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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문불출(杜門不出)
문을 닫고 나가지 않는다는 뜻으로, 집에만 틀어박혀 사회의 일이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杜 : 막을 두(木/3)
門 : 문 문(門/0)
不 : 아닐 불(一/3)
出 : 날 출(凵/3)
(유사어)
도광양회(韜光養晦)
칩거(蟄居)
폐거(閉居)
폐문불출(閉門不出)
요즘 네티즌들의 말로 바깥 나들이를 않고 방에만 콕 박혀있는 방콕이 바로 두문불출(杜門不出)이라는 것은 모두들 아는 대로다. 그런데 어디서 유래 했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따른다.
먼저 고려(高麗)의 충신 칠십이현(七十二賢)이 이성계(李成桂)의 조선(朝鮮)을 반대하여 끝까지 목숨을 다한 곳이 경기도 개풍군 광덕산의 두문동(杜門洞)이었던 데서 왔다는 이야기가 가장 널리 알려졌다.
1392년 역성(易姓) 혁명에 성공하여 이성계가 조선에 충성하면 벼슬을 주겠다고 회유했지만 이들은 끝까지 나오지 않고 불에 타 죽었다.
조선 순조(純祖) 때 당시 72인의 한 사람인 성사제(成思齊)의 후손이 그의 조상에 관한 일을 기록한 두문동실기(杜門洞實記)에 전한다고 한다. 사마천(司馬遷)의 불멸의 저작 사기(史記)에 여러 번 언급되어 출처의 연대가 올라간다.
상군(商君) 열전에서 엄격하게 법을 집행하여 진(秦)나라의 통일 기틀을 닦은 상앙(商鞅)과 숨어사는 선비 조량(趙良)이 논쟁한다.
상앙이 법을 어긴 태자를 처벌하지 못해 그를 보좌한 신하 공자건(公子虔)의 코를 베었다. 조량은 ‘공자건이 부끄러워 8년간이나 문을 닫고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公子虔杜門不出已八年矣/ 공자건두문불출이팔년의)’며 중형을 가한 상앙이 천수를 누리지 못할 것이라고 꾸짖었다.
작법자폐(作法自斃)에서 나왔듯이 상앙은 왕이 바뀌자 국경을 넘지 못하고 잡혀 사지가 찢기는 거열형(車裂刑)에 처해졌다.
전한(前漢)의 뛰어난 문인 사마상여(司馬相如)에 반한 탁문군(卓文君)이 사랑의 도피를 하여 술장수를 하며 고생하고 있었다.
소문을 들은 부호인 아버지 탁왕손(卓王孫)이 부끄러워 문을 닫아걸고 나가지 않았다(卓王孫聞而恥之 爲杜門不出/ 탁왕손문이치지 위두문불출)는 내용은 사마상여 열전에 실려 있다.
두문불출(杜門不出)
문을 닫고 나가지 않는다는 뜻으로, 집에서 은거하면서 관직에 나가지 아니하거나 사회의 일을 하지 아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두문불출(杜門不出)은 집에만 있고 바깥 출입을 아니하거나 집에서 은거하면서 관직 또는 사회의 일을 하지 않는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두문불출은 두문동(杜門洞)이라는 지명과 관련된 것으로 두문동은 지금의 경기도 개풍군 광덕산 두문동을 이야기한다(개성 북쪽 만수산 아래 있는 동네라는 설도 있다).
이 말은 국어(國語) 진어(晉語)와 사기(史記) 상군열전(商君列傳),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에서 보인다.
두문불출(杜門不出)을 고려(高麗)의 망국과 두문동(杜門洞) 칠십이현(七十二賢) 고사의 비장감을 결부시켜 우리나라에서 생겨난 성어라고 흔히들 설명하지만, 이미 중국의 역사책인 국어(國語)나 사기(史記)에 두루 나오는 중국의 고사성어이다.
국어(國語)는, 춘추좌전(春秋左傳)을 지은 좌구명(左丘明)의 저작이라고 알려져 오다가, 요즘은 춘추시대(春秋時代) 당시 사관들의 공동 작업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한, 중국 선진(先秦) 시기의 역사책이다.
