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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말했었죠. "검증의 귀차니즘" 사이의 틈새를 공략한다고.
그냥 귀찮아서 가만히 있으려고 했는데, 자꾸 이런 부류 글 올라오는거 짜증나서 여러 글 중 아래 기사를 시범케이스로, 귀차니즘을 무릎쓰고, 대충이라도 검증될 수 있는 내용을 짚고 넘어가겠습 니다.
---------------- 기사원문 -----------------------------------------------
한국史, '조선은 고려後 건국' 맞나 ? | |||
고종임금의 황제 즉위식 문서를 통해서 엿보는 한국사의 재인식 | |||
우리는 보통 삼국시대가 신라와 발해의 남북국시대를 거쳐 고려에 의해 통일되었고, 이어서 고려 권지국사 이성계에 의해 조선이 국창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이해의 기초는 150여명의 인력과 엄청난 예산을 들인 조선사편수회의 조선왕조편찬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여기에는 불함문화론의 최남선이나 조선왕조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이능화같은 학자도 참여한 바 있다. 그러나 앞서 시대소리에 올린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의 양식있는 학자들도 아는 대륙백제에 대해서 김구나 이시영 선생도 모르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조선사 편수회에 참여한 이들 또한 정확한 역사를 알고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차라리 보다 근본적인 역사왜곡은 태평천국의 난을 즈음한 시기이거나 아예 더 거슬러가 병자호란을 전후한 시기에 이루어졌다고 보는 편이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한반도에서 태어난 조선인들은 대륙백제사를 몰라도 대륙에 살던 사람들은 그 역사를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청나라때 만들어졌다는 사고전서가 막상 청나라에서 금서로 지정되어 있었다는 얘기는 대륙사의 흔적으로 볼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런데 조선사편수회의 활동결과 나타난 삼한--->고려--->조선의 단선적 역사관은 그대로 믿을 수 있는 것인가 ? 특히 일제는 대한제국을 완전 강탈하자마자 조선왕조의 왕실족보인 선원록을 가장 먼저 가지고 갔다고 한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둘 때 저와같은 단선적인 사관을 그대로 믿기 보다는 의심해 봐야 마땅하지 않을까 한다. 필자는 일찌기 조선왕조의 국기가 조선국기가 아니라 고려국기로 불렸고 기록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우리의 역사체계에 대해 의문을 품은 바 있다. 또한 사이고 다까모리 등에 의한 소위 '정한론'도 왜 '정조론'이 아니라 '정한론'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진 바 있다. 그리고 왜 남한의 국호는 고려가 되었어야 했으며, 북한의 국호는 조선이 되었어야 했던가에 대해서도 역사와 국제정치가 합력으로 작용한 비밀스런 결과일 수 있다는 입장을 개진한 바 있다. 어디 그 뿐인가 ? 대륙사학계에서는 상식이 된 소위 '고려회가'를 고려하면 정황적 심증은 더욱 더 강화된다. 아시다시피 고려회가는 제국주의세력보다도 고려인이 중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는 내용의 발언을 담은 것이다.
이러한 의문은 고종황제 즉위식에 나타난 역사적 이해를 살펴보면 더 한층 깊어지게 된다. 아시다시피 고종황제는 일정한 역사적 조건과 자주적 의지 하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하게 된다. 그런데 대한제국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고종과 신하들의 사이에는 상당히 오랜 기간 준비가 이루어졌다. 결코 한바탕 코메디성 한여름밤의 세레모니는 아니었던 것이다. 칭제건원하기까지의 내부과정이나 국제정치적 상황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기로 하고 단지 고종과 신하들의 역사인식이 어떠 했던가 하는 점에 대해서만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고종은 칭제건원의 제안을 받아들인 후 새로 건설될 황제국의 국호를 '대한'으로 정했다. 그 이유를 들어보자. "고종 : 우리나라는 삼한의 땅이다. 국초에 천명을 받아 이를 통합하여 하나가 되었으니 이제 천하를 가진 호를 정함에 있어 '대한'이라 해도 불가하지 않을 것이다. 또 각국의 문자를 볼 때마다 '조선'이라 하지 않고 '한'이라 했으니, 옛날의 사실과 부험처럼 맞고 오늘을 기다린 것이다. 천하에 성명하지 않더라도 천하는 모두 대한이란 이름을 알 것이다" (고종대례 의궤 소칙 중에서) 삼한의 땅을 하나로 통합했고, 이미 각국의 외교사절도 '한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조선왕조가 삼한땅을 통합하였고, 각국의 외교사절이 고려라 불렀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우리가 아는 한국사는 조선은 역성혁명을 통하여 고려로부터 조선으로 이행되었다. 삼한통합이 이루어진 것은 고려때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를 조선왕조의 고종임금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이상한 것 아닌가 ? 고려왕조가 조선왕조로 이행된 것이 맞다면 말이다. 고종의 황제즉위식은 1897년 경운궁 태극전에서 있었다. 이때 조칙을 선포하였으며, 고종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황제행렬을 가졌다. 그런데 조칙에 나타난 짧은 언급에서 당시의 역사인식을 또한 엿볼 수 있다. "단군, 기자이래로 강토가 나뉘어 각각 한 모통이를 점거한 채 서로 자웅을 겨루었으나 고려에 이르러 마한, 진한, 변한을 병탄했으니 이것이 삼한통합이다. 우리태조께서 나라를 여시면서 땅을 더욱 넓혀 북으로 말갈의 땅으로 진출하여..." 이상의 두 짧은 인용을 통해 우리는 고종이 대한제국의 국통을 삼한통합의 주역인 태조 왕건과 고려에 두고자 하였으며, 굳이 조선을 국호로 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조선이 국호로 불리기도 했는 지는 분명치 않지만 설령 정말 공식적으로는 조선왕조 였다고 하더라도 대외적으로는 한국과 고려왕조로 이해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인용문을 종합하면, "국초에 천명을 받아" 세운 나라가 삼한을 통합한 고려라는 것은 알 수 있는데, 이는 태조 이성계로 알려진 조선의 시작이라는 기존의 역사인식과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인용한 고종의 역사인식은 자신이 고려의 종통이지 조선의 종통이 아니라는 분명한 자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역사의식의 뿌리는 삼한을 통합한 9세기이지 결코 14세기 조선의 건국이 아니다. 여기서 주지하다시피 삼한을 통합한 것은 조선왕조를 개창한 태조 이성계가 아니라 바로 고려왕조를 개창한 태조 왕건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하기에 조선왕조의 국기는 고려국기라 불렀던 것이리라. 그럼 조선왕조실록의 주역은 누구인가. 그것은 과연 조선왕조실록인가, 아니면 고려왕조실록인가. 우리에게 조선은 무엇이고, 고려는 무엇인가 ? 과연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섰다는 식의 역사이해를 그대로 전제해도 되는 것일까 ? 아니면 진지하게 의심해 봐야 하는 것일까 ? 남해경, 시사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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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간단한 검증 스타트 입니다.
