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여행] 수흐바타르광장[구 칭기즈칸 광장]차 없는거리.............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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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성급 더 블루 스카이 [높이 105m]호텔(The Blue Sky Hotel and Tower)이다.
우리나라 건설 업체가 100% 투자해 지은 건물로 울란바토르 수흐바타르 광장에 자리한 호텔로 명실상부 울란
바토르의 랜드마크로 통한다. 23층 라운지 바에서 바라보는 시내 야경은 아름답기 그지없는 황홀 그 자체! 이다.
혹여 울란바토르를 방문할 계획이 있으면 라운지 바에가서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시원한 맥주도 한잔 하면서 울
란바토르의 황홀한 야경도 구경 하기를 추천 하는 바이다. 현재는 몽골업체로 넘어간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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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여행] 수흐바타르광장[구 칭기즈칸 광장]차 없는거리.............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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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無十日紅 人不百日好[화무십일홍 인불백일호]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꽃은 열흘 붉은 것이 없고, 사람은 백일을
한결같이 좋을 수 없다. 꽃은 제아무리 예뻐도 열흘 피지 못하고, 권력이나 부귀영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세상살이가 변화무상하여 영원한 것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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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것은 피는 대로 지는 것은 또 그대로 그 본래의 모습으로 봐 주려는 마음으로 족하다. 삶 또한 다르지 않다.
지금의 힘든 시기가 영원하지 않을 것이고, 돈방석에 앉아 있다고 한들 그것 또한 영원할까. 인생사 새옹지마!
꽃피고 새우는 봄이 지나고 이젠 앞산 뒷산에도 짙어지는 녹음 아래 습열을 피해 더위 식히는 사람들만 가득한
시절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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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향기를 짙게 풍겼던 분, 살 냄새 풍기던 찔레꽃은 사라지고 기울어진 계절 유월을 지나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는 칠월이다. 무정세월 속에서도 녹음 짙은 망초 꽃이 흐드러진 계절 사이로 하늘거리고 까치는 밤새 구슬
프게 울어 대더니만 똑똑똑 아침을 깨우는 소리에 눈 뜨고 바라본다. 그래도 왜 눈 뜨느냐고 눈텡이 안 맞아 다행
인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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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 굽이진 인생 여로를 따라 처음으로 가고 있는 길, 인생 旅程[여정]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짐들은 등짝에 땀이
배지 않게 힘들 때마다 쉴 때마다 하나씩 내려놓고 갈 때이다. 계절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 가슴에 새겨진 씁쓸
하고 달콤한 추억들은 나만의 태피스트리에 금실 은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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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리는 이 여정을 통해 성장하고 배우며, 기록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 갈것이다. 그동안 욕심
으로 가득한 것들 또는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쓸데없는 짐들을 모두 지고 바보스럽게 끙끙거리지 말
자. 여정은 짧고 소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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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정에 세월이 나를 강제로 걷게 한 의미를 생각하며 나 당신의 그 향기로운 품에 안겨 온 세상을 바라보고 싶
어진다. 풀잎에 뉘인 슬픈 그리움 하나가 잊지 못할 옛 시인의 노래 따라 애달픈 사랑에 여운 그림자가 앞을 가로
막는 시절에 유랑자는 미지의 땅 몽골의 한 복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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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중국에 세웠던 원[元]제국은 티베트 불교를 받아들였다. 몽골제국이 무너지자 몽골족들은 다시 자기들
의 고대 신앙체계인 샤머니즘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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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의 중심부에 있는 거대한 “수흐바타르”광장. 이름은 현대 몽골의 공산혁명가 및 독립 운
동가였던 “담딘 수흐바타르”에서 따 왔다. 1921년 7월 울란바토르[울란바토르 도시명은 수흐바타르 사후에 변경]
에서 담딘 수흐바타르가 중국[1911년 청나라 멸망]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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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딘 수흐바타르는 30세이라는 젊은 而立[이립]의 나이에 군인으로서 몽골의 독립을 위해 몽골 역사상 복드 칸국
의 마지막 대칸인 복드~칸[티베트인]을 도와 독립을 위해 힘썼던 사람이다. 그는 인민혁명당을 조직하여 현재의
몽골 국회의 정당 중에 하나인 인민당을 있게 한 사람이다. 수흐바타르 그는 1923년 30세의 젊은 나이에 갑자기