국어(國語) 진어(晉語)에는 진(晉)나라 헌공(獻公)의 명령으로 태자 신생(申生)이 동산(東山)의 고락을 치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신생이 직상(稷桑)에 이르자 적인(狄人)이 나와 저항했다. 신생이 나가 싸우려 하자, 호돌(狐突)이 신변 위험과 참언을 이유로 말렸다. 그러나 신생은 직상에서 적인을 물리치고 돌아왔다. 이후에 참언이 더욱 일어났고, 호돌은 문을 닫고 문밖 출입을 삼갔다.(狐突 杜門不出)
한편,사기(史記) 상군열전(商君列傳)에 상앙(商鞅)과 진(秦)나라의 숨어 사는 선비 조량(趙良)이 논쟁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조량이 다음과 같이 상앙을 책(責)하고 있다.
시경에 이르기를, '쥐 한테도 예의가 있는데 사람으로서 예의가 없구나. 사람으로서 예의가 없으면 어찌 빨리 죽지 않을까?'라고 했습니다.
이 시로 보더라도, 당신은 하늘에서 내려준 목숨을 다 누릴 수 없는 행동을 했습니다. 공자건(公子虔)은 형벌로 코 베인 것을 부끄럽게 여겨 벌써 8년 동안이나 문을 닫고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公子虔, 杜門不出, 已八年矣).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는 조(趙)나라 북쪽 변방을 지키던 이목(李牧)이라는 장군의 일화가 실려 있다.
이목(李牧)은 흉노가 쳐들어오면 성안으로 물러나 싸우지 않아, 흉노는 이목(李牧)을 겁쟁이라 하였고, 조(趙)나라 병사들마저도 장군을 비겁하다고 생각하였다.
조나라 왕은 화가 나서 이목을 불러들이고 다른 사람을 장군으로 삼았다. 이로부터 일년 남짓한 동안에 흉노가 쳐들어올 때마다 조나라 군대는 나가 싸웠지만 그때마다 불리하여 잃는 것이 많았고, 변방을 지키는 백성들은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기를 수 없었다.
조나라 왕이 다시 이목을 불렀지만, 이목은 문을 걸어 닫고 나오지 않으며 병을 핑계로 완강히 사양했다(李牧, 杜門不出, 固稱疾).
조나라 왕이 다시 강제로 그를 조나라 군대의 장군으로 임명했다. 이목이 말했다. '왕께서 굳이 저를 쓰신다면, 저는 예전과 같이 할 것입니다. 그래도 좋다면 감히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왕은 그렇게 하도록 허락했다.
또한, 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에는 사마상여(司馬相如)와 탁문군(卓文君)이 눈이 맞아 혼인하려 하자 탁문군의 아버지인 탁왕손(卓王孫)이 반대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사마상여는 탁문군과 임공으로 도망가서 말과 수레를 모두 팔아 술집 하나를 사들여 술장사를 한다.
탁문군에게는 노(爐; 흙을 쌓아올려 술을 담을 수 있는 화로)에 앉아 술을 팔도록 하고, 사마상여 자신은 독비곤(犢鼻褌; 쇠코잠방이)을 입고 머슴들과 함께 허드렛일을 하고 저잣거리에서 술잔을 닦았다.
탁왕손은 이 소문을 듣고 부끄러워 문을 닫아걸고 나가지 않았다(卓王孫, 聞而恥之, 爲杜門不出).
이상은 두문불출(杜門不出)이라는 성어가 중국의 역사에서 생겨난 유래였고, 다음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생겨난 유래이다. 이 말은 고려(高麗)의 멸망과 조선(朝鮮)의 건국에 얽힌 역사가 들어 있다.
두문불출(杜門不出)이라는 말은 무력으로 왕권을 찬탈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를 비판하는 의미로 고려의 충신 72명이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마을의 동, 서쪽에 모두 문을 세우고 빗장을 건 뒤 나가지 않았다는 데에서 유래한 것으로 두문(杜門)이란 말은 '문을 닫다' 또는 '문을 막다'는 뜻이다.
고려와 조선의 변천 과도기에 사회는 폭풍우와 같은 갈등을 겪게 된다. 모든 문물이 바뀌고 제도가 새롭게 형성되며, 사회의 정의가 재정립되는 것이다. 이때에 지식인들은 심각한 모순에 빠지게 된다.
