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권 밖에 있어서 보이지 않던 죽음이 점점 선명해진다. 알렉상드르 스트루리스라는 벨기에 화가가 1876년에 그린 명화 맹금류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해놓은 이미지들을 보는데 이해를 하고 보니 새롭고 시선을 끈다 그림이 매개체되어 청춘시절 친구를 따라 친구 어머니의 병문 안을 하러 전주 예수병원에 갔던 일이 생각난다. 기억해야할 중요한 사건도 아닌데 어디에 있다가 기억이 순간 갑툭하는지 신비롭다. 지난 생에 행한 업들은 사라지지 않고 잠재되어 있다가 조건이 되면 현재의 생각으로 들어나서 행동하게 한다. 병실에 들어서니 의식이 혼미한 상태로 침대에 누워있는 친구 어머니에게 목사가 죽은 사람도 알아들을 만큼 큰소리로 하느님 천국 믿습니까를 반복하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삼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바라보았다. 목사의 기도가 친구 어머니에게 위안이 되기 보다는 죽음앞에서 불안해하는 사람에게 공포감을 불어 넣는 협박처럼 느껴졌다. 얼마후 장례식장으로 조문을 갔는데 친구 어머니가 상당금을 헌금으로 내놓았다는 말을 들었다. 그 싱횡에 놓이면 누구도 헌금을 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친구와 형제들은 목사의 설교를 듣고 어머니가 천국에 가셨다고 그렇게 믿고 있었다. 나는 목사의 현란한 혀놀림과 사탕발림이 티끌만큼도 와닿지 않았다. 천국은 종교 사이비들의 농간질에 의해 가는 게 아니고 천국에 가는 짓을 해야 천국에 간다는 부처님의 법을 친구에게 말해 줄까했는데 입꾹닫했다. 알렉상드르 스트루이스는 자신의 삼촌이 예수회에 속아 실제로 전 재산을 빼앗겼던 경험에서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섬뜩하게 하는 제목 맹금류는 당시 만연했던 종교 권력의 부패와 착취를 '먹이를 노리는 맹금류'에 빗대어 정했다한다. 나는 스트루리스가 1800년대에 보고 느꼈던 것을 21세기 한국에서 지금도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