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기 장로는 남양주시 조안면 봉안마을에서 1909년 농사꾼 김춘교의 아들로 태어났다. 봉안마을은 양수리 다산 정약용 생가에서 가깝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항일운동을 하다가 양주경찰서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물 먹이기, 공중 매달기, 손톱 밑 찌르기, 손가락에 막대를 끼워 비틀기 등을 당했다. 이후 그의 애국(愛國) 운동은 극일(克日)하면서 가난을 벗어나고 희망 잃은 민족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주기 위해 1954년 봉안마을에 3000평의 토지를 매입하고 개간하며 ‘이상촌’을 시작했다. 이상촌에선 산양 키우기, 비료와 연료 개선, 고수익 과실 농사, 고구마 재배, 양봉 등을 통해 고수익을 꾀했고 혼식장려, 의생활 개선, 금주 금연운동, 건전오락 보급, 야학운영 등 생활 전반에 개혁을 꾀했다. 이후 ‘가나안농군학교’를 세우고 무려 60여만 명의 사람을 훈련 시켰으며, 또한 죽는 날까지 구국기도(救國祈禱)를 한 선각자로 민족혼을 깨운 진정한 애국자이다.
필자가 1973년 딸기 철에 CCC형제들과 소설가 임옥인 권사님과 김용기 장로님을 찾아뵌 적이 있다. 그때 장로님은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청년들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다. 농군학교 정체성(正體性)은 박정희 정부의 ‘새마을운동’과 함께 ‘조국 근대화’에 기초석이 되었다. 유명한 일화는 5.16 직후 박정희 대통령이 농군학교를 찾아와 자문을 요청했다. 점심 식사시간에 김 장로는 고구마와 감자, 호박잼을 바른 식빵을 내놓았다. 대통령은 별생각 없이 빵 조각을 입에 댈 때 김 장로는 정중하게 요청했다. “각하는 3천만 백성의 어버이시지만, 이곳에서는 제가 어버이입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식사 전에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기도부터 드려야 합니다.” 이에 대통령은 즉시 빵 조각을 내려놓고 김 장로의 기도를 받은 후 식사를 하였다.
박 대통령은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라는 말에 김 장로는 “안 도와주는 것이 돕는 것”이라 답했다고 아들 김평일 장로는 말했다.
가나안 농군학교의 기초가 된 남양주 봉안교회
김용기 장로는 생활헌장을 만들었다. ①음식 한 끼에 반드시 4시간씩 일하고 먹자 ②버는 재주 없거든 쓰는 재주도 없도록 하자 ③물질과 권력과 지식과 기술을 바로 쓸 줄 아는 국민이 되자 ④우리 국민의 뛰어남을 말과 일과 행동으로 드러내자 ⑤외모만을 아름답게 단장하지 말고 마음을 더 단장하자 ⑥국토 통일보다 먼저 가정과 단체 통일을 먼저 하자 ⑦반공의 길보다 빈궁을 먼저 막아야 한다 ⑧민족사상의 잠이 들면 영토와 주권을 도적맞게 되고 심령의 잠이 깊이 들면 영혼이 멸망케 된다 ⑨창조주 하나님을 우리 국민의 아버지로 삼자. 등이 있다.
1966년 막사이사이상 수상식에서 김용기 장로
김용기 장로는 민족을 괴롭힌 일본이나 북한을 탓하거나 욕하지 않고 국가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주장하시는 하나님께 평생 기도했다. 1975년부터 매일 새벽 4시부터 6시까지,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하루 두 번씩 민족과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했다. 기도실 좌우 기둥에는 “조국이여 안심하라, 온 겨레여 안심하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그는 말로만 애국하지 않고 땀 흘려 행동하고 눈물로 중보기도 하는 이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애국자였다.
가나안농군학교는 현재 강원도 원주와 경기도 양평에서 이어지고 있고, 세계 여러 국가의 인재들이 와서 영.혼.육(靈魂肉)을 훈련받는 세계사에 자랑스러운 기관이 되었다.
#풀가스펠뉴스 #김용기장로 #가나안농군학교 #김헌곤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