당시의 지식인들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들이고 국가권력의 핵심부에 있는 권력가들이며, 학문적으로 일가를 이룩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변화할 수 있는 것은 새로움에 참여할 것인가, 절개를 지켜 잔류할 것인가의 선택 밖에 없었으며, 어느 쪽이든 내세울 명분은 있었다. 참여를 선택한 사람도, 잔류하여 은거를 선택한 사람도 나름대로의 명분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 이야기의 주인공은 새 왕조 참여를 거부하고 시골에 내려가 숨어 산 온건 개혁파들이니 그들이 이른바 두문동 72현이다. 그들은 고려의 개혁에 있어서 이성계(李成桂)와 행보를 같이 했으나, 조선 개국에는 반대 의지가 확고(確固)했던 사람들이다.
두문동은 경기 개풍군 광덕면(光德面) 광덕산 서쪽 기슭에 있던 옛 지명으로, 칠십이현(七十二賢)이 모두 이곳에 들어와 마을의 동, 서쪽에 모두 문을 세우고는 빚장을 걸어놓고(杜門) 밖으로 나가지 않은 것(不出)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지금에 와서 두문동이라는 단어를 추앙하게 만드는 뿌리가 되는 것이다.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칠십이현(七十二賢)중 한사람인 전오륜(全五倫)의 이야기이다. 그는 공양왕(恭讓王)때 대제학(大提學)을 지냈으며, 이색(李穡) 정몽주(鄭夢周) 등과 교분이 두터웠다.
조선이 개국하자 두문동으로 들어갔다가 정선의 서운산(瑞雲山)으로 옮겼으며, 훗날 두문동(杜門洞) 72현(七十二賢)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았다.
본관(本貫)은 정선(旌善)이고, 호(號)는 채미헌(採薇軒)이다. 대제학(大提學) 분(賁)의 아들이다.
공민왕(恭愍王) 때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1391년(공양왕 3) 우상시(右常侍)로 있을 때 정몽주(鄭夢周)와 더불어 왕을 모시고 5죄(五罪)를 정하는 것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어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 형조판서(刑曹判書)를 거처 대제학(大提學)에 올랐다. 이색(李穡) 정몽주(鄭夢周)등과 깊은 교유를 맺었다. 국정이 불안할 때 정몽주와 더불어 여러 차례 상소를 올려 정사를 바로잡고자 애썼다.
1392년 고려가 망하자 지금의 개성직할시 광덕면 광덕산 서쪽에 있는 두문동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뜻을 굽히지 않는 동료들과 함께 들어가 산나물을 뜯어 연명하며 고려에의 충성을 다짐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이성계가 이들을 회유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자 다시 그를 비롯한 7명이 정선(旌善)으로 옮겨 서운산(瑞雲山)으로 들어갔다.
백이숙제(伯夷叔齊)를 흠모해 호(號)를 채미헌(採薇軒)이라 하고, 나라 잃은 백성이 해를 어찌 보겠느냐며 외출할 때는 항상 패랭이를 쓰고 다녔다. 안의(安義)의 서산서원(西山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현대에 와서는 꼼짝하지 않고 들어앉아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두문불출(杜門不出)이라는 고사성어의 어원도 여기에서 시작하였습니다.
따라서 두문동에서 세상 밖으로의 왕래를 끊다에서 나온 말이다. 원래 두문동은 승지(勝地: 피난하기 좋은 곳)의 하나였다고 한다. 참고로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무릉도원(武陵桃源) 또한 승지(勝地)였었다고 한다.
비슷한 말로는 폐문불출(閉門不出), 폐거(閉居), 칩거(蟄居), 도광양회(韜光養晦)등이 있다.
두문불출(杜門不出)
수그러들 듯하던 코로나19가 수도권에 확산되는 바람에 '강요된 휴가'인 자가격리를 5주째 보내고 있다. 당초 2주간의 공공시설 폐쇄가 5주간으로 연장된데 따른 것이다. 1~2주는 그동안 밀린 작업도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냈다.