1. "참고로 청나라때 만들어졌다는 사고전서가 막상 청나라에서 금서로 지정되어
있었다는 얘기는 대륙사의 흔적으로 볼 수 있을 지 모른다."
- 사고전서(四庫全書)가 금서인 적은 역사상 단 한번도 없다. 사고전서는 역사서가 아니라 단순화
하여 얘기하자면 고금의 도서의 내용을 총집합한 일종의 백과전서와 같은 문집으로써 역사, 지리,
유교경전 등을 포함한 수천 종의 책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중 일부는 청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금서로써 다루어진 책도 있고, 개작되거나 첨삭, 가필된 것들도 있을 뿐.
윗 글에서는 "청 시대의 사고전서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이 뭔가 비밀스러운 역사적 진실을 담고
있어서 청조에 공식적으로 금서로 삼아 비밀로 만들었다"는 뉘앙스를 풍김으로써 이후 전개될 "역
사적 음모이론"에 대한 신빙성을 높이려 한다. 어림도 없는 수작. 전형적인 사실관계의 조작이다.
사고전서는 전혀 관계도 없는 책이다.
2. "특히 일제는 대한제국을 완전 강탈하자마자 조선왕조의 왕실족보인 선원록을 가장
먼저 가지고 갔다고 한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둘 때 저와같은 단선적인 사관을 그대로
믿기 보다는 의심해 봐야 마땅하지 않을까 한다."
- 선원록(璿源錄)과 단선적 역사는 관계가 없다. 선원록은 시조 이한 까지 거슬러가는 조선왕실의
족보로 원래 선원록은 고작 이한에서 직계인 태종까지의 족보를 수록하고 있다. 또 하나의 족보
인 종친록(宗親錄)은 태조 이성계와 태종의 적자들만을 기록해두고 있고, 가계의 여성 구성원들
및 서자 들은 따로 유부록(類附錄)에 기록을 해두고 있다. 역설적으로 이 선원록에 가장 큰 칼질
이 가해진 것은 일제가 아니라 조선왕실로부터이다. 선 원록과 종친록 자체가 조선 초기에 집필
된 것으로써 왕조 초기의 족보를 수록하고 있는 만큼 1차와 2차 왕자의 난 등의 대란을 거친이후
에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방계나 서자, 그 외에 권력에서 밀려난 종친들이 왕위계승을 요구할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 족보에 대한 수정이 가해진 것.
윗 글에서는 일제가 해당 서적을 강탈함으로써 마치 고려로부터 내려오는 조선의 왕통을 비밀로
하려고 했다는 식의 암시를 풍기고 있는데, 선원록과 종친록 등이 한 두권 뿐인 책도 아니고 왕실
과 관계가 있음을 증명하려는 전주 이씨들은 다 갖고 있는 책이었는데, 무슨 수로 그것을 다 수거
한다는 말인가? 게다가 내용 자체가 삼국-고려-조선 역사관 자체와 전혀 무관계하다.
상관도 없는 책을 그저 일제가 관심을 보였다는 이유 만으로 뭔가 '비급'으로써 취급을 하려고 하
는 시도인데, 말이 되냐? 조선왕조 초기 3명의 왕까지의 족보만을 적어놓은 책과 단선적 역사관
이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이냐?
3. "어디 그 뿐인가 ? 대륙사학계에서는 상식이 된 소위 '고려회가'를 고려하면 정황적 심
증은 더욱 더 강화된다. 아시다시피 고려회가는 제국주의세력보다도 고려인이 중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는 내용의 발언을 담은 것이다."
- 이 경우는 전형적인 "재활용"에 속한다. 즉, 지네끼리 만들어낸 자료를 서로 인용함으로써 그것을
'상식화'하여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탈바꿈 시키는 수작.
"고려회가"라고 불리누는 2행의 짧은 시 자체가 진위논란에 휩쌓여 있는데다가 그 유래 조차도 불분
명하다. 원문은;
不怕五洋圖中華 只怕高麗回家來
불파오양도중화 지파고려회가래
다섯 바다가 중화를 꾀하는 일은 두렵지 않다.
다만 고려가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두려울 뿐이다.
