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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도우수 자전거 길: 인천상륙서울탈환 진격로 2 <170910>
-자전거 周遊山河: 인천상륙작전 선봉의 서울 진격로를 따라 2 -
해병대행주도강전첩비 003
격전지 안산의 자락길 0153
코스:
⇒1차 사전답사
인천역-월미도/인천상륙작전상륙지점/그린비치-월미산정상(5.4km)-레드비치-인천역우회고가4/차이나타운(9km)-자유공원-동인천역(11.3km)-철로토굴-동인천역북광장3(12km)-송현근린공원-향적사입구-인중로-황금고개4-송림고가교4(14.4km)-산업용품센터4(15km)-인천시의료원-고가도로-주안산단역-6공단입구4(18.4km)-십정녹지(우측)-열우물입구엇4/선포산-용포샘-신촌4(21km)-마장로-오일뱅크/우-현대아파트단지-우성4차-산곡남초교-프리상트아파트-산곡천-산곡고-부성아파트-원적로-백마2교-북편공원길-부평구청/7호선전철역(25km)-3번구-굴포천/사근공원길-굴포1~3교-굴포4교-수변자전거길-삼산1~3교-체육공원-삼산4교-유수지/굴포천유래간판-지역난방공사3/열병합발전소-소각장4-송학교-삼정교4-골프연습장-삼정2천-삼정1천/삼정3교-단지중앙신설도로-신흥로/좌-봉오대로고가입체교량-횡단보도-교량직전/좌-동부간선수로/좌안(33.7km)-오쇠천-대장교-무명교/김포공항울타리-낚시터-과혜교(37.2km)-항공소방훈련장-무명교-벌말1교-2교-고가교-수로길/끝-개화동로-개화역입구4/횡단보도(42km)-개화2치안센터-동부간선수로-개화동상사마을회관-마을끝-토끼굴(43.7km)-김포한강로/토굴-한강/자전거길(45km)-행주대교남단(46km)
⇒2차 사전답사
행주나들목-행주대교/나루터(1.3km)-행주산성/대첩문/해병대도강전적비(5.4km)-창릉천/북로IC(7km)-화도교(10.4km)-수색산/수색교(13.7km)-수색역-불광천/증산교(15.61km)-와산교-(17.4km)-명지전문대/백련산서남길-홍연2교/홍제천(19.6km)-궁동공원정자(21km)-성산2교4(23km)-성미산/정상/장승(24km)턴-경의선숲길(25.7Km)-홍대입구역3번출구(26.3km)-홍대거리-경의선숲길/책거리/와우교(27.2km)-와우공원입구(28km)-와우산둘레일주-서강대역-서강대정문(31.13km)-로욜라도서관/노고산/산길-후문(32km)-이화대정문(33km)-헬렌관-이화역사관-능선길(안산정상전망)-산학협력관(34.5km)-후문(35.9km)-연세대동문-총장공관(36.8km)-안산정상정망고개(37.7km)-안산자락임도(37.8km)-연북중(38.5km)-차도종점/하산(39.2km)-고은초교-홍제삼거리-무악재(41.14km)-독립문(41.66km)-월암공원(42.88km)-경희궁/서울중학교터-광화문(44.7km)
월미도~광화문: 1차 45km+ 2차 44.7km= 89.7 ⇒90km
요도: 라이딩코스 4~6
김포공항-행주나루
행주산성-수색
안산-광화문
※<세부코스>와 코스관련 여타 자료는 본문의 맨 뒤에서 찾아보길
인천상륙작전 서울탈환 진격코스 라이딩 코스 개념
이번 쉐도우수 자전거길은 2017년6월25일 고교동창 자전거동호회 바이콜릭스가 문산에서 서울까지 경의중앙선 철로를 연하는 북괴군 남침경로를 라이딩했고, 이 후기를 읽어본 본 홍토마가 대열잔차팀은 9월에 인천상륙작전과 서울탈환 코스를 라이딩함이 어떻겠는가? 하는 제안을 한 바 있어, 이에 쾌재를 부르며 고안해 낸 자전거 라이딩 코스다.
