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 되었다고 나의 삶이 아니 우리의 삶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헐크호간과 워리어에 광분했고
레스링 잡지를 교과서 대신 들고 다녔으며
몇백원 안되는 용돈을 스트리트 화이터에 모두 투자했다...
아침마다 어머니가 꺼내 주는 옷을 입었고
아무리 이쁜 옷이라도 까칠거리는 옷은 입지 못했으며
며칠동안 같은 옷을 입고 학교에 나가도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체육이 있는 날은 그 한시간을 위해 그 촌스러운 자주빛 체육복을
하루종일 입는것을 꺼리지 않았으며
해가 질 때까지 얼음땡이나 다방구 또는 오징어를
밥먹으러 오라는 소리가 들릴때까지 했다.
머리감기가 귀찮아서 뜬 머리를 물로 눕혀 외출하기를 즐겼고
목카라에는 때가 가실 날이 없었다.
이빨닦기도 굉장히 싫어했는데
어느날 치약이 얼굴에 묻었다며 어떤 여자아이가 더럽다고 했을때
난 이빨을 닦은 증거를 보여준것 같아 오히려 기뻤다..
화요일이면 아이큐점프를 사려고 500원씩을 구해서 서점앞에 집결했다
드래곤볼을 읽는 순서를 선착순으로 정했기때문에 두시간 전에 집을 나서기도 했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양식을 사랑했고 즐겼다.
하지만 똑같은 시절을 살고있음에도
우리 1학년 12반에는 우리를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는 무리가 존재하고 있었는데...
이른바 좀 노는 여자 아이들이었다...
우리는 그들을 날라리 혹은 날파리라고 불렀고 그들은 우리가 정한 명칭을 꽤나 싫어했다...
그녀들에 대한 내 최초의 기억은 이렇다...
그날도 여느때와 같이 우리는 교실뒤에서 로프반동을 하고 드롭킥을 날리며 폐품으로 걷어온 만화책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교실이 조용해지며 여덟명의 여자아이들이 들어왔는데
굉장한 타이틀 매치를 했는지 반창고를 얼굴 이곳저곳에 붙이고 몇명은 팔에 붕대까지 감고 있었다.
지친 레슬러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그들의 반창고와 기브스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레스링 경기장이 아닌 콘서트장에 다녀왔다고 했다.
뉴키즈 온더 블럭이라는 해석이 안되는 이름을 가진 그룹이었다.
그날밤 뉴스에서 콘서트장면을 방송했는데 그들은 어떤 레슬러보다도 과격했고 열정적이었다..
광기어린눈은 나에게 신선한 충겨으로 다가왔고
난 그들을 관찰하기로 했다....
며칠 안되서 난 많은 것을 알아냈다...
멤버는 8명이었고 매일 다른 옷을 입고 다녔으며 주로 형광색계통의 옷을 입었다.
머리스타일은 한결같이 앞머리를 분수처럼 솟아오르게 했었는데 많은 양의 무스와 시간이 소요될 것 같았다.
하드보드지로 만든 그들의 필통엔 연예인 사진이 누더기처럼 붙어있었는데 2주에 한번씩 사진이 교체되었다.
그 8명중 우두머리가 있었는데 그의 분수머리는 다른이보다 높았고
필통또한 누구보다 크고 화려했다.
이쁘장한 얼굴이었지만 그녀의 껌에선 항상 소리가 났고 인상은 늘 구겨져 있었으며
쉬는시간이면 7명의 날파리가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는....
내 짝이었다.
난 그와 친해지고 싶지 않았다.
헐크호간과 워리워를 한 번도 본적이 없음에도 유치한 놈들로 싸잡아 매도했고
드래곤볼도 보지 않았으며 책상에 금을 그어놓고는 자신은 넘어가도 되지만 내가 넘어가는 것은 용납할수 없다고 말했다
난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지만 단 한 번도 그 금을 넘어가진 않았고
쉬는 시간이면 7명의 날파리를 위해 친절히 자리를 비켜주었으며
점심시간에 그들이 흘린 소세지도 기꺼이 치우며
난 어쩜 희생정신까지 투철할까? 하면서 애써 자위했다
그 7명을 거느린 그녀
왕날파리 내짝의 이름은 수연이었다..