...라는 것인데, 문제는 이 구절이 도대체 어디서 났는지 대륙사학계에서 최초로 이 싯귀를 들고
나온 김용운 교수도 밝히고 있지 않다는 것이지. 애초에 김용운 교수 스스로가 역사학 교수가 아
니라 그의 학설의 개관적 신빙성 자체가 의심된다는 것은 일단 차치하고서라도, 단지 "한인들 사
이에 내려온다"라고만 애매하게 그 출처를 댄 것 자체가 학술적 가치를 희미하게 만든다. 이들의
근거는 대개가 이런 식이다.
일전에 어느 사이트에서 "중국의 한 음식점 벽에 걸어두고 있는 치우천황의 초상"이라는 사진
따위를 "현대 중국인들에게도 치우천황은 수호신이다"라는 주장의 근거로 삼는 것 만큼이나 어
이없는 '근거'이다. 그 본인이 뻥을 쳐서 지어낸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무슨 수로 증명하려나?
더욱이 문제가 되는 "오양(五洋)"이라는 표현. 세계 열강을 표현하는 말인데, 문제는 이 '다섯 바다'
라는 관념은 "오대양 육대주"라는 관념으로써 이미 중국인들의 것이 아니라 서양인들의 것이고 ,
중국 근대화 시기조차도 "오양"이라는 표현은 거의 쓰지 않았다. 바다 건너에서 넘어온 오랑캐라
는 뜻의 "양이"라는 표현은 있었어도, 민중적 레벨에서 '전해오는 얘기'가 당시의 민중들에게는 관
계도 없던 '오대양 육대주' 를 뜻하는 단어를 쓰고 있다는 것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나도 음모이론 하나 만들어보자. "양이"라는 당시 중국인들의 단어에 대해 알게된 어느 누군가가,
자신의 의견을 개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오대양'이라는 개념이 동양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지
극히 서구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모르고 "오양" - 다섯 바다 - 라고 그럴듯하게 싯귀를 만들어냈다
가 덜미를 잡힌거라고.
식민사학이건 식목일사건이던간에, 출처불명의 두 줄 글귀를 세상에서 단 한명이 들고 나온 것을
갖고 역사적 근거로 삼는 역사학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애초에 그런 것을 역사적 근거라고 들고
나오는 것 자체가 진지한 전문적 역사연구로써는 실격이라는 것.
4. "고종 : 우리나라는 삼한의 땅이다. 국초에 천명을 받아 이를 통합하여 하나가 되었으니
이제 천하를 가진 호를 정함에 있어 '대한'이라 해도 불가하지 않을 것이다. 또 각국의 문
자를 볼 때마다 '조선'이라 하지 않고 '한'이라 했으니, 옛날의 사실과 부험처럼 맞고 오늘
을 기다린 것이다. 천하에 성명하지 않더라도 천하는 모두 대한이란 이름을 알 것이다"
(고종대례 의궤 소칙 중에서)
삼한의 땅을 하나로 통합했고, 이미 각국의 외교사절도 '한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조선왕조가 삼한땅을 통합하였고, 각국의 외교사절이 고려라
불렀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우리가 아는 한국사는 조선은 역성혁명을 통하여 고려로부
터 조선으로 이행되었다. 삼한통합이 이루어진 것은 고려때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를 조선왕조의 고종임금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이상한 것 아닌가 ? 고려왕조가 조선왕조
로 이행된 것이 맞다면 말이다.
- 별로 안 이상하다.
애초에 위의 기사 자체는 광무원년의 것으로 고종 34년, 양력으로 1897년 10월 11일조 기사인데;
"우리나라는 곧 삼한(三韓)의 땅인데, 국초(國初)에 천명을 받고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었다. 지금
국호를 ‘대한(大韓)’이라고 정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 또한 매번 각 국의 문자를 보면 조선이
라고 하지 않고 한(韓)이라 하였다. 이는 아마 미리 징표를 보이고 오늘이 있기를 기다린 것이니,
세상에 공표하지 않아도 세상이 모두 다 ‘대한’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을 것이다."
천명을 받아 나라가 하나로 통합된 것이고, 외국의 기록에서 삼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기 때
문에 굳이 나라를 '대한'이라고 칭해도 다른 사람들도 생뚱맞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소리이
다. 사소한 차이 처럼 보이겠지만, 외교사절들이 고려라고 불렀다는 소리는 단 한마디도 없고 (대
체 "且每嘗見各國文字"이라는 문장이 어째서 '외국 사절들도 고려라고 불렀다'가 되는거냐?) 삼한
'땅' 그 자체를 조선이 통합했다는 말도 없다.
우리나라는 삼한의 땅인데, 국초에 천명을 받고 (우리나라를) 하나의 나라로 통합했다는 고종의 말
은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윗글의 주장대로 고종은 삼한의 땅을 그 자체로 물리적으로 통합했
다는 뜻일 수도 있으나, 반면 전통적으로 '삼한의 땅'이라고 불리우는 우리 나라의 땅과 백성을 조
선이 (비로서) 천명을 받아 진정 하나의 나라로 통합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5. 고종의 황제즉위식은 1897년 경운궁 태극전에서 있었다. 이때 조칙을 선포하였으며,
고종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황제행렬을 가졌다. 그런데 조칙에 나타난 짧은 언급에서 당시
의 역사인식을 또한 엿볼 수 있다.
"단군, 기자이래로 강토가 나뉘어 각각 한 모통이를 점거한 채 서로 자웅을 겨루었으나
고려에 이르러 마한, 진한, 변한을 병탄했으니 이것이 삼한통합이다. 우리태조께서 나라
를 여시면서 땅을 더욱 넓혀 북으로 말갈의 땅으로 진출하여..."
