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가짜 휘발유 ‘암행 단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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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chosun] 손님 위장해 주유소 기습… 주입 후 1분30초면 가짜 판명 한국석유품질관리원 가짜 휘발유 ‘암행 단속’ 동행 취재 <이 기사는 weekly chosun 2048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박세미 기자 runa@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사진 = 이구희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기자의 다른 포토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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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원어치만 주세요.” 

지난 3월 9일 오전 11시쯤. 경기도 의정부시 산곡동의 한 주유소에 흰색 쏘나타 승용차가 들어섰다. 한국석유품질관리원 기동검사팀 직원 2명과 기자가 탄 ‘비노출검사시험차량’, 일명 ‘암행 차량’이라 불리는 가짜 휘발유 적발 차량이었다. 겉보기엔 평범한 일반 승용차와 전혀 다를 바가 없지만, 트렁크엔 특수 제작된 연료검사장치가 설치돼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이 기름을 넣자 운전석에 앉은 강대혁(40) 한국석유품질관리원 기동검사팀 과장이 현금 3만원을 내주고 영수증을 받았다. 주유소에서 빠져 나온 차는 약 100m정도 떨어진 도로 갓길까지 이동한 뒤 멈춰 섰다.

겉은 평범한 승용차, 트렁크 열면 휘발유 분석기
운전석 옆 특수 제작된 박스에 조작 버튼 설치

조수석에 앉아 있던 김지숙(여·30) 기동팀원이 무릎 위에 덮고 있던 검은색 점퍼를 들췄다. 점퍼 밑엔 약 20㎝(약 8인치) 모니터 크기의 검은색 노트북이 숨겨져 있었다. 김 팀원이 노트북을 켜고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있는 콘솔 박스를 열자 ‘fan’ ‘시료1’ ‘시료2’ 등이 적힌 특수 제작 버튼 7개가 드러났다.

트렁크에 설치된 연료검사장치를 조작하는 스위치였다. 김 팀원이 ‘fan’ 버튼을 누르자 ‘윙~’ 하고 트렁크의 환기팬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김 팀원은 “분석 시험 때 발생하는 휘발유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노트북 모니터에 휘발유 성분 분석 프로그램이 뜨자 김 팀원이 ‘주입’ 버튼을 클릭했다. 주유된 휘발유 가운데 약 1L 정도가 연료검사장치와 연결된 관(챔버)으로 빨려 들어갔다. 김 팀원이 ‘바탕값(주유된 휘발유 상태를 측정한 값)’과 ‘기준값(가짜 휘발유 분석 기준이 되는 값)’ 버튼을 클릭하고 마지막으로 ‘시료 측정’을 클릭하자 본격적인 휘발유 성분 분석이 시작됐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모니터만 뚫어지게 바라봤다. 약 20초 뒤, 분석 결과가 화면에 뜨자 강 과장이 “정상이네요”라고 말했다. ‘주입’ 버튼을 누른 후 최종 분석 결과가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정확히 1분31초. 화면에 나타난 결과표엔 휘발유의 주요 8가지 성분에 대한 측정 수치가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옥탄가·벤젠·톨루엔·메탄올·자일렌·올레핀·산소함량·총방향족화합물 함량에 대한 측정 수치였다.

김 팀원은 “8가지 항목, 특히 가짜 휘발유 제조에 사용되는 성분인 벤젠·톨루엔·메탄올 수치에서 한 가지라도 이상(異相)이 발견되면 가짜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며 “하지만 이번 휘발유는 모든 항목이 정상 범위에 있다”고 말했다.

강 과장은 “이 주유소는 지난 2005년과 2006년 가짜 휘발유를 팔다가 수차례 적발돼 영업 중단 명령까지 받은 곳”이라며 “하지만 전문적인 가짜 휘발유 판매업자들은 사업장이 폐쇄돼도 일명 ‘바지사장(실권 없이 이름만 내세운 가짜 사장)’을 내세워 또다시 영업을 하는 등 끈질기게 가짜 휘발유를 팔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암행 출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과장은 다음에 이동할 주유소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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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의정부시 한 주유소에서 '기습단속' 중인 한국석유품질관리원 기동검사팀 차량

 `차량탑재형 연료검사장치(NIR) 자체 개발
‘암행 차량’ 23대 활약… 하루 주행 100㎞ 넘어

이날 기자가 ‘비노출 차량’을 타고 기동팀원들과 찾은 주유소는 경기도 의정부시와 남양주시 일대 주유소 4곳. 이들 주유소에서는 휘발유를 1L당 1475~1508원 사이에 판매하고 있었다. 같은 날 서울 시내 주유소의 평균 휘발유값이 리터당 1602.10원을 기록한 것과 비교할 때 100원 이상 싼 가격이다. 경기도 내 평균 휘발유 가격 1537원보다도 최고 60원 정도 저렴했다.    

