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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현대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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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 토 론 방 자료 업보와 윤회와 관련된 글 중에서
파초 추천 0 조회 331 12.01.03 02:58 댓글 4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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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1.03 07:35

    첫댓글 좋은 글이네요.
    1.먼저 자아에 대한 개념정의가 필요하게 보입니다.
    어떤분들은 자아를 몸둥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이글속에서 자아란
    [삶을 통해 형성된 여러 가지 체험의 내용을 자아]
    [자아란 아뢰야식]라는 걸보면

    '자아' 란 나가 있다고 여겨지는 '생각'
    을 가르키는군요.

    2. 불교에서 말하는 업보란 통상 도둑질을 하면 도둑놈이 되는 존재를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도둑놈의 마음세계가 펼쳐지는것이 도둑질을 하여 받는 업보네요.
    별거 아닌것 같아도 아주 귀중한 말이군요.

  • 12.01.03 09:13

    유식학에서는 이 아뢰야식에 모든 기억이 저장되어 있다 보는건가요. 휘발성인지 비휘발성 메모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보기엔 비휘발성 메모리인가 봅니다 ^^
    그리고 한가지 질문이 있는데 이 아뢰야식이 부처님이 식이 윤회한다 한 어느 제자의 견해를 듣고 바른 견해가 아니다
    나무랐는데 이 식은 그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이식도 불변인 것은 아닐것 같습니다. 컴퓨터로 말하면 읽고 쓰기가 가능한 식일듯 한데요.

  • 작성자 12.01.03 12:48

    아뢰야식을 실체로 이해하면서 유식학을 실체론적 사고라 비판하는 경우가 있는 것을 많이 봅니다만,
    아뢰야식은 여기서처럼 업보로서의 식, 종자 내지는 자아를 말하는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할 것 같아요.
    부처님이 식이 윤회한다는 제자의 견해에 대해 바른 견해가 아니라고 나무란 것은
    그 식이 자아로서 실체가 있는 식으로 세세생생 윤회의 주체가 되는 것을 나무란 것이라 여겨집니다.

  • 작성자 12.01.03 12:46

    식 윤회의 본래의 의미는
    식이 사라지지 않고 사식에 머물면서 커가면서 '나'라는 존재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윤회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겠구요.
    식 윤회라 하더라도 의미가 좀 다르지 않습니까?

  • 12.01.03 13:00

    유식학자들도 아뢰야식을 실체로 알고 말한것은 아니라 봅니다. 실체가 아닌 연기된 식이겠지요.
    그런데 식 윤회라 표현하면 이 표현은 이미 식의 윤회로 인식되기에 식이 윤회의 주체가 되는 결론을 피 할수 없는 표현이요 개념이라 봅니다. 유식학에 식의 윤회라는 표현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표현은 다른 사람에게 식이 실체가 아니냐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봅니다.

  • 작성자 12.01.03 13:11

    유식학자들은 아뢰야식을 실체로 알고 말한 것이 물론 아니지요.
    유식학자가 아닌 분들이 그렇게 알고 있는 것이고요.

    식윤회의 본래의 의미에 대해서도 바로 아래에서 말씀을 드렸지요.

    식이 실체가 아니냐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 작성자 12.01.03 15:05

    한 가지 덧붙히자면
    식이 윤회의 주체라 하는 것을 나무라는 경에서의 식은 말하는자, 느끼는 자이고 업을 짓는 자이고 받는 자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유식학에서 말하는 심의식 중에서 식(6식)을 말하는 것이며,
    그 6식을 자아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아뢰야식은 8식으로 알고 있는 것으로 6식보다는 더 심층의식에 해당되는 것으로
    제 개인적으로는 육입을 포함한 가장 포괄적인 의미의 마음이 아닌가 합니다.

    윗글은 업보로서의 아뢰야식이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아서 퍼온 글이기도 합니다.

  • 12.01.03 15:51

    우리에게 존재현실로 들어나는 모든 것은 '업보로서의 마음' 즉 아뢰야식이 전변한것이다 는 표현이 전 거시기 합니다. 브라흐만의 전변이라는 사상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아뢰야식을 브라흐만으로 바꾸면 전변설과 다를게 없어집니다.--; 모든 존재 현상은 업이 근본이 되고 에서도 역시 브라흐만 대신 업으로 바뀌었을뿐 차이가 무엇인가 묻는다면 업이란 실체는 아니다고 답하겠지만 어쩐지 궁색해 보입니다. 브라흐만 처럼 그것이 실체다 해도 아뢰야식 처럼 그것은 실체가 아니다 해도 뭔지 찜찜함이 남습니다. 전 그 원인이 실체라는 개념에 있다 봅니다.

