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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의 가곡 <마왕>과 연가곡 「아름다운 물레방앗간 아가씨」를
통해 본 19세기 독일 소시민의 사랑과 비애
박 종 문(전 대구가톨릭대학교 음대교수)
흔히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31~1828.11.19,오스트리아 작곡가)는 ‘가곡의 왕’이라 일컬어진다. 사실 슈베르트는 낭만주의 시대 독일 가곡의 초석을 마련하였을 뿐 아니라 그 뒤의 모든 가곡 작곡가들에게 모범이 될 만한 훌륭한 작품들을 만들었기 때문에 명실공히 가곡의 왕임에 틀림없다. 당대의 최고 작곡가로 군림했던 베토벤도 슈베르트의 작품을 접하고 “슈베르트의 음악에서 화성은 선율의 핵심에 닿아 있다. 이 음악 속에는 천재의 섬광이 번뜩이고 있다”라고 극찬한 적이 있다. 이 선율에 어떤 화성을 붙이면 그 선율에 내포된 암시적인 화성적 울림을 가장 정확하게 포착해낼 수 있을까라는 모든 작곡가들의 근본적 숙제 앞에서 슈베르트는 화성의 왕인 베토벤 교수로부터 A플러스 학점을 받은 셈이다.
그런데 가곡에는 순수한 음악적 요소 외에 가사라는 문학적·언어적 요소가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다. 대부분의 가곡 애호가들에게 가사는 가곡 감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가곡 작곡가에게 있어서도 어떤 가사를 채택하여 가곡을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 작품의 성공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슈베르트도 친구의 집에서 서정시인 빌헬름 뮐러의 연작시(連作詩) 「아름다운 물레방앗간 아가씨 Die Schöne Müllerin」을 읽고서 문득 영감을 얻은 듯 그 시집을 빌려 들고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와 가곡 작곡에 착수했다고 한다(1823). 독자 여러분들은 슈베르트 연가곡 「아름다운 물레방앗간 아가씨」나「겨울나그네 Winterreise」의 앨범 자켓에서 다음 초상화를 가끔 보셨을지 모르겠다.
이 초상화를 처음 접한 사람들 중에는 가끔 이 그림이 슈베르트의 소년 시절 모습을 그린 것인가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기실이 초상화의 주인공은 바로 연가곡집「아름다운 물레방앗간 아가씨」와「겨울나그네 Winterreise」의 작사가인 시인 빌헬름 뮐러(Wilhelm Müller,1794.10.7.~1827.9.30.)이다. 그의 생존연대를 보면 슈베르트보다 3년 일찍 태어나 1년 먼저 타계했으니 향년 33세로 31세인 슈베르트보다 겨우 2년 더 살았고 모차르트보다는 2년 더 짧은 단명한 생애를 살았다. 뮐러는 우리나라 현대 서정시인인 소월 김정식(1902~1934)과도 서정 시인이라는 점에서나 그 단명했던 생에 있어서 매우 흡사한 사람이라 하겠다.
슈베르트와 뮐러는 모두 여리고 수줍고 지극히 내성적이고 감수성이 예민한 청년들이란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한 가지 생애 행적상의 상반된 궤적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다. 뮐러는 1813년에서 1814년 사이에 프러시아 군대에 지원병으로 입대하여 나폴레옹 군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민족봉기적 성격의 전투에 참전한 적이 있었는데, 이와 정반대로 슈베르트는 1820년에 자신을 포함한 다섯 명의 동지회—뜻을 같이 하는 예술가와 청년 학생들의 모임으로서 후일 사가들에 의해 슈베르트 동아리(Schubertiaden)라고 불리기도 했음—가 나폴레옹의 혁명이념에 동조하고 젊은이들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비엔나 경찰청의 수배검거령을 받고 한동안 쫓겨다니는 신세가 되었고, 그 중 한 친구인 요한 젠은 실형을 받고 1년 이상이나 수감되었고 그 후 비인에서 영구 추방되기까지 하였다. 나머지 네 사람은 엄중 견책을 받는 선에서 끝나고 별 일은 없었지만 후일 슈베르트는 고초를 겪은 친구 젠의 시에 노래를 작곡해 바치기도 하였다.