5주째가 되니 동료들도 이제는 몸이 근질근질한가 보다. 필자야 그동안 친구를 몇번 만나 답답함을 풀 수 있었지만, 기저질환이 있는 동료 조선생은 5주동안 두문불출(杜門不出)하자니 더욱 그럴 것이다.
그는 어제 '계정우음(溪亭偶吟; 갯가 정자에서)'이란 시를 보내와 답답함을 우회적으로 토로했다.
野老無營不出門
꼰대 딱히 할 일 없으니 나갈 일도 없어
鉤簾終日坐幽軒
발걷고 종일 조용한 정자에 앉아 있다.
胸中自爾心機靜
마음속 저절로 고요하게 가라앉아
竹雨松風亦厭喧
대밭 빗소리 솔바람 소리마저 시끄러워 싫구나.
이 시의 작가 허장(許嶈)은 병자호란때 인조를 구하려다 쌍령전투에서 전사한 영남좌도절도사 허완(許完)의 아들이다. 진사로서 문명(文名)이 있었다.
시인과 마찬가지로 몇주째 두문불출하다 보니 이제는 도인이 다 된 조선생이다. 처음엔 답답하여 들끓던 마음이 잔잔해졌다. 고요하다 못해 주위의 모든 소리가 잡음이 되었다. 뜻하지 않은 휴가지만 이참에 하는 마음공부도 좋은 일이다.
두문불출(杜門不出)이란 말은 '문을 닫고 나가지 않는다'라는 단순한 뜻으로, 국어(國語), 진서(晉書), 사기(史記) 등에서 두루 쓰던 말이다. 집에서 은거하며 관직에 나가지 않거나 사회의 일을 하지 아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말이 조선에 와서는 나름 스토리가 더해져 그럴듯한 고사성어로 탈바꿈한다. 이성계가 이른바 역성혁명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하자 고려의 유신 72명이 새 왕조를 섬기기를 거부하고 경기도 개풍군에 있는 두문동(杜門洞)에 깊숙이 들어가 죽도록 나오지를 않았다해서 생긴 고사다.
두문동에 은거했다는 72명의 명단은 기록에 따라 다르며 인원에 대한 이설도 많다. 조선시대 내내 72명의 실체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이는 당연한 결과다.
두문동이란 동네 이름도 고려 유신 한두 사람이 들어간 이후 붙여진 이름이며, 나머지 사람들은 충신이었다는 것을 내세우기 위해 관계도 없는 가문에서 견강부회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우리나라 사람들의 창의력은 옛부터 알아줘야 한다. 1990년대의 신조어 '내로남불'이란 말이 20~30년이 지났건만 정치권에선 여전히 많이 쓰이고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로 같은 행동이라도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냉혹하게 평가하는 이중적인 잣대를 일컫는 말이다.
이 가운데 한자는 ‘아니 不'자 한 글자밖에 없다. 사자성어인듯 아닌듯 하지만 어쨌든 네 글자로 이루어졌으니 사자성어임에는 틀림없다. 사자성어가 반드시 한자로만 이루어진 말이어야 한다면 그냥 '네글자성어'라 해두자.
이 말을 굳이 비슷한 의미의 한자성어로 바꾸자면 아시타비(我是他非)가 되고, 상대적인 말로는 공자가 말한 관인엄기(寬人嚴己)가 되겠다.
아시타비란 '나는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라는 뜻이며, 관인엄기는 그와 반대로 '남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 엄격하다'는 의미다.
이 말도 '라떼는(나 때는)' 기성세대는 영어도 섞인 줄임말로 그럭저럭 재미있어 쓰고는 있지만, 신세대에겐 쉰내 나는 '아재성어'가 될 터이다. 하지만 이 또한 언젠가는 그럴듯한 스토리가 덧붙어 재미난 고사성어가 될 것이다.
두문불출에 대한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렸다. 장한가(長恨歌)로 유명한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도 말년에 두문불출하여 지은 '불출문(不出門)'이란 시가 있다.