한국석유품질관리원(이하 ‘석품원’)에서 이 일대 주유소를 ‘기습 점검’한 것도 이들 주유소에서 가짜 휘발유를 싼 가격에 팔고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기동검사팀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총 120여㎞ 거리를 누비며 현장 적발에 들어갔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날 점검 대상 주유소에서 판매한 휘발유는 모두 정상 제품이었다.      

단속에 동행한 강대혁 과장은 “보통 주유소 100곳 가운데 1곳 정도가 가짜 휘발유를 팔고 있다”며 “거리에 봉고차를 세워놓고 가짜 휘발유를 파는 비석유 판매업자가 아니라, 엄연한 대기업 정유회사 상호를 걸고 영업하는 주유소에도 가짜 휘발유가 침투해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석품원이 ‘비노출 차량’을 동원한 것도 전국 주유소에 번진 가짜 휘발유를 적극 단속하기 위해서였다. ‘비노출 차량’은 단속반이 일반 소비자로 가장해 시중 주유소에서 기름(휘발유·경유 등)을 주유한 뒤 가짜 여부를 즉석에서 검사한다. 기습 점검을 통해 지능적인 가짜 휘발유 판매 눈속임을 뿌리뽑겠다는 것이 석품원 측의 설명이다.

이 차량에 설치된 ‘차량탑재형 연료검사장치(NIR)는 지난 2005년 석품원이 자체 개발해 미국·일본 등에서 특허를 받기도 했다. 현재 전국적으로 운영되는 ‘비노출 차량’은 총 23대(휘발유 차량 14대, 경유 차량 9대)에 이른다.   

강 과장은 “연료검사장치를 통해 유사 석유임을 확인하면 바로 실험팀에 결과를 알려주고, 실험팀에서 적발된 주유소로부터 시료를 채취해 정밀 분석에 들어간다”며 “약 10일 정도의 실험을 거쳐 유사 석유임이 확실히 판명되면 해당 업체는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작년 유사석유 적발 836건, 전년보다 30% 늘어
가짜 휘발유 거래하는 인터넷 사이트도 활개

국내 기름값이 오르고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한동안 잠잠하던 가짜 휘발유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석유품질관리원도 덩달아 바빠지고 있다. 석품원과 가짜 휘발유 판매업자들 간 ‘치열한 기름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3월 17일 기준 전국의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536.08원으로 전날보다 0.2원 상승했다. 리터당 1900원까지 치솟던 2007년 12월과 비교하면 양호한 편이지만, 올해 기준으로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연말 1200~1300원대를 유지하던 휘발유값은 올 들어 지속적으로 상승해 매일 연중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석품원의 일반 품질검사 결과에 나타난 유사석유 적발 건수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적발된 유사석유 판매 건수는 총 836건으로, 2007년 634건 때보다 30%나 급증했다. 전체에서 비정상 석유가 차지하는 ‘비정상률’도 2005년 0.86%에서 2006년 0.95%로 오르더니, 지난해엔 1.04%를 기록해 사상 처음 1%대를 넘어섰다.

석품원에 적발된 유사석유 판매 업체 수도 지난 2005년 522곳을 기점으로 점차 감소하다 지난해 462곳으로 반등했다. 전체 업소 가운데 유사석유 판매 적발 업소가 차지하는 비율은 1.39%로 2005년 이후 4년 만에 1%대로 올라섰다.

