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일본 니혼 TV에서 방영된 버라이어티 쇼 '나가라 전파소년'은 버려진 섬에서 탈출하기, 히치하이킹으로 유럽에서 아프리카 건너가기, 라디오와 잡지 경품으로 살아가기 같은 가학적인 코너들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 중 경품으로 살아가기 코너에 참여한 인물이 당시 22세의 하마쓰 도모아키다. 나스비란 예명을 사용하는 유망 개그맨 지망생이었다. 그는 가재도구가 거의 없는 아파트 안에서 홀딱 벗은 채로 카메라 앞에 앉아 있었다. 옷이나 기본적인 생필품, 심지어 두루마리 휴지도 없이 창문도 없는 방에 갇혀 지내야 했다. 그는 한 번도 의류 경품에 당첨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작진은 그의 민망한 신체 부위를 가지 스티커로 가리곤 했다. 그는 잡지가 꽂힌 책장을 뒤에 두고 펜 하나로 엽서를 꾸리거나 전화기를 붙들고 살았다.
넷플릭스 예능 '더 에이트 쇼'의 설정과 상당히 닮은 구석이 있어 보인다. 류준열이 연기한 '3층'이 자꾸 나스비의 얼굴에 겹쳐진다. 리얼리티 쇼의 원조인 짐 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 쇼'가 개봉하기 전에, 또 네덜란드 TV 예능 '빅 브러더'가 나오기 몇년 전 일본에 이런 리얼리티 예능이 방영돼 꽤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다.
나스비는 경품으로 100만엔(당시 환율로 약 1055만원)만 따면 실험이 끝난다는 얘기를 듣고 참여했는데 355일이 지나서야 목표액을 채울 수 있었다. 어떤 때는 쌀을 구하지 못해 개 사료로 배를 채워야 했다. 그는 차츰 배고픔과 고립감 때문에 우울증에 빠져들었다.
26년이 흘렀는데 나스비의 실험을 돌아보는 영국 다큐멘터리 '콘테스턴트'(The Contestant)가 셰필드 다큐멘터리 페스티벌에서 상영됐다고 영국 BBC가 16일 전했다. 미국에서는 훌루TV를 통해 방영됐고, 영국에서도 연내 방영될 계획이다.
클레어 티틀리 감독은 "다른 프로젝트 일을 하다 그의 얘기를 접하게 됐는데 인터넷의 이른바 '토끼 구멍' 느낌이었다. 약간 경멸당하는 느낌도 있었다. 누구도 나스비의 얘기를 진지하게 얘기하지 않았다. 왜 그는 (이론적으로 탈출이 가능했는데도) 그곳에 계속 머물렀는지, 그 일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해졌다. 해서 그와 접촉해 그의 경험을 다룬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제의했다"고 말했다.
나스비는 공개 오디션에 응해 선발됐으며 자신의 모습이 촬영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촬영한 영상이 어디에 쓰일지 설명이 모호했기 때문에 방송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매주 그의 현황을 사람들이 알게 돼 그는 어느덧 일본 최고의 유명 인사가 돼 있었다. 평론가 대부분은 이 프로그램을 싫어했지만, 젊은 시청자 사이에 제법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일본 바깥에서는 '경품 응모로만 생활하기'에 대한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티틀리는 BBC에 "유튜브가 폭발하다시피 한 지난 10년 동안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에 대해 더 많이 들어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일본과 한국 이외 지역에서는 상영된 적이 없었다. 그 밖의 국가에서는 절대 방영될 계획이 없었다."
'더 콘테스턴트'는 나스비뿐만 아니라 당시 코너를 기획한 프로듀서 츠치야 토시오와도 인터뷰를 진행했다. 또 전직 BBC 일본 특파원을 비롯해 취재에 참여했던 사람들도 다큐멘터리 제작에 도움을 줬다.
하지만 이야기 대부분이 원본 영상 자체에 담겨 있다. 다큐멘터리 시청자들은 당시 TV 시청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스비의 일과를 따라가게 된다. 티틀리는 자신과 팀이 원본 영상을 '공들여' 살펴보고 원본에서 사용한 효과 대부분을 제거했다고 밝혔다. 티틀리는 "(원본) 영상은 일본어 자막으로 덮여 있었고 일본어 내레이션, 녹음된 웃음, 음향 효과 등 소음과 자막의 불협화음으로 가득했다"며 "그래서 영어를 사용하는 시청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팀은 일본어 자막을 영어로 덮고 오디오를 최대한 정확하게 재현했다. 또 영어를 구사하는 내레이터를 고용해 원본 해설을 번역했다.