  • 12.01.03 15:57

    이미 실체란 개념이 나오면 그것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사유로 증장 할 것이고 결국 어느것을 선택해도 바른 답이 될수 없다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존재에 대한 개념은 세우면 세울수록 더 많은 다른 개념을 세워야 하고 그래서 복잡해지기만 하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초기 불교시대는 부처님도 복잡하지 않게 설하고 이해했고 받아들였는데 지금은 너무나 많은 논리가 오히려 바른 앎을 방해하는것 같습니다. 오온을 설하니
    오온과 오취온을 나누고 식을 여러식으로 나누고....

  • 12.01.04 07:43

    ['업보로서의 마음' 즉 아뢰야식이 전변한것이다 ]에서 '전변' 이란 말을 사용하여 오해를 줄수 있는데
    마음의 근원은 아뢰야식이다를 '전변' 이란 말로 편히 사용한 것 같아 보입니다.
    전변이란 단어 때문에 브라만사상이 생각나 아뢰야식을 브라만으로 바꾸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왜냐면 무실체론이 실체론으로 바뀌는 것은 그 자체가 불가능한 이야기 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장은 이러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 12.01.04 06:06

    아뢰야식은 심층의식인 12처이고, 업보로써 마음은 이미 나타난 6식이므로
    ['업보로서의 마음' 즉 아뢰야식이 전변한것이다 ]란
    아뢰야식(12처)이 마음(6식,오온)으로 증장했단 말이고 바뀌말하면
    '마음(6식,오온)'의 근원은 아뢰야식(12처)이란 뜻이지요.

  • 작성자 12.01.04 15:01

    업으로서의 아뢰야식은 그것이 아뢰야식이 아니라 그 이름이 아뢰야식이며
    업으로서의 마음을 심의식 셋으로 세분화하고 교리화하기 위해 이름 붙혀진 것일 뿐이지요.
    브라만과 아트만은 영혼 개념이 아닙니까?
    아뢰야식이 근본이 되어 모든 세간이 펼쳐진다는 것은
    십이연기 유전문을 다르게 표현한 것일텐데 그것이 브라만과 아트만의 관계와 혼동이 될 수는 없겠죠.

  • 12.01.03 10:01

    [이 업을 짓는 자와 그 업의 과보를 받는 자가 서로 다른 존재라고 한다면 단견이다. ]
    정글은 이 견해에 대해 다른 의견입니다...^^...
    이건 단견이 아니라 무아견이요, 무아 윤회를 드러내는 말이 아닌가요?
    생각해보면 당연한 듯 한데요. 업이야 A가 지어도 다음생에 과보는 B가 받게 되는 것이니까 당연히 무아 윤회를
    나타내는 말이지요. 아닌가요^^?

  • 12.01.03 11:19

    밀린다왕문경에 잘 비유되는 등불비유에서 전 등불에서 불을 붙여 다른등불로 옮겼다 했을때 다른 등불의 불은 전 등불의 불인가 아니면 다른가 하는 예는 '비유이비무(있는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표현으로 무아윤회에 곧잘 비유합니다.
    그런데 위 이야긴 자타작중도설에서 무아견이 아닌 막칼리고살라 견해라고 설명하는군요.
    그 부분을 발체해드립니다.

  • 12.01.03 11:21

    <잡아함 자타작중도>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했다.
    "만약에 괴로움을 받을 때 자신이 받는다면 나는 '괴로움은 자신이 지은 것이다' 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만약 괴로움을 받는 자가 지은 사람과 다른 사람이라면 이것은 남이 지은 것이고, 괴로움을 지은 사람 자신도 느끼고 남도 느낀다면 이것은 자신과 남이 지은 것이지만 나는 또한 그렇게 주장하지도 않는다. 나는 자기와 남으로 인지 않고 원인이 없이 괴로움이 생긴다고도 주장하지 않는다. 나는 모든 모순대립(邊)을 떠나 중도中道를 이야기한다.

