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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에 대한 유대인들의 상징주의
현대사회는 칼라색이기 때문에 다양한 색상을 볼 수 있지만 고대사회는 다양한 색깔을 볼 기회가 없었다. 단순하고 단색을 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단색을 통해서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 상징주의가 나타났다.
1. 붉은 색 == 죄, 회개
우리는 붉은 색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정열, 열정, 보혈, 불.......’ 이렇게 다양한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이 말은 붉은 색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로마인들은 붉은 색을 ‘권위, 부’를 상징한다. 로마인들이 등장하는 영화를 보면 귀족들, 유지들은 대체적으로 빨간색 망토를 입는다. 붉은 색 자주 옷감은 대부분 부유한 이들, 권력가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붉은 색이 주는 이미지와 로마인들이 보는 붉은 색이 주는 이미지는 전혀 다르다.
유대인들은 홍색 또는 붉은색은 사람의 피와 같은 색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붉은 색을 피와 연결하여 생각하였다. 더 나아가서는 피를 흘림으로 죄에 대한 대가를 치루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붉은 색을 “회개”를 상징하게 되었다.
민35;33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피는 땅을 더럽히나니 피 흘림을 받은 땅은 그 피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속함을 받을 수 없느니라
히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로마인들은 예수님을 붙들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혔다. (마27;27)
로마인들에게 홍포는 왕을 상징하였다. 유대인들은 대속, 속죄를 의미한다.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 색감은 대속의 의미에 있어서는 붉은 색이고 나중에는 흰색으로 바뀐다.
2. 흰색 == 죄없음, 속죄의 순결함, 깨끗함
우리나라 사람들은 흰색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소복, 쌀밥, 흰눈, 백의민족..........
고대 유대인들이 흰색을 볼 수 있었을까?
광야생활을 한 후에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산지에 거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몇 년에 곧 2-3년에 한 번씩 내리는 눈(snow)은 그 모습과 색깔에 있어서 마치 양 털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얗고 양 털 같은 눈이 온 세상을 덮으면 모든 추하고 더러운 것들이 사라지고 하얗게 되었다.
예루살렘은 눈이 잘 오지 않는 지역이지만 2-3년에 한 번 정도 아주 약간 내려서 온 예루살렘을 덮일 때가 있다.
그래서 이들은 흰 눈과 양털은 같은 개념으로 “죄 없음”, “속죄의 순결함”, “깨끗함”을 상징하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양의 새끼를 낳았을 때의 모습, 흰 눈이 내리는 모습, 소금, 흰 구름, 흰 머리, 흰 눈으로 덮인 헐몬 산을 바라보면서 정결, 순결과 연결하여 생각하였다.
우슬초의 꽃이 흰색이다.
시51;7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사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구름은 보통 하나님의 임재에 관해서
소금은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를 이해할 때
☞ 정결케 하는 물을 만드는 방법
유대인 남자들은 1년에 세 차례 큰 절기를 맞이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해야 한다. 곧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절기에 성전에 들어가야 하는데 예수님 시대에는 산해드린공의원에서 하룻길이 되는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남자들은 세 절기에 다 성전에 들어가야 하고, 하루 길이 넘는 지역에 있는 남자들은 1년에 한 번만 성전을 방문해도 된다고 허락해 주었다. 가능하면 세 절기 중에서 유월절에 성전에 들어가도록 하라고 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월절에 성전에 올라가게 되는데 먼 지방에 오는 유대인들 중에 부정한 일을 당하여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들에게 대제사장이 정결케 하는 물을 우술초로 찍어서 뿌리면 정결케 되었다. 이 정결예식을 위하여 물을 만들도록 하였다.
유월절 전 1주일 전에는 붉은 암송아지를 잡는 의식이 있다.(민19;2-10)
붉은 암송아지를 잡고 불에 태워 제사를 지낸 후에 그 재를 빻게 되고, 실로암 못에서 떠온 물을 섞으면 정결의식과 속죄를 위한 물이 되어서 대제사장이 우술초로 찍어서 부정한 사람을 정결케 하는 것이다.
☞ 대속죄일(Yom Kippur)에 행해지는 일
대속죄일에는 두 마리의 염소를 대제사장에게로 끌고 온다.