병사했다. 1946년 사회주의혁명 25주년에 그를 기념하기 위해 광장이 지어지고 중앙에 그의 동상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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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장의 주인공인 담딘 수흐바타르의 동상은 광장 가운데에 있다. 담딘 수흐바타르는 1923년 30세의 젊은 나
이에 갑자기 병사했다. 1946년 사회주의혁명 25주년에 그를 기념하기 위해 광장이 지어지고 중앙에 그의 동상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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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이 몽골의 마지막 복드-칸의 주치의가 의사 출신의 독립 운동가였던 우리나라 이태준이었다는 사
실이다. 이런 인연 때문에 몽골인 들이 우리 대한민국을 형제의 나라로 이야기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태준의
이야기는 다음에 그의 기념관을 들릴 예정이어서 그때 다루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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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어느 국가의 민족이든 다 같은 역사의 길을 걷기는 하지만 여기 광장 이름역시 담딘 수흐바타르 와 연관
되어 있다. 그 일화 또한 재미있다. 담딘 수흐바타르가 이 도시로 개선할 때 말이 지금의 동상 자리에 오줌을 쌌
고, 이걸 길조로 여긴 몽골인 들이 그 자리에 말뚝을 박아놓았는데, 후에 도시정비사업을 하면서 이 말뚝이 발굴
되어 말뚝이 있던 곳에 수흐바타르 동상을 세워두고 그 동상을 중심으로 광장을, 광장 북쪽에 몽골 국회의사당을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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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에 있는 큰 동상이 칭기즈칸(Chinggis Khaan)이고 건물 좌.우 맨 끝 좌측 동상은 그의 아들 2대 칸 오고타
이칸(Ogedei Khaan)이며, 우측 맨 끝 동상은 그의 손자이자 5대 칸으로 원나라 초대 황제인 쿠빌라이칸(Kublai
Khaan) 이다. 사실 저 동상들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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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칭기즈 칸의 동상과 칭기즈 칸 양 옆의 기마상은 사준사구[칭기즈 칸을 도와 몽골 제국을 건국한 8명의
개국공신] 의 멤버중 전락가 보오르추 와 전락가 무칼리이다,
四駿.四狗[사준사구]란 네 마리의 준마와 네 마리의 충견 이라고 한 것에서 유래한다. 일명 살육기계라 하여 말과
개에 비유될 만큼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백정으로 칭기즈 칸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수많은 공을 세운 인물들이
었으며, 그만큼 몽골 제국내에서 그들의 위치는 칭기즈 칸 외에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확고부동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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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몽골이 민주화된 이후 그 전에는 금기시되었던 몽골 민족주의가 다시 뜨기 시
작하면서 수흐바타르보다 칭기즈 칸을 더 높게 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2012년에 민주당이 시의회 선거에서
다수를 차지한 이후 시의회 결의를 통해 광장 이름을 2013년에 칭기즈 칸 광장으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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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공산주의 시절 유일정당이자 현재에도 유력 정당인 몽골 인민당의 큰 반발을 샀고, 인민당은 해당 명칭 변
경이 법적 하자가 있다며 행정법원에 제소했다. 2016년에 행정법원은 해당 명칭 변경이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렸
으며, 이에 따라 명칭도 수흐바타르 광장으로 다시 환원되었다. 어느 국가를 가든지 인간이 존재 하는 한 대립과
갈등과 反目[반목]현상, 그~넘의 정파 싸움은 늘상 존재하는 법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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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준[四駿, 전략가형]잘라이르 무칼리, 후신 보로클, 아를라트 보오르추, 술두스 티라운
*사구[四狗, 전투형]우량카이 젤메, 우량카이 수부타이, 베수드 제베, 바를라스 쿠빌라이 여기에 오로오드 주르체
데이, 망고드 쿠일다르의 이첨(二尖. 두개의 창)를 더해서 칭기즈 칸 10장수(10훈)라 하기도 한다. 물론 전락라고
해서 전투를 안하는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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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은 정부청사이자 국회의사당으로 몽골은 현재 이원집정부제여서 총리가 행정부의 수장인데, 총리실, 대통
령 집무실, 국회와 국회의장실이 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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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는 말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거부터 현재까지 승자 중심의 역사가 펼쳐지면서 弱
肉强食[약육강식]과 優勝劣敗[우승열패]의 사회는 변하지 않고 더 확대되고 있는 현실은 결국은 다 같이 망하는
꼴을 우리는 역사에서 많이도 보고 배웠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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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政者正也[정자정야]’를 부르짖는 지도자는 없는 것일까? 對立[대립]과 葛藤[갈등]과 反目[반목]은 무너질 망
국의 이유가 된다는 시실을 아는지 모르는지…….아무튼 ‘수흐바타르’ 광장은 오늘이 일 년 중 딱 하루 차 없는 날
이라 하여 광장 주변을 완전 차량 통제로 인해 자유의 거리가 되었다. 그야말로 몽골 인구가 다 모인 것 같은 人山
