을 볼 때 깨닫고 기다려라.
데 이 크 : 마 24:4-26의 사건은 재림을 알리는 징조이다.
켐벨몰간 : 재림의 징조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헨드릭슨 : 징조의 발생은 임박한 재림을 알리는 징조이다.
렌 스 키 : 징조들을 보고 끝 날을 준비할 것을 가르침이다.
비더울프 : 유대 민족의 부흥은 임박한 재림의 징조이다.
벵 겔 : 유대인의 회복은 재림의 한 징조일 수 있다.
알 포 드 : 유대 민족의 미래의 회복을 상징한다.
저자의 견해
(1) 재림에 대한 징조 가운데 하나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가 되면 여러 가지 징조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것 중에 하나다.
그러므로 저자는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싹이 나는 것은 이스라엘이 회복할 것을 예표 하는 것으로 재림에 앞서 일어나게 될 여러 징조 중의 하나로 본다.
(2) 이스라엘 국가의 회복과 이스라엘 전국의 회심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이스라엘 국가의 회복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이스라엘 전국의 회심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택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면서 그 핏값을 우리와 자손에게 돌리라는 죄악을 저질렀다.
이 죗값으로 이스라엘 국가가 멸망당하였다. 따라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국가의 멸망과 광복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현재에도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따라서 이스라엘 전국의 회심은 앞으로 있을 종교적인 종말의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국가의 회복이 재림 징조의 시작이라면 이스라엘 전국의 회심은 재림 징조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다.
(3) 주의해야 할 사항
이스라엘의 국가적 독립을 시작으로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광신적인 재림 날짜의 측정은 절대적으로 금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노아의 때에 대한 비유’(마 24: 36-39)나 ‘두 사람의 비유’(마 24: 40,41), ‘지혜로운 종과 악한 종의 비유’(마 24: 45-51), ‘열 처녀의 비유’(마 25: 1-13), ‘달란트의 비유’(마 25: 14-30) 등은 주님의 재림하실 날짜에 대하여 경솔한 판단을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3. 세 가지 중요 견해
무화과나무의 비유에 대한 해석에 대하여 크게 세 가지의 중요한 견해가 있다.
(1) 재림을 측정하는 시한부 종말론자의 견해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싹이 나는 사건을 이스라엘의 국가적 독립으로 보고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마 24; 34)라는 말씀을 근거로 1948년 5월 14일을 기준으로 하여 ‘한 세대는 40년’이라는 세대 개념을 적용하여 1988년을 예수의 재림 날짜로 측정했던 시한부 종말론 자들이다.
이 주장은 성경 자체의 가르침을 근거로 철저하게 근절되어야 하는 잘못된 사상이다.
* 마 24: 36 -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 행 1: 7 -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 살전 5: 1 -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님의 재림에 대한 확실성으로 보는 견해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재림을 알리는 재림의 확실성으로 보는 견해이다.
안토니 A 후크마(Anthony A Hoekema)는 ‘예수님의 강론의 요점은 비록 천지는 없어지더라도 이 모든 사건들은 반드시 일어나야 할 것이며 이 말씀 또한 절대적으로 확실히 성취될 것이라는 것’이라고 하였다.
최 갑종 교수도 ‘무화과나무 비유 본문 자체는 물론 예수님의 전후 문맥과 관련하여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어떤 특정한 시기를 알려주는데 있지 않고 오히려 재림의 확실성과 아울러 예수님의 재림 준비에 관한 교훈을 주는데 그 강조점이 있다고 본다.’고 하였다.
비유의 서두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면 인자가 문 앞에 가까이 온 줄을 알아라.’(마 24: 33)고 하시므로 이 비유가 재림을 알리는 것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비유의 끝에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막 13: 32)고 하시므로 주님의 재림날짜 측정을 경계하고 있음을 볼 때, 이 비유가 주님의 재림에 앞선 하나의 징조로 주신 것임을 증명하고 있다.
(3) 재림에 앞선 하나의 징조로 보는 견해
알포드, 벵겔, 비더울프가 주장한다.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이스라엘 독립으로 보나 재림의 날짜와 연계시키지 아니하는 이론이다.
4. 이스라엘의 독립으로 보는 이유
(1) 원어로 입증한다.
테스 쉬케스 마데테 텐 파라볼렌
thV sukhV maqete thn parabolhn
the of-fig tree learn the parable
(그) 무화과나무의 배우라 (그) 비유를
각기 정관사를 가지고 있어 이전에 언급한 것을 가르치면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고영민 신약성서 헬라어원전 입문, 서울 기독교문사 1985 pp 79-81)
그러므로 이 비유가 암시하고 있는 것은 그 무화과나무의 변화를 통하여 그 비유를 배우라는 암시가 있다.
(2) 무화과나무의 저주 사건
* 마 21: 19 -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 막 11: 12-14, 20-21 - 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4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20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21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시장하셔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열매를 구하려고 하였다. 열매가 없어 저주하시자 그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은 사건을 말한다. 이것은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와 같은 바리새인과 서기관, 대제사장들 즉 유대의 지도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저주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주님은 공생애동안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눅 13: 6-9)와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마 21: 33-44)를 통하여 열매 맺는 일과 주인의 형벌에 대하여 가르치셨다.
주님의 가르침을 외면한 유대인들은 주후 70년 로마의 침략으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지는’(마 24: 2) 예언의 성취로 1천9백여 년 간 전 세계에 흩어져 유랑하는 민족이 되었음을 역사가 증명한다.
즉 이스라엘이 예수를 거부하여 버림받은 듯하나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면 그들도 곧 회복될 것을 성경이 입증한다.
* 롬 11: 11, 25-26 - 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3) 이스라엘이 독립하였기 때문이다.
나라 없이 유량하던 이스라엘이 1948년 5월 14일 독립하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독립은 이와 같은 성경의 사건들에 비추어 볼 때 재림을 예표 하는 한 징조임을 부인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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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재림의 시간을 알려주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그것을 알려고 해서는 안 된다.
주께서도 사도행전 1: 7에서,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라고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마음은 건강을 가져오고 행복을 안겨 줍니다.
사랑이 꽃피고 행복이 넘치는 웃음 가득한 날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은 재림의 시간을 알려주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그것을 알려고 해서는 안 된다.
주께서도 사도행전 1: 7에서,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라고 말씀하셨다.
설교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재림의 시간을 알려주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그것을 알려고 해서는 안 된다.
주께서도 사도행전 1: 7에서,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라고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