  • 12.01.03 11:18

    ->< 해석>정통 바라문교에 의하면 자기동일성을 가지고 있는 상주불멸하는 자아인 '아트만'은 행위의 주체임과 동시에 신의 행위에 대한 과보를 받는 존재이다. 따라서 괴로움은 스스로 지어서 스스로 받는다는 주장은 업보에 대한바라문교의 견해라고 할 수 있다. 막칼리 고살라의 결정론적 숙명론에 의하여 괴로움은 요소의 하나로서 그것과 결합해 있으면 자신의 행위에 관이 없이 괴로움을 받게 된다. 따라서 남이 짓고 자기가 받는다는 주장은 막칼리 고살라의 견해라고 할 수 있다.

  • 12.01.03 11:34

    오해가 있을 수 있겠네요. 여기서 말씀하는 A나 B는 모두 자기나 자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아요.^^.

  • 12.01.04 02:58

    글쓴이는 존재자가 설정되어 만들어진 문장이므로
    인용하시면 오해를 줄수 있겠네요.

  • 12.01.03 11:48

    업을 짓는자와 받는자로 구분한 순간 상견 아니면 단견입니다.
    업을 짓는자와 받는자로 구분한 연기가 발생하면 다음은 상견이나 단견으로 나올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 길은 없어요 ^^
    그럼 문제는 무얼까요. 업을 짓는자와 받는자로 공간적 시간적 분별로나누어 보고 있는 의식입니다. 이렇게 나누어 놓고 그담에 같은가 다른가를 묻는데 상견아니면 단견말고 또다른 결론이 있을까요?
    이렇게 질문할 경우 부처님 답은 침묵 뿐이 더 있겠습니까 ^^ 의식에 속지 마세요.

  • 12.01.03 11:52

    단멸론을 가진 뗏목님 처럼 몸+정신이 상호 의존이고 하나가 무너지면 다른 하나도 무너진다 이것이 연기다 라고 이해 한다면 100% 사후 단멸론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식상태에서 상견이나 중도는 이해 될수 없습니다.

  • 작성자 12.01.03 13:02

    업을 짓는 작자를 상정하면 짓는자와 받는자로 구분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네요.
    작자도 받는 자도 모두 자타구분없는 일심이라 여기면 단지 연기만 보이지 않을까요?
    단지 연기만 있을 뿐이지요.

  • 12.01.03 13:04

    네 업을 짓는 작자가 곧 유아 아니겠습니까 ^^ 작자라는 개념이 잘못되었고 거기에 짖는자 받는자는 없는 토끼뿔이지요. 그런데 자타구분없는 일심이라 한다면 이것도 다른 개념이 나올수 있다 봅니다. 내맘이 아플때 파초님 마음이 저처럼 아프진 않을테니까요 ^^ 그래서 불일불이라 한것 아닐까요.

  • 12.01.03 11:58

    무아라고 아무것도 어떤 자도 없는 것이라 보면 안된다고 봅니다. 기존의 입장과 좀 달라졌나요^^?
    그러면 오늘 저녁을 맛있게 먹은 그 자는 유령이란 말입니까? 인정할 것은 인정할려구요.
    불법을 너무 추상화로 보면 그 그림을 감상하기가 너무 어려워지지 않을까요^^?
    짓는 자는 짓고 받는 자는 받고 심플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걔들은 무아라고 봐야지요. 계속 정체가 바뀌니까요.

  • 12.01.03 12:08

    ^^ 무아를 내가 없다라고 이해하면 내가 있다라고 이해한것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을듯 합니다.
    핵심을 잘 보신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 연기를 본다면 유아다 무아다 둘다 버려야 한다고 봅니다.
    유아는 틀리고 무아가 옳다는 것은 유아를 주장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개념이지만 연기를 본다면
    이제 무아도 버려야 한다 봅니다. 거기에 무아윤회를 언급하는것은 두말할것도 없다 봅니다.

  • 12.01.03 12:08

    투덜님은 글에 센스가 있어요. 공감합니다..^^..

  • 12.01.03 13:36

    왜 '작자'를 문제 삼는걸까요?
    작자란 <실체화된 생각>이 만들어낸'물건' 입니다.
    아프다,슬프다,따갑다 등의 생각은 곧 나란 작자 존재를 만들어 내지요.
    이런 생각없이 '나' 란 만들어지지 않지요.

    중도설에서 작자를 문제삼는것은
    밥이 맛나다란 생각으로 '나'란 작자를 형성하기에
    작자를 문제 삼는 것이지
    밥을 맛나게 먹는 사람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지요.

    즉 작자문제는
    먹고 자는 유정물 문제가 아니라
    <생각> 문제가 투여된 명제이지요.

