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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에게 치료란 무엇인가
김석주 │ 2023-10-04
# 사례 하나.
어느 광고에서 발달장애아동이 미술시간에 도화지 한 장을 까만색으로 가득 칠하는 장면이 나왔다. 아이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계속해서 도화지를 까맣게 칠했다. 그림을 보며 어른들은 걱정했다.
‘세상이 어둡게 보이는 걸까, 슬픈 걸까, 절망한 걸까, 스스로의 세계 속에 캄캄하게 갇힌 걸까....’
수십 장을 까만색으로 칠하다가 어느 날 흰 여백을 두기 시작했다. 곡선의 흰 여백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드디어 아이는 환하게 웃었다. 수십 장의 도화지를 퍼즐처럼 맞추니, 커다란 돌고래가 나타났다. 그렇다. 아이는 자신이 경험한 돌고래 크기 그대로 수십 장의 도화지에 작품을 만든 것이었다.
# 사례 둘.
어느 학교에서 아무와도 눈맞춤하지 않고, 대화하지도 않고, 혼자서 창밖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폴짝폴짝 뛰다가 상체를 앞뒤로 움직이는 상동행동에만 몰두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는 완전히 자기 세계 속에 갇힌 것 같았고, 어른들은 어떻게 하면 아이의 세계를 깨뜨려 우리의 세계로 들어오게 할까 고민했다.
어느 날 교사가 창가에서 혼자 노는 아이의 느낌을 알고 싶어, 상동행동을 그대로 따라했다. 손을 흔들고, 폴짝폴짝 뛰고, 상체를 앞뒤로 흔들었다. 그때 아이가 교사를 처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둘은 눈맞춤을 몇 차례 더 이어가며 상동행동을 계속 했다. 교사는 중력을 거스르듯 붕붕 뜨는 몸의 느낌을 처음 경험했고, 아이는 자신의 세계로 기꺼이 들어온 교사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그렇게 교감이 시작되었다.
발달장애인에게 치료란 무엇일까?
의료적 처치나 약물치료와 달리 ‘언어, 인지, 행동, 예술치료’ 등은 ‘Therapy’로 표기된다. 최근에는 의료적 치료와 구별하여 ‘재활’이나 ‘심리지도’, ‘치료교육’ 등으로 명칭하는데, 이는 장애나 질병으로 인한 불편함을 감소하고 건강한 상태로의 회복을 돕는 의미이다.
그런데, 아직 의학적으로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고, 약물로도 개선이 어려운 발달장애인의 보호자들은 ‘치료’에 맹목적으로 기대하며 비용과 시간을 과투자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리고 몇몇 상술자들은 지푸라기라도 부여잡는 약자의 심리를 이용해, 단기간에 장애를 뜯어 고치는 기술이라도 있는 양 ‘완치’를 광고하며 현혹한다.
그러나 테라피의 목표는 완치가 아니라, 향상과 증진이다. 이는 지능지수나 사회성지수를 높이는 기술이 아니라, 장애범주의 지능과 사회성을 가지고도 일상생활을 원활히 지낼 수 있도록 소통하는 기술, 대인 관계, 정서 안정, 재능 계발, 신체 조절 등 개인별 능력과 관심사에 초점을 맞춰 성장을 지원하는 과정이다.
예술치료에서 상호작용 과정의 한 예로 모방하기, 제시하기, 확장하기의 3단계가 있다. 아동이 치료사를 모방하기에 앞서, 치료사가 먼저 아동을 모방하는 것이다. 서두의 사례들에 나왔듯이 도화지에 검정색만 칠하는 아동의 그림을 판단 없이 바라보는 것, 상동행동하는 아동의 감각을 거울처럼 경험해보는 것과 같다.
‘나는 너와 같은 것을 보고 있다.’
‘나는 너와 같이 느끼고 있다.’
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아동이 부담스러워 회피하지 않도록, 아동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서 그 안에 서서히 들어가, 메시지를 알아차릴 때까지 자연스럽게 접근하는 과정이다.
어느 순간 아동이 치료사의 모방행동을 알아차리고, 눈을 맞추거나 움직임을 멈추거나 웃으며 긍정적인 반응을 할 때 ‘제시하기’로 넘어갈 수 있다. 이 또한 아동이 먼저 할 수도 있고, 치료사가 할 수도 있다. 아동이 폴짝폴짝 뛰기로 바꾸면 치료사도 뛰기로 바꾼다. 아동이 상체 흔들기를 하면 치료사도 상체 흔들기를 한다. 아동이 자신의 움직임들을 치료사가 계속 모방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즐거워할 때, 이번엔 치료사가 색다른 몸짓을 제시해 본다. 박수를 치거나 손을 오므렸다 펴는 잼잼, 도리도리 고개짓 등 간단하고 반복적인 몸짓을 보여주었을 때 아동이 따라 한다면 주고받는 상호작용의 1, 2단계가 성공한 것이다.
모방과 제시의 과정은 한쪽이 더 오래 할 수도 있으며, 주거니 받거니 핑퐁처럼 이뤄진다면 이미 그 자체로 ‘확장하기’의 3단계에 이른 셈이다. 확장하기는 몸짓의 변화일 수도 있고, 노래나 말하기로 연결될 수도 있다. 악기를 연주하거나, 새로운 그림을 그리거나, 춤을 추거나, 도구를 활용한 다양한 활동들도 그와 같이 적용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아동의 장애적 특성을 없애거나, 비장애인의 행동을 주입하는 방식이 아니다. 아동의 독특한 감각과 신경계를 먼저 이해하고 존중하여, 아동 스스로 모방하고 교감하는 소통의 주체가 되게 하는 것이다. 상대의 눈 속에 수용과 인정, 따뜻함과 편안함이 깃들었을 때에야 눈맞춤은 길어진다. 언어는 “아하, 와우, 옳지!”라는 감탄사라야 가슴에 심어진다. 그제서야 손과 발에 의욕이 솟고, 타인과의 낯설고 두렵고 새로운 활동까지 시도하게 된다. 이 과정이 대인과의 관계 형성이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타인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정서 발달이며, 신체를 조절하여 다양한 작업 활동에 참여하는 사회적 성장이다.
위 과정은 특정한 치료기법을 강조하는 게 아니다. 치료와 교육과 지원의 모든 초점은 오직 아동이다. 각 아동마다의 독특한 기질, 잠재력, 관심사 안으로 들어가 아동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함께 경험하고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어디로 갈지, 무엇을 배울지,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성장할지, 연결하고 확장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소통의 예의와 기술은 어른들이 먼저 배우고 익혀야 한다.
김석주
(자폐청년의 부모/ 음악치료사/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교육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