송유관에서 직접 기름을 빼다 적발되는 일도 증가하고 있다. 대한송유관공사에 따르면 2005년 단 1건에 불과하던 송유관 기름 절도 건수는 2006년 15건, 2007년과 2008년 각각 31건으로 4년 새 30배 이상 증가했다. 검거된 절도범도 2006년 18명에서 2007년 36명, 2008년 41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대한송유관공사는 이렇게 훔친 기름 대부분이 주유소나 대리점 등을 통해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지난 2월 21일 전남 순천에선 22번 국도변 주택가 옆에 삽과 곡괭이로 지름 70㎝, 길이 10m짜리 ‘땅굴’을 파고 송유관에 구멍을 내던 이모(45)씨가 유증기에 질식해 그 자리에서 숨지는 사고가 벌어졌다. 지난 1월 경북 울산에선 송유관을 뚫고 기름을 훔치다 발생한 화재로 절도범 1명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기도 했다.

가짜 휘발유를 거래하는 인터넷 사이트도 활개를 치고 있다. 석품원에 따르면 지난해 유사석유 거래 의심 사이트로 적발돼 폐쇄 조치된 인터넷 카페 등은 37곳으로, 2007년 10곳에 비해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들 카페는 대형 포털 사이트 다음, 네이버 등에서 ‘신나는 세상’ ‘신나는 서울’ 등의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대형 자동차 동호회나 지역 모임 동호회 등에서도 유사석유 거래가 이뤄지고 있었다. 철저히 회원들에게만 공개된 이들 사이트에선 가짜 휘발유를 ‘C발유’ 등의 은어로 지칭하고 거래도 철저히 이메일로만 이뤄지는 등 은밀하게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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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유품질관리원의 단속차량 트렁크의 연료검사장치(왼쪽), 노트북 화면에 뜬 휘발유 분석프로그램(오른쪽)

이중탱크 설치·발바닥 스위치로 조작…
주유소 업자들 눈속임 행태도 각양각색

석품원이 적발한 주유소 사업자들의 판매 행태도 기상천외했다. 약 4만~6만L짜리 일반 휘발유 탱크 안에 5분의 1 정도 되는 작은 탱크를 설치하고, 그 안에 가짜 휘발유를 넣어 파는 ‘이중탱크’ 수법이 대표적이다. 사업자들은 이 이중탱크에 각각 관을 따로 연결한 뒤 평상시엔 가짜 휘발유 탱크에서 기름을 빼내 판매하고, 단속 차량이 올 때는 스위치나 리모컨을 작동해 정상 휘발유 탱크에서 기름이 빠져 나오도록 조작한다.

이럴 때 사용되는 것이 ‘발바닥 스위치’와 ‘원격 리모컨’이다. 단속반원이 들이닥치면 주유소 바닥에 설치된 스위치를 발로 몰래 눌러 탱크를 조작하거나, 사무실 안에서 리모컨을 작동해 조작한다. 단속반원의 눈이 미치지 않는 옥상에 가짜 휘발유 탱크를 설치한 뒤, 길게 관을 뽑아 주유기기와 연결한 곳도 있었다.     

강동수 한국석유품질관리원 기동검사팀장은 “치솟는 기름값에 경기침체까지 겹치면서 시중가의 40% 수준에 불과한 가짜 휘발유가 더욱 극성을 부리고 있다”며 “특히 일반 주유소의 가짜 휘발유 판매는 소비자들을 상대로 가짜를 진짜라 속이고 그 차익을 취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나쁘다”고 말했다.    

 전국 주유소 1만2000여개로 과포화 상태
“과당 경쟁이 값싼 가짜 휘발유 유통 불러

가짜 휘발유가 판치는 이유는 무엇보다 가격 경쟁력 때문이다. 3월 현재 약 1500원대인 리터당 휘발유 가격에서 교통세·주행세·교육세를 포함하는 유류세는 745.3원으로 전체의 60%를 차지한다. 전체 시세에서 휘발유 원가보다 더 큰 비중이다. 하지만 가짜 휘발유는 이 같은 유류세가 전혀 붙지 않아 리터당 600~700원 정도에 판매된다. 사업자들이 한번쯤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우리나라 승용차 대수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주유소 수도 가짜 휘발유의 범람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현재 전국의 주유소 수는 약 1만2500여개로, 지난 1997년 주유소 휘발유가격자율화 조치가 시행되면서 주유소가 자체적으로 가격을 결정하는 자율경쟁체제를 이루고 있다.

