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예정되었던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리 한참 전에 계획되었다 라고 하더라도 돌발상황이 생기면 그 약속도 물거품이 되는 법.
그래도 또 이변이 없는, 약속에 충실한 사람들은 어쨋든 떠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하여 일년에 두어번 어디론가를 함께 떠나야 하는 역마살 가득한 글쟁이들과
봄꽃의 향연을 지켜보며 시어 가득한 하룻밤을 나누기로 하고
이미 몇번에 걸쳐 동행하는 사람들을 달리하여 여러번 다녀왔던 괴산 산막이길로 향한다.
하지만 마음은 산막이길의 풍광이나 수려함에 있지 아니하고 시인이 들려줄 고향의 옛이야기....
혹은 그가 성장하던 과거와 맞물려 지나버린 시점에 마주한 현재의 심정과 과거라는 시정의 광경과 어울린 어린시절이 궁금하였다.
그리하여 새삼스레 굳이 다시 찾아보게 된 고향에 대한 가쁜 애정과 더불어 그를 되돌아보고픈 마음이 이는,
또한 살면서 다가오는 온갖 세상 파도 앞에 언어로서 자신을 표출해내는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서게 된 사연속에 감취진
시인의 내면의 소리를 듣고 싶었던 것.
시인은 걷는 내내 한발 한발 발걸음을 뗄 때 마다 뜸 들이듯이 그러나 오래도록 지난 시간을, 지난 날의 풍광과 함께 담아냈다.
행여 시인의 마음을, 소리를 놓칠새라 곁자리에 함께 걸으며 그가 조근조근 그러나 감동어린 목소리와
나지막한 숨결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함께 그 시절 그때의 장면을 그려보거나
그가 겪어냈을 그즈음 어린 시절 풍경 속으로 홀리듯이 빨려 들어갔다.
그의 고향이 되어바린 괴산, 일명 옛땡이라 불렸다는 외사리...지금은 간신히 버티고 서있는 소나무가 그의 집이었음을 알려줄 뿐
시인의 눈가에 촉촉함이 스며들고 그 시절 그때 그 사람이었을 어른들이나 친구는 이미 그곳에 없다.
겨우 산막이길을 오르며 만났던 버섯을 판다는 늙스구레한 노인네라 지칭될 친구의 어머니.
그녀는 낯선 이에겐 그저 버섯을 판매하는 노인일 뿐이지만 시인에게는 울컥 젖어드는 과거의 잔존이다.
그가 십리길을 걸어 돌아 다녔던 길은 관광지화 되어 기억 저편이지만 건너편에 남겨진 길을 따라 봄꽃이 일렁이고
1951년에 만들어진 괴산댐은 저만치 눈앞에 자신의 위용과 실체를 드러낸다.
시인의 아버지가 만드셨다는 댐은 그의 가족사에 한 획을 긋고 나서도 여전히 굳건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옛날, 우리네 가정이라는 것은 참으로 가부장적이긴 했다.
가족이라는 이름 보다는 아버지라는 이름의 실세, 권력가의 세상살이가 가정을 좌지우지하던 시절,
눈물겨운 가족사는 숱한 애환과 가슴앓이를 선사하고 족보없는 아이들을 생산해내기도 하였다.
어쨋거나 아버지의 일탈로 숱한 아픔을 견뎌야 하는 시인의 친모는 바람결에 들려온 서방의 외도에
온몸과 마음에 상채기를 입었을 것이나 표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묵묵히 죄여오는 일상을 감내하면서도 울분을 참을 수 없어 콩 타작을 핑계로 서럽게 울었을 것이다.
처음 본 낯선 광경, 그 어린 시절에 목도된 처절함으로 울어대는 어머니를 마주한다는 것은 오래도록 시인의 가슴에 멍울로 남았을 터이다.
어느 날 문득 서모라는 존재가 원치 않은 가족으로 등장하게 되고 친모에게는 감당하지 못할 분노가 자라
불현듯 괴산생활을 청산하고 어린 자식들을 이끌고 훌쩍 서울로 옮겨 갈 이유를 만들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어머니의 강력한 결단을 기점으로 시인은 서울생활을 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 단호함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지금의 시인을 만나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나즈막히 자신의 과거지사를 들려주던 시인이 슬쩍 지나가는 말로 내뱉는다...
지금도 가까이에 살아계시지만-95세지만 여전히 총명하시다고- 고향에 와서 문득 어머니가 벛꽃처럼 그립고
그의 누이들은 진달래처럼 그립다 고 한다.