不出門來又數旬
문 밖에 안 나간지 또 여러 날
將何銷日與誰親
무엇으로 소일하며 누구와 벗할까
鶴籠開處見君子
새장 열고 보니 학이 군자인 듯
書卷展時逢古人
책 펴고 글 읽으니 옛 사람을 만나네
自靜其心延壽命
제 마음 차분히 하면 수명이 늘고
無求於物長精神
물욕을 버리면 정신 또한 깊어지니
能行便是眞修道
이것이 바로 참된 수양인 것을
何必降魔調伏身
번뇌를 없앤다 어찌 이리 야단인가
시에서 銷日(소일)은 消日(소일)과 같은 의미로, 어떠한 것에 재미를 붙여 심심하지 않게 세월을 보낸다는 뜻이다.
便是(변시)는 '다른 것이 아니라 곧'이란 뜻이며, 調伏(조복)은 부처에 기도하여 불력으로 악마에게 항복받는 것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이를 수행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마장(魔障)을 없앤다고 한다.
도연명이 국화를 좋아했듯이 백거이는 학을 군자로 여기며 좋아했다. 그는 스스로 허심탄회 자기 마음을 안정시키고 물욕이나 명예에 집착하지 말고 정신세계를 높이면 자연히 수명까지 연장된다고 한다.
이 시의 시안(詩眼)인 자정무구(自靜無求)는 마음 공부를 하여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는 방하(放下)의 경지를 말한다. 수양한다며 야단법석 시끄러울 필요는 없다.
우리 속담에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는 말이 있다. 비록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로 자의아닌 타의의 사회적 거리두기 핑계로 쉬고 있지만, 이 기회에 수양이나 쌓자. 썩 내키지 않는 외출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서 막연한 불안감을 갖느니 아예 두문불출하는게 낫겠다.
우리나라에서 해체시(解體詩)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황지우 시인은 '손을 씻는다'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하루를 나갔다 오면/
하루를 저질렀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손으로 만져서는 안 될 것들을/
스스럼없이 만졌다/
비누로 손을 씻는다/
비누가 나를 씻는 것인지/
내가 비누를 씻는 것인지/
미끌미끌하다
내키지 않는 외출을 하여 쓸데없이 하루를 저지르고 비누로 아무리 씻어봐야 께름칙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럴바엔 차라리 허장이나 백거이처럼 자가격리하여 수양이나 쌓자. 비록 우리집 앞마당에 학은 없어도 선현을 만날 수 있는 책은 얼마든지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날씨가 점차 더워지니 거사 유마힐이 아닐진대 빗소리 바람소리 주위의 모든 소리가 시끄럽다. 나라를 이끌어 간다는 사람들이 '나는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는 아시타비의 목청을 높여 세상을 시끄럽게 만드니 오히려 덕수궁 매미소리가 그립다.
▶️ 杜(막을 두)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나무 목(木; 나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土(토)로 이루어졌다. 나무의 이름이다. 또 음(音)이 遮(차; 가로막다)와 통하므로 그 뜻을 빌어 막다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그래서 杜(두)는 ①막다, 닫다 ②팥배나무(장미과의 낙엽 활엽 교목)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막을 옹(壅), 막을 거(拒), 막을 저(抵), 막을 저(沮), 막을 방(防), 막을 장(障), 거리낄 애(碍), 금할 금(禁), 막을 어(禦), 막을 고(錮), 가로막을 알(閼)이다. 용례로는 밖으로 나다니지 않으려고 집이나 방의 문을 닫아 막음을 두문(杜門), 막히고 끊어짐을 두절(杜絶), 폐단을 막음 또는 폐단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함을 두폐(杜弊), 톨스토이를 한자식으로 쓰는 말을 두옹(杜翁), 양하과에 딸린 여러해살이 풀을 두약(杜若), 노간주나무를 두송(杜松), 중국 남부 지방에서 나는 교목의 한 가지를 두중(杜仲), 팥배나무를 두정(杜楟), 두충과에 딸린 큰키나무를 두충(杜冲), 저술에 전거나 출처가 확실하지 않은 문자를 쓰거나 오류가 많음을 두찬(杜撰), 집 안에만 들어 앉아 있고 나다니지 아니함을 두문불출(杜門不出), 사사로운 것을 막고 공적인 것을 강화함을 두사강공(杜私強公), 애시당초 싹이 나오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뜻으로 곧 좋지 못한 일의 조짐이 보였을 때 즉시 그 해로운 것을 제거해야 더 큰 해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를 두점방맹(杜漸防萌), 어떤 일이 번지기 전에 미리 막음을 방미두점(防微杜漸) 등에 쓰인다.
