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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누가복음 4:14-30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본격적으로 메시아로서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나사렛 회당에서 하신 취임사입니다. 이는 마치 대통령이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자신의 임기 동안에 어떤 일을 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취임사에서 예수님이 무엇을 하실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시 보게하여 자유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통하여 다시 보게 됨으로 자유하게 되는 놀라운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 메시아 사역을 공식적으로 시작하셨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아담이 실패한 마귀의 유혹을 이기기 위해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시며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눅 4:1-13).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시고 성령의 권능이 충만하여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오셨습니다(14-16). 그곳에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말씀을 전하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약 이사야서를 펴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리스도의 선지자’라고 불리울 만큼 그리스도에 관해서 많은 예언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이사야서 61:1,2a절을 찾아 읽으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라는 말씀은 구약에서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에게 기름을 부어 성별한 것과 같이, 장차 오실 메시아에게 성령의 기름을 부어 메시아로 성별하실 것을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으심으로 메시아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고넬료에게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10:38)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요 3:17). 그러면 예수님께서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구원하십니까?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심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일반적으로 가난한 자들은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겸손하고 문제를 해결받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어서 영적 소원이 강하고 복음을 잘 받아들입니다. 반면에 부자들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인해 마음이 부요하고 높아져 있어서 영적 소원이 별로 없고 복음을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60-70년대는 가난하였기 때문에 수용성이 매우 높았으나 90년대 이후부터 가난을 벗어나 삶의 수준이 높아지자 수용성이 현저히 낮아졌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복음의 수용성이 매우 높아서 영적 성장 속도가 빠르고 역사가 빨리 나타납니다. 그래서 성경공부를 한지 3개월 정도만 지나도 빨리 자라나 리더가 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가난한 자들이란 단순히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들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한 자들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5:3절에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고, 이사야 66:2절에서도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마음이 겸손하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겸손한 자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하나님만을 의지합니다.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자임을 알고 하나님께 엎드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순간순간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은 왕으로 세움 받기 전에는 겸손했으나 왕이 된 후에는 마음이 부요해져서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행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왕이 되기 전에나 왕이 된 후에도 늘 마음이 가난하였기 때문에 순간순간 엎드려 기도하였습니다. 시편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그의 기도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는 시편 40:17절에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건지시는 이시라.” 마음이 가난한 자들은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에 귀를 기울이고 진리를 찾습니다. 은혜는 이런 자들에게 임하게 됩니다. 그러면 가난한 자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자들을 말합니까? 이 가난한 자들은 18b절에서 포로된 자들, 눈먼 자들, 눌린 자들입니다.
둘째, 포로된 자를 자유하게 하십니다. 포로된 자들(the captives)이란 ‘창으로 사로잡은 자’라는 뜻으로 정복자에 의해 포로로 끌려간 전쟁포로들을 말합니다. 포로가 되면 자유를 상실하고 인권을 박탈당하고 온갖 수치와 학대를 받습니다. 포로가 되면 스스로의 힘과 의지로는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세상에는 음란물의 포로된 자들, 게임의 포로된 자들, 도박에 포로된 자들, 알콜과 마약에 포로된 자들 등, 수없이 많습니다. 음란의 포로된 자는 음란으로 인해 직장에서 해고되고 가정도 망치는 줄 알면서도 자신도 알지 못하는 어떤 세력에 이끌려 음란죄를 짓습니다. 게임에 포로된 자는 잠시라도 게임을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합니다. 어떤 아이는 게임에 포로가 되어 밤낮으로 PC방에서 게임만 하다가 학교 공부도 하지 못하고 망가지는 것을 흔히 봅니다. 도박에 포로된 자는 다시는 놀음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하고 손가락을 잘라도 소용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왼쪽 손가락 중에 가운데 손가락이 없었습니다. 그 사연인즉 이러하였습니다. 그는 도박을 밥 먹듯 하였습니다. 도박을 끊기 위해서 별별 노력을 다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 도박을 끊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아내를 따라 교회에 다녔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날도 밤새도록 도박판을 벌이다가 새벽녘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내가 울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가 보는 앞에서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는 부엌칼을 들어 도박을 하는 손가락 하나를 잘랐습니다. 그런데 작심삼일이라는 말대로 사흘이 지나자 다시 도박을 하고 싶은 마음이 불타올라서 또 도박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스스로의 힘과 의지로는 도저히 도박을 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성경공부를 하고자 결심을 하고 꾸준히 성경공부를 하던 중에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고 그 후로는 이상하게도 자신도 모르게 도박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셋째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하십니다. 눈먼 자들은 앞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입니다. 세상에는 돈에 눈먼 자들이 있고, 음란에 눈먼 자들이 있습니다. 돈에 눈먼 자들은 돈 외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온갖 악을 스스럼없이 행합니다. 뇌물을 받으면 감옥에 가는 줄을 알면서도 돈에 눈이 멀어 뇌물을 받습니다. 또 세상에는 육신의 눈은 멀쩡한데 영적 세계를 보지 못하는 영적 소경들이 많습니다. 영적 소경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부인줄 알고 눈에 보이는 것만 따라 살아갑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도 알지 못하고 성경도 알지 못합니다.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인생 목적과 방향을 알지 못한 채 영적 무지 가운데서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심으로 눈을 열어주십니다.