人海[인산인해] 각종 공연과 축제 놀이등 시끌벅적 신나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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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가나 한류의 열풍 K팝을 열심히 따라는 몽골 젊은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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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토르의 중심에 자리한 수흐바타르 광장은 몽골의 정치적이고 예술적인 중심으로 기능하는 거대한 갤러리
같았다. 몽골인 들에게 있어서 이 광활한 광장은 몽골 독립투쟁광장으로 역사와 상징주의에 깊이 빠져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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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수흐바타르 광장은 몽골 역사에서 여러 중요한 사건들이 벌어진 장소로서 엄청난 양의 문학적 의미를 지니
고 있을 뿐만 아니라 1921년 수흐바타르와 몽골인민당이 주도한 인민혁명의 현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광장
은 몽골의 주권과 적응력을 증명하는 광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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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흐바토르광장은 1921년 몽골의 독립혁명가 수흐바토르가 몽골의 독립을 선포한 역사적인 장소다. 전형적인
사회주의 색채를 띠는 광장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정부청사, 동쪽에는 문화궁전, 남쪽에는 오페라극장이 자리한
다. 인근에 외교부, 사원, 박물관 등 도시의 주요시설이 밀집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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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은 각각이 광장의 위엄과 매력은 다양한 건축적 경이로 장식되어 있다. 당연히 광장의 중심에는 몽골의 역사
를 영원히 잊지 않으려는 듯 말 위에 탑승한 담딘 수흐바타르의 장엄한 조각상이 있다. 그 조각상을 둘러싼 주요
건물로는 국회의사당 겸 정부청사 겸 총리와 대통령 집무실인 국가궁 과 오페라 발레 극장, 공산주의 시대의 문
화궁전, 몽골에서 제일 높은 블루 스카이 빌딩, 몽골 국립역사박물관 등이 있으며 인근에는 각 국가들의 외교부,
사원, 칭기즈칸 박물관 등 도시의 주요시설이 밀집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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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은 몽골의 풍부한 예술적 유산과 진보적인 정신을 반영하고 있었다. 또한 수흐바타르 광장은 국가 행
사, 집회, 예술적인 행사, 축제 및 공공 모임의 활기찬 장소로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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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영 백화점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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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광장의 정부청사 한켠에 위엄 있게 앉아있는 칭기즈 칸의 동상. 칭기즈 칸 양 옆의 기마상은 사준사구[칭
기즈 칸을 도와 몽골 제국을 건국한 8명의 개국공신] 의 멤버인 보오르추와 무칼리이며, 건물의 양 끝 좌ㆍ우측에
있는 동상들은 몽골 제국의 대를 이은 아들 오고타이 칸과 손자 쿠빌라이 칸이다. 사실 저 동상들은 비교적 최근
에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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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시절에는 칭기즈 칸이 폄하되었고 함부로 말하는 것도 금기였기에 동상은 세워질 수 없었다. 현재의 동
상은 민주화 이후 국가궁을 회랑을 새로 만드는 등 증·개축하면서 세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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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四駿.四狗[사준사구]란 몽골 제국의 역사를 기록한[원조비사]에 나오는 글로“네 마리의 준마와 네 마리의
충견” 이라고 한 것에서 유래한다. 일명 살육기계라 하여 말과 개에 비유될 만큼 말할 필요도 없이 칭기즈 칸과 생
사고락을 함께 하며 수많은 공을 세운 인물들이었으며, 그만큼 몽골 제국 내에서 그들의 위치는 칭기즈 칸 외에
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확고부동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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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준[四駿, 전략가형]잘라이르 무칼리, 후신 보로클, 아를라트 보오르추, 술두스 티라운[물론 이들도 전장에 참여함]
*사구[四狗, 전투형]우량카이 젤메, 우량카이 수부타이, 베수드 제베, 바를라스 쿠빌라이 여기에 오로오드 주르체
데이, 망고드 쿠일다르의 이첨(二尖. 두개의 창)를 더해서 칭기즈 칸 10장수(10훈)라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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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공산국가 시대에 만들어진 광장이기 때문에 중국의 천안문광장이나 북한의 김일성광장과 구조가 매우 유
사하다. 칭기즈 칸과 담딘 수흐바타르는 몽골인 들이 존경하는 인물이다 보니, 이 장소도 상당히 의미가 있는 곳
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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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때도 이곳을 찾고 지방의 몽골인 들도 울란바토르에 오면 방문하는 곳이다. 지금도 몽골에선 칭기즈 칸과
담딘 수흐바타르가 모두 국가적 차원에서 영웅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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