대제사장이 가진 통에 두 개의 폐가 들어있는데 하나는 “레 아도나이” 곧 “하나님께”라는 표시를 하고, 다른 하나는 “레 아사셀”이라 하여 광야에 보내는 아사셀 양이라 쓴 폐를 가지고 제비를 뽑는다. “레 아도나이”에 제비가 뽑힌 염소는 성전에서 화목제물로 드려진다.
“레 아사셀”으로 뽑힌 염소는 광야로 끌고 가게 된다.
대제사장은 이 염소의 머리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죄를 전가시키는 안수를 한 후에 염소의 뿔에 붉은 색 줄을 묶어서 제사장이 염소를 끌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떠나서 동쪽으로 계속 가서 올리브산을 지나고 유대광야를 지나고 낭떠러지가 있는 곳까지 끌고 가게 된다. 가는 길에 10번 정도 쉴 수 있다. 낭떠러지가 있는 곳까지 가서 염소의 뿔에 메어 있는 붉은 줄을 반으로 잘라서 한 쪽은 바위에 묶고, 한 쪽은 염소의 뿔에 메어 있는 채로 제사장이 염소를 들어 낭떠러지 밑으로 집어 던진다. 그러면 뽀쪽뾰쪽하게 솟아 있는 바위에 염소가 박쳐서 죽게 된다. 염소가 죽으면 붉은 색이 흰색으로 변화가 된다.
본래 구약성경에는 떨어뜨리라는 말씀이 없다. 백성의 죄를 짊어지고 광야로 가서 야생짐승에게 찢겨 죽도록 하였다. 그런데 한번은 광야로 나갔던 염소가 절면서 돌아오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 염소가 죽지 않고 절면서 돌아왔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죄가 용서받지 못했다는 증거가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는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떨어뜨려서 확실하게 죽이게 되었다.
예루살렘 성전에도 붉은 줄이 메어 있는데 이 붉은 줄도 흰색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의 모든 죄를 대속하셨다고 믿고 찬양하게 된다.
이 때에 예루살렘 성전은 서쪽이 되고, 아사셀 염소가 죽은 곳은 동쪽 끝이 되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가 동이 서에게 먼 것처럼 멀리 옮기셨다고 하면서 모든 죄가 용서받았다고 선언하면서 춤을 추며 찬양을 부르게 된다.
대제사장은 평일에는 청색 옷을 입지만 대속죄일에는 대속에 대한 염원을 담아서 흰 색 옷을 입는다. 대제사장은 대속죄일 아침 번제를 드린 후에 흰옷으로 갈아입고 대속죄일 제사를 집례할 때만 흰옷으로 갈아입고 집례를 한 후에 다시 청색옷으로 갈아입는다.
Mishinnah Yoma (미쉬나 요마 3:6)에는 “사람들이 그(대제사장)에게 흰옷을 가져온다. 대 제사장은 그 (흰)옷을 입고서 자신의 손과 발을 깨끗케 한다.”라고 하였다.
예수님의 머리털의 색깔이 흰 양털 같다고 표현한다. 곧 죄 없음에 대한 개념으로 그렇게 표현한다.
예수님이 입으신 옷은 흰 옷이고, 하나님이 앉으시는 자리의 색깔은 흰 보좌이고, 천국에서 받을 흰 돌이다.
죄가 있다. 없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인데 죄가 없다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창조하실 때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인류의 조상인 아담부부가 죄를 범함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죄가 없다는 것은 다시 에덴동산으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최대의 소망은 죄가 용서를 받아서 죄 없는 상태가 되어 에덴동산으로 돌아가는 것이 유일한 삶의 목적이다. 에덴동산에 가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에덴동산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기 때문이다.
☞ 고대 유대인의 개념에서 흰색의 반대색은 붉은 색이다.
시147;16 눈을 양털 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 같이 흩으시며
단7;9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흰색
계 1:14 - 흰 양털
계 2:17 - 흰 돌을
계 3:5 - 흰 옷
계 20:11 - 흰 보좌
3. 청색 == 하나님의 색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서 청색의 개념은 바다, 남자이다.