기본 개념은 1950년9월15일 결행된 인천상륙작전의 선봉 미군 제1해병사단 5연대의 진격로다. 5연대의 3대대가 상륙작전 해두보(海頭堡)인 월미도를 장악하기 위해 섬 북단 그린비치에 D-day(9월15일) 06시30분 처음 상륙해 이튿날까지 버텼고, 이후 경인(京仁)가도의 서쪽방면에서 부평을 거쳐 김포방면으로 진출하면서, 한국 제1해병연대와 함께 9월18일 김포공항을 탈환하고, 9월20일 행주나루도 함께 도강해 서울의 북서쪽으로 진격했으며, 결국 9월27일 15시 광화문에 도달해 중앙청에 성조기와 태극기를 꽂았던 미군 해병1사단 제5연대 3대대와 한국 제1해병연대의 서울진격축선이 기준이다.
사진: 캡쳐 7, 11, 19
(근거자료: ①유엔군전사 낙동강에서 압록강까지 제1집 육군본부 ② 인천 1950(플레닛미디어) ③ 6.25전쟁 60대 전투(황금알) ④ 위키백과, 구글, 엔하위키 ⑤ Korean War Maps - Timeline of the Korea War - 1950 to 1953
그리고 그 축선을 기준으로 따르면서도, 자전거 라이딩에 적합한 길, 즉 되도록 도심(都心)차도를 회피하는 도로변 자전거 길, 공원길, 녹지길, 하천 길을 중심으로 코스를 디자인했다.
따라서 라이딩은 인천역에서 월미도로 나가면서, 선봉의 상륙지점 그린비치 기념 표지석을 먼저 찾아보고, 월미도 전망대에 올라가 후속부대들이 상륙한 만석동 방면 레드비치와 인천항방면 블루비치를 전망하고 내려서, 인천역 방면으로 유턴하며, 월미도입구교차로의 레드비치 기념비를 찾아보고, 차이나타운 골목을 통해 자유공원에 올라 맥아더 동상을 찾아본다.
자유공원을 내려서서는, 미 제1해병사단 5연대가 기동했던 부천~김포공항 방면으로 들어선다. 그 방향의 중요 도시와 고지, 하천 길을 찾아보면 동인천역 북광장과 송현공원, 선포산과 산곡천, 부평구청과 굴포천, 심정천과 대두둑천(=동부간선수로) 등으로 이어진다.
대두둑천은 김포공항의 서편 울타리를 따라 북으로 흐르는데, 개화산 서편 개화IC 아래를 거쳐 아라뱃길 한강갑문 동쪽 행주지구 한강으로 흘러든다. 따라서 라이딩 길도 신행주대교 남단 개화 IC 아래의 복잡한 토끼굴들을 거쳐, 한강변 자전거길로 나간 다음, 행주대교를 건너 일대의 감제고지인 행주산성에 이르게 된다.
행주산성 이후 서울 중심 중앙청으로 진격했던 길은 둘로 나뉜다. 좀 더 서북쪽 고양방면은 미 제1해병사단 7연대가 맡았고, 월미도 선봉 5연대는 난지도 북쪽을 연해 동쪽으로 중앙청(광화문)을 공략했으니, 그 길은 수색역과 신촌역을 거치는 경의선 축선이었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지금의 경의선 축선을 따르면, 마포~신촌~서대문 일대의 복잡한 도심을 통과하게 돼, 우회한 코스가 창릉천-불광천-백련산-홍제천-노고산-안산-무악재를 넘어, 실제 미 해병5연대와 한국 해병1연대의 진격 경로라고 구체적으로 명시된 옛 서울중학교(지금 경희궁 지점)쪽이 된다.
또한 당시 한미 해병대 연합 진격부대는 수색산과 안산, 인왕산 남측 사직터널 능선을 잇는 축선의 고지들에서 격한 전투를 벌였으니, 거의 제 코스를 밟는 셈이다. 그 이후는 새문안교회 골목으로 세종문화회관을 거쳐 지금의 광화문 광장으로 들어서면, 당시 서울 수복의 상징으로 태극기를 꽂았던 중앙청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런 경로로 이번의 자전거 라이딩이 이뤄졌다. 실제 한미 해병대 연합 작전부대들이 거친 길을 그대로 밟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거의 유사한 67년 전의 진격코스를 함께 했으니, 참으로 감개무량하다.
오늘의 우리 대한민국을 북한의 남침에서 지켜내, 북한과 옛 소련처럼 인민경제파탄과 인권유린의 참혹한 지옥세계로 굴러 떨어지지 않게 결정적 전투에서 공을 세운 당시의 용사들을 되새기 되니 그랬다.
