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거룩하신 예수성심 대축일 금요일/요한 19,31-37
복음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9,31-37 31 그날은 준비일이었고 이튿날 안식일은 큰 축일이었으므로,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시신을 치우게 하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32 그리하여 군사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33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34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35 이는 직접 본 사람이 증언하는 것이므로 그의 증언은 참되다. 그리고 그는 여러분이 믿도록 자기가 진실을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36 “그의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37 또 다른 성경 구절은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볼 것이다.” 하고 말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요한 19,34)
오라와 가라 사이의 예수성심 ♣
예수성심을 공경하는 목적은 주님의 무한한 사랑에 대하여 우리도 참된 사랑으로 보답하고 주님께서 당하신 수난을 보상하고 그분과 일치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마음은 선(善)과 악(惡), 성(聖)과 속(俗)이 만나는 사랑과 용서의 마음이다. 하느님의 신비로 충만한 예수님의 마음 안에서 우리는 공허와 무와 죽음을 오히려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으로 체험하게 된다. 우리는 창으로 찔린 사랑하는 그 마음을 통해 절망과 어둠 속에서도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느낀다.
주님의 마음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하느님이 말씀하시는 그 말씀을 쳐다본다. 예수님의 마음은 원래부터 신인적(神人的) 사랑, 곧 영원한 말씀의 신적인 사랑이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하시는 첫 말씀이며 마지막 말씀은 하느님의 정의로운 분노가 아니라 신적 사랑이다. 우리는 전부를 내어주시는 그 사랑이 예수성심 안에서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이 되셨음을 체험한다. 이 사랑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
예수 마음은 인간뿐 아니라 온 우주의 핵심이고, 하느님 체험의 장소이며 우주만물을 그대로 체험할 수 있는 장소이다. 우리가 예수성심을 흠숭하는 것은 예수님의 심장에 나타난 그분의 전인격을 흠숭하는 것이다. 주님의 인격의 중심은 최고의 사랑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무엇일까? 강생에서부터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분의 일생에 예수성심에 대한 신심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분을 마음에 모시고 조배하며 묵상하는 그분의 십자가와 죽음 그리고 부활은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여 감동을 주기만 하는 관상품목이 아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우리의 흥분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의 존재가 되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성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 감실 안에 기다리고 계신 예수님께서 우리더러 ‘오라’, ‘너희의 마음 안에 나를 모셔라’ 하시며 우리를 부르신다. 그리고 당신의 몸과 마음을 느끼게 하신다. 영성체와 성체조배는 일상에 쪼들린 우리가 그분의 느낌을 느끼는 감동적인 순간이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으로 부르신 그분은 우리더러 ‘가라’고 하신다. 우리가 현실을 벗어나 그분께 다가가 위로를 얻고 하나 됨을 느낄 때마다 그분은 매번 ‘가라’고 하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터, 당신이 사랑하신 가난한 이와 불쌍한 이들이 살고 있는 곳, 당신의 삶이 시작되고 펼쳐지고 마친 곳으로 ‘돌아가라’고 하신다. 그곳에서 당신의 체온, 당신의 숨결, 죄인과 병자와 가난한 이들과 사랑으로 하나된 삶을 살라고 말씀하신다. 그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그리스도의 감실로 보며 그 앞에 꿇어 그들에게 봉사하라고 하신다. ‘가라’고 하시는 그분의 말씀이 우리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어 우리의 마음에 머문다. 그분이 오신 곳으로 우리는 가야 한다. 예수님의 몸과 마음은 ‘오라’와 ‘가라’가 하나 된 몸과 마음이다.
참다운 신심과 신앙은 이 몸과 마음에서 비롯하며 사회성과 현실성을 지닌다. ‘오라’와 ‘가라’를 하나로 체험하지 못하는 데서 광신이 나오고 사랑의 메마름이 나온다. 현실을 외면한 신심은 광신으로 변할 수 있고 신심을 게을리 한 현실참여는 메마른 사회사업일 수 있다. 자! 이제 우리 모두 길거리로 나아가 예수성심을 살고 나누자!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