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식! 직접 해보지 않은 가족은 그 고통과 두려움을 결코 이해하지 못합니다.
중국이식을 준비중인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리라 믿고 이곳에 올립니다.
한정호(42세, 남자, 말기간경화, 신장투석, 간,신장동시이식, 서울시 관악구)
저는 2004년 년말까지만 해도 B형간염, 간경화 신중후군, 사구체신념, 만성신부전, 고혈압, 당뇨, 요독증, 망막 및 시신경 손상, 악성흉수에 간장애1급, 신장장애2급, 시각장애 6급의 도저히 살아날 가망이 없는 말기 간경화, 신장투석환자였습니다.
저는 군인으로 사명감 있게 성실하게 국가를 위해 헌신한 해병대 2사단장교 출신입니다.
94년경 군에서 헌혈을 했는데 B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잊고 군 생활을 계속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렇게 큰 병을 가져올지는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1998년 12월경 아침 교회에 갔다 와서 라면을 먹고 나니까 배가 임신한 여인처럼 불러 왔습니다. 너무나 놀라 가까운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해 보았지만 배에 가스가 찼다면서 소화제를 주었습니다. 그래도 배가 가라앉지 않아 서울 보라매병원으로 갔습니다.
병원에서 정밀검사결과 말기간경화라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기나긴 투병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병원에서 주는 이뇨약으로 복수도 조절되고 괜찮은듯 했습니다..
그러나 병을 키운 화근은 녹즙이었습니다. 건강가족동회에서 건강강의를 듣고 녹즙이 좋다고 해서 하루 세번 200㎖씩 먹으라고 해서 충실히 했습니다. 나는 그것이 너무 힘들고 괴로웠지만, 우리 교회(신림동동산교회) 김기철부목사님께서 그것을 5년간 먹고 간경화 초기가 회복되었다고 해서 우리 아내는 그것을 저에게 계속 먹기를 권했습니다.
그러나 내 몸에는 그것이 받지 않았습니다. 6개월간 먹고 그것을 끊고, 풀무원식품, 헛개나무열매, 겨울살이, 암웨이식품, 부산에 있는 김용태약국에서 처방해주는 식품, 오줌요법, 기타 좋다고 하는 민간요법을 다해 보았지만, 몸은 점점 더 나빠져 갔습니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간환자에게는 아무것이나 안 먹는 것이 치료에 더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간이 나빠지니까 신장도 같이 나빠졌습니다.
그러던 중 2000년 12월 강원도 영월에 있는 태백기도원을 소개 받고 아내와 함께 갔습니다. 그곳에서 원장님의 기도를 받고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원장님이 좀 더 있다가 가라고 했지만, 생계를 위해 다시 직장에 복귀 하여 일을 하니까 예전과 같이 또 복수가 찼습니다. 이때부터 저의 병원생활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한번 입원하면 보통 3개월 이상이었습니다. 이제는 간경화 말기에 신부전이 되니까 복수를 천자에 의해서만 조절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주당 8000㎖씩 뽑았습니다. 몸은 점점 더 쇠약해졌습니다.
