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즐겨움
창21;1-7
본문의 아브라함은 어려움을 이겨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고(창12:2)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무려 25년이나 지난 100세 때에야 비로소 아들 이삭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 약속을 믿고 25년을 순종하며 살아온 아브라함의 신앙은 대단하고 놀라운 것입니다.
언약의 아들 이삭이 태어남은 신앙의 승리이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유감없이 보여준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웃고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라가 아들 이삭을 낳았을 때 하나님이 웃게 하셨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사라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 이삭을 낳았다는 특별한 소식을 듣는 자마다 다 웃게 된 것입니다.
있을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기에 크게 웃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전적으로 하심을 기뻐하는 웃음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우리들을 웃게 하십니다.
웃는 우리들의 모습을 하나님은 보시기를 원하십니다.
웃음이 없는 이 시대에
하나님으로 인하여 웃으면서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첫째로; 신실을 약속하신 하나님이 십니다
본문 2절 “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주셨던 언약이 17장 19~22절과 18장 9~15절에 나타납니다.
이제 예고했던 기간이 이르자(2절)
그 언약을 말씀대로 성취시키는 하나님의 신실성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잊지 않고 사라를 돌보신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사라가 잉태할 수 있도록 특별히 배후에서 역사하셨습니다.
이처럼 생명의 잉태와 죽음과 같은 문제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데
특히 90세에 이르는 사라가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신실하심을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가 되어 그의 몸이 죽은 것 같은 때(롬4:19)를 기다림으로써
이삭 탄생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아들 이삭을 낳음으로 오랫동안의 기다림 후에 약속의 씨가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이고 사라는 90세였습니다(창17:17).
이삭의 탄생은 자연법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적적 역사였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히11:11~12).
사람은 신실하지 못합니다.
믿었던 가까운 사람들에게 속고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사람 믿다가 실망하지 말고 하나님을 더욱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아들을 주신다고 약속하셨고
25년 후에 말씀하신 그대로 아들 이삭을 주셨습니다.
시간이 다르고 걸릴 뿐입니다.
우리가 조급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십니다.
틀림없는 분이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웃게 하시는 것처럼
이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여러분들에게 웃게 하시는 은혜가 넘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둘째로; 능력을 약속하신 하나님 입이다
본문 3절 “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이삭이라는 이름은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입니다(창17:19,21).
히브리인의 이름은 그 사람의 성격이나 용모, 특징, 운명 등을 반영하고 있는데 ‘
웃다’는 뜻의 이 이름은 역시 탄생전 수태고지의 시에
아브라함과 사라가 ‘웃었던’ 사건에 기인합니다.
동시에 이 이름은 이삭이 오랫동안 고대하던 아들로서
온 가족들의 기쁨 중 태어난 것을 보여줍니다.
그는 단순한 한 가정의 계승자일 뿐 아니라
먼 훗날 모든 민족에게까지 미칠 언약(창12:2-3)의 상속자였으니
그의 탄생은 구속사적인 의미에서도 크게 웃을 큰 경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웃을 수 없는 인간적인 상황 속에서도 결국 웃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의 능력은 미약하고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능력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특별히 치료와 용서와 사랑과 축복의 강한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무한한 능력을 이기적이거나 함부로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능력을 통제하는 것은 능력을 행하는 것보다 더욱 어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100세이고 사라가 90세 일지라도
아들을 낳게 하시는 무한한 능력을 소유하신 분이십니다.
능력의 하나님은 오늘도 작은
사람들의 믿음과 섬김과 충성을 크게 받으시고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청소부와 같고 아스팔트 밑에 새싹과 같지만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모르거나 외면하거나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가장 보배롭고 존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로 만들어주십니다(사43:4).
아브라함과 사라를 버리지 않으시고 25년이 지난
희망이 없는 100세 노인 아브라함과 90세 노인 사라에게 아들 이삭을 낳게 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 여러분 모두를 웃게 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셋째로; 축복을 약속하신 하나님이 십니다
본문 6~7절 “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이삭의 이름의 뜻은 웃음입니다.
기쁨이 넘치는 웃음입니다.
아들이 없어 고민하던 사라가 아들을 낳았으며
더구나 노경에 하나님의 기적적 은사로서 낳았으니
그 기쁨은 형용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한나의 노래나(삼상2:1~10)
엘리사벳의 노래나(눅1:68~79)
마리아의 노래도(눅1:46~55) 이와 같았을 것입니다.
이삭의 탄생을 듣는 자들도 모두 웃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하는 자나 듣는 자가 모두 웃음을 숨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조소의 웃음이 아니라 기쁨과 축하의 웃음입니다.
인심의 아름다운 면을 보이는 장면입니다.
웃음의 탄생이며 웃음의 전파였습니다.
90세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구도 말할 수 없었으나
이삭의 탄생은 초자연적인 기적이었습니다.
사라에게 일어났던 일은 자연적 과정을 떠난
오직 하나님의 사역이었다고 칼빈은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모든 사람을 웃게 하시고 행복하게 하였습니다.
사라는 미리 계획하시고 예정하신 가운데 모든 사람이 다 비웃고 불신할 만한 일을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오늘날 이루신 데 대하여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웃게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웃음의 도구가 아닌 웃음의 근원이시며 웃음의 꽃과 열매이십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에 건강하고 아름다운 웃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삭의 탄생은 믿음으로 끝까지 기다린 신앙의 승리입니다.
인간 아브라함의 끈질긴 신앙과 변함없는 순종의 결과입니다.
이미 늙어버렸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기능이 끊어진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사라의 믿음은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끝까지 기다리는 자에게는 결코 하나님이 실망시키시지 않으십니다.
모든 산과 바다를 건너서 끝까지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불행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행복하게 하시고 살리시고 웃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은 남이 잘 되거나 웃으면 시기하고 질투하지만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더욱 축복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를 축복하셔서 웃게하신 하나님께서
이 어렵고 힘든 세상에서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믿음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에게 이삭과 같은 축복을 주셔서
크게 그리고 영원히 웃게 하시는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결론으로;
모든 것이 흔들리고 뽑혀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변질되어서는 안 됩니다.
신실을 약속하신 하나님,
능력을 약속하신 하나님,
축복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고 섬김으로 아브라함과 사라가 받았던
이삭의 축복을 받아 웃게 하시는 은혜가 평생 계속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