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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 및 보증채무 증대경위서 [1969~1993] 1969년1남1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렵지만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아버님과 어머님께서는 지금의 은평구 응암동 00시장 에서 조그만 좌판에서 건어물판매와 햄을 판매하는 00냉장 대리점을 시작하셨습니다. 부모님이 바쁜 시기에는 저도 조금씩 일을 도왔습니다. [1994~1996] 1994년 00전문대를 졸업하고 기계설계 학과특성을 살려서 카세트테이프를 만드는 기계를 생산하는 00기계에 입사를 하였습니다. 회사는 수원이어서 사장님의 집에 기숙하면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월급 여는 80만원 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1년 가량이 지난 후 아버님께서는 은평구 응암동 00시장에서 운영하시는 00냉장 00대리점사업이 햄 위주에서 포장유과 정육위주로 변경 되면서 무거운 짐들을 나르시는 것을 힘들어하셨습니다. 제가 장남인 관계로 아버님께서는 제가 일을 도왔으면 하셔서 수원의 직장은 퇴직을 하고 아버님을 도왔습니다. 1995년 11월 결혼을 하고 아버님께서 국민은행 에서 대출하여주신 3500만원으로 아내와 저는 반지하인 전셋집을 얻어 아내는 보습학원 강사를 하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1997~1999] 1997년 아이가 생기면서 아내가 모아둔 2000만원을 합하여 1층인 전셋집을 얻어 이사하고 아내는 다니던 보습학원을 그만 두었습니다. 연세가 많으신 아버님께서는 무거운 물건들을 배달하고 나르는 것을 힘들어 하셔서 제가 모든 일들을 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1997년엔 제가 직접 호림유통이라는 개인사업자등록을 하였습니다. 은행거래도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은행 직원의 권유로 기업은행 카드를 만들게 두었습니다. 아내 역시 기업은행을 이용하여 같이 만들게 되었고요. 보다 더 많은 영업활동을 하게 되면서 냉동식품인 관계로 창고도 필요하여 1998년6월경 아버님 깨서 신용보증기금에서 대출받은 4000만원 중 3000만원을 들여서 5평정도의 냉동창고를 마련하였습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습니다. 1999년 3월엔 그 동안 조금 모아둔 돈1500만원을 합하여 전세 7000만원인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1999년7월엔 2개 업체로부터 2000만원 가량의 부도를 맞았습니다. 부도난 금액은 다시 기업은행에서 대출받은 1000만원과 운영수익으로 변제를 하였습니다. 그 후 주력상품인 쇠고기의 마진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11월경엔 미국산 쇠고기를 직접 수입하였습니다. 그러나 시장 상황에 맞지 않아서 1000여 만원의 손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시설투자와 손해로 인해 카드사용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1999년 10월경 후배의 도움으로 00백화점의 직영매장 거래처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대규모 거래처를 효율적으로 납품하기 위하여 영업사원 1명도 두게되었읍니다. 차량도 1대 더 늘리게 되었습니다. 이때 기업은행에서 신용으로 1000만원을 대출 받았습니다. 00백화점의 영업은 번창 하였습니다. 정육점 식당 거래처도 증가 하였습니다. 대규모의 업체들 납품을 하면서 추가 운영 자금이 필요하게 되어 아파트전세 금을 빼고 주택은행에서 담보대출1억 원을 받아서 1억5천만 원인 화정의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매입매출이 증가하여 1000만여 원 가량의 세금을 납부하게 되었습니다. 세금은 동생에게 빌려서 납부하였습니다. 과중한 세금 문제로 세무사 사무실에 상담을 하였는데 세무사 사무실에선 법인을 설립하는 것이 향후 대기업 영업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여 1999년12월 ㈜호림유통이라는 법인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2000~2002] 법인설립 후 2000년1월 축산물은 가격변동이 심하여 어느 정도의 재고가 필요하였습니다. 모두 냉동수입제품인 관계로 녹번동에 기업은행 마이너스대출1000만원 하나은행마이너스대출2000만원을 모아 보증금1000만원 시설비2500만원을 들여 월세 90만 원인 창고 겸 사무실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거래업체 수는 더욱 증가하여 100여 개 업체에 달했습니다만 영업 경쟁은 치열해져 갔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는 대규모 업체에 납품을 하는 것만이 살아남는 것이라고 생각 하였읍니다. 대규모 업체들의 납품은 마진은 적었지만 계속적으로 거래가 유지되었습니다. 00백화점의 결재 조건은 15일 마감 15일 후 결재조건 이었습니다. 저희들은 물품대금을 현금이나 아버님 가계수표로 하여야 했습니다. 00백화점의 수주 물량은 늘어갔습니다. 