민족의 입장에서 나폴레옹에 맞서 싸웠건 자유와 혁명의 편에 서서 나폴레옹을 옹호했건 간에 피끓는 20대 청년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일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보이고 이를 가지고 보수-진보로 성향을 나누기에는 그들 사이에 기질적·정서적인 공통점이 훨씬 많았다고 생각된다. 어쨌건 슈베르트는 1823년 그의 나이 26세 되던 해에 데사우 태생이며 베를린 대학 출신인 서정시인 빌헬름 뮐러의 시집과 운명적으로 조우하게 된다. 슈베르트가 친구의 집에서 뮐러의 시집을 발견한 것은 그 해 4~5월로 추정되고 그 시들을 노래로 만드는 작업에 몰두한 것은 같은 해 5월에서 9월 사이라고 한다. 이 연가곡집은 이듬해 1824년에「아름다운 물레방앗간 아가씨, 빌헬름 뮐러의 시에 붙인 연작가곡집 Die Schöne Müllerin, ein Zyklus von
Liedern, gedichtet von Wilhelm Müller」이란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이 연작시의 내용을 요약하면 물방앗간 도제(徒弟)가 되고 싶은 한 청년이 부푼 꿈을 안고 발걸음도 가볍게 “방랑은 물방앗간 일꾼의 즐거움”(제1곡 방랑 Das Wandern)이라고 노래부르며 길을 떠난다. 가는 길에서 마주친 시냇물의 졸졸 흐르는 소리도 반갑고 소중하여 “시냇물아! 넌 어디로 흘러가니?”라고 다정하게 묻기도 한다.(제2곡 어디로? Wohin?) 슈베르트는 서양음악의 음회화(tone painting)의 전통을 따라 가곡의 피아노 반주부에 사물의 모양과 소리를 생생하게 묘사하는 음형을 가끔 사용한다. 제1번곡 “방랑”의 반주는 청년의 힘찬 발걸음을 묘사하는 것 같기도 하고 물레방앗간의 방아 찧는 소리를 그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제2번곡 “어디로?”의 반주 음형은 시냇물의 졸졸졸 흐르는 소리와 굽이쳐 흐르는 형상을 방불하게 한다. 또 이 곡의 화성을 가만히 살펴보면 가사와 선율의 진행에 따라 암시되고 변화하는 분위기의 미묘한 변화와 뉘앙스를 참으로 절묘하게 표현하고 받쳐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길 가던 청년은 한 군데 마음에 드는 물방앗간을 발견하여 멈춰 선다.(제3번곡 정지! Halt!) 청년은 자신을 안내해준 시냇물에게 감사하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어여쁜 물방앗간 집 딸이 혹시 나에게 마음이 있어 그러는 건 아니냐고 시냇물에게 물어본다.(제4번곡 시냇물에 대한 감사 Danksagung an den Bach) 이제 도제로 취직하여 일을 해보지만 몸이 약한 청년에겐 일이 힘겹기만 하다. 힘든 일이 끝나고 쉬는 저녁 청년은 “만일 천 개의 팔을 가진 것처럼 내가 힘이 세다면 물레방아도 내 손으로 돌리고 장작도 많이 패어 놓고 돌자갈들도 말끔히 치워 놓았을 텐데, 그러면 우리 아가씨가 나에게 반하게 될지도 모르는데”라고 중얼거린다.(제5번곡, 일 끝난 저녁 Am Feierabend)
또 청년은 아가씨가 날 좋아하는지 아니면 무관심하거나 싫어하는지를 꽃과 별이 아닌 시냇물에게 끝없이 물어보기도 하고(제6번곡,물어보는 사람 Der Neugierige
), 초조한 마음으로 아가씨는 내 것이라고 돌과 나무와 꽃밭에 새기기도 하고 내 마음은 아가씨 당신 것이라고 속으로 외쳐보기도 한다.(제7번곡, 초조 Ungeduld) 그리고 아가씨가 잠시 자기에게 친절을 보이자 아가씨도 자기를 사랑한다고 여기고 반가운 아침인사를 건네고(제8번곡, 아침 인사 Morgengruss), 예쁜 꽃을 그녀의 방 창문 아래에 심어주고 그녀의 안녕을 빌기도 한다.(제9번곡, 물방앗간의 꽃 Des Müllers Blumen) 행복감의 절정에서 그녀는 내 것이라고 크게 외쳐보기도 한다. 시냇물아, 물레방아 바퀴야, 크고 작은 새들아, 너희들 노래를 잠시만 멈춰 보렴. 이 골짜기를 통털어 오늘은 오직 한 노래만 울려 퍼지게 하고 싶구나. 저 사랑스런 처녀는 내 것, 내 것이라고.(제11곡 내 것! Mein!)