이상의 두 짧은 인용을 통해 우리는 고종이 대한제국의 국통을 삼한통합의 주역인 태조 왕
건과 고려에 두고자 하였으며, 굳이 조선을 국호로 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리고 조선이 국호로 불리기도 했는 지는 분명치 않지만 설령 정말 공식적으로는 조선왕조
였다고 하더라도 대외적으로는 한국과 고려왕조로 이해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4번 내용과 연동되 내용.
전형적인 확대해석이다. 애초에 고종실록에서 고종의 견해 자체가 상징적 레토릭을 사용해 이루어
지는 것('천명을 이어받아 땅을 하나로 통합한다'는 것)임은 위에서 설명했다. 그것이 윗글의 주장
처럼 해석될 수도 있으나, 반면 전형적인 서술형식으로써 '우리 나라는 천명을 받아 이 땅을 통합했
다'는 정통성 의식의 발로라고 볼 수 있는 것도 앞서 서술한 대로이다.
그런데, 윗글은 거기에 기사 내용 하나 덧붙여서 완전히 단정해버린다. 고려에서 마한, 진한, 변한을
병탄하여 삼한을 통합했고, 거기에 조선의 태조가 나라를 열면서 땅을 넓혀 북으로 진출했다는 내용
이 누구 맘대로 대한제국의 국통이 고려와 왕건에게 있다는 뜻이 되는지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게다
가, 근거없는 비약을 다시 근거삼아 대외적으로 조선왕조가 한국이자 고려왕조로 이해되고 있었다는
대단히 의심스러운 얘기를 하고 있다. 애초에 외세가 조선왕조가 칭제하여 '대한제국'으로 바뀌는 것
자체를 그다지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던 상태에서 어째서 위의 기사 내용만으로 당연히 조선이 대
외적으로 '고려왕조'로 '이해되고 있었다'가 되냐는 말이다?
왜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거창하게 이름을 바꾸었냐고? 그 진정한 이유는 윗 글에서는 언급하지
않고 슬쩍 넘어간 고종실록 부분에 등장한다. 즉, 같은 해 같은 날의 기록 내용에 엄연히 등장하고 있
다. 윗 글에서는 당연스레 그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그 이유가 적나라하게, 어떤 의혹도 없이 나
온다. 한마디로 말해서, 내용 전체의 문맥을 보지 않고 꼴리는대로 취사선택했다는 말이다.
그 날의 실록 전문을 보자. 내가 직접 밑줄쳐놓은 부분을 주목하면서:
고종 36권, 34년( 1897 정유 / 대한 광무(光武) 1년) 10월 11일 양력 3번째기사
상이 이르기를, |
“경 등과 의논하여 결정하려는 것이 있다. 정사를 모두 새롭게 시작하는 지금에 모든 예(禮)가 다 새로워졌으니 원구단(圜丘壇)에 첫 제사를 지내는 지금부터 마땅히 국호(國號)를 정하여 써야 한다. 대신들의 의견은 어떠한가?” |
하니, 심순택(沈舜澤)이 아뢰기를, |
“우리나라는 기자(箕子)의 옛날에 봉(封)해진 조선(朝鮮)이란 이름을 그대로 칭호로 삼았는데 애당초 합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나라는 오래되었으나 천명이 새로워졌으니 국호를 정하되 응당 전칙(典則)에 부합해야 합니다.” |
하였다. 조병세(趙秉世)가 아뢰기를, |
“천명이 새로워지고 온갖 제도도 다 새로워졌으니, 국호도 역시 새로 정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부터 억만 년 무궁할 터전이 실로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
“우리나라는 곧 삼한(三韓)의 땅인데, 국초(國初)에 천명을 받고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었다. 지금 국호를 ‘대한(大韓)’이라고 정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 또한 매번 각 국의 문자를 보면 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한(韓)이라 하였다. 이는 아마 미리 징표를 보이고 오늘이 있기를 기다린 것이니, 세상에 공표하지 않아도 세상이 모두 다 ‘대한’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을 것이다.” |
하니, 심순택이 아뢰기를, |
“삼대(三代) 이후부터 국호는 예전 것을 답습한 경우가 아직 없었습니다. 그런데 조선은 바로 기자가 옛날에 봉해졌을 때의 칭호이니, 당당한 황제의 나라로서 그 칭호를 그대로 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한 ‘대한’이라는 칭호는 황제의 계통을 이은 나라들을 상고해 보건대 옛것을 답습한 것이 아닙니다. 성상의 분부가 매우 지당하니, 감히 보탤 말이 없습니다.” |
하였다. 조병세가 아뢰기를, |
“각 나라의 사람들이 조선을 한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상서로운 조짐이 옛날부터 싹터서 바로 천명이 새로워진 오늘날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또한 ‘한’ 자의 변이 ‘조(朝)’자의 변과 기이하게도 들어맞으니 우연이 아닙니다. 이것은 만년토록 태평 시대를 열게 될 조짐입니다. 신은 흠앙하여 칭송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
“국호가 이미 정해졌으니, 원구단에 행할 고유제(告由祭)의 제문과 반조문(頒詔文)에 모두 ‘대한’으로 쓰도록 하라.” |
하였다. |
오캄의 법칙을 기억하는가? 가장 논리적인 설명은 가장 간단한 설명이다. 외세의 침입과 약소국의
설움을 당하면서 조선왕조는 제정으로 이행함으로써 대내외에 새로워짐을 천명하려고 했다. 그에
고종은 신료들과 의논을 하여 새로운 제국의 이름을 결정짓는 명분을 얻고자 한다.