  • 12.01.03 22:04

    제가 작자에 대한 기존 입장과 좀 다른 견해를 갖게 되었답니다. 유업보 무작자 할적에 그냥 작자가 없다고 해버리면
    말씀마따나 유정물, 사람 자체도 없는 것처럼 말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으니 이런 점을 주의해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유정물의 생각을 통해 나라는 관념이 형성되지요. 노랑님 말씀처럼 무작자는 [나라는 생각은 망념]이라고 간결하게
    정의 내리는 것이 좋을거 같다는 생각입니다.

  • 12.01.04 07:45

    [그러면 오늘 저녁을 맛있게 먹은 그 자는 유령이란 말입니까?]
    이 말씀을 보면 작자가 무아든 아니든 작자를 사람으로 생각하셨는데
    제가 말한 작자란 사람이 아니라 <실체시된 나라는 생각(자아)>를 가르키지요.
    좀 더 덧붙여 보았습니다.

  • 12.01.04 02:20

    투덜이77 : 그런데 자타구분없는 일심이라 한다면 이것도 다른 개념이 나올수 있다 봅니다. 내맘이 아플때 파초님 마음이 저처럼 아프진 않을테니까요 ^^ 그래서 불일불이라 한것 아닐까요.

    -> 내 맘이 아플 때 파초님 맘이 안 아프다고 아는 것은 투덜이님의 마음.. 투덜이님의 의식이 그렇게 아는 겁니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마음은 3사화합 이전의 마음이 아닌.. 의식화 된 5취온의 마음으로 5취온(=개인)의 인식이라는 거지요.

    개인의 인식이 공유되는 것은 비슷한 경험을 기억하고 있을 때입니다. 참으로 인식이 공유되려면..
    개인이라는 의식의 벽이 동시에 무너져야 되겠지요. 또는 저 심층 의식으로 가서 그곳에서 만나거나..

  • 12.01.04 02:31

    투덜이 님의 의식이란.. 투덜이님의 경험과 사유가 기억된 것으로 투덜이님만의 것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의식이 어떤 상황을 연해 생기는 감정은.. 내맘이 아플때 처럼.. 옆에서 공유하기 힘들겠지요.

    가깝게 느끼는 친구란 비슷한 경험을 기억하고 있어..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비슷한 반응을, 느낌을 갖게 되는 이들이라 봅니다.

    여기서는 글만 보고 있지만.. 그것만 보면서도 친근하게 또는 멀다는 느낌을 금방 일으키지 않습니까?..^^
    물론 착각도 하지만..ㅎㅎㅎ..

  • 12.01.04 11:21

    ^^ 같은 조건이면 같은 결과가 나온다 보아야겠지요. 즉 초심님과 저는 같은 조건으로 연기된 상태가 아니기에
    초심님이 행복함을 느낄때 저는 느낄수 없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누구도 부정못하는 내용 입니다.
    파초님이 작자도 받는자도 자타 구분없는 일심으로 표현한 부분은 이해합니다. 전 그걸 작자와 받는자를 시간을 두고 구분하여 사고하고 식을 증장하면 하나의 결론이 아니라 두개의 논리가 또 나옴을 설명하고자 한것입니다. 자타구분말고 하나로 여겨야 한다는 견해가 생각나 노파심에서 그만.. ^^

  • 12.01.04 20:10

    같은 줄 알면 다르고.. 다른 줄 알면 같고.. 이렇게 알아 가다보면.. 길벗(도반)이 되는 게 아닐까요?..^^

  • 작성자 12.01.05 14:24

    자타일심은 본래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고
    그것, 즉 어떤 감정 상태를 우리 사이에서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중생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요?
    제가 성불했다면 타심통으로 투덜이님의 마음을 읽고 같이 아파했을 것입니다. ㅎㅎㅎ

    그래서, 중생으로서는 작자와 받는 자가 구분될 수 밖에 없는 안목이고 따라서
    상견, 단견의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 것이라는 것에 동의하는 내용으로 덧붙혔던 것이니
    오해마시기 바래요.

  • 12.01.04 20:18

    정글 : 생각해보면 당연한 듯 한데요. 업이야 A가 지어도 다음생에 과보는 B가 받게 되는 것이니까 당연히 무아 윤회를
    나타내는 말이지요. 아닌가요^^?

    -> A가 짓고 B가 받는다면 그것은 무아가 아닌 단멸입니다.