알 것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시인의 일일이 거론하며 알려준 국사봉, 비학봉을 비롯한 산이름과 흙이 좋아 형제 도예가가 산다는 삼성리,
지금은 공동묘지가 가 눈에 띄지만 그 옛날에도 공동묘지 였던 그자리엔 산벛나무 울울창창하던 곳이었다고.
밤꽃마을로 시집간 누이가 15년 차 나는 어린 동생을 배웅하던 길목엔 아직도 누이의 그림자가 어른 거리고
시인의 기억에 아스라하던 기억 속 옥수수 쥐어 준 손은 어머니 손이 아닌 누이의 손이었다는....
도대체 그런 기억들이 없는 도시 태생의 쥔장에게는 꿈결같은 이야기 속의 세상일 뿐이지만
겪어보지는 않았으나 실제적 경험치처럼 공감과 추억이라는 선물보따리로 슬쩍 건네어졌다.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금물이다...거기까지.
하지만 시인은 친모에게 서러움을 유발시키던 서모에게 기꺼이 "동백꽃"이라는 시詩를 남겼다고 했고
훗날 아버지께서 하늘나라로 돌아가신 이후로 사라진 그들의 흔적을 찾았으나 끝내 찾지를 못하였고
지금도 가끔은 십년 아래 터울의 서모 딸이 궁금하다 했다.
그냥 시인은 그렇게 지난 날을 털어냈다.
온갖 회오리가 시인의 가슴에 들락날락하고 더러는 이즈음에라도 다시 고향에 찾아올 수 있었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도감과 편안함을 느끼는 듯하였다.
시인의 마을에, 시인의 정서에, 시인의 속내를 잠시 들여다 보고 시인의 아주 일부분을 이해하면서
소소하게나마 나름 시인을 조금은 더 가깝게 알 수 있었던 시간이 참으로 귀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쨋거나 시인의 미을은 다른 시선으로 남겨졌다.
한낱 관광지의 괴산 산막이길이 아닌 내가 아는 시인의 고향으로 의미가 달라진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니었던 것이 새롭게 부여된 의미로 인해 다름으로 다가온다는 것,
그래서 김춘수 시인은 "꽃"이라는 시를 쓸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동행 시인 역시 고향에서 변하지 않은 것은 들풀 밖에 없다고 하였다.....변화무쌍한 세상 속에서 불변의 진리라는 것은
기억 속에 존재하는 과거라는 이름의 추억일까?
그리고 우리는 천천히 추억의 앨범 속에서 빠져나와 현실 속으로 들어갔다.
수안보에서 점심을 먹고 시인이 마련해준 충주호가 내려다 보이는 제천es리조트에서 저녁 노을에 잠겼다.
늦도록 밤 벛꽃에 취하기도 하고 준비해간 와인 속에 빠지기도 하였으며 흐드러진 꽃길을 거닐기도 하였다.
밤새도록 온갖 이야기들을 털어내며 새삼스럽게 시요일 일원임에 자긍심을 느끼기도 하였고
각자가 읊고 싶은 시를 낭독하기도 하였다....마치 신선놀음이라도 벌인 듯하다.
암튼 우리는 詩想과 아울러 빠지지 않는 막걸리와 파김치 그리고 각자 준비한 것을 내어놓고 와인을 곁들인 잔치를 거하게 벌였다.
이른 아침은 먼 숲님 혼자 즐기고 콩나물 라면으로 아침 해장을 하면서도 여전히 전날의 잔영에 마음은 흐뭇하고
쥔장이 빼놓지 않고 들고간 커피와 보이차를 마시며 다시 한 번 삶의 여유와 아침의 신선함을 담았다.
이후에 그 유명하다던 정방사에 올라 정방사의 기운을 느끼고 멀리 보이는 충주호를 탐하다가 결국엔 충주호 유람선을 타고 한바퀴 휘리릭.
온갖 벚꽃이 흐드러진 길엔 넘쳐나는 사람과 차들로 도로가 막히고 집 나온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경악하다가 우리 역시 그렇다 고 웃.었,다.
여하튼 나름대로 눈에 담고 귀로 들으며 마음을 확장시킨 그 하루 이틀,
그렇게 1박 2일의 일탈은 근사하게 마무리 되었다....돌아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일장춘몽 꿈결같은 하루였던 것.
오래도록 시요일이여 건재하라가 되겠다.
아래 시인들의 詩를 첨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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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그림자 지고
푸른 그림자 지고
정적과 고요와 신화의 그림자 지면
거기엔 소멸과 비애와 두려움이 깃드나니
난 아침이 좋아
모두가 떠난 그 허전함과 공허 속으로
아직도 맑다 못해 쨍한 대기 속으로
바람처럼 달리며
떠난 자를 아쉬워하다.