조병세와 심순택은 고종이 필요한 얘기를 해준다. 조선이라는 이름은 중국에 봉신의 예를 올린 기
자가 그대로 사용한 이름이다. 문물과 제도가 새로워지니 개국에 맞게 이름 또한 새것으로 바꿔야
한다. 게다가 주상이 생각해낸 '대한'이라는 이름은 예전에도 사용한 적이 없으니 새로운 나라를
열겠다는 마음에 부합하는 적절한 것이다. 게다가 (이 아저씨.. 아부 스킬이 장난 아니다..) 상서로
운 나라 이름의 문자 마저 오묘하게 한자 변이 들어맞으니 좋은 징조이다.
결국 뭐냐구? 나라 새로 열겠다는 마음가짐에 맞춰 고종은 고금을 통해 우리 나라가 불리운 이름
등을 생각하다가 '삼한'에 주목하여 '대한'을 고른 것이고, 신료들은 거기에 걸맞는 명분을 제공해
준 것이다.
오캄의 법칙 - 고려가 진짜 적통이라고 생각했다면 직빵으로 나라를 고려제국이라고 이름지으면
그만이지 왜 빙빙 돌려 '대한'이라는 이름에 숨겨진 의미로 고려에 적통이 있다는 생각을 소심하게
한다는 말인가? 이미 제정으로 이행한다는 논쟁에서 상당수의 신료들의 의견을 물리치고 무리를
해서라도 의견을 관철한 판인데?
게다가, 천명을 이어받아 고려의 뒤를 이어받은 조선이 고려의 업적을 뒤잇고 있다는 자부심을 지
녔을 수는 있어도, 그 사직을 이어가는 왕이 전 왕조인 고려에 적통이 있을 것이라고 마음먹는다는
것은 왕조에 대한 자기부정이다. 그런 짓을 고종이 했을리가 없잖아? 국호를 개칭하는 것이면 몰라
도 아예 전통성이 고려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솔직히 있을 수가 없다.
게다가, 설령 고종이 속으로 고려를 높이 보는 눈이 있다고 해도, 도대체 위의 기사의 어디에 외국의
사절들도 공식적으로 대한제국을 고려라고 여기고 있었다는 말이 나온다는 말이냐?
6. 두 인용문을 종합하면, "국초에 천명을 받아" 세운 나라가 삼한을 통합한 고려라는 것은
알 수 있는데, 이는 태조 이성계로 알려진 조선의 시작이라는 기존의 역사인식과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인용한 고종의 역사인식은 자신이 고려의 종통이지
조선의 종통이 아니라는 분명한 자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역사의식의 뿌리는 삼한을
통합한 9세기이지 결코 14세기 조선의 건국이 아니다.
- 엿장수 맘대로?
두 인용문을 조합해봤자 나오는 것은 고종이 '대한'이라는 국호를 고심해서 만들었다는 사실 뿐이다.
천명을 받아 삼한을 통합한 나라가 고려라는 소리는 한마디도 없다. 실록 본문을 문자 그대로 보자.
고종은 국초에 천명을 부여받아 "옛부터 삼한이라고 불리운 땅인데, 이를 하나로 통합했다"고 했지
"삼한 그 자체를 통일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는 엄연히 의미가 다르다. 후자의 내용은 삼한으
로 갈라진 세 개의 국가를 통일한 위업 그 자체를 국초에 이루었다는 뜻이지만, 고종은 그런 말을 하
지 않은 것이다. 옛부터 삼한이라고 불리운 땅이 있었는데, 그것을 국초에 조선이 하나로 통합했다
고 말했을 뿐이다. 무슨 통합? 세 다른 한을 통합한 것일 수도 있으나, 그 외에 갈라진 민심을 통합했
다든지, 고려에서 떨어져나간 충성심을 통합했다든지, 고려의 토호들들과 구세력을 누르고 다시 통
합을 했다든지의 뜻일 수도 있다는 것. 논쟁의 여지가 있음은 인정하지만, 그 뿐이다.
게다가, 자신이 고려의 종통이라는 인식은 어디에도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다. 전체 기사 중에서 의
미를 확정하기 힘든 단 하나의 문장에 근거한 가설 아닌가? 고종이 조선이라는 이름을 계속 써서는
안된다는 위기의식을 느꼈다든지, 옛 역사에서 '한'이라고 불리운 것을 존중하여 '대한'임을 주장했
다든지, 아니면 당시 조선인들 사이에서 '삼한' 및 '한국'이라는 호칭이 일반적이었다든지에 대한 증
거가 될 수는 있어도 어찌 그 자체로 고종이 스스로 고려의 종통이라고 생각했다는 결론이 나오냐는
말이다.
그 자체가 희미한 가능성을 내비치는 가설에 불과한데 누구 맘대로 단정을 하냐? 게다가 그 자신의
조선왕조의 일원인데 자신이 조선의 종통이 아니라 고려의 종통이라는 역사의식을 갖고 있었다고?
고종이???
'조선'이라는 옛 이름을 끝내고 새술을 새부대에 담겠다는 의지로 '대한'이라는 이름을 선택한 것이
해당 고종실록 기사에 너무나 분명히 드러나있는데, 어째서 그게 한 국가의 왕이 될 수 있는 혈연적
정통성을 지닌 자신의 종묘와 사직을 부정하고 '고려의 종통'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의미가
되는가? 실제로 그런 낌새가 보였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이 내비쳤다면 즉결처형 당할 만큼의 반역
행위에 준하는 것이다. 신료들에 의해 폐위가 될만큼 위험한 생각이다.