그러던 중 2003년 말경 보라매병원 장경동 박사님으로부터 아내로 통한 더 이상 어찌해볼 도리가 없으니 퇴원해서 장례준비를 하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놀랐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모든 것을 체념한테 구급차를 타고 집으로 왔습니다. 낮에 집에 혼자 있으니까 신세가 너무 처량하고 답답해서 애들한테나 아내한테 미안해서 산속에 가서 자살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근데 옆집에 있는 안식일교회에 나가시는 집사로부터 에덴요양병원을 소개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식이요법으로 6개월간 마지막 몸부림도 처 보았지만 차도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곳에서 아는 형님이 중국치료와 병원에 대해 이야기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하북에 있는 간전문 병원이었습니다. 복수가 조절되고 간이 회복된다고 해서 귀가 솔깃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 있는 동생으로부터 그 병원에 대해 알아보라고 했더니 천진과 하북이 간을 잘 치료한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암과싸우는 사람들(캔리버) 회장님을 통해서 하북간병의원에 대한 상세한 소개를 받았습니다. 한국에서 더 이상 치료할 수 없는 환자들만 돕는다고 했습니다.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2004년 8월경 마지막 희망을 안고 무조건 중국행을 준비했습니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려고 하니깐 복수가 너무 차서 위험하다고 비행기 탑승을 거부당했습니다. 그래도 모든 책임을 본인이 지겠다고 겨우 설득을 해서 북경으로 갔습니다. 북경 공항에서 부터는 병원직원의 안내를 받아서 하북 석가장 병원까지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의사선생님들이 병원 입구에서 반가이 저를 맞아 주었습니다. 처음 대해보는 의사들의 친절에 당황했지만, 차차로 의사나 간호사들이 한국의사나 간호사들보다 훨씬 더 친절하게 정성을 다해 치료해 주는 것을 느끼고 안심이 되었습니다.
14일동안 치료하니까 복수도 어느정도 조절되고 소변도 보게 되고 기쁜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2개월 후 다시 한 번 그곳에 가고 싶어서 간과신장에 대해 전문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제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니까 그곳에서 자연히 이식에 대해 말이 나왔습니다.
한국에서는 의사선생님이 합병증이 너무 많아 마취를 하면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해서장기이식도 불가능 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사 선생님은 이식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평생을 투석하며 사는 것보다 간과 신장을 동시에 이식도 할 수 있다고 하니 놀라웠습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309병원이었습니다. 한국처럼 현대식 건물은 아니었지만 의사들의 친절한 상담과 이식책임자라는 석교수님의 호감어린 인상에 저는 이식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1주일 후 다시 중국으로 오겠다고 약속하고 이식준비를 위해 한국으로 왔습니다.
이때 마침 안산에서 사시는 성기복 형이 간암으로 천진에 있는 병원에 간이식 하러 간다고 해서 북경309병원으로 같이 가자고 해서 저와 함께 12월15일 중국 북경으로 갔습니다.
2004년 12월 16일 성기복 형님은 도착하자마자 검사를 하고 바로 간이식을 했습니다.
2004년 12월 17일 저 또한 역사적인 신장, 간 동시이식을 받기 위해서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어쩌면 수술 받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참으로 마음이 무겁고 두려웠습니다.
간, 신장 동시 이식이 얼마나 큰 수술인줄도 모르고 했습니다.
수술 후 마취에서 깨고 나니까 꼭 10분 정도 깊은 잠을 푹 자고 일어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무균실에서 2일 동안 있다가 일반 병실로 왔습니다. 일반 병실에서는 낮과 밤이 바뀌어서 그것이 힘들었지만 다른 힘든 것은 없었습니다. 309병원에서 2005년 새해를 맞이했고 21일간의 입원 치료를 받고 나니 몸은 날아갈 듯이 가벼워졌습니다.
2005년 1월7일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의 치료를 위해서 중국현지 병원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와 안내를 해 주신 한국의 캔리버 회장님과 중국현지의 신성우 원장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분들의 헌신적인 수고로 저는 새 생명을 다시 얻었습니다.
2005년 8월 현재에도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서울대학병원에서 받으며 건강관리를 하고 있는데 이식후 합병증도 없고, 그동안 먹든 약도 다 끊고 한 가지만 먹으면 될 정도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도움주신 캔리버(www.canliver.co.kr) 관계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첫댓글 어려운 과정 격으시고 승리하여 새 삶을 얻으신 것을 축하 드립니다. 지금도 고통 당하고 있는 분들에게 희망을 주는 좋은 투병기라 생각 합니다. 계속 건강하셔서 이식인들의 귀감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중국에 정말 여러 병원들이 있어서 혼란스럽네요..
캔리버라는 곳은 겉으로는 비영리단체를 표방하면서 환자 수기 형태로 선전하고 있네요 사실 309병원은 간 전공의사도 없는 야전 병원 수준에 불과한데 쯧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