그런 혈맹 미국을 저주하고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후대들의 목소리가 드높은 요즘의 세태를 생각하면, 착잡하고 지난날의 용사들에게 미안하기 그지없다.
우리가 지켜내야 한다. 풍전등화였던 우리의 역사와 이후의 성공적인 대한민국의 발전과 번영을! 이 같은 역사 어린 길을 자전거로 타고 사랑하면서.
이제 이 길을 67년 전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고 서울을 탈환하던 시기 9월15일~28일 사이에 해당하는 9월17일, 태릉 동기생들과 다시 한 번 인천상륙작전을 기리며 타게 될 것이고, 그 길을 오늘의 사전답사 라이딩을 바탕으로 제대로 안내하게 될 것이다.
♧♧♧
<2일차 사전답사: 9월10일>
지난 3일 월미도에서 행주대교 남단까지만 타고 중단했던 인천상륙서울탈환 진격로 타기를 최종목표지점 광화문까지 이어가기 위해 다시 나선다. 집 앞 개롱역에서 5호선을 타고 종점 방화역 직전 개화산역에 내리면 개화산을 끼고 3일 지나갔던 개화2동치안센터-상사마을-강서둘레길/행주나들목 구간을 중복하고, 행주대교 아래 남쪽 행주나루터로 나설 수 있다.
개화산역과 개화산 서북단 자락 상사마을과 점심 요기했었던 칠성마트 0001 04 05
행주강변으로 나서는 강서둘레길 토끼굴과 이후의 동부간선수로(=대두둑천)하류와 개화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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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의 끝 토끼 굴로 나서면 반가운 한강자전거 길 0016 17 19
행주대교 아래 남쪽 예전의 행주 나루터 지점 0021
행주대교 자전거 길이 이전과 다르다. 서쪽(한강하류)으로만 통행이 가능했는데, 상류 쪽에도 생겨 일방 통행하게 만들었고 대교를 건너면 행주산성과 파주 방면 갈림 자전거길이 훌륭하게 조성돼 있다.
대교 위에서 행주산성과 강 양안(兩岸)의 나루터를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1950년9월20일 미 해병1사단5연대와 한국 1해병연대가 이곳을 도강(渡江)해, 전사(戰史)에선 125고지로 표현된 행주산성(지금 행주대첩비가 서 있는 덕양산 124.6m)일대를 탈환하기 위해, 진퇴를 거듭하던 치열했던 전투상황을 그려본 것이다.
전날인 19일 밤 14명의 수색중대 수영도강팀이 건너가 정찰후 신호해 수색중대 본대까지 건너가 125고지를 향했지만 적의 박격포/기관총 사격으로 물러나, 20일엔 주간 강습 도강을 시도해 많은 피해를 입으며 점령했지만, 21일엔 적의 역습도 받아 격퇴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대교를 건너, 장어구이로 유명한 행주산성 강가로 가 예전의 행주 나루터를 찾아본다. 요행히도 예전에 이곳에서 집안이 나루터 일도 했었다는 식당 <행주가든>의 연배 높은 아주머니에게 물어본 결과다, 이전에도 수차 지나다녔던 길이지만, 이렇게 6.25격전지 찾기란 목적을 가지고 당시의 상황을 머리에 그리며 한 지점씩 찾아가니 그 마음은 전혀 새롭다. 경건한 감사의 그것이다.
행주대교에서 바라보는 행주산성과 나루터 일대 0023
강 건너 장어구이 마을의 옛 행주나루터 0025
행주나루터 사연과 여기서 바라보는 강 건너 나루터와 개화산 0028 30
오늘은 사적(史蹟) 탐방이다. 천천히 굴러가며 가는 길 이모저모를 다 찾아본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행주서원지를 들렸더니, 임진왜란 행주대첩 영웅 충정공 권율도원수를 기리는 곳이다. 행주서원“지”라고 한 것은, 6.25때 "소실"됐던 것을 점차 복원한 것임을 말해준다.
소실됐었다는 것은, 한미 해병대가 서울탈환을 위해 이곳을 도강해 점령하면서 얼마나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가를 증명해 주기도 하는 것이다.