그러나 조선이라는 국호를 개칭하는 것에 대한 당연한 반대는 존재했어도 어디에서도 고종이 고려
를 지나치게 드높인다는 것에 대한 반대는 없었다. 신료들은 국호를 개정하고, 옆에 대국이 있음에
도 칭제하는 것에 반대했을 뿐이지 조선왕조의 뿌리를 뒤흔들만한 고종의 생각에 목숨걸고 반대했
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설령 그런 생각을 고종이 진짜 갖고 있었다고 쳐도, 신료들조
차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의 속내인데 그런 생각이 대외적으로 인정받고 '고려로써 이해되고 있었다'
는 것은 모순이잖은가?
7. 여기서 주지하다시피 삼한을 통합한 것은 조선왕조를 개창한 태조 이성계가 아니라 바로
고려왕조를 개창한 태조 왕건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하기에 조선왕조의 국기는 고려국기라
불렀던 것이리라. 그럼 조선왕조실록의 주역은 누구인가. 그것은 과연 조선왕조실록인가,
아니면 고려왕조실록인가.
우리에게 조선은 무엇이고, 고려는 무엇인가 ? 과연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섰다는 식의
역사이해를 그대로 전제해도 되는 것일까 ? 아니면 진지하게 의심해 봐야 하는 것일까 ?
- 뭘 의심한다는 말인가?
32권의 조선왕조실록 중에서 끝에서 두 번째 임금의 광무원년 10월 11일자 단 하루의 기사를 갖
고 조선왕조에 대한 전체 적통에 대한 생각을 바꾸라고?
고구려, 신라, 백제를 정치적으로 통합한 것은 고려이다. 그러나 고종실록 내용은 그 구체적인 세
개의 다른 나라를 하나로 통일한 업적이 조선(=고려)의 것이라고 말한 적 없다. 삼한이 곧바로 삼
국시대의 삼국에 병치될 이유가 없다. 고종은 그저 옛부터 삼한 땅이라고 불리운 이 땅을 조선이
천명을 이어받아 통합했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리고, 옛부터 삼한이라고 불렸으니 그 '한'인들을
통합한 진정한 천명을 받은 나라를 조선이라고 부르지 말고 '대한'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의견을
의견을 말했을 뿐이다. 조선왕조 국기가 언제 고려왕조의 국기라고 불렸다는 말이냐?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선게 아니면 미쳤다고 전왕조의 왕씨들을 그렇게 학살하냐?
게다가 역성혁명으로 새 왕조가 들어섰을 때가 되면, 이전 왕조의 정통성과 업적들이 그대로 신
왕조에 이어지는 것이고, 그것이 곧 천명을 받드는 것이라는 인식이 자신의 왕조의 정통성을 주
장하는 흔해빠진 상투적인 방식이라는 것을 모른다는 말인가?
오히려, 위의 고종실록 내용은 고려가 아니라 고려의 우위에 선 조선의 정통성을 더욱 강조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여지가 훨씬 많다. 왜냐고? 고종이 말한 "옛 부터 삼한이라고 불리운 땅을 통합
했다"는 말의 의미가 진정 윗글의 필자가 주장하는 대로 고구려, 신라, 백제의 삼국통일을 그대로
지칭하는 것이라면, 그 업적을 이룬 국가가 고려인 것 보다는, 그 천명을 뒤이은 것이 자신의 개
조이고 자신의 국가인 조선의 '국초'의 일이라는 것을 얘기하고 있지 않은가? 조선이 개국함으로
써 천명을 받을었다고 말했다는 점에서 조선이 고려의 우위에 있는, 천명을 명받은 국가라는 인
식만 더 높여지기 때문이다. 고려의 천명이 끝났기 때문에 그 고려가 이룬 모든 업적과 함께 천
명이 조선으로 내려온 것이고, 그 조선의 아픔을 끝내고 새로운 황제국으로써 나아가겠다는 고
종의 결심이 어째서 고려의 종통임을 밝히는 얘기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실록 어느 한군데에도 고려에 대해 그런 식으로 드높이는 언급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윗글의
필자가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데로 가정 위에 가정을 세우는 방식으로 비약하여 주장한 것 뿐.
위 글의 노림 수는 지독할 정도로 간단하다. 일제의 의해 강점당한 불운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조선
의 정통성을 무너뜨리고, 조선의 황제 스스로가 자신을 고려로부터 내려오는 종통을 이어가고 있다
는 생각을 하도록 만듦으로써 고려를 추켜세우는 것이다.
고려를 추켜세우는 이유는? 뻔하지 않은가.
고구려의 뒤를 잇는 것이 고려이고, 상고사에서 동아시아 최대 패권국가였던 (그들이 그렇게 믿는
것이지만) 고구려는 또 단군조선의 뒤를 승계하는 국가이다. 따라서, 그 중간의 통일신라와 초기/
중기 조선의 존재를 부정하고, 고조선-고구려-고려를 이어간다는 '단일민족'이라는 허깨비의 연
속선에 조선/대한제국까지도 고려의 일부로써 포함시킴으로써 조선을 뒤따르는 오늘날 대한민국
까지 연결하는 구라의 연속선을 만드는 것이다. 신채호 선생이 주장한 이래의 고조선-고구려-고
려의 라인에, 이제까지 조선을 개무시하던 것과는 달리 조선이 고려 그 자체라는 식의 궤변을 통
해 조선까지 끼워넣은 것이다.
왜 그런 짓을 하냐고? 그야 고려 이후 700년 가까운 세월의 공백을 무마시키기 위함이다. 아무리
옛날에 중국 대륙을 호령했다고 해도 수 백년이 넘는 세월의 고토에 대한 종주권을 현대 국가가
주장하는 것은 아무래도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는지, 그 세월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고려 = 조선
이라는 어거지 논리로 비교적 최근인 조선 - 대한제국의 시대 까지도 한반도를 지배했던 이씨 왕
조가 대륙의 패자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었다고 주장하기 위한 술수라는 것이지.