-계속-
우리에겐 아주 무서운 한문 선생님이 있었다
짧은 커트머리에 잔주름이 많은 여선생님이었는데
자신의 키보다 큰 당구채를 먼저 교실에 던져놓고서
교실에 들어서는 카리스마의 결정체였다..
처음에 우리는 날파리들에게 느꼈던 레슬러의 체취를
다시 한 번 느끼고 광분하려했으나...
선생님은 엄청난 양의 숙제를 우리에게 할당하므로써
팬들을 적으로 돌려버렸다...
그양은 실로 엄청났는데
가령 그시절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날 이끌었던
상호
(그는 내게 자위방법부터 연소자 관람불가 테입을 잘 빌려주는 비디오 샆까지 다방면에 있어서 나를 교육하고 실습케 했다,.)
바로 그 상호가
10분이면 된다고 날 급하게 찾았을 때
그 산지식인이자 진정한 교육자 상호의 말을 단 한마디로 거절할 수 있었다...
"나 내일 한문들었어"
그걸로 끝이었고 상호도 절대적으로 수긍했다...
한문 숙제의 보복성은 그 절대적인 양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 숙제를 하게하는 의지....그것이 필요했고...한문선생님은 그분야의 달인 이었다...
처음 한문 숙제가 주어졌을때 그 터무니 없는 양때문에 반인원의 1/3만이 숙제를 안해오자
선생님은 안해온 사람과 번호 끝자리가 같은 사람을 모두 때렸고
두번째주에는 안해온 사람이 앉아있는 분단을 모두 때렸다...
이쯤되자 아이들은 일주일의 하루를 한문 숙제 하는데 소비하는 것을
타당하다고 느꼈고 숙제 내준지 하루만에 미리 다 끝냈다고 하는 녀석을
성공한 사업가 보듯 부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아이들은 2주일만에 한권씩 한문노트를 소비했으며 8명의 날파리도 치마를 입기
위해서 한달에 두권씩 한문 노트를 사야했다...
이미 우리동네는 세계에서 가장 한문노트 잘 팔리는 동네가 되어있었다...
한문노트 단기매출 1위...............
참 멋진 동네다...........
무엇이든 너무 특이하거나 과격하면 허점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의 한문 수업도 문제점이 있었는데...
일주일에 한 시간인 한문시간을 숙제검사하고 때리는데 다 소비해야한다는 점이였다..
3주간 때리고 숙제내는데만 집착을 하다가 어쩔수 없이 숙제검사라는
중책을 반장에게 넘겨야 했다...
떠드는 사람 이름이나 적던 반장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권력
이를테면 절대반지를 손에 쥐게 되었다...
하지만 반장은 즐거워 하는대신 한 숨을 쉬었다...
미래를 바라보는 현안을 가지고 지긋한 눈빛을 풍기며...
난세를 걱정한 그 인물...그 반장은...
놀랍게도...
아니 우습게도 나였다...
처음 숙제검사를 시작하고 한달 정도는 잘 돌아갔다..
공포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이들은 숙제를 꼬박꼬박 잘해왔고...
난 조금 팔이 아팠지만 그저 한문노트 반권에 해당하는 숙제에 도장만 찍어주면 그만이었다..
선생님이 `반장 숙제 안해온놈있어?'하고 물으면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만들며 확신에 찬 어조로 '네' 라고 말하는 걸로
의식이 모두 끝나는 간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영악한 아이들이 선생님이 직접 검사를 안한다는 것을 굳게 믿게되자
노트소비량이 1/3권 1/4권씩 점점 줄어 들었고
내게 모험을 강요했다...
난 여전히 초롱초롱 눈망울을 무기로 '네'를 답습했고 몇주간 먹혀들었다.
하지만 선생님과 문방구 아주머니가 결탁했는지
한문노트매출량의 감소를 보고받은 선생님은 다음주에 직접 검사를 한다고 말씀하셨고... 모두들 부지런히 노트를 소비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직접검사를 하신다고 한날도
내게 검사를 시키셨고 내가 모든 검사를 마쳤을때
우리반에 단 한명 수연이만 숙제를 해오지 않았었다...
