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상 불가피한 거잖아’… 당신이 그렇게 돼도 괜찮나요?
가치의 상대화에 숨은 이해관계
이익에 눈 멀어 사실 숨기며 호도
교회가 말하는 바른 가치의 기준
인간과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것
바오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때문에 논란이 많던데요, 한해에 산재사고로 돌아가시는 분도 많다고 하고요. 근데 기업 입장에선 과잉 처벌이라고 하고, 뭐가 맞는 건가요?
베드로: 유튜브에서 봤는데 기업 죽이는 법이래요! 누가 사장하려고 하겠어요? 조금만 잘못해도 감옥 가는데?
스텔라: 무조건 감옥에 간다는 건 지나친 편견이 아닐까요? 또 처벌을 먼저 생각하기보다 그 법이 왜 생겨야 하는지 생각해야죠. 결국 일터에서 사고를 막자는 거잖아요? 우리 모두 인권, 생명이 중요하다고 배웠고요.
에스텔: 물론 사고가 불가피한 부분도 있겠죠. 그리고 여러 규제가 강화되면 기업 입장에선 부담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사망자만 한 해에 2000명이라던가? 적어도 사망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요?
율리오: 유튜브에서 봤는데 다 거짓말 이래요! 전쟁 나도 많이 죽는데 무슨 호들갑이람?
에스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제시하는 통계만 봐도 산재사망이(재해와 질병) 한 해 2000명이 넘어요!(2019년 2020명) 그리고 전쟁에서 사람이 죽듯이 일터에서 사람이 죽는 게 당연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나요?
이 신부: 우리 함께 대화해 봐요!
■ 가치에 대한 성찰
소중하기에 정성을 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가치라고 부릅니다. 가치란 사물이 갖는 의미나 쓸모, 우리의 관심, 열정이 지향하는 관념이나 실재를 일컫기도 합니다. 반대로 무가치는 우리에게 실망과 손실, 거부와 무기력을 줍니다. 가치도 여러 종류입니다. 자연이나 사물들도 고유한 가치가 있고, 사회, 생명, 정신, 심미, 예술, 경제, 종교 등 가치가 존재하는 영역은 다양합니다. 그 중에서도 자유와 인권, 생명과 인간존엄, 희생 등 윤리적 가치가 높은 군을 형성합니다. 가치는 삶에 큰 영향을 주며, 인간의 자아실현과 정비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톨릭교회는 인간과 세상을 풍요롭고 유익하게 하는 것을 가치라 합니다.(「한국가톨릭대사전」) 인권 문제는 가치를 함께 생각하는 것이며 하느님께 대한 응답, 사랑·믿음·희망도 가치를 논할 때 함께 고려합니다.
천주교, 불교, 개신교 등 3대 종교 성직자와 노동자들이 2019년 3월 6일 서울 양재동 현대제철 본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중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숨진 고(故) 이재복씨 사건의 재발 방지와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황금률과 죽음
가치는 삶의 자리와(개인의 역사) 사회 안에서(제도와 문화 등)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가치 형성에 개인의 신념과 감정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가치관에 따라 판단과 태도가 달라집니다. 문제는 가치의 차이가 만들어 내는 갈등과 대립입니다. ‘포스트 트루스(Post Truth) 시대’ 속에서 가짜뉴스가 사안에 대한 정확성과 판단을 흐리고 나아가 대립을 격화시킵니다. 심지어 정의와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극단적 주장, 궤변도 등장합니다.
“인권이 중요한건 알아요. 하지만 자본주의에서 어쩔 수 없잖아요? 그러니 인간존엄도 상대적인 거 아닌가요?”, “자본주의에서 돈이 진리다, 어쩔 수 없다! 경쟁에서 도태되면 그걸로 끝이다.”, “일하다 사고로 죽어도 어쩔 수 없지! 확률상 불가피한 거잖아?” 현실을 묘사한 이야기들이죠.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돼도 괜찮은가?” 자신이 이런 상황일 때 괜찮다고 답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의 황금률과 죽음이 가치판단에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 가치에 대한 식별과 기준과 올바른 가치가 필요한 시대
가치들을 상대화하는 말의 속내에는 밝히지 못하는 이해관계가 존재합니다. 실제로 사회 현안은 명분과 이념이라는 껍데기 안에 실리와 이해관계가 얽혀 있습니다. 윤리적 가치, 진리보다 자신의 이익을 중시하기에 침묵하고 사실을 숨기고 호도하는 것뿐입니다. 이것을 식별해야 합니다.
물론 현실의 난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관심과 대화, 적대자도 포용하는 마음, 내게 주어진 십자가를 져야 하는 고단함과 인내가 필요하고 참으로 힘듭니다. 저도 사회교리 해설 글을 쓰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일의 힘듦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무엇이 올바른 가치이고, 판단의 기준인지 알아야 합니다. 「간추린 사회교리」가 제시하는 원리들이 그런 판단을 도와 줍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인간존엄과 생명입니다. 또한 협력을 지향하는 성숙한 태도, 경청하는 인격, 형제에 대한 배려, 어려운 이웃에 대한 따스한 마음과 사랑은 이를 실천하는 방법입니다.
“교회의 사회교리는 의미와 가치와 판단 기준을 제공하고 이에 따른 행동 규범과 지침도 제시한다. 교회는 사회교리를 통하여 사회를 구성하거나 조직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양심에 호소하고 양심을 바르게 이끌고 형성하려는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81항)
이주형 신부(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