즉, 우리 민족의 적통은 단군조선-고구려-고려-(고려 워너비로써의) 조선 - 대한제국 - 대한민국
으로 이어지는 것이며, 모두가 대륙을 호령했던 패권국 내지는 군사강국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으
니 오늘날 대한민국 또한 그런 위상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술수의 일환으로써 조선 초기의 계보라든지, 대한제국 개칭 시절 고종이 말한 단 한마디의 내용
을 갖고 관게사실을 뒤섞어놓아 "매국적인 식민사학에 오염된 강단사학이 얘기하는 것은 거짓이고,
재야사학이 주장하는 위대한 단일민족의 역사가 진정한 역사이다"를 주장하는 것이다.
아 정말, 싫다 싫어.
....
결론:
몇 시간 정도 조사해서 쉽게 손에 넣는 자료만으로도 이 정도 반박은 가능해집니다.
더럽게 귀찮아서 궁시렁 거리면서도 또 이런 부류의 펌글들이 이 까페에 퍼지는 것이 짜증이 나서
모처럼 게으른 눈을 굴려봤습니다.
위 기사에 대한 제 반박이 적확한 것이라고만은 볼 수 없습니다. 나름대로 허점도 있겠죠.
여기에서 제가 밝히고 싶은 것은 제 주장이 맞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부류의 글들은 이런 수준의 기초적인 조사만으로도 그 개연성
을 박살낼 만큼 허술하기 짝이 없는, 역사적으로 몰가치한 부류의
것들이라는 점입니다.
실록이니, 고종대례의궤니, 거창한 말을 써가면서 대충대충 사람을
속이거나 잘못 믿도록 호도하는 상투적인 수법들을 이 따위 글들이
얼마만큼 자주 써먹는지, 왜 그런 것에 호도되면 안되는지, 그리고
전문적인 역사학계에서 왜 이 인간들의 주장을 무가치하다고 여기
는지, 그 이유를 밝히고자 함이었습니다.
이들은 전문가가 아닙니다. 단지 전문적인 단어들을 들먹이면서 그 전문적인 조사를 직접 행할
능력이나 여유가 없는 사람들을 그럴듯하게 속이는 사기꾼들에 불과합니다.
이전에 제가 했던 말이 있지요.
자기가 독학으로 공부한 양자물리학이나 응용물리학 수준을 갖고 MIT 교수들을 상대로 퀌텀이론에
대해 논쟁하려고 하는 멍청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의학에서는 민간요법이니 대체의학이니 등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람의 목숨에 관계된 것
인 만큼 아무리 자신있다고 해도 사람을 직접 치료하려면 국가에서 공인된 관련면허를 따야 합니다.
그저 자기 경험삼 몇 사람에게 도움을 준 것 만으로 사람들을 치료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유독 인문학, 특히 역사학에만 오면 그런 공인된 연구자격을 취득하지 않은
비전문가가, 불충분한 근거만을 갖고 기존 역사학계에서 이뤄놓고 있는 성과들을
전면부인하고 인류 역사상 숨겨진 음모이론을 발견했다고 떠들어댑니다. 그것을 인
정해주지 않으면 매국노이네, 식민사학이네 따위 정치적 음해를 하고 자신들만이 민
족의 진리를 손에 쥔 사람인양 합니다.
엘리트주의이든, 권위주의이든 욕하고 싶으시면 욕하십쇼. 하지만, 전문적인 학자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는 그 들의 존재 자체가 모욕입니다. 기본적으로 역사적 검증에 필요한 단계를 전혀
거칠 생각을 안하고, 단순히 머리에서 상념으로 생각해낸 것이 그대로 이론화되어 사실로 탈바
꿈하는 그들의 '학문'을 보면, 단 한개의 주장을 하기 위해 몇년 동안 자료조사를 하면서 논문심
사를 받아야 하는 역사학도들은 배알이 뒤틀립니다. 누구는 위에서 꾸중듣고 까이면서 비싼돈
쳐들여 계속 공부를 해도 석사 박사 논문 패스도 힘든데, 누구는 그냥 아무렇게나 단어 몇개 엮
어버리거나 사료 펼쳐놓고 짝짓기 놀이 하는 것만으로 수십만명 환빠 팬들을 거느리면서 민족
역사의 구세주인양 하는 그 사이비스러운 몰골에 생리적인 혐오가 든다는거죠.
그들에게 해줄말은 단 하나입니다.
"내 4000년 쿵후의 위력을 쓰면 한방에 사람 죽기 때문에 안싸워" 따위 헛소리 하지
말고, 경쟁하고 싶으면 제대로 트레이닝 받고 링 위로 올라오라구요. 그렇게 자신의
쿵후가 지고한 수준이라면, 룰 몇개 있다 해봤자 UFC니 K-1이니 프라이드니 제압하
는 것은 순식간일 것 아닙니까?
링 밖에서 재잘거리지 말고 올라오십쇼. 특히, 나이 먹을 만큼 먹어서 딴 학문 전공하
면서 심심풀이로 역사연구를 하는 정도 만으로 한국의 역사학 90년 역사를 무너뜨릴
자신이 있다는 분들이라면, 돈 좀 모아서 교육과정 후딱 거쳐 학위 따고 정식으로 학
계에 들어오셔서 제발 '매국노들' 좀 실력으로 어디 한번 까보십쇼.
