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달밤에 매화를 노래함
이황(李滉 : 1501~1570)
나막신 신고 뜰을 거니니 달이 나를 따라오네
매화 곁을 돌며 거닌 것이 몇 번이던가
밤 깊도록 앉아 일어나기 잊었더니
향기가 옷에 가득하고 꽃 그림자 몸에 가득하네
陶山月夜詠梅(其三) 도산월야영매(3)
步屧中庭月趁人(보섭중월진인) 梅邊行繞幾回巡(매변행요기회순)
夜深坐久渾忘起(야심좌구혼망기) 香滿衣巾影滿身(향만의건영만신)
[어휘풀이]
-陶山月夜詠梅(其三) 도산월야영매(3) : 전체 6수 중 3번째 시
-步屧(보섭) : 나막신을 신고 간다. 屧(섭) : 나막신, 안창, 가다.
-行繞(행요) : 둘레를 돌다.
[역사이야기]
이황(李滉: 1501~1570)은 조선 전기 성균관 대사성, 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학자로 호는 퇴계(退溪)이다. 관직에서 물러난 후 1560년 도산서당(陶山書堂)을 짓고 아호를 도옹(陶壅)이라 정하고 이로부터 7년간 서당에 기거하며 독서와 수양, 저술에 전념하는 한편 많은 제자를 길러 냈다.
퇴계는 평생 성리학(性理學)을 추구한 성리학자다. 성리학이 학립된 시기는 중국 송나라 때인데, 불교가 서쪽에서 들어오자 공맹사상을 중시한 학자들이 종교성을 가미해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물음과 더불어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이 토대가 되었다 한다. 주자(朱子)는 성리학에다 태극도설에서 말하는 태극과 음양의 이론을 구체화해서 성리학의 우주론, 이기론(理氣論)을 완성한다. 태극은 이(理)이고 음양과 오행은 기(氣)에속한다. 이(理)와 기(氣)가 합해져서 만물이 태생한다는 이론이다. 퇴계는 주자의 이기론을 연구하여 이(理)를 상위 개념인 우주 만물의 근본 원리로 규정하고 기(氣)를 하부 개념으로 분리해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완성했다.
퇴계가 매화를 앞에 두고 좋아한 이유는 매화가 음양과 오행의 천심(天心)을 알고 있는 꽃이라 여겼기 때문이라 한다. 매화는 우주의 가득 찬 음기(陰氣)가 끝나고 양기(陽氣)가 모이기 시작할 때 처음으로 피는 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월 말에 핀다. 분재매를 방 안에 들이면 동지가 지나고 소한 무렵에 꽃이 핀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동지가 지나고 양기가 돌기 시작하는 소한부터 곡우까지 120일간 5일 간격으로 봄바람이 24번 불어온다고 믿었다. 한 번 볼 때마다 다른 꽃이 피어나는데, 처음 부는 바람에 피는 꽃이 매화이고 마지막 부는 바람에 피는 꽃이 모란인 것이다. 그래서 매화가 봄의 전령으로 불리며 매화를 우주의 비밀을 알고 있는 꽃이라고 생각했다.
퇴계가 단양 군수를 그만두고 떠날 때 친분을 맺은 기생 두향(杜香)으로부터 매분을 선물로 받았다. 두향은 퇴계 재임 시절 한 번 만나고 그 후 다시 못 만났지만 퇴계의 인품을 소중히 생각하고 평생 수절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퇴계가 매화에 더욱 애착을 갖게 된 것이 아닌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퇴계가 임종할 때 마지막 말고 “저 매화에 물을 주라” 였다고 한다.
출처 : 한기와 함께하는 우리나라 역사 『노을빛 치마에 쓴 시』
지은이 : 고승주. 펴낸 곳 : 도서출판 책과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