한국주유소협회 관계자는 “가장 적정한 주유소 수는 현재의 70% 수준으로 파악된다”며 “하지만 서울은 물론이고 지방에도 승용차 유동량에 비해 주유소가 지나치게 포화 상태라, 리터당 마진이 50원도 채 안 되는 경우까지 있다”고 말했다. 과열된 가격 경쟁 때문에 일부 사업자들이 더 많은 수익을 남기기 위한 방편으로 값싼 가짜 휘발유에 손을 댄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1%의 사업자들이 가짜 휘발유는 파는 사이, 나머지 선량한 99%의 주유소 사업자들까지 욕먹고 있다”며 “우리도 석품원과 협동으로 자체 품질검사를 하거나 자정결의대회를 열고 ‘요주의 주유소’를 대상으로 잠복 단속까지 벌이고 있지만 갈수록 수법이 지능화돼 적발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영업정지 당해도 대리사장 내세워 편법 영업
“아무리 처벌해도 유류세 안 낮추면 근절 안 돼”

석품원 측은 단속과 처벌 강화를 대응 방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국회는 지난 1월 8일 본회의에서 석유 및 석유대체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석품원에 석유 품질과 유통 관리를 전담하는 권한을 주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석품원은 앞으로 ‘한국석유관리원’이란 이름으로 가짜 석유 유통 과정 추적은 물론 사업자들의 관련 서류 열람까지 할 수 있게 된다. 독자적인 단속 권한을 갖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석품원은 품질 점검 부문만 도맡고, 단속은 지방자치단체와 지식경제부, 경찰 등과 합동으로 실시해왔다. 

업계에선 보다 강력한 형사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현행법상 가짜 휘발유를 판매하는 사업자들에겐 1회 적발 시 3개월 영업정지, 2회 적발 시 6개월 영업정지, 3회 적발 시 사업장 폐쇄 조치가 내려진다. 하지만 ‘바지사장’을 내세워 다시 사업을 차리면 이마저도 소용이 없다. 처벌을 당할 경우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지만, 대부분 벌금만 내고 마는 게 현실이다.

소비자들이 가짜 휘발유 여부를 분별하는 방법도 명확하지 않다. 한때 냄새 등으로 가짜 휘발유 여부를 구분할 수 있다는 말이 있었지만, 전문가들은 “전혀 맞지 않는 말”이라고 한다. ‘냄새가 이상해서’ ‘느낌이 이상해서’ 가짜 휘발유 신고를 한 경우 대부분 정상 제품으로 판명 났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싼 가격에 파는 휘발유의 경우 1차 의심 대상이 되지만, 일부 업자들은 이를 이용해 가짜 휘발유를 시세보다 리터당 10~20원 비싸게 팔기도 한다. 결국 제조·판매 자체를 근절하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주유소 업계는 “터무니없이 비싼 유류세부터 낮춰야 가짜 휘발유가 판치는 이런 상황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주유소협회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아예 교통세가 없고, 일본은 휘발유 원가의 60% 정도만 세금으로 부과한다”며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유류세는 원가보다 덩치가 더 큰 기형적인 구조”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현재 국가 경제 상황에선 고유가를 이유로 유류세를 인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주유소협회 관계자는 “가짜 휘발유 유통은 정상적인 시장 가격을 흐트러뜨리고 일반 사업자들이 제대로 영업을 할 수 없게 만든다”며 “아무리 단속을 강화하고 처벌 수위를 높여도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가짜 휘발유 근절은 요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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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짜 휘발유 여부를 분석 중인 석품원 김지숙 기동팀원(왼쪽), 주유된 휘발유 성분분석 결과(오른쪽)

ㅣ가짜 휘발유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

정상 제품에 첨가물 섞거나 아예 화학제품 혼합
페인트 공장 등으로 위장하고 점조직 통해 팔아

유사석유는 유사휘발유, 유사경유, 유사등유 등으로 나뉜다. 하지만 대체로 승용차를 운전하는 일반 소비자들이 쉽게 접근 가능한 것은 유사휘발유, 즉 가짜 휘발유다.