그러나 이 반쪽짜리 행복마저 순간에 지나가버리고 무서운 연적이 될 사냥꾼이 출현한다.(제14번곡, 사냥꾼 Der Jäger) 튼튼하고 잘 생기고 용맹한 사냥꾼 때문에 청년의 마음에는 질투의 불길이 타오르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제15 번곡, 질투와 자존 Eifersucht und Stolz) 청년은 아가씨가 자기에게 건네준 꽃들이 시들어감을 안타까워하며 그 꽃들이 자기가 죽어 묻힌 묘지 위에 다시 피어나 아가씨가 날 기억하게 해달라고 서럽게 빈다.(제18번곡 시든 꽃, Trokne Blumen) 물레방앗간 도제 청년은 불쌍한 자신의 처지를 두고 시냇물과 대화를 나누지만 거기엔 비탄과 눈물 밖에 없다.(제19번곡, 물레방아 청년과 시내 Der Müller und der Bach)
"시냇물아 난 고요함 속에 빠져들 테니 넌 날 위해 노래불러 다오“ 드디어 청년은 시냇물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시냇물은 가련한 청년을 위해 “이제 고단한 방랑과 힘든 사랑을 모두 끝내고 달콤한 꿈을 꾸며 깊이깊이 잠들라”고 위로의 자장가를 불러준다.(제20번곡 시냇물의 자장가 Des Baches Wiegenlied)
슈베르트 동아리의 문예 청년들은 모차르트, 베토벤과 마찬가지로 자유, 평등, 박애의 기치를 높이 세운 프랑스 혁명의 이념에 깊이 공명하고 높이 고무되었지만 강고한 귀족, 왕족들의 보수 세력에 밀려 혁명의 불꽃이 사그러드는 아픈 좌절의 체험을 겪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정치적 현실의 세계로부터 애써 도피하여 은둔과 방랑과 연애와 같은 낭만적·비현실적 세계로 숨어들어갔지만 그 곳에도 행복이나 궁극의 안식이 없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인간들의 보편적 운명의 사실이었으니 여기에서 우리는 슈베르트와 뮐러와 물레방앗간 청년과 베를리오즈와 슈만 같은 낭만주의 열혈 청년들의 영전에 한줌 뜨거운 눈물을 뿌리는 바이다.
가곡 <마왕Erlkönig>은 슈베르트가 1815년 괴테의 시를 보고 영감을 얻어 18세의 나이에 작곡을 하였으나 그 후 세 번의 수정을 거쳐 1821년에 가서야 비로소 그의 작품번호 1번으로 발표하였고 후일 도이치(Otto Erich Deutsch, 1883~1967
오스트리아 음악학자)가 1951년에 정리한 슈베르트 작품 목록 안에서는 D.328번으로 정착되었다. 이 곡은 1820년 12월 1일에 비인의 한 사적 모임에서 초연되었고, 이듬해 1821년 3월7일에 비인의 캐른트너토르(Kärntnertor) 극장에서 공식 초연을 가졌다.