넷째,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십니다. 눌린 자들은 어떤 자들을 말할까요? 세상에는 과중한 업무에 눌리고 스트레스에 눌린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젊은 나이에 암에 걸린 분들이 많습니다. 학생들은 공부에 눌려 있습니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무거운 가방을 메고 늦은 시간까지 학업에 눌립니다. 청년들은 취업준비에 눌려 고통합니다. 가난한 자들은 빚에 눌려 이를 견디다 못해 자살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눌리는 것은 죄로 인해 마귀에게 눌리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눌리게 되면 악몽을 꾸고 평안한 잠을 자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마음에 평화가 없고 무엇엔가 쫓기는 듯이 늘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마음이 상한 자들, 포로된 자들, 눈먼 자들, 눌린 자들은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고침을 받을 수 없고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구원자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오직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만이 도와 주실 수가 있습니다.
다섯째 이사야의 예언이 오늘 너희 귀에 응(성취)하였다고 하셨습니다.(21) 이사야의 예언인 18,19절 말씀이 예수님을 통해 성취된 것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실제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심으로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의 은혜가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심으로 죄로 인해 포로된 자들, 눈먼 자들, 마귀에게 눌린 자들을 해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남종 씨가 쓴 “위대한 신앙의 83인 이야기”책을 보면 각계 각층의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 삶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에는 하이든이나 바하와 같은 음악가도 있고, 라파엘이나 밀레와 뒤러와 같은 화가도 있고, 교육자, 의사, 간호사, 과학자, 오페라 가수, 대통령, 장군, 작가, 시인, 노벨 수상자 등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같이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과거 죄로 인해 포로되고, 영적으로 눈멀고 마귀에게 눌린 인생을 살았지만 예수님을 믿고 참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가장 귀한 보화로 여기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리스도를 전파하기에 힘썼습니다. 하워드 켈리 박사는 세계적인 의과대학인 존스 홉킨스 대학의 설립에 동참하고 그 대학에서 교수로 일했던 유명한 의사였습니다. 그는 늘 물음표가 달린 단추를 달고 다녔으며 또 그것을 사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를 의아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켈리 박사님, 그 물음 표시는 무엇을 의미합니까?”하고 물으면 그는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합니까?”하고 되물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건강입니다.” “돈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은 그리스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이를 기초로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또 그는 늘 양복에 장미꽃을 꽂고 다녔는데 꽃이 잘 시들지 않고 오래 갔습니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사람들이 어떤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는지를 물으면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양복을 뒤집어 보여 주었습니다. 거기에는 조그마한 물병이 있었습니다. 이때 그는 생명수 되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시들지 않는 인생을 살 수 있음을 이야기 했습니다. 이렇게 복음은 죄로 인해 못쓰게 된 인생을 변화시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사람으로 바꾸어 줍니다.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롬 1:16). 복음은 가난한 자에게 임하게 됩니다. 마음이 겸손한 자만이 복음을 영접할 수 있고 복음이 주는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마음이 교만한 자들은 복음을 영접할 수도 없고 따라서 복음이 주는 참 자유와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4장 22절에 보면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이 전하시는 은혜로운 말씀을 기이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인간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하고 예수님을 불신하며 배척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으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에게 임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이 멸시하는 이방인들에게 은혜가 임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종과 민족을 초월하여 겸손히 영접하는 자에게 임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반면에 마음이 부요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문제로 우리마음을 가난하게 하셨습니다. 자녀문제로 남편문제로 돈문제로 가난한 마음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 사랑의교회는 예수님의 복음을 겸손히 받아들이시고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각종 욕망의 포로에서 자유롭게 되시고 영안이 열려 다시 보게 되시고 눌린 것에서 해방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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