▶️ 門(문 문)은 ❶상형문자로 门(문)은 간자(簡字), 閅(문)은 동자(同字)이다. 두 개의 문짝이 있는 문의 모양으로 문짝을 맞추어 닫는 출입구를 말한다. ❷상형문자로 門자는 ‘문’이나 ‘집안’, ‘전문’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門자를 보면 양쪽으로 여닫는 큰 대문이 그려져 있었다. 戶(지게 호)자가 방으로 들어가는 외닫이 문을 그린 것이라면 門자는 집으로 들어가기 위한 큰 대문을 그린 것이다. 門자는 대문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문’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지만, 이외에도 ‘집안’이나 ‘문벌’과 같이 혈연적으로 나뉜 집안을 일컫기도 한다. 다만 門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주로 문과 관련된 행위나 동작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門(문)은 (1)담이나 판장 따위로 둘린 안팎을 연결하기 위하여 드나들거나 통할 수 있도록 틔워 놓은 곳. 또는 그곳에 달아 놓고 여닫게 만든 구조물. 판자문, 골판문, 띠살문, 완자문, 정자살문, 빗살문 따위가 있음 (2)생물의 분류학(分類學) 상 단위의 한 가지. 강(綱)의 위 계(界)의 아래임. 동식물을 합하여 10여 개의 문으로 나뉨 (3)칠사(七祀)의 하나로 출입(出入)을 맡아 본다는 신 (4)성씨(姓氏)를 함께 하며 혈연적으로 나뉜 그 집안을 가리키는 말 (5)성(姓)의 하나 (6)포나 기관총 따위를 세는 단위 등의 뜻으로 ①문(門) ②집안 ③문벌(門閥) ④동문(同門) ⑤전문 ⑥방법(方法) ⑦방도(方道) ⑧가지 ⑨과목(科目) ⑩부문(部門) ⑪종류(種類) ⑫분류(分類) ⑬비결(祕訣) ⑭요령(要領: 가장 긴요하고 으뜸이 되는 골자나 줄거리)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을 문도(門徒), 집으로 드나드는 문을 문호(門戶), 성과 본이 같은 가까운 집안을 문중(門中), 대대로 이어 내려오는 집안의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를 문벌(門閥), 문의 안이나 성과 본이 같은 가까운 집안을 문내(門內), 문 앞이나 대문 앞을 문전(門前), 문하에서 배우는 제자를 문인(門人), 문객이 드나드는 권세가 있는 집이나 가르침을 받는 스승의 아래를 문하(門下), 문을 여닫을 때 나는 소리를 문성(門聲), 대문 또는 중문이 있는 곳을 문간(門間), 세력이 있는 대가의 식객 또는 덕을 보려고 날마다 정성껏 문안을 드리며 드나드는 손님을 문객(門客), 문지기를 문사(門士), 한 집안의 가족들의 일반적 품성을 문품(門品), 문벌이 좋은 집안이나 이름 있는 학교 또는 훌륭한 학교를 명문(名門), 갈라 놓은 분류를 부문(部門), 한 가지의 학문이나 사업에만 전적으로 전심함을 전문(專門), 공기나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벽에 만들어 놓은 작은 문을 창문(窓門), 집안과 문중 대대로 내려오는 그 집안의 신분을 가문(家門), 큰 문이나 집의 정문을 대문(大門), 정면의 문이나 본문을 정문(正門), 성의 출입구에 있는 문을 성문(城門), 어떤 일에 바로 관계가 없는 사람을 문외한(門外漢), 대문 앞이 저자를 이룬다는 뜻으로 세도가나 부잣집 문 앞이 방문객으로 저자를 이루다시피 함을 문전성시(門前成市),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빌어 먹음을 문전걸식(門前乞食), 집에 사람이 많이 찾아 온다는 말을 문정여시(門庭如市), 문 밖에 새 그물을 쳐놓을 만큼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짐을 뜻하는 말을 문전작라(門前雀羅),집 앞 가까이에 있는 좋은 논이라는 뜻으로 곧 많은 재산을 일컫는 말을 문전옥답(門前沃畓) 등에 쓰인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부적절(不適切), 부당한 일을 부당지사(不當之事),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부정부패(不正腐敗), 그 수를 알지 못한다는 부지기수(不知其數),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한다는 부달시변(不達時變) 등에 쓰인다.