행주서원 0031 33
행주산성 관문 대첩문에 점을 찍는다. 그리고 반대편 코너의 6.25 사적 <해병대 행주도강 전첩비>를 찾는다. 이전엔 무심하게 지나쳤던 곳이다. 전첩비에는, 혈전 끝에 성공한 행주산성 도강이 서울탈환 성공을 보장한 교두보 확보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8년 뒤 후배들이 세운 이 전적비로 인해 이 도강작전에 동참했던 한국 1해병대 2대대의 공(功)이 두고두고 기려질 것이다.
임란 때나 6.25때나 조국의 사활을 건 전쟁국면 전환에 결정적 계기가 조성됐던 곳이 행주산성이었구나 하는 점을 새삼 절감한다. 행주산성 사랑 라이딩을 자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새삼 다시 대하는 행주대첩문과 일대의 요도 0034 35
행주산성 정상, 행주대첩비가 서 있는 지점 125고지는 자전거가 못가, 2014년 3월에 올라 촬영했던 사진으로 다시 음미 140316 00022
해병대행주도강전첩비에서 0036 39 41
행주산성을 내려서 창릉천 길로 북상하다 화도교에서 우회전해 수색-신촌 방향 중앙로를 탄다. 이 길이 당시 한미해병대가 서울로 진격했던 축선인 경의선을 따르기 때문이다.
창릉천 서쪽 성사천 배수문에서 경의중앙선까지의 구간에 이어지는 강고산 봉대산 봉태산 온굴안산 등 야산들도 이젠 예사롭지 않다. 다 점령하고 지나가야 했었던 고지들로 해당되기에 그렇다. 실제로 이 지역은 그 유명한 미해병 5연대 3대대가 뒤이어 행주를 도강해 개성-서울간의 경의선 철로를 방호하고 능곡쪽의 도로를 차단하는 임무를 맡았었기 때문이다.
창릉천입구와 창릉천 길에서 보는 성사천배수문 이후의 고지들 0042 43
화도교와 화도교로 올라선 수색방향 중앙로 0045 48
중앙로를 달리며 들린 화전역 골목의 풍경이 참 정겹고 예스럽다. 일부러 와서 먹기도 하고 놀기도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은부산 덕은고개에 설치된 육군간부모집 광고가 눈에 확 들어온다. 오늘의 라이딩이 호국 충정의 가슴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화전역 골목과 덕은 고개 육군간부모집 광고 0049 51
덕은고개 넘어 가로의 공원 숲이 라이딩을 평안하게 한다. 철로 건너편은 지난 6월25일 문산에서 서울까지 북괴군 6.25남침로 라이딩을 할 때 탔던 길이고, 그 뒤로는 당시에도 무시 못했을 국방대학교 북쪽 대덕산이 보인다.
덕은고개 너머 가로공원 길과 철로건너 편 0052 53
수색교 좌측 수색산은 경의선을 발아래로 통제하기 때문에 꼭 필요해, 당시 해병대가 점령했었음을 강조했던 104고지로 짐작된다. (전사에서는 도하지점에서 5.5마일 8km지점이며 경의선북방 고지라 했는데, 유사한 고지로는 서오릉 뒷산 거리상은 해당하지만, 200고지가 넘어 높이가 맞지 않고 방향축선이 좀 틀려서 제외시켰음)
수색산과 바로 옆 수색교 0055 57
이어 수색역과 디지털미디어시티 역을 지나, 증산교에서 불광천으로 내려선다. 그리고 홍제천으로 넘어간다. 이 행선은 라이딩 편의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그렇게 가야 서울의 중심부인 당시 중앙청을 탈환하기 위해 9월22일 이후 27일까지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던 안산전투지구의 안산과 백련산, 그리고 안산의 전초진지였던 일대의 고지들을 다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수색역과 디지털미디어시티역 0057 58
증산교에서 내려선 불광천을 상류로 0059
백련산 자락을 거쳐 홍제천으로 가기 위해 올라선 와산교에서 바라보는 백련산 0061 62
와산교에서 홍제천 가는 길 시장통과 충암초교 골목 0063 64 65 68
백련산자락길과 만나는 서부제일교회고개와 명지전문대 0069 71
홍연2교와 안산방어 전초진지였을 안산도시자연공원 산 0072
내려선 홍제천-안산이 보이는 좌측은 상류 도시자연공원이 보이는 우측은 하류 0073 74
월미도상륙 선봉 미해병 5연대 3대대가 9월21일 수색산을 탈취하고 한국 해병대에 인계한 후, 바로 향한 곳이 296고지로 표현된 안산(295.9m)이었다.