수업이 시작되고 선생님이 물으셨다...
난 다시 초롱초롱을 발사했으나 약간의 떨림이 존재했고..
선생님은 귀신이었다....
"너 내가 다시 검사해서 나오면 니가 다 맞는거다..."
그말에 초롱초롱은 온데간데 없고 100%비굴하게 "네"라고 했고
5분만에 색출된 수연이 때문에
50~60대를 맞았다...정확히 센건 37대였고 그뒤로는 그냥 리듬을 느꼈다...
50~60에서 멈췄던건 당구채가 부러져서일 뿐이다...
부러지지 않았다면 지금도 맞고 있을것만 같다...
정말 끝나지 않을것 같은 시간이었다...
분이 안풀린 선생님은 마대자루를 발로 부러뜨려 수연이를 중심으로
백설표(*)자리에 앉은 아이들을 모두 소화해 냈다...
상상해 보라 그 정열에 넘치는 진정한 교육자를....
수연이는 한달간 치마를 입지 못했고
아이들은 1년간 숙제를 열심히 했다...
그 긴 한 시간이 끝나고 얼굴에 땀이 흥건한채 절뚝거리며 걸어들어오는
나에게 수연이가 말했다...
"야 니가 그렇게 대답해 주면 내가 좋아할 줄 알았냐?"
그때...난 "아니...뭐.. 별로.. 그럴것 같진 않았어.."
라고 대답했지만...
그 질문의 정답은 "어...그래 " 였다.
다음날부터 쉬는시간에 날파리들은 내 자리를 점령하지 않았고
자신이 흘린 반찬을 손수 치우는 모습을 보여줬다...
여름이었다...
수연이는 내가 빌려준 드래곤볼을 다 읽었고
나는 드래곤 볼의 손오공과 레스러들이 같이 존재하는 하드보드지 필통을
들고 다녔다..
수연이는 내가 좋아 하는 레슬러 몇명을 알고 있었고
난 뉴키즈 온더 블럭의 멤버이름을 다 외웠다.
변한 건 우리만이 아니었다.
남자애들은 키가 여자들보다 커지면서 어색한 눈으로 보는 날들이 시작 되었고
이곳 저곳에서 거뭇거뭇한 털을 가진 놈들이 등장했으며
그리 시끄럽던 교실이 조금씩 차분해 지고 있었다...
그중에 옆반 정수라는 녀석이 수연이를 좋아했는데..
어느날인가
실내화를 갈아신을때 그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자신의 모습을 각인 시켰다...
그당시 탄산음료중에 새로나온 mash라는 음료수가 있었는데..
tv광고가 '사랑을 전할때는 mash를....'
하는 카피와 함께 굉장한 반응을 얻고 있었다...
손지창인지 김민종인지 모르겠지만 그 둘중 하나가
아래에 참조한 그림과 같은 자세로
여자가 도서관 나올때를 기다렸다가 그 mash를 주는 내용이었다...
그 정수라는 놈이 우리가 신발을 갈아 신고 있을때
그와 똑같은 자세로 mash를 들고 서있었다...
그와 친분이 있는 녀석이 뭐하냐고 묻자
자세는 전혀 바꾸지 않은채
수연이는 언제나오냐고 물었다...
난 알고 있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수연이는 청소당번이었다...
30분이상 그는 그자세로 서있었다..
마셔보지는 않았지만 그 mash도 미지근해져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 나오더니 그자세의 정수에게
뭐라고 하자 벌컥화를 내더니 자세를 풀고 음료수를 자기가 까서 마셨다...
나중에 듣자하니 수연이는 청소를 하기 싫어서 다른 문으로 도망쳤다고 했다.
난 그런 수연이가 좋았고 그러는 동안 내성적은 곤두박질 치고 있었다.
마지막 시험을 봤을때 난 우리학교 학생이 대충 몇명인지 알 수 있을
정도 였고 그 충격적인 성적표는 아직도 우리 어머님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수연이는 자신과 비슷해지는 내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아끼던 워크맨도 빌려줬고..비록 신어보지는 못했지만
형광색 양말도 선물로 줬다...
