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신문 기사에서 ‘척짓다’라는 말이 눈에 띄었다. ‘서로 원한을 품고 미워할 일을 만든다’는 뜻이다. 고위 공직자 중 몇 사람이 마치
국민들과 척을 짓는 것 같은 사려 부족한 발언으로 물의를 빚는 상황을 저어하는 얘기였다.
‘척’은 그럴듯하게 꾸미는 (거짓)
태도나 모양을 이르는 뜻으로,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인다. 그런데 같은 글자가 들어간 말인데도 이렇게 다른 뜻을 짓는 경우가 있다. 이
‘척짓다’와 비슷한 뜻으로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등지다’라는 말을 비교해 보면 이런 말이 쓰이게 된 내력을 살필 수 있다.
이
경우의 ‘척’은 한자로 隻이라고 쓰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조선시대의 송사 즉 재판에서 피고를 뜻하는 말이었다. 배를 세는 단위이기도 한 이 말의
원래 뜻은 2개 한 쌍의 한 쪽이다. 재판의 한 쪽, 즉 미운 상대편인 것이다. 척을 짓는 것은 재판을 걸어 상대를 원수로 만드는 일이었다.
글짓기처럼 ‘척짓기’라고도 쓸 수 있다.
중국이나 일본에 없는 용법이다. 한국사가 빚은 개념인 것이다. 이렇게 역사의 여러
단어들이 시대를 건너뛰어 새로운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역사를 공부하는 또 다른 의미일 것이다.
등지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키 재기 하듯 붙어 서는 것이다. 짐을 진 것처럼 서로의 등을 지는 모양을 상상하면 ‘서로 사이가 나빠지다’라는 뜻이
짐작된다. 이 경우 등짓기라고 하면 어색하다. (등)짐지기처럼 등지기라고도 쓸 수 있다.
‘등지다’와 ‘척짓다’를 혼동해
‘척짓다’라고 할 자리에 ‘척지다’라고 쓰는 이들도 꽤 있다. 오래된 활용의 사례여서 글 좀 쓴다 하는 작가들의 글에서도 ‘척지다’가 간혹
보인다. 원래의 말뜻을 생각하면 봄눈 녹듯 쉽게 풀릴 문제다. 등은 지는 ‘부(負)’ 것이고, 척은 짓는 ‘작(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