유대인들은 청색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고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냐?’ 물어보면 학식이 있는 사람들(제사장, 왕, 학자)이 가지고 있었던 여호와에 대한 생각은 좀 고차원적이었지만 일반 유대인 서민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아주 단순하다. 그래서 하늘을 가리키면서 “하나님은 저기 하늘에 계시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산지에서 특히 2월에 바라보는 하늘은 아주 맑고 청명하다. 그 푸르고 깨끗한 하늘에 거하시는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모든 인생을 비롯한 만물의 생사를 가름하게 되는 것이 바로 비와 이슬이었다. 비와 이슬을 주관하시는 분은 바로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이시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가 바라보는 푸른 하늘은 바로 하나님이 왕으로 보좌에 좌정하고 계시는 것이며 그 이상은 바라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푸른색은 하늘의 색이고, 하나님의 색깔이 되었다.
하나님과 연결되는 색감은 파란색이다.
청색 = 하늘 = God = 대제사장
사 66:1 - 하늘은 나의 보좌요
창19;24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출24;10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왕상8;30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시80;14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소서
시102;19 여호와께서 그의 높은 성소에서 굽어보시며 하늘에서 땅을 살펴보셨으니
시103;19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
시115;3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 대제사장의 의복
출 28:31 너는 에봇 받침 겉옷을 전부 청색으로 하되
출 28:37 그 패를 청색 끈으로 관 위에 매되 곧 관 전면에 있게 하라
민 4;6-12 ; 청색 보자기 = 성물들을 싸거나 덮는 것은 청색이라야 한다.
6 그 위를 해달의 가죽으로 덮고 그 위에 순청색 보자기를 덮은 후에 그 채를 꿰고
7 진설병의 상에 청색 보자기를 펴고 대접들과 숟가락들과 주발들과 붓는 잔들을 그 위에 두고 또 항상 진설하는 떡을 그 위에 두고
8 홍색 보자기를 그 위에 펴고 그것을 해달의 가죽 덮개로 덮은 후에 그 채를 꿰고
9 청색 보자기를 취하여 등잔대와 등잔들과 불집게들과 불똥 그릇들과 그 쓰는 바 모든 기름 그릇을 덮고
10 등잔대와 그 모든 기구를 해달의 가죽 덮개 안에 넣어 메는 틀 위에 두고
11 금제단 위에 청색 보자기를 펴고 해달의 가죽 덮개로 덮고 그 채를 꿰고
12 성소에서 봉사하는 데에 쓰는 모든 기구를 취하여 청색 보자기에 싸서 해달의 가죽 덮개로 덮어 메는 틀 위에 두고
이 땅에 와 있는 하나님의 대리자의 색깔은 청색이다. 그래서 대제사장의 옷 색깔은 청색이었다.
모든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지만, 하나님나라를 대표하는 대사(ambassador)의 역할을 하고, 하나님을 대리하여 계시하는 사람이다.
대제사장이 입는 에봇의 색깔이 청색이다.
청색은 구하기가 아무 어려운데 소라 고동으로부터 염료를 채취하여 청색 물을 들인다. 그래서 에봇은 수억원의 가치를 지닌다.
히브리서에 이야기하는 예수님을 대제사장으로 표현하는 부분들
ⓐ 모든 제사를 주관하고(대속죄일)
ⓑ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 역할을 감당할 때
☞ 옷단술
민15;38-39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대대로 그들의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이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출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벧전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드시 옷단술을 달고 다녀야 한다. 옷단술에는 613이라는 숫자가 있다. 613은 반드시 지켜야 할 계명의 숫자이다. 청색끈을 달고 다님으로서 청색이 하나님의 색깔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임을 표시한다. 사람의 측면에서는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라고 증거가 되고 하나님의 측면에서는 “너는 내 백성이다”라는 증거가 된다.
그런데 청색끈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산해드린공회에서 청색끈을 달지 않아도 된다고 결정하게 되었다.
산해드린 공회에서 결정한 것 중에 하나는 유월절 음식을 먹을 때 본래는 서서 먹어야 하는데 예수님 시대에는 만찬을 앉아서 먹도록 하였다. 서서 먹는 것은 종의 신분일 때 먹는 것이고, 이제는 출애굽하여 자유인이 되었기 때문에 자유인은 앉아서 먹는다하여 유월절 음식도 앉아서 먹도록 결의하였다.
유대인들은 산해드린의 권위와 성경의 권위를 같은 위치에서 본다.