또 가끔 우리집에 전화해서 날 불러내기도 했는데
그건 상상이상으로 난해한 과정을 통과해야만 할 수있는
고난위도의 테크닉이었다...
우리 어머님은 전화를 받으면 6하원칙에 의거 상대의 말을 잘라 버리는
기교를 지니고 계셨는데 누나의 애정행각을 막으려다 생겨난 비기였다..
시종일관 질문을 하다가 정신없는 틈을타
공부에 전념하라는 교훈을 남긴뒤 끊어버리는 식이었다...
그 경계 아니 결계를 푼 사람은 수연이가 처음이었는데
어쩔때는 학원선생님이 되었고 어떨때는 누나의 친구
또 어떨때는 내참고서를 우연히 주운 사람으로 변신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어머님은 여지없이 무너졌고
난 전화를 받고서도 늘 당황해 했다...
우리는 많은 얘기를 했다.
재수없는 아이들에 대해...
성적으로 평가하는 선생님에 대해...
레슬러와 팝스타에 대해...
방학이 시작되자 우리는 일체의 연락을 할 수 없었는데...
곤두박질 친 내성적을 인정못한 어머니가 날 기숙학원에 넣었기 때문이다
일명 스파르타라 불리던 그 학원은 한달이란 시간동안 나에게 많은걸
알게했고 또한 잃게했으며
지금까지도 만약 내가 거기 가지 않았다면....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곳은 공인된 수용소였다...
모두들 계획대로 움직였고 모든 것은 수치화 되어있었다.
군대에서도 금지된 구타가 그곳에서는 규칙적이고 정상적으로 실행되고 또...받아들여졌다...
들어가자 마자 우리는 기숙학원에서 제공한 퍼런색(적대 파란색이 아니다)의 추리닝을 받아입었는데
국방무늬 군복보다 더 사회와 우리를 구분시키는 묘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일과는 단순했다.
4시간의 수업 6시간의 수면 남은 시간의 자율학습...
매시간 자율학습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군가를 부르고 앉았다 일어서기를
50회씩 실시했는데...그것이 우리가 하는 운동의 전부였고
그 여파로 굉장한 점프를 할 수 있는 굵은 다리와 맞지않는 청바지가 생겼다.
구석구석 천장에 달린 cctv는 밤낮으로 우리를 감시했고
머리바로위에 위치한 카메라 때문에 사각지대가 된 내자리는
한시간에 500원을 불러도 줄을 서서 기다렸다...
우리는 정신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평범한 야구방망이로 맞았는데
맞는 횟수는 슈퍼의 물품목록 대비 가격표 처럼 규정되어있었다...
졸다 걸린사람은 3대 창밖을 구경한 사람은 5대 취침시간에 화장실을 가는 사람은 2대...
간혹가다가 규정에 없는 모호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자다가 화장실을 가고 싶은데 맞기 싫었던 어떤 녀석이
잠긴 문 앞에다가 그냥 큰 덩어리를 새벽에 몰래 생성 시켰다..
그 다음날 일어난 간수(?)가 그 일을 보고 2~3분간 말을 못하고 있을때
우리는 자못 흥분하기까지 했다...
이 미궁의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결과는 문과 가장 가까이에 자고 있던 녀석들을 5대씩 때리는 것이었다...
이유는 어떻게 냄새가 나는데 잘 수 있냐는 그럴듯한 것이었다...
이런 식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맞을 때마다 달력에 正자를 그려갔고 퇴소할 때 즈음엔
적게는 200대에서 많게는 달력의 공간이 모자르게된 아이까지 나타났다..
2주가량이 지나자 여러부류의 아이들이 생겨났는데... 탈출을 꿈꾸는 아이와 야한소설을 써서 돌려보는 아이들까지 매우 다양했다..
야한 소설을 써서 서로 교환해보는 것은 굉장한 인기를 구가 했는데
자신이 쓴 소설은 흥분이 안된다는 서로간의 이해관계에서 발생했다...