인터넷 통해서 말도 안되는 쌩구라나 퍼뜨리고 다니지 말고, 제대로 자료와 고증, 검
증으로 승부할 수 있는 이 좋은 무대를 놔두고 왜 바깥에서 침만 뱉고 있는다는 말입니까?
첫댓글 KWEASSA님의 글을 읽다보면 등줄기에 서늘~한 것이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앗흥)
간단합니다 이기지 못할 싸움은 피하는거져^^;; 굳이 정면대결하지 않고 인터넷으로 대충 어려운 말써가면서 그럴싸하게 써도 넘어갈 사람은 넘어가고 있으니까여
ㄷㄷㄷㄷ;;;;;;
크웨사님 귀찮으실텐데 좋은 글 감사합니다~!!
혹세무민 문건 하나 박살내셨습니다 .. 참 귀찮으셨을텐데 오죽 짜증이 나셨으면 ..
성실하시네요....정말로..'ㅅ'/ 특히 마지막 문단..원츄
좋은일 하셨습니다...민족주의자를 자처하는 극우 파시스트, 속칭 환빠들의 말을 듣다보면 정말 혹세무민이란 말이 어울리지요...그런데 왠지 요즘 들어 부쩍 환빠류의 글이 많아진듯한 느낌이...이러다 디시 역갤 꼴 나는거 아닐지 모르겠네요.
KWEASSA 횽님 무섭다...ㄷㄷ 화많이 나셨나부다. 근데 KWEASSA 이걸 어떻게 읽어야하나 다음에 쳐봤더니 KWEASSA 본좌님의 일부의 역사가 공개되는군여. 다채로운 곳에서의 강인한 인상이라 ㄷㄷ... 무섭돠
가끔가다 일본 애들이 조선을 고려라고 부르는 경우는 있지만 그걸 가지고 조선이 고려를 이었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ㅡ.ㅡ;;;
뱀발: 자기가 독학해서 배운 물리학으로 물리학과 게시판을 떠돌며 시비 거는 인간이 한둘이 아닙니다...우주의 이치 어쩌구 하면서 자랑스럽게 논쟁하고자 하지요. 물리학자들은 이런 사람들이라면 학을 뗍니다.
웃.. 그건 처음 안 사실이네요...! 그런데 어떻게 물리학과 같은 학문 분야에 그런 설레발이를 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건가요? 물리학은 딱 상황과 조건에 따라 수리식을 통해 해답이 극명하게 나오지 않나요??
크베사 / 천부당 만부당 하십니다-_-;; 비록 제가 전공이 화학이고 수학과는 친분이 없는 관계로(..) 물리학은 잘 모릅니다만. 여러가지 이론들이 혼재해서. 무식한 표현으로 [입가진 사람들은 다 떠드는]상황이기 때문에 꽤 재미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초끈(super-string)이론 같은것 이지요. 초끈이론 대로라면 모든 물질은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기 대문에 빅뱅이론과 반하게 됩니다;;(대충 제가 알기로는 말이죠) 사실 기백년전의 물리학계가 에테르냐 파동이냐를 놓고 싸우던 물리학계나 오늘날의 물리학계나 싸우는건 똑같아요. 심지여 뉴턴은 물론 아인슈타인의 이론들도 이리저리 까이고 있는 판이니까요=ㅅ=;;
양자역학과 우주물리학쪽에 그런 분들이 계시죠. 물리학도 항상 논쟁적인 부분들이 있거든요. 마치 영구기관 계속 시도하시는 분들이 있듯이. 그런 분들 게시판에 찾아오시면 그냥 직접 방문해주십사라고 말합니다. 차 한 잔 하면서 직접 의견을 듣고 싶다고. 여태 찾아온 인간을 못 봤습니다(직접 올 정도로 자신있는 사람이라면 들어주고 싶더군요;;).
그 중 한 명을 소개할까요? http://blog.naver.com/mindbank 입니다. 나름 대단하시더군요.
얼레리..님이 알려주신 네이버 블로그에 가봤더니 참으로 대단하더군요. 말도 안되는 사실을 어떻게 저렇게 장황하게 연결에 연결을 거듭해서 장황하게 써낼 수 있는지.. ㅎㅎ 첫페이지에서 가장 압권인 내용은 '만유인력을 단지 지구상의 공기가 내리누르는 힘일 뿐이다'라는 글입니다. 게다가, 갑자기 지동설이 맞냐로 넘어가는 스킬에는 당할 재간이 없더군요. 살포시 x를 눌렀습니다.
얼레리/오존층이 대기가 지구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는다고? ㅇㅈㄴ
좋은 글에다 좋은 블로그까지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씩 미몽에서 깨어날 수 있도록 멋진 글 계속 부탁드립니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유라시아대륙거의 전체가 환국의 지배영역이었으니 환단고기가 맞다면 삽들고 열심히 파보면 나올듯...지금이라도 삽이랑 곳갱이들고 열심히 파보셈...가림토도서관이라도 하나 발견해서 환단고기내용과 세부적으로 달라도 본질적으로 일치하면 만장일치로 환단고기 인정.
그런데 환국의 쫄따구에 불과했던 수메르에서는 대규모유적이 발견되고 또 문서(점토)가 수십만개(40만이상) 발견됬고 또 이집트나 이탈리아,터키처럼 환국과 비교도 안되는 촌구석에선 너무 유적이 많이 발견되서 건솔공사에 지장을 줄 정도인데 왜 환국에선 하나도 발견안되는거지?
20세기토목공사는 너무 심해서 러시아추운곳 빼놓고 유라시아대륙에서 안 파헤친 곳이 없을 정도인데 왜 환국유물은 하나도 발견이 안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