당시 서울과 영등포를 방어하던 적은 북괴 9사단 87연대와 18사단의 예하병력이었는데, 안산에 더욱 강력한 진지를 편성했던 터라, 22일부터 안산 점령을 위해 벌인 공격에서 4일 동안 미 해병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 때 안산을 공략하기 위해 그 전에 탈취해야 할 고지들이, 북-중-남 3방향의 105고지들이었다고 했다.
지금 추정해보면, 북이 서대문구청 인공폭포 부근, 중앙이 안산공원자락, 남이 연세대/이화대 뒷산으로 볼 수 있지만, 서대문구 연희동의 안산도시자연공원과 궁동공원, 마포구 서강동의 홍익대 뒷산 와우산(101.8m)과 대흥동의 서강대 뒷산 노고산(104.5m)들도 105고지 군에 포함될 수 있고, 이를 위해 먼저 점령해야 했다고 한 68m 고지로는 마포구 성산동의 새터산(61m)와 성산(=성미산 66m)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인접부대의 전황을 함께 짚어보면, 21일 인천에 도착해 합류한 같은 해병1사단 7연대는 5연대보다 더 북서방향으로 진출해 적의 퇴로를 차단하고 있었고, 역시 같은 해병1사단 소속 1연대는 영등포방면에서 치고 올라오면서 보다 더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악전고투하고 있었으며, 그 동남 측방으로 미 보병7사단 32연대와 한국의 17연대가 수도서울로 들어오며 치열한 시가전을 펼치고 있었다. 한 방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자전거 라이딩 경로의 한계로, 그쪽 전황을 함께 공부하기엔 역부족이어서 안타깝다.
홍제천 하류로 내려가다 올라서는 궁동공원길-홍남교와 두바퀴 쉼터 지나 두 번째 수변 정자에서 도로로 올라서 사진의 갈림길들 좌측으로 들어서야 0075 77 78 79
공원을 오르는 은광교회 업힐이 아찔한 무려 20도 경사 0080 81
안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궁동공원 능선-이런 전술적 가치가 있어 먼저 장악해야 했을 고지였을 것 0083 85
궁동공원을 내려와 홍제천을 따르다, 경의선숲길이 시작되는 연남교를 지나 성산2교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성산, 즉 성미산으로 오른다. 숲이 우거져 먼 곳을 전망할 수 없지만 분명 주위에선 우뚝 선 곳이다. 오르는 길이 계단으로 이뤄져 들바, 멜바를 하고서야 정상에 올랐다. 이 성미산은 특히 한국 해병대가 105고지 노고산을 공격하는 길에서 먼저 점령하기 위해 탈취해야만 해, 9월22일과 23일 연일 공격하면 많은 피해를 감수해야 했던 곳이다. 정상의 장승이 그 전사(戰史)를 알고는 있는지?
연남교와 성산2교 사거리, 그리고 성미산 입구 기동순찰대 초소 0086 88 90
성미산체육관에서 등산로로 오른 성미산 정상 체육공원과 장승 고지 0091 92 93 94
다음 행선은 와우산이다. 성미산입구로 되나와 우회전 경성고 사거리에서 좌회전, 지난 6월25일 탔던 경의선숲길로 들어서, 와우산을 가는데, 경의선 숲길은 도심의 도로들로 곳곳이 막혀 우회한다. 홍대입구역에서 끊겨 홍대거리로 우회해야 다시 서강대역으로 향하는 경의선 숲길을 다시 찾아들 수 있고, 와우교에서 올라 우회전해야 와우산을 가게 된다.
6.25일 문산-서울 라이딩 길에 아이스크림 먹었던 지점의 경의선숲길 0095
앞이 막힌 홍대입구역3번출구 지점-건너편으로 와우산과 홍대가 보여 0096
우회하는 홍대거리와 다시 이어진 경의선숲길 책거리 0097 99
와우산 길목 와우교와 멀리 와우산입구 골목 0100
와우산은 자전거로 갈 수 있는 배드민튼 실내체육관 더 이상은 산 정상으로 오를 수 없다. 경사 심한 둘레 길로 돌아보고 정상엔 군사시설이 있음을 확인한다. 높이는 101.8m 이지만 6.25당시에나 지금이나 그만큼 군사적 가치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당시 9월21일 미해병5연대 1대대가 이 와우산 아래 서강동에 진출해 있었기도 했으니 말이다.