그곳을 정상적으로 퇴소하고 싶으면 부모님의 동의를 구해야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외부로의 어떤 연락로도 차단되어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집에 연락을 취하기 위해 자기집 전화번호와 자신의 탈출
소망을 담은 글을 깡통같은데 넣어서 길가는 사람에게 던지는 방법을 시도했다.
하지만 곧 모두들 낙담했는데 우리가 밤을 새가며 쓴 그 편지를 길가는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방학때마다 이미 그꼴을 지겹도록 관찰해 왔던 것이다
관심을 갖는 사람은 그깡통을 머리에 맞은 사람 뿐 이었고
맞은 사람의 항의때문에 달력에 바를 정자만 늘어갔다.
우리는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정면돌파라고 생각했고
수위를 뚫고 무작정 달려가면 우리의 체력과 스피드로
수위를 따돌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그곳 수위들은 모두 육상선수 출신이었고
엄청난 속도로 슬픈 빠삐용을 수거해 왔다
그런 시행착오가 계속 되고 있을 무렵
모두의 시선을 주목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은 명찰을 달고 있었다..
알파벳하나와 숫자가 결합되어있는 명찰이었는데
알파벳은 반을 숫자는 번호를 표시한 것이고 알파벳은 A~J까지 숫자는 1~50까지 였다
재미있는건 그 알파벳과 번호가 등수를 의미했는데
A반 1번이 전교일등이고 J반 50번이 꼴등인 것이다...
곤두박질친 성적의 소유자인 내가
A반 8번인것으로 학원의 수준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날 밥먹으러가던 중에
J13과 J48의 싸움을 목격했는데
뜯어말린 간수들에게 팔을 붙잡힌 J48은 억울하게 울면서 외쳤다
"저 새끼가 공부 못한다고 무시했어 X발"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그들은 싸웠고 그 조치는 놀랍게도 퇴소였다..
다들 이상한 기대감에 들떴다..
저런 식으로 집에 가는 구나 ....
그리고 서둘러 짝을 찾기 시작했다...
서로 액션을 짜고 대사를 맞추고 ...
굉장한 활력이 학원내에 자라났다...
하지만 그날밤 J13과 J48의 부모님의 얼굴을 보고...
또한 죄인처럼 나가는 그들을 보고 우린 모든 계획을 취소시켰다...
우리는 남은 시간을 탈출계획없이 보내기로 했다...
다들 말하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을 실감하며...
그러기 위해서 새로운 취미를 필요로 했는데 이제 남이쓴 에로 소설도
노트한 권을 소비해버린 야구게임도 흥미를 잃어갔다...
그런 우리에게 대체재는 담배였다...
피우기가 힘들었지 구하기는 쉬운 것이었다...
재수생 형들은 많은 양을 비축하고 있었고 우리의 매점 쿠폰과
잘 바꿔주었다...
하지만 귀신 같은 간수들은 놀라운 판단력으로 흡연자와 비흡연자를
구분해냈고 흡연자들은 금연의 방이라는 팻말이 붙은 곳으로 끌려갔다..
그안에 감금된 이들은 점심식사 때만 볼 수 있었는데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르고 그좁은 복도를 구보로 이동해 다녔다..
5일후에 그들이 돌아 왔는데 단지 5일만에 그들은 근육질의 몸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 5일에 대해 이야기 하는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싫어했기 때문에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다만 상상할 뿐이다...
나는 생각보다 그곳의 생활을 잘해나갔다...
긴시간 주체할 수 없는 그 긴시간을 요령있게 세분화 시켜 주체할 수 있는 시간으로 바꾼후 견뎌내는 방법을 터득해낸 것이다...
A7이 가지고 있는 불교 경전을 수시로 빌려 읽었고
한국지리나 역사같은 분야에 대해 꽤나 깊은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한 연유로 나는 역사와 지리에 밝은 불교 신자가 되어있었다.
사람 인생의 패턴이라는것은 대충 그런식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A7이 독실한 크리스챤이었으면
지금쯤 목사님이 되어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지금 스님은 아니지만...
그러는 사이 내 열 네살의 여름은 끝나가고 있었다....
그곳에서의 한달 반은 내 몸 구석구석의 습관이며 기억 같은 것들을
새로 덧칠해 놓았다...
