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제는 1521년(중종 16)에 출생하였다. 이른 나이에 소과에 급제하였지만, 과거공부에만 힘쓰지 않고 학문으로 여러 차례 천거되어 여러 지역으로 훈도(訓導)를 역임하였다.
1555년(명종 10)에 김제군수로 부임하였다. 이후 1561년(명종 16) 식년 문과(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건상상 문제로 바로 관직에 나가지는 못하였다가,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병조좌랑(兵曺佐郞), 예조좌랑(禮曺佐郞), 병조정랑(兵曺正郞), 예조정랑(禮曺正郞),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다가 1569년(선조 2) 1월에 예안현감(禮安縣監)이 되었고, 1569년 3월에 암서헌(巖棲軒)에서 퇴계 문하에 입문하였다.
1570년 여름 예안향교를 중수하고 11월 8일에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서거하자 경상감사에게 도산서원(陶山書院)을 창건할 것을 품의하였다. 이때 사재를 털어 기부하였다.
1572년 7월에 예안향교중수입약을 제정하고 훈도와 좌수 등 29명이 여기에 참여하였다. 1573년(선조 6) 4월 조목(趙穆) 아버지의 상에 곽판(槨板) 등을 제공하였다. 1574년(선조 7)에 도산서원을 창건하였다. 그리고 1574년 8월에 고향 밀양으로 돌아왔다. 1575년(선조 7)에 금난수(琴蘭秀) 아버지의 상에 물품을 제공하였다. 1575년 여름 도산서원이 사액되자 400리를 달려와 직접 행사에 참여하였다. 1576년(선조 9) 밀양의 송계(松溪) 신계성(申季誠) 여표비(閭表碑) 건립을 주도하였다. 1579년(선조 12)에 재령군수로 부임하였다. 이어서 울산부사(蔚山府使)에 보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