와우산공원입구와 게이트볼 배드민튼 체육관과 둘레길 0101 05 07 10
이어 경의선 숲길로 다시 나와 서강대를 향하는데, 여기서도 대로가 가로 막아 횡단보도를 건너야 서강대역 주변 경의선 산책로를 탈 수 있다. 참 복잡한 그 무슨 “경의선 숲길”이란 생각이다.
이후 경의선숲길은 건너편 서강대 역을 바라보며 대로로 막혀 0111 13
서강대역 산책로는 가봐야 알지, 멀리선 알아보기 힘들어 0114
서강대 캠퍼스로 들어선 것은, 격전지 노고산을 자전거로는 직접 올라가는 길이 없고 가장 근접하고 좋은 지점이 서강대 로욜라 도서관이기 때문이다.
예수회 창설자 <이냐시오 로욜라> 성인의 동상이 모셔진 도서관주변은 참 조용하고 좋았다. 노고산 정상으로 오르는 숲길도 있었지만, 왠지 늦어지는 행선과 가파른 계단을 보고서 정상 오르기는 생략하고 말았다. 늦어도 오후 3시까지는 귀가해야 하기 때문이라.
경의선 길에서 서강대 정문을 향해 0115 16
로욜라 도서관의 노고산과 이냐시오 로욜라 동상 0119 20
서강대 후문을 나와 대흥로 업힐을 타고 이화여대로 향한다, 바이콜릭스 대장 바이크 손-손창인 치과 원장과 몇 번 들린 치과병원 밑 김치찌개 집에서 간단하게 점심요기를 하고, 이화여대 캠퍼스 안으로 들어선다.
후문 방향 하비에르관 계단을 내려와 0124
점심 먹은 대흥로의 김치찌개백반전문집 0125
이화여대 캠퍼스로 들어서 0126
이화여대 캠퍼스를 돌아보니 본관이고 각 학과별 교사(校舍)이고 그 사이 길들이 엄청난 경사로로 이뤄져 있음을 알게 된다. 제일 높은 곳에 오르니 안산은 물론이고, 남산 쪽으로 향한 서울 시내의 전경도 넓고 넓다. 이 같이 전술적으로 유리한 지형조건이고 보니, 예상대로 이곳에서도 엄청난 혈전이 이뤄졌음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본관과 헬렌관의 헬렌흉상 0127 28
법학관에서 이화역사관으로 이르는 살인적인 업힐 0129 30 31
제일 높은 지점 능선에서 바라보는 서울과 안산의 정상 0132 33 34
이화여대 산학협력관에서 연세대로 넘어가는 길은 차도를 피해 금화터널 위로 샛길(북아현로)을 타면 됐지만, 휴일이라며 통문을 잠궈놔 할 수 없이 후문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금화터널입구 봉원고가아래를 유턴해 연세대 동문(東門)으로 들어간다. 연대의 안산 자락 길은 조용해서 참 좋다. 총장공관 앞의 산책로 동산도 좋고, 이후의 안산자락 오르막들도 라이딩엔 그만이다. 연대캠퍼스 꼭대기 산책로 동산에서 6.25당시를 의식하며 안산을 다시 바라본다.
서울 중심 중앙청으로 진출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벌인 이 안산지구전투에서, 아군은 9월25일 결국 적 괴뢰군의 방어망을 붕괴시킨다. 전날 24일 한국해병대가 공격하던 66고지 성미산을 공격했던 미해병 5연대 2대대 D중대는 병력 206명중 176명의 사상자를 내는 피해를 입었다. 36명이 전사하고 116명이 후송됐던 것이다. 5연대 3개 대대의 피해는 도합 500여명이라 했다. 반면 적의 안산 방어망을 붕괴시키면서 남긴 전과는 북괴군 1,200명 사망 등 1,700명을 희생 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엄청난 혈전이었던 것이다.
그런 안산 자락 연세대에서 그런 역사를 잊은 채, 한 때 언론홍보전공 야간대학원에서 공부했었다. 1989년에서 1991년까지이니 벌써 30년이 돼간다. 조용한 길을 홀로 산책하는 여학생을 보니 떠오르는 옛 생각이다.