말수가 많이 줄었고 혼자있는 시간을 즐겼으며 역사와 지리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공동체 생활에 대한 거부감은 학교로 이어졌다.
교실의 줄맞춰진 걸상을 보기가 싫어서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엔 옥상에서 시간을 보냈고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과 다른 목적으로 자주 마주쳤다.
교실뒤에서 매일 벌어지는 레슬링에도 참가하지 않고
그들의 유머에 반응을 하지 않자 모두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차분한 중학생이 되어버렸다...
사춘기가 빨랐는지 기숙학원에 들어간 것이 빨랐는지는 중요하지도 않고
정확히 기억해 낼 수도 없지만...
난 그해여름 사춘기와 기숙학원을 계기로 차분하고 역사를 잘아는 소년이 되었다...
변한건 생활습관만이 아니었다...
방학동안 훌쩍 커버린 내 키는 더이상 수연이와 짝을 할 수 없게 되었고
한동안 수연이 뒤통수를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차분해진 청소년은 형광양말소녀에게 다가가지 못했고
기숙학원에 들어갔다 온 걸 몰랐던 수연이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들때문에 날 멀리했다...
그녀의 주변에 다시 날파리들이 상주했으며
그녀의 새로운짝은 쉬는 시간이면 자리를 비켜주고
점심시간이 끝난뒤 반찬 치우는 일을 요령있게 잘 해내고 있었다...
난 새롭고도 주체할수 없이 많아진 내 삶의 여유시간을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데 과감히 투자했다...
나의 그런 변화를 반긴 사람은 단 한명
우리 어머니였다..
특별히 공부를 열심히 한다거나 수업을 열심히 들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조금 차분해지고 맞으면서 배운것은 잘 잊지 않는다는 이유때문에
내 성적은 내가 봐도 놀랄 정도로 올라갔다...
성적과 동반 상승한 내용돈은 나에게 여러가지 팝스타들을 선물했고...
듀란듀란이나 마이클잭슨의 앨범을 사모으는데 전력을 다했다...
그렇다고 만화책을 안읽은 것은 아니었다...
취미란 것은 대체로 늘어가는 것이지 잘 줄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만 레슬링을 즐기던 시간에 책과 음악이 자리잡았을 뿐이다...
그당시 나는 많은 책을 읽었는데
주로 공상과학소설이었다...
그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는데...
쌍둥이에 관한 책이었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빛보다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우주선이 개발되었다...
빛보다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우주선이 개발되었지만
빛보다 빠른 속도의 통신 장비는 개발이 되지 않아서
그 우주선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 통신을 해결하기 위해
나사에서 쌍둥이의 텔레파시를 이용하기로하고
전세계쌍둥이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쌍둥이들의 텔레파시는 속도가 없고
동시에 생각한다는 발상이었다...
좀 어처구니 없는 설정이었지만 그당시에는 굉장히 재미있었고...
그 설정으로 인해 벌어지는 헤프닝들은 굉장히 리얼했다..
한명은 지구에 남고 한명은 우주를 여행을 하면서 서로 텔레파시를 주고 받아야 하는데
쌍둥이들은 서로 우주선에 타기를 갈망했다...
이유는 지구에 남아있는 쌍둥이가 늙을 동안
빛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우주선의 쌍둥이는 늙지 않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드라마틱한 소재인가...
지구에 남은 쌍둥이가 늙어죽을 때 새파랗게 젊은 쌍둥이가
우주선에서 내린뒤 "잘가게 동생"....
난 한동안 이 소설에 흠뻑 빠져있었다...
여섯번짼가 일곱번째읽을 때쯤에는
나에게도 우주를 떠도는 쌍둥이가 있을 것만 같았다...
불행하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시절 나만 지구에 남겨진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내가 죽을 때 대여섯살 짜리 꼬마가 잘가게 동생을 외치며
우주선에서 내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도 우주에서 연락은 오지 않았다
물론 우리가 교신이 고장난 엉터리 쌍둥이일 가능성은 아직까지도 존재한다...
내가 그런 공상에 빠져 시간을 보내는 사이
가을이 다가왔다...