모다 들 어딜 갔느뇨
이 청명한 공간에
산과 숲과 물의 정령들만 장난칠 상대 없이
저들끼리 심심한 유희를 하게하고
내 발걸음만 괜스레 바쁘게 하고
모다 들 떠났구나.
그래, 내가 한바탕 놀아 주마
청풍 마루 언덕에서 장엄한 일몰 뒤에
시시각각 엄숙해지는
시시각각 침울해지는 호술 위해
거침없는 영혼으로 노랠 부르며
이윽고 달을 띄워 올린다.
헤반주그레 웃는 호수
한줄기 바람을 놓아
간지럼 타는 웃음소릴 들으며
또 다시 발길을 돌린다.
난 바람처럼
화살처럼
이 어둠의 대기를 달리고 싶어
- 1998. 5.3
찾는 이 없어 점점 적막해지는
그래서 원기를 회복해 가는 충주 호반로를 달리며 -
충주호가 조성되고 한 10년 몰려드는 낚시꾼과 행락객으로 호수는 몸살을 앓았었다.
수위와, 거기 기대어사는 생명과, 환경이 차츰 안정을 찾아
고기는 씨가 말랐거나, 환경에 적응하여 깊은 물로 이동하고
‘모다 한번씩 다 가봤다.’고 사람들이 사라지니 이제 남은 건 적막뿐.
(그때는 지금의 개발 전 이주한 청풍누마루만 있었다.)
마침 IMF로 전국을 떠돌며 마음이 적막강산이었던 한 사내가
일모에 이 길을 달리며 소리친 소리 없는 울음?
어떻게든 상황을 타개하겠다는 결심의 소산인 치기도 보이고~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처연하기 짝이 없다. ㅠㅠ
******************************************************우두망찰이라 불리는 지인의 詩와 그가 남긴 글이다.
사월의 아내
조영환
아내가 옷장서랍에 봄옷을 정리하다가
문득 눈에 익은 꽃무늬 원피스를 꺼낸다
스무 해 전, 그녀와 처음 만났던
사월이 어느 날, 벚나무 그늘에서
수줍게 머뭇거리며 사랑을 고백하고
부끄럽게 서로를 안았을 때
그녀가 입었던 꽃무늬 원피스
해마다 사월이면 벚나무가 어김없이
내 기억 속에서 홀연히 꺼내어 입는 화사한 그 옷
그러나 어느새 폐경에 접어든
아내는 물끄러미 거울 앞에서
가뭇없이 젊은 날이 빠져나간 꽃무늬 원피스를
쓸쓸히 이리저리 몸에 대어보는 것이다
무심한 척 곁눈질하는 내 눈에는
그녀의 적막한 등이 불현듯
꽃나무처럼 환해지는 것이나
까맣게 잊었던 기억 속 향기를 맡는
가슴은 저릿저릿 아릴 것이다
그러나 아내여, 사월은 가고 벚꽃은 진다고
눈물 글썽이지는 말아다오
낡아 해지는 것은 다만 꽃무늬 원피스뿐,
사랑을 고백한 날부터
내 생은 이미 수만의 꽃잎이
낱낱이 향기를 켜든 벚나무였으니!
**************************************************괴산으로 초청을 하여준 맥선생이라 지칭되는 시인의 詩.
그가 남겨둔 것을 퍼왔다.
어쨋거나 우리는시상과 아울러 빠지지 않는 막걸리와 파전 그리고 와인을 곁들인 잔치를 거하게 벌였다.
쥔장이 빼놓지 않고 들고간 커피와 보이차를 마시며 다시 한 번 삶의 여유르 아침의 신섬함을 담는다.
이후에 그 유병하다던 정방사에 올라 정방사의 기운을 느끼고 멀리 보이는 충주호를 탐하다가 결국엔 충주호 유람선을 타고 한바퀴 휘리릭.
온갖 버꽅이 흐드런진 길엔 넘쳐나는 사람과 차들로 도로가 막히고 집 나온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경악하다가 우리 역시 그렇다 고 웃.었,다.
그렇게 1박 2일의 일탈은 근사하게 마무리 되었다....돌아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일장춘몽 끔결같은 하루였던 것.
오래도록 시요일이여 건재하라가 되겠다.
첫댓글 사월의 아내와 잔치국수를 먹다 라는 시가 내겐 추억으로 또는 아름다운 기억으로 내 감성에 젖어 드네요~! 오랫만에 참 좋은 시를 만납니다.
그날밤, 우리도 그렇게 감동을....이미 전에 들었던 시상이었으나 요청하여 다시 듣고 보니 더욱 절절함과 새삼스러움이 겹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