이대의 제일 산꼭대기 시설 산학협력관- 북아현로 이어지는 문이 닫혀 0135
이대 후문과 금화터널 고가와 연세대 동문 0136 37 38
연대 총장공관 길과 산책로 동산 0139 40 42
캠퍼스의 제일 높은 곳으로 되는 우정원과 온실창고 지점의 도로-뒤로 안산의 정상이 보인다. 0143
연대 캠퍼스를 벗어나는 지점에서 참 다행이도 울타리 안으로 안산을 끼고 도는 둘레길 임도를 만난다. mtb자전거로선 최적의 길이다. 이 길이 아니면 연희동 쪽으로 내려갔다가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을 거쳐 연북중학교 까지 가파른 언덕을 다시 올라와야 한다. 길은 불상(佛像) 약수터를 지나 연북중학교 지점까지 이어진 뒤, 이후는 녹색산책로와 병행하는 포장도로로 바뀌고 서대문도서관 뒤 동남방 언저리에서 끝난다. 자전거가 충분히 다닐만한 등산로는 안산을 삥돌아 더 이어지지만 자전거 출입은 금지다.
안산 자락 임도 입구와 행복한 임도 0145 47 48
포장도로와 녹색임도로 바뀌는 연북중학교 갈림목 0154 55
등산로를 잠시 타다 포장도로로 내려서 0156
차도가 끝나고 자전거 출입이 통제되는 지점 0160 61
여기서 인왕산을 바라보며 하산하면, 원래 계획대로 서대문구청 북쪽 홍제천의 백련교에서 무악재로 이어지는 <모래내로>길의 고은초등학교로 나서고 홍제삼거리를 우회전 무악재 넘어 독립문으로 향한다.
하산, 내려온 안산공원과 내려갈 홍제동 0164 66 65
홍제삼거리와 무악재 0167 69
참 오랜만에 찾은 독립문은 내가 알던 예전 모습이 전혀 아니다. 다닌 중학교가 근처였는데. 기막히게 멋지게 단장돼 있다. 휴일이어선지 모르지만 옆의 서대문형무소와 공원일대에 사람들이 넘친다. 길을 건너며 독립문과 그 뒤로 보이는 안산을 한 번 더 바라보고 떠난다.
독립문과 길 건너에서 본 안산 0172 73
다음 길은 역시 마지막 혈전을 벌였던 당시의 338고지 인왕산(340m)의 남쪽 능선인데 지금의 사직터널 위쯤이다. 이 능선을 넘어 해병대는 옛 서울중학교( 경희궁 터)를 거쳐, 중앙청(광화문)으로 진격했던 것이니, 그를 따르려면 능선상의 기상관측소와 월암 공원 쪽으로 돌게 된다.
사직터널의 오른쪽 오르막과 인왕산이 보이는 월암공원 0175 76 77
복원되는 경희궁 0178 81
일제 때 분해됐던 경희궁이 복원되면서 그때에 생겼던 서울중학교와 이후의 서울고등학교도 이젠 그 역시 터로만 남아 0179 80
드디어 광화문에 도착하며 인천상륙-서울탈환 진격로 사전답사 라이딩이 끝난다. 15시28분에. 1950년 당시 중앙청이 있던 이곳에서, 월미도 상륙의 선봉이었던 미해병1사단 5연대3대대와 한국 해병대가 마지막으로 저항하던 적을 화염방사 전차로 제압하고 바리케이트를 둘러친 후, 중앙청 국기게양대의 인공기를 내리고 성조기와 태극기를 게양하며, 인천상륙-서울탈환 성공의 개가를 함께 올리던 순간은 9월27일15시08분. 내 라이딩 종막(終幕) 시간과 거의 일치한다. 서울 수복을 공식화한 9월28일 전날 오후의 일이다.
높이 솟은 광화문 0183
이날 요소요소에서 제 사진 찍어주신 등산객 학생 산책 나온 주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이제야 빛 내리 이 나라 이 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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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7일 당일 본대가 라이딩 할 때는 한강도하 이후의 위 코스를 다하지 않습니다. 주요 고지 순례는 생략하고, 행주산성 이후는 경의중앙성 철로연변을 따르다 서대문 지경으로 바로 빠질 것이어서 총 거리 70km 이하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