수연이는 멋진 나이키운동화를 신고 다닌는 선배와 사귀고 있었다...
나에겐 수연이도 나이키운동화도 없었지만 김현식과 타이거 운동화로
만족하는 날들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쉰목소리 가수의 노래를 좋아하는걸 이해하지 못했지만
내가 내미는 성적표는 굉장히 잘 이해하셨고
더불어 김현식과 내방에서 발견된 성인잡지 같은 것들을 못본체 하셨다...
누가 뭐래도 내 성적은 치솟았고 난 사춘기의 정점에 서있었으므로...
(cafe.daum.net/giseo)
새로운 취미가 된 독서는 나를 아이들과 더 멀어지게 했다..
돈을 받으면 음반을 사는데 소진했던 터라
책은 별로 사보질 못했다
그런이유로 대학생이었던 누나가 대학생다운 면모를 풍기며
단지 들고 다니기 위해 산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분명히 내 사고 수준을 훨씬 넘어선
책이었지만 굉장히 열심히 읽었다...
하지만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듯
난 그저 읽는 다는 것을 좋아했을 뿐이었다
증거로 지금 기억에 남는 책이 한권도 없다...
아무튼 난 '비명을 찾아서'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같은 책을
아니 그런 제목으로 쓰인 책에 있는 '한글'을 잘 읽어냈다...
나는 그 책들을 우리 누나와 같은 목적으로 읽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도 내가 그런 책을 읽는 지 알지 못했다..
허나 어느날 우리 어머니가
내가 그 책을 읽는걸 보시고는
다음날 허풍선이백작을 사다 주셨다....
책을 많이 읽는 다고 해서 만화책을 소홀이 하지 않았다
만화책이야 말로 나에게 많은것을 가르쳐주는 존재였으니까
고개너머 시장 골목에 엄지만화라는 곳에서 (그당시 대부분 만화가게는 엄지 아니면 까치였다)
하루종일에 천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매니아들을 끌어들였고
난 도시락을 싸가는 성의를 보이며 하루종일 그 현란한 사상들을 익혔다..
그런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난 혼자 생각하는 것을 즐겼고
망상속에 살았다....
우리나라에 뜨지 않는 태양빛을 꿈꾸고
넓은 들판과 우리나라에서 자라지 않는 잔디를 생각했다...
만화책과 소설이 내게 준것
그리고 그것들로부터 나란놈이 받을 수 있는것은 고작 그런 것이었다...
노르웨이가 어디있는지도 모르면서
그 숲에 가고 싶어하는 그런 꿈들....
그런 망상에 젖은 소년의 가방에는
드래곤볼과 장미의 이름
중1역사와 비틀즈가
아무렇게나 자리잡고 있었다...
수연이와 나는 점점 멀어져갔다
키가 그랬고 성적이 그랬고 취미가 그랬다...
난 그저 평범하고 조금 침착한 사춘기 소년이었다...
600명이 다니는 학교에서 한두명정도 좋아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객관성이 결여된 평가일지도 모른다..한두명을 확인하지 못했으므로)
하지만 수연이는 달랐다
그녀의 외모와 형광양말 덕에
그 동네 중학생이면 누구나 알고 있었고
나이키운동화 역시 너무나 유명했기 때문에
그둘이 다니면서
옆동네 중학생까지 알 수 있을 정도 였다...
그런 그들의 존재감은 날 더 소외시켰고...
수연이랑 친했던 과거에 대한 나의 발언은
지나가다 연예인 봤다고 호들갑떠는 정도...
그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채로 지나갔다면
내 기억은 이미 그 아이와
한문선생님과 나이키를 잊었을 것이다...
아직 잊지 못하는 건
방학을 앞둔 어느날 봤던 그아이의 표정 때문이다....
그날도 그 상관성 없는 주제의 가방을 메고
엄지 만화로 향하는 길이었다...
귀에서는 김현식의 겨울바다가 흐르고
어제 보다 만 만화책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해서
내발걸음은 무척 빨라지고 있었다.
그순간
겨울바다의 간주가 흐를 때
그들을 마주쳤다...