▶️ 出(날 출, 단락 척)은 ❶상형문자로 岀(출)은 통자(통자), 齣(척)의 간자(簡字)이다. 식물의 싹이 땅위로 돋아나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나다를 뜻한다. ❷상형문자로 出자는 ‘나가다’나 ‘떠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出자는 사람의 발이 입구를 벗어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出자의 갑골문을 보면 움푹 들어간 것 위로 발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발이 입구를 나왔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出자는 이렇게 출구를 나오는 모습으로 그려져 ‘나가다’나 ‘떠나다’라는 뜻을 표현했다. 후에 형태가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본래는 입구에서 발이 나오는 모습을 그린 것이었다. 그래서 出(출, 척)은 ①나다, 태어나다, 낳다 ②나가다 ③떠나다, 헤어지다 ④드러내다, 나타내다 ⑤내놓다 ⑥내쫓다, 추방하다 ⑦돌려보내다 ⑧내어주다, 셈을 치르다 ⑨버리다 ⑩게우다 ⑪샘솟다, 뛰어나다 ⑫이루다 ⑬시집가다 ⑭자손(子孫) ⑮처남 ⑯꽃잎 그리고 ⓐ희곡(戱曲)의 한 단락(段落)(척) ⓑ연극의 한 장면(척)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낳을 산(产), 살 활(活), 날 생(生), 낳을 산(産),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들 입(入), 빠질 몰(沒), 떨어질 락(落), 들일 납(納), 이지러질 결(缺)이다. 용례로는 배가 돛을 달고 떠남으로 단체가 새로 조직되어 일을 시작하는 것을 출범(出帆), 길을 떠남 또는 일을 시작하여 나감을 출발(出發), 무슨 지방이나 학교나 직업 등으로부터 나온 신분을 출신(出身), 자금을 냄이나 밑천을 냄을 출자(出資), 사회적으로 높이 되거나 유명해짐을 출세(出世), 어떤 자리에 참석함을 출석(出席), 근무처로 일하러 나가거나 나옴을 출근(出勤), 나가고 들어감을 출입(出入), 선거에 입후보함을 출마(出馬), 책이나 그림 따위를 인쇄하여 세상에 내보냄을 출판(出版), 집을 떠나 감이나 속세를 떠나서 승려가 됨을 출가(出家), 시험 문제를 내는 것을 출제(出題), 사물이 나온 근거를 출처(出處), 뭇 사람 속에서 뛰어남을 출중(出衆), 같은 사물이 거듭 나오거나 생김을 중출(重出), 국내에서 외국으로 재화를 팔기 위하여 실어 냄을 수출(輸出), 문안이나 의견이나 법안 등을 내어놓음을 제출(提出), 용매를 써서 고체나 액체에서 어떤 물질을 뽑아 내는 일을 추출(抽出), 대부하기 위하여 지출함을 대출(貸出), 어떤 목적을 위하여 금전을 지불하는 일을 지출(支出), 새로 이루어서 생겨 남을 창출(創出), 뿜어 나옴이나 내뿜음을 분출(噴出), 한 목적에 대하여 여러 사람이 각기 금품을 냄을 각출(醵出), 감춰지거나 가려져 있는 대상이나 사실을 보이거나 알 수 있도록 드러내는 것을 노출(露出), 불필요한 물질을 밀어서 밖으로 내보냄을 배출(排出), 위험한 상태에서 구하여 냄을 구출(救出), 자신에게서 나온 것은 자신에게로 돌아간다는 출이반이(出爾反爾), 부모님께 나갈 때는 갈 곳을 아뢰고 들어와서는 얼굴을 보여 드린다는 출곡반면(出告反面), 제자가 스승보다 낫다는 평판이나 명성을 출람지예(出藍之譽), 봄이면 새가 깊은 산골짜기에서 나와 높은 나무 위에 올라앉는다는 뜻으로 사람의 출세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출곡천교(出谷遷喬), 평범한 부류에서 훨씬 뛰어남을 출류발췌(出類拔萃)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