명절에는 더욱더 수량이 증가 하였습니다. 저와 아내가 보증을 하고 신용보증기금에서 3000만원의 대출을 받아서 운영자금으로 사용을 하였습니다. 재고 역시 늘려야 했습니다. 영업사원도 1명 더 늘렸습니다. 차량 역시 늘려야 했습니다. 규모가 커지면서 박리다매의 상황이 되었습니다. 2001년 00백화점의 영업점수가 더욱 증가 하였습니다. 신용보증기금에 상담을 요청하여 6월에 기업구매자금 2억 원을 추가로 대출을 받았습니다. 6개월간의 이자 600만여 원을 선납하고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2002년 직원의 집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지방에서 상경하여 월세 방에서 혼자 지내던 직원이 사무실 근처로 거처를 옮기길 원했습니다. 할 수 없이 제가 대신 전세 자금 2000만원을 대출 받아서 이사를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자는 급여에서 내기로 하였습니다. 법인체이어서 4대 보험에도 가입을 하였습니다. 또한 운전과 영업이 주업이어서 보험에도 가입을 해주었습니다. 직원 2명과 전 열심히 해나갔습니다. 명절인 경우에는 7시에 출근 하여 11시에 퇴근하며 정말 열심히 노력하였습니다. 경쟁에서 살아 남아야 했습니다. [2003~2005] 2003년 00업체에게 납품 하기로 구두 약속을 하고 호주 산 쇠고기를 매입하였습니다. 그런데 납품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모 기업체가 부도가 나면서 00백화점은 다른 업체로 매각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매입 했던 물량들은 가격이 급낙 하였습니다. 저는 기다렸습니다. 다시 가격이 회복 되기를 하지만 나날이 가격은 떨어 져갔습니다. 4개월 후 결국 1억 원 정도의 손해를 보고 팔아야 했습니다. 그 당시의 시세뿐이 받지를 못했습니다. 경기는 불황의 시작 이었습니다. 영업 상황은 나빠졌습니다. 아버님의 가계 역시 인근의 대형 마트 등으로 영업이 어려워 졌습니다. 주택담보 대출, 신용 대출, 월세, 전기료, 차량유지비, 차량할부 등 경비가 600만여 원이 지출 되었습니다. 할 수 없이 경비를 줄여야 했습니다. 아파트를 처분하고 남은 금액 2000여 만원은 기업은행에 변제를 하고 저와 아내 아이들은 장인 어른께서 돌아가시고 할머님과 함께 사시는 장모님 댁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아버님과 어머님께 서는 집을 처분하시고 담보로 되어 있던 00냉장에 변제를 하시고 시집간 여동생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 셨습니다. 기업은행 카드대금도 대환으로 변경하고 삼성카드도 대환으로 변경 하였습니다. 직원들도 퇴사를 시켰습니다. 이제 다시 혼자서 열심히 운영 해야지 하고 다시 시작 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2003년 12월 광우병 파동이 나게 되었습니다. 광우병 파동으로 무수한 업체들이 부도가 났습니다. 매출은 1/3 이하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2004년 신용보증기금에서 아버님과 들어 오라고 하였습니다. 저희 회사 앞으로 되어있는 대출을 아버님께로 돌려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광우병 이라는 특별한 상황이어서 아버님께 모든 대출을 돌리고 저와 아내가 보증을 서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저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광우병 파동이 오래 가지 않을 거란 말들이 흘러 나왔습니다. 보증서를 연장 하였습니다. 300만원 정도의 경비가 들었습니다. 모든 대출은 아버님께 돌려서 하나은행에서 대출을 연장했습니다. 하나은행은 보증서의 모자라는 부분을 저에게 보증서고 적금을 들라고 하였습니다. 거금 80만원 이었습니다. 하나은행에 들어있던 적금을 해약하여 하나은행의 대출은 어느 정도 변제 하였지만 이자는 계속 지출 되었습니다. 광우병 파동이 생기면서 국민 연금도 연체 하게 되었습니다. 2005년 광우병 파동 이전의 수입고기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조금씩 유통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연체하지 않으려 열심히 노력 했습니다. 하지만 거래처들은 업종을 변경하는 곳이 늘어 났습니다. 호주 산 고기만으론 역부족 이었습니다. 업체는 줄어들고 현금 거래가 아닌 거래처들은 퇴출 되어 갔습니다. 직원의 대출이자도 제가 납부 하게 되었습니다. 2005년도엔 연장하는데 적금을 포함하여 500여 만원이 들었습니다. 사무실의 보증금도 물품대금에 사용하여야 했습니다. 냉동창고는 시설비를 건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거래처들에게서 물품구입이 어려워지고 물품의 가격은 불황과 미국산 수입 재개 라는 뜬소문 등으로 인하여 내려갔습니다. 급기야 생활비 조차 가져 갈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위로 채무자로서, 연대 보증인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 하게 되었습니다. |
첫댓글 잘 작성하신 것 같습니다. 다만, 마지막 부분에 언제 사업을 정리하였고 사업을 정리하여 채무변제에 사용한 내역을 좀 더 상세히 기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