4. 검정색 == 두려움, 절망, 환난
현대사회는 밤에는 대낮처럼 조명시설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전혀 어둡다는 의미가 고대사회는 느낌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고대인들은 밤이 되면 칠흑같이 어두웠기 때문에 유대인뿐만 아니라 고대인들은 밤시간에 느끼는 것은 두려움이었다. 모든 사납고 위험한 맹수들과 들짐승들은 밤에 그 굴에서 나와서 먹이를 사냥하고, 강도들과 도적들도 밤에 나와서 활동한다. 특히 모든 전염병과 질병도 밤을 타고 이동하며 밤에 마을 덮치고 사람에게 임하여 그 생명을 해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흑암과 어두움을 통해서 느끼는 것은 두려움이었다. 고대인들은 검은 색은 두려움, 절망, 환난의 상징이 되었다.
요124;16-17 어둠을 틈타 집을 뚫는 자는 낮에는 잠그고 있으므로 광명을 알지 못하나니 그들은 아침을 죽음의 그늘 같이 여기니 죽음의 그늘의 두려움을 앎이니라
시91;6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시104;20 주께서 흑암을 지어 밤이 되게 하시니 삼림의 모든 짐승이 기어나오나이다
사 9;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습 1:15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유대인들의 개념 속에 검정색의 반대는 ‘밝은 색’이다.
밝은 색은 유대인들과 연결시키고 어두운 색은 이방인들에게 연결시킨다.
어두움, 흑암, 소경, 그늘(빛과 반대의미에서), 밤, 세상의 일은 다 동의어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유대인들이 도저히 주고 싶어 하지 않았던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제공받게 되었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게 되었다.
마 4;16 -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방인들에게도 알게 하는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
눅 2:32 -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당시 유대인들의 개념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
빛은 유대인에게,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에 비추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빛을 이방에 비춰졌다고 할 때 유대인의 생각과 컨셉이 맞지 않는 것이 된다.
하나님의 나라가 약속되어지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제공한다고 할 때에 유대인들은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마 5:14 -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과의 관계에서, 하나님 나라를 상속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 연결한다.
어두움은 절망을 의미하고, 빛의 반대가 된다.
마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께서 공중의 새를 먹이신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새와 물고기가 창조된 날은 다섯째 날이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따라서 먹고 살게 된 것이 물고기와 새들이다.
다섯 번째 날에 창조된 피조물은 다섯 번째 날의 독특함을 본 받는다고 생각한다.
유대인들 가운데 다섯 번째 날에 태어난 사람은 하나님의 모든 공급하심을 받는 사람이다. 자신이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받았던 것처럼, 자기도 다른 사람에게 공급할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으로 인식한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접어놓고 내가 받은 것처럼 호의를 베푸는 것,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베푸는 것(하나님 나라를 위해 전폭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사명이라 생각한다.
마 4: 12-13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스라엘의 지역을 볼 때 예루살렘은 오른쪽이고, 왼쪽은 갈릴리지방이 된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앞쪽은 동쪽이다.
왼쪽은 북, 오른쪽은 남, 뒤쪽은 서쪽이다.
‘동에서 서로’ - 앞에서 뒤로(끝에서 끝으로)라는 의미이다.
해가 동쪽에서 떠올라서 햇빛이 가장 밝을 때가 우편(남쪽)에 있을 때이다.
남쪽은 밝은 쪽이고(우편), 북쪽은 어두운 쪽이고(좌편) 그래서 북쪽은 어두움과 연결되어 있다.(절망, 어두움, 두려움, 공포, 이방인)
재앙은 북쪽(어두움)에서 온다고 표현한다.
남쪽 자체가 명예로운 쪽이고, 밝은 쪽이다.
군대는 항상 어두운 쪽, 북쪽에 왔다. 앗수르, 바벨론이 북쪽에서 왔다.
남쪽에 있는 애굽 군사가 쳐들어와도 남에서 온다고 하지 않는다.
아브라함은 남쪽(갈대아 우르, 하란)에서 북쪽(네게브)으로 이주한 사람이다.
남방(네게브)에서 북쪽(모리아산)으로 올라가서 제사를 지냈다.
왼쪽, 북쪽인 갈릴리는 어두움, 흑암, 죽음을 의미한다.
왼쪽 - 이방의 갈릴리, 흑암에 앉은 백성이다. 바로 거기에 예수님이 가셔서 사셨다. 유대인들의 개념 속에 자리잡고 있는 갈릴리(흑암, 어두움)에 가셔서 예수님이 사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이미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랐고, 갈릴리 지방에서 첫 사역을 시작하였다. 어둠과 흑암의 지역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쳐주기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