그렇다면 가짜 휘발유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제44조에 따르면 가짜 휘발유는 △정상 휘발유에 경유·등유 등 다른 석유제품을 섞거나 △정상 휘발유에 솔벤트·톨루엔·메틸알코올·벤젠 등 석유화학제품을 섞는 방법 △솔벤트·벤젠 등 석유화학제품에 또 다른 석유화학제품을 섞는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후자의 경우는 아예 정상 휘발유 자체가 포함되지 않은 ‘완전 가짜’다.

현행법에 따르면 정상적으로 제조된 휘발유 제품에 5% 이상 석유화학첨가물이 들어가면 ‘가짜 휘발유’라고 본다. 첨가물을 몇 % 비율로 넣는지는 전적으로 제조자 마음이기 때문에 가짜 휘발유 종류도 수천 가지다. 한때 승용차 운전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세녹스’ ‘LP파워’도 이 같은 유사휘발유의 한 종류다. 

가짜 휘발유는 주로 수도권 지역이나 지방 등 인적이 드문 곳에 세워진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대부분 비닐하우스를 개조하거나 페인트 공장 등으로 위장한 다. 이렇게 제조된 가짜 휘발유는 점조직처럼 퍼져있는 중간 판매상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판매된다.

도로변이나 주택가에 차량을 세워놓고 ‘휘발유 첨가제’ ‘세녹스’ 등의 이름을 내걸고 판매하는 이들은 중간 판매상들이다. 이들은 보통 ‘비석유 판매업자’들로 분류된다. 제조업자와 중간 판매상은 일반 소비자뿐 아니라 대기업 정유회사 주유 사업자들에게도 기름을 판매하고 있다.

| 가짜 휘발유의 폐해 |

연비 20% 낮고 유해가스 배출은 3~5배
연료공급장치(인젝터) 부식현상까지

인터넷을 달구는 가짜 휘발유를 둘러싼 논란은 하나로 집중된다. 가짜 휘발유가 정상 제품에 비해 얼마만큼의 성능을 갖고 있느냐는 것이다.

한때 승용차 운전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세녹스’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세녹스’는 한국 프리플라이트㈜가 개발한 유사 휘발유로, 2000년 특허 출원된 뒤 시중에 광범위하게 유통됐다. 알코올 10%, 톨루엔 10%, 기타 방향족화합물 20%와 비방향족화합물 50%로 이루어진 ‘세녹스’는 가격이 싼 데다 휘발유와 혼합해 사용할 경우 연비를 높일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휘발유 대체 연료로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가짜 휘발유 논란에 휘말리면서 ‘세녹스’ 문제는 법정으로 가게 됐다. 2003년 1심에선 유사휘발유 기준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세녹스를 단속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무죄 판결이 내려졌지만, 2·3심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2004년 열린 2심 재판에선 세녹스가 △자동차 연료장치를 부식시킬 개연성이 충분하고 △인체 유해물질을 배출하는 등 정상적인 연료로 보기 어려우며 △세금도 부과되지 않아 결과적으로 탈세를 낳고 △일반 휘발유보다 가격이 싸 석유시장의 유통질서를 혼란시켰다는 점을 이유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2006년 대법원도 이 같은 취지로 세녹스 제조업자에 대해 유죄를 확정하면서 세녹스는 시장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실제 한국석유품질관리원 오창연구센터 성능평가팀이 실시한 실험에서도 가짜 휘발유의 폐해는 뚜렷했다.

유사휘발유를 사용한 차량은 정상 제품을 사용한 차보다 연비가 약 20% 정도 낮았고, 탄화수소·일산화탄소·질소산화물 배출량도 최저 10%에서 최고 70%가량 높았다. 특히 유해배출가스인 벤젠·자일렌·포름알데히드 배출량은 무려 350~470%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가짜 휘발유를 사용했을 때 연료공급장치(인젝터)가 부식되는 현상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차량 및 엔진 성능을 저하시키는 원인이 된다. 또 인젝터의 동판이 부식될 경우 차량 운행 도중 갑자기 멈추는 등의 사고가 날 위험성도 높은 것으로 조사 결과 드러났다.

석품원 강동수 팀장은 “이 같은 문제점을 외면하고도 싼값에 가짜 휘발유를 사용하겠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하지만 당장 싼값에 혹해 가짜 휘발유를 구입한다면 차량만 일찍 망가지고 대기환경 오염은 물론 시장가격까지 흐리게 된다.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르는 것 또한 소비자들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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