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자락이 보이는 제방 끝에 현풍 석빙고가 있었습니다.
경주 석빙고, 창녕 석빙고를 전에 본적이 있고, 마지막으로 현풍 석빙고를 지난해 찾게됐습니다.
1730년 영조때 만들었다고 합니다. 산 바람과 하천 바람에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위치였어요.
석빙고 문은 꼭 닫겨있었습니다.
전국적 체인으로 유명한 이집을 찾아 양곰탕을 먹었습니다. 언젠가 신문에서 원조 다툼의 송사가
있다는 뉴스를 읽었었는데, 비슷한 이름의 현풍 곰탕 원조집이 있었지만, 이 집이 진짜 같았습니다.
외아들이 가업을 이어 운영한다고 적혀있더군요..
창녕군 우포 늪을 찾아가는 길목에 '석동' 마을이 나옵니다.
창녕 성씨 종가 마을로 깨끗한 화장실과 주차장까지 잘 갖춰져 있습니다.
이 석동마을은 지난 53년 일본에서 양파씨를 가져와 창녕에서 처음 재배한 것으로 알려진
성재경 선생의 생가도 포함돼 있습니다.
古家입구 주차장 옆에는 양파시배지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곳에서 우리나라최초로
양파가 재배되었으며, 창녕을 양파의 본향으로 만든 발상지라 하겠습니다.
이 유래비에는 1909년 이곳 창녕군 대지면에서 성재경씨의 조부 성찬영선생이
양파 재배에 성공했다는 글이 나와있군요. 6.25전쟁후 피폐해진 농민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고저 손자 성재경씨가 본격적으로 나섰던 것 같습니다.
창녕이 최초 경작지이자, 최고 품질의 양파 생산지라고 합니다.
답사 버스 한대가 먼저 와서 답사객들이 이집 마당에 머물며 풍수 강의와 고건축 강의를
들은후 떠나갔습니다. 얼떨결에 버스 따라 들어왔는데...이 집이 성재경선생 가옥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성부자집’으로 통하는 창녕성씨 가문의 종가
"이 집... 김정일의 첫 여자인 성혜림도 시아버지 김일성에게 인정받지 못하면서 한 번도 얼굴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녀는 잘나가던 영화배우였다. 김정일은 60년대 말 친구의 형수 성혜림을
강제로 이혼시켜 동거에 들어갔다. 다섯 살 연상이었다. 절대권력을 물려받게 될 후계자 김정일의
사랑은 불같았다. 71년 5월 첫 아들 정남을 낳자 김정일은 새벽길을 벤츠로 달려와 들뜬 목소리로
“혜림이가 아들을 낳았어”라고 알렸다는 게 언니 혜랑(유럽으로 망명)씨의 말이다. 하지만 사랑은
얼마 가지 않아 식었다. 결국 성혜림은 우울증과 심장병에 시달리다 모스크바에서 쓸쓸하게 숨을
거두었다."

모스크바 트로예쿠로프스코예 묘지 성혜림 묘
성혜림은 1996년 언니 성혜랑과 그의 딸인 조카 리남옥과 함께 신병치료차 머물렀던
모스코바를 떠나 스위스로 나온 후 잠적했다가 다시 모스코바로 되돌아갔다.
불행한 세월을 보낸 성혜림은 2002년 5월 모스코바 한 병원에서 ‘오순희’라는 가명으로 치료받다 사망했다. 모스코바 온 지 28년이 되던 해로 당시 나이는 63세. 성혜림은 모스크바 서쪽 트로예쿠롭스코예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의 아들 내외가 묻힌 무덤 곁에 자리하고 있다. - jbc@focus.kr
아주 오래전 우포 늪으로 가면서 황페한 이집을 본적이 있었습니다. 많은 가구가 종가집을 나눠 살고
있는 그 큰집의 인상을 차찯 밖으로 기이하게 봤던 기억이 납니다.
경상남도 지정문화재 제355호로 지정된 창녕석리 성씨고가(昌寧石里 成氏古家)
성씨 고가는 1850년경 이곳에 터를 잡은 입향조 성규호(成圭鎬)가 지은 집인데, 최근들어 이 집이
유명세를 타게 된 동기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처 성혜림이 어린시절을 이 집에서 보낸 것이
알려지면서부터라고 합니다. 투철한 반공정신의 냉전논리가 지배하던 시절에 이 지역 사람들은
성혜림이 이곳에서 자랐다는 것을 알리기 싫어하였답니다. 그러다가 90년대 김일성 사망 이후에
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여 세인들의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성혜림의 부친 성유경은 남로당 재정국장을 역임하다 부인 김원주(개벽 잡지 여기자)씨와 성혜랑,
성혜림 두딸을 동반해 월북했습니다. 외아들 성일기씨만 남한에 남겨졌다고 합니다.
첫댓글 와 ㅡ책 한권을 단숨에 읽고 난 느낌 입니다 긴 글 인데도 마치 여행 하듯이ㆍㆍ외가에서 그리멀지 않은 곳이라 더 솔깃 했고 정리를 넘 잘 해주셔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송자아우님... 외가에서 가까운 곳이었군요...참 반갑습니다...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그곳에는 어떤 불행한 여자의 역사적인 한면이 있었네요.
예, 성혜림 형제들은 서울 재동 현대사옥 뒷쪽 집에서 학교를 다녔다고 하는군요.
방학에 창녕 큰아버지 댁으로 갔었다고해요.. 똑똑한 엄마에 예쁜 딸들이 오면 동네가 시끄러웠던
모양입니다..
시댁이 창녕 남지라도 바쁘게 다녀오느라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몇 년 전에 우포늪은 친구들과 가봤습니다.
남지는 우리 큰고모가 사시던곳...
아버님 별세로 마음 아프시겠습니다....
금지님 글 ,화보 는 멋져요. 국내에도 이렇게 볼거리가 많지요
성씨 가문의 역사가 가슴 아프네요.
....
우리나라의 비극의 한 점이 이 집에서 자란 한 미모의 여인이라니
사랑 받던 아들 김정남의 죽음은 또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예, 참 안됐어요.. 김정남 외삼촌 전화 인터뷰를 보니, 많이 애석한듯... 이한영도 까불다 죽더니
정남이도 죽은듯이 살지 왜..하는 반응을 보였더군요. 처음 봤는데, 80대지만 이 외삼촌의 늙은 사진도
꽃미남 타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