괴테는 덴마크의 민속 설화에 나오는 ‘마왕의 딸 Elfenkönigs Tochter’을 소재로 해서 ‘마왕’이란 시를 썼는데 원래 설화에서는 악역이 ‘요정들의 왕의 딸’이었지 마왕 자신이 주역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원 설화에 나오는 마왕의 딸은 그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람(젊은 남자)을 유혹하고 질투와 복수욕에 들끓는 악녀 캐릭터였다고 한다. 괴테가 이 시를 쓰게 된 것은 어느 늦은 밤에 친구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 가는 길에서 어둠 속의 한 남자가 팔에 보따리 하나를 둥쳐 안고 말을 타고 무섭게 질주하여 성문을 통과하는 모습을 본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괴테와 그의 친구는 동네 사람들한테서 어제 밤에 말을 타고 간 그 남자는 자신의 어린 아들의 급환을 치료하기 위해 의사에게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라는 말을 전해 듣게 된다. 괴테는 이 사건에서 어떤 영감을 얻어 <마왕>이란 시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이 죽을 때에는 저승에서
조상이나 그 누구가 찾아와서 불
러가기 때문에 죽게 된다는 이야
기는 우리가 아직 죽음과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는 미신으로 치
부하고 콧방귀 뀔 수도 있지만 막
상 나이들고 병들어 죽음에 가까
워지면 정말 그런가 싶어지는 무
섭지만 외면할 수 없는 이야기이
기도 하다.
캄캄하고 바람 부는 어느 날 밤
한 사나이가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말을 달린다. 질주하는 말발굽 소리는 오른손으로 치는 옥타브 3연음의 강력한 연타음으로 묘사되면서 몹시 불안하고 급박한 정황을 나타낸다. 사나이는 사랑스런 어린 아들을 가슴에 꼭 붙여 따뜻하게 끌어안고 말을 달린다. 반주의 베이스 파트에서 간헐적으로 상행하는 3연음은 공포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린 아이의 살려달라는 비명소리는 반복될 때마다 점점 커지고 음역이 높아진다. 마왕이 아이를 유혹하며 “저기 저 곳에 꽃피고 아름답고 즐겁기만 한 동산에 나랑 함께 가서 먹고 마시고 춤추며 놀자! 내 예쁜 딸도 널 기다리고 있어”라며 달콤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는 분산화음 3연음으로 지극히 우아하게 반주된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자지러지는 비명으로 “아빠! 나의 아빠! 마왕이 나를 데려가려고 해요. 제발 절 구해 주세요”라고 간절히 애원하지만 마왕이 눈에 보일 리 없는 아빠는 “그건 나무 그림자요 바람 소리일 뿐이지 마왕은 없어, 애야 제발 진정해!”라며 그저 달래기에 급급하다. 곡이 종결부에 이르러며 아버지는 말을 더욱 채찍질하여 더 빠르게 달려가지만 드디어 목적지에 당도할 즈음 피아노는 갑자기 조용해지고 “그의 팔 안의 아이는 죽어 있었다 In seinem Armen das Kind war tot”라는 섬뜩한 레시타티브를 마지막으로 반주는 극적인 정격 종지(딸림화음→으뜸화음)로 곡을 마감한다.
전쟁과 병마가 사람들의 삶을 끝없이 위협하고 특히 의학의 미발달로 영유아 사망률이 매우 높았던(슈베르트만 하더라도 14명의 형제들 중 살아남은 5남매의 하나였음) 18세기 유럽의 삶을 생각하면 자식의 병고를 애처로워 하고 그 죽음을 두려워하는 부모들의 심정은 비단 <마왕>이란 가곡을 들어보지 않더라도 충분히 상상되고 짐작 가는 바이나 슈베르트의 가곡 <마왕>은 아들의 죽음을 뻔히 눈뜨고 속절없이 지켜봐야만 하는 어느 아버지의 처절하고 비극적인 심정을 다만 한 곡의 노래를 통해 그 어떤 소설이나 영화보다도 더 절실하게 표현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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