    업이 있으면 업보가 나타납니다.
    이때 업을 짓는 자나 업보를 받는 자가 없다고 하는 게 무아지요.

    그런데 중생은 업을 지으면 A가 지었다 하고 그 업보를 A가 받는 것으로 압니다.
    왜냐면 지금 현실에서 그렇게 인과법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기에.

    부처님이 나오기 전까지 문제는 업과 업보 사이에 죽음이 놓여 있으면 그 업보는 누가 받는 것인가?.. 하는 거였습니다.

  • 12.01.04 22:36

    A와 B는 불상 부단의 관계라고 보기 때문에 단멸은 아니라고 봅니다..^^..

  • 12.01.04 20:26

    왜냐면 그들은 업보가 있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이 업을 짓는 주체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구요..^^

    그에 대해 우파니샤드에서는 아트만이 있어 그것이 업을 짓고 업보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단멸견에서는 오직 한 생만 주체가 있고 더 이상 없다고 한 것이구요. 곧 A, B.. 라는 다르게 보이는 주체를 보고 있는 거지요.

    그런데 무아란.. 무아이기에 A, B, C,.... 무엇이든 주체(주인)가 될 수 있다는 게 아닙니다.
    A, B, C,.... 라는 것(주체)은 [중생 식]이 만든 관념일 뿐이라는 거지요.

  • 12.01.04 22:32

    전 쬐끔 다르게 봅니다..^^..
    만약 A B C D 모두 관념일 뿐이라면 궂이 윤회를 거론할 필요 자체가 있을까요?
    그렇다고 A B등이 확고히 있다고 보는 것도 옳지 못하다고 봅니다. 무상하게 변역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하여 확고히 있음도 아니고 아예 없음도 아닌 무상하게 변역하는 것이라 봅니다.

  • 12.01.05 00:18

    01. A, B, C,....] 가 관념이라는 것은.. [A, B, C,.... 라 이름한 것]이 관념이라는 것이지..
    [A, B, C,.... 로 보여지는 것(=물자체)]이 관념이란 게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B가 자기의 전생은 A라고 한다면 B는 전생이 A였음을 증명해 보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A의 전생은 틀림없이 B였다고 할 수 밖에 없는 케이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은 업이 있으면 업보가 나타나는 데 업이나 업보는 무엇에 나타는 것이지 하공에 나타는 게 아니지요.
    업이 있으면 짓는 자가 업보가 있으면 업보를 받은 자가 틀림없이 있다고 알듯이..

  • 12.01.05 00:20

    속수법과 속제와 진제의 차이는 무엇인가?..

    속제에서는 업을 짓는 자와 업보를 받는 자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진제에서는 비록 업을 짓는자나 받는 자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없다고 보는 거지요.

  • 12.01.05 07:04

    배고프면 밥먹고 졸리면 잔다.. 에서

    내가 배가 고프니 내가 밥을 먹는다.
    내가 졸리니 내가 잔다 고..

    꼭 [나]를 삽입해야만 합니까?..^^

  • 12.01.05 10:05

    초심님 설명중에 "업이 있으면 업보가 나타납니다." 하셨는데. 업과 업보사이는 얼마의 시간이 흐르는 것 까지 업보라 해야 할까요. ^^ 전 짓는자와 받는자를 논하기전에 그것이 확실하지 않으면 짓는자 받는자는 희론이라 봅니다.

  • 12.01.06 01:21

    태양이 무너지는 것을 보지 않는 한 난 태양이 소멸한다는 것을 믿지 않겠다고 하면.. 그것이 억지인가요?..^^
    인과법 역시 석가 부처님이나 누군가가 만든 게 아니라고 봅니다. 인과법을 의심한다며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생긴다는 것을 의심한다고 하지않을 겁니다.
    인과 과를 업과 업보라 한다면 점프가 너무 심한 것일까요?

  • 12.01.07 03:29

    [나]가 여기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요?..
    아무리 [무아]가 참이라 해도 지금 여기에 [나]가 없다면 무엇이 [무아]를 깨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나]가 분명히 있는 것은 무명이 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하여 무명을 깨치면 그 [나]가 없음을 분명히 안다는 거지요.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요?............................

    [무아]가 참이라 하여 지금여기에 [나]가 없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그 [나]라는 자는 무명이 멸하지 않는 한.. 죽건 말건 식물인간이건 천국에 간 인간이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 12.01.07 04: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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