내 동공에 수연이와 나이키가 꽉찼을때
놀랍게도...
아니 우습게도
내 다리는 정지했다...
굉장히 급정거임에도 불구하고 다행이 끼익 하는 소리는 안났다...
나이키도 아니 타이거 운동화에 이런 기능이
숨겨져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늘 슬픈표정 짓지말라던 신해철은 알고 있었을까?
아무튼 놀라운 기능으로
내 타이거운동화는 보도불럭에 접착되었고
자기들도 그런 기능이 있다는 걸 알리려 함인지
수연이의 구두가 멈추고
나이키가 폼나게 따라 섰다....
귀에는 겨울바다 2절이 흐르고
나이키는 나와 수연이 얼굴을 번갈아 보고 있었고
수연이는
MS워드 글자크기10에 A4다섯장 으로 설명해도
다 담기지 않을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표정이
이해하지 못한채 머리에 기억되었다...
평소에 잘 못하는 것이지만
이번엔 그게 빨랐다
그표정은 이해하기보다는 기억하는 것이 뭐랄까?.....음....용이했다...
겨울바다가 끝나고 이별의 정거장이 나오면서
역시 제일 싼티를 내며 타이거가 바닥에서 떨어졌다...
구두가 출발하고 나이키가 뒤따랐다...
나이키는 지나친 후에도 계속 내쪽을 돌아보며
수연이에게 무엇인가를 알아내려 애썼지만
수연이는 대답하지도 뒤돌아보지도 않으채
멀어져갔다...
어설픈 인사라도 할껄 그랬나 하는 생각과
왜 내가 아무말도 못하고 멈추었나하는 생각
타이거의 비밀스러운 기능에 대한 생각...
그날 난
1000을 내고 단 두권도 읽지 못했다...
그날의 만화책은 내게 좁은문이나 데미안보다 훨씬 더
어렵게 느껴졌다...
그리곤 며칠동안을 그 생각으로 보냈다...
멈춰버린 운동화와
수연이의 눈빛과
하지못한 어색한 인사를
순차적으로
떠올리면서...
풀리지 않는 방정식과도 같았다...
미지수가 세개인 건 아직 배우지도 않았을 때니까...
그렇게 마지막 시험이 끝나고
2학기가 끝나고
중학교 1학년이 끝났다...
그때까지 레슬링에 이어진 질긴끈을 놓지 못하던
나의 매니아 친구들은 워리어가 죽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한동안 비탄에 빠져있다가 더 이상 레슬링을 보지 않겠다는
단호하고도 파격적인 결심을 내게 담담하게 털어놨다...
소녀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출현에 열광하면서
점점 뉴키즈 온더 블럭을 잊어갔고
드래곤볼보다 슬램덩크에 흥미를 느낀 소년들은
아이큐점프대신 소년 챔프를 사보기 시작했다...
그런식으로 열네살에 내게 가장 소중했던 조각들이.. 또 기억들이
나와 내 친구들의 머리속에서 빠르게 지워져 갔다...
하지만 그 표정만큼은
지우질 못했다...
아직도 서랍구석에
레슬링 스타와 드래곤볼이 붙은 하드보드지 필통을 간직하는 나는
열네살로 빨려들어가는 그 키워드...
그표정을 자주 꺼내어본다
그리곤 그해 내 삶에 변화에 대해 생각해 본다
몇번이고 다시 그 기억을 끄집어 내어 재조합하고
다른 가능성에 대한 타진과 더불어
그당시 내 행동의 메카니즘에 대해서 해석해본다
수십번이고 다시 검토해 보았지만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
내 열네살은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은 채로 그저 기억되는 것이다...
그렇게... 그렇게...
사춘기의 혼돈과 같이
한가방속에
드래곤볼의 손오공과 데미안이 공존하는
또한 레스링스타와 팝스타가 마주보는....
그리고 그 가운데에
수연이가 존재하는
그런 식의 조합일 뿐이다...
카페 게시글
단ㆍ결ㆍ연ㆍ영!!
지금 난 열 네살 짧고도 긴 기억 속에 있는것만 같아.. 이 혼돈...
B.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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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7.16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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