평론가들은 나스비가 겪은 시련에 혐오감을 느끼는 만큼 이 이야기에 매료됐다. 롤링스톤의 데이비드 피어는 "('더 컨테스턴트'는) 외면할 수 없는 사고이자 시청자 공모 행위를 고발하는 것"이라고 평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미디어 현상의 연대기이자, 기념비적인 예능 TV 프로그램이자, 오락으로 포장된 악몽에 관한 것으로, 시청자들은 자신이 목격하고 있는 것이 100% 사실임을 알면서도 여전히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인디와이어의 데이비드 에를리히는 원본 영상이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가학적"이라며 다큐멘터리를 위해 새로 촬영한 영상이 이를 따라잡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회고 인터뷰는 솔직하고 사려 깊지만, 나스비의 시련을 담은 원본 영상만큼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쇼가 진행되는 동안 나스비는 많은 대회에 참가해 우승했지만, 그가 받은 경품이 항상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쓰잘 데 없는 경품으로는 타이어, 골프공, 텐트, 지구본, 테디베어 인형, 영화 '스파이스 월드' 관람권 등이 있었다.
나스비의 체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제작자들에게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는데, 제작자 중 한 명은 다큐멘터리에서 나스비가 쌀을 경품으로 받지 못했다면 죽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나중에 당첨된 가당 음료와 개 사료로 몇 주를 버텼다.
150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나스비가 경품에 당첨되는 모습과 그가 생존을 위해 경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기 위해 TV를 켰다. 아파트 문이 잠겨 있지 않아 나스비는 언제든지 원하면 아파트 밖으로 나갈 수 있긴 했다. 그런데도 왜 그는 떠나지 않았을까?
티틀리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다"며 "하나는 그가 후쿠시마 출신으로 엄격한 부모 아래 자라 아주 금욕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음 분석은 조금 어이 없다. "또 그는 매우 충성스러운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고, 아주 어리고 순진했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을 신뢰한다. 그리고 '나는 이겨내고 끝까지 버틸 것'이란 사무라이 정신도 갖고 있다."
그러나 이제 나스비는 이 쇼를 "잔인하다"고 표현하며 "행복도, 자유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나스비는 미국 매체 데드라인에 "내가 일주일을 살았다면 3~5분 정도만 매주 (방송에)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며 "그리고 그 부분은 (경품을) 타냈을 때의 행복감을 강조하기 위해 편집됐다"고 말했다. "시청자들은 '아, 저 사람이 뭔가 재미있고 즐거운 일을 하고 있구나' 말하겠지만, 내 삶의 대부분은 고통스러웠다."
목표액을 채웠다며 제작진은 축하의 뜻으로 한국 여행을 보내줬다. 불고기를 먹어보고 싶다는 그의 일기 내용을 제작진이 봤기 때문이었다. 짧게 한국 여행을 마친 뒤 다시 귀국행 비행기 표를 경품으로 따도록 한다. 실컷 부려 먹고 놀려 먹은 뒤 도쿄에 도착해 다시 세트로 안내된다. 그는 실험이 계속되는 줄 알고 옷을 벗었는데 그 순간, 벽인줄 알았던 세트가 무너지고 주변을 둘러싸고 앉아 있던 관객들이 일제히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손뼉을 마주친다. 얼마나 잔인한 설정인가?
이번 다큐 영화는 나스비의 일상을 따라가며 그가 얻은 명성을 좋은 일에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마침내 성취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준다. 티틀리는 나스비가 자신의 얘기를 다시 꺼내기에 적절한 시기라고 느낀다고 말했다며, "어쩌면 그에게 일어난 일을 평화롭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을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이번 다큐 영화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있어 선을 어디까지 그어야 하는지, 그리고 시청자의 책임이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티틀리는 "사람들이 소셜미디어 및 예능 TV 쇼와 자신의 관계를 되돌아보길 바란다"며 "우리 모두가 시청자이자 소비자로서 얼마나 깊이 연루되어 있는지 생각해 봤으면 한다"고 했다.
The Contestant Explained - Where Is Nasubi Now? What Is He Doing These Days? Did The Show Air? Hulu (youtub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