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신기록 달성을 위해 힘껏 달렸느냐고 묻곤 한답니다. 그러면 난 세상의 정상에서는 힘껏 내달릴 수 없다고 답한답니다."
네팔의 '싱글맘' 산악인 푼조 장무 라마(32)가 지난 5월 23일(현지시간) 베이스캠프(해발 고도 5600m)에서 에베레스트 정상(8848.86m)까지 14시간 31분 만에 등반, 여성 최단 시간 등정 신기록을 세우고 수도 카트만두로 돌아와 영국 BBC에 털어놓은 얘기다. 방송은 지난 5일 보도했는데 뒤늦게 여기에 옮기게 됐다.
등정에 성공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얼굴에 검은 얼룩이 남아 있는 그녀는 “정상에 서서 기쁘긴 했지만, 엄청난 기쁨은 아니었다”고 돌아봤다.
두 살 때 어머니를 여읜 라마는 조부 손에 자랐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라마는 8년 동안 히말라야 산맥 자락 고르카 지역에서 야크를 방목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특별한 야망도, 꿈도 없었다고 했다. 열세 살이 되던 해에 언니를 따라 여승이 되겠다며 수도 카트만두로 이주했다. 언니와 며칠 지내보니 자신과 맞지 않은 삶이란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오빠가 돈을 보태줘 라마는 정식으로 네팔어와 영어를 배우게 됐고, 몇 년간 미국에서 살았다. 귀국한 라마는 네팔 여성 최초로 헬리콥터에 줄을 연결해 다친 등산객을 구조하는 롱라인 구조대원이 됐다.
“이미 에베레스트를 다녀온 동료들이 제게 ‘왜 도전해 보지 않냐’고 하더군요.” 라마는 여성 산악 가이드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봤다. 그렇게 에베레스트에 오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라마의 첫 에베레스트 등반 시도는 2015년 네팔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중단됐다. 당시 등반가 22명을 포함해 9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라마는 “지진 발생 당시 베이스캠프에 있었다”고 한다.
이듬해 라마는 알래스카 소재 북미 최고 봉우리인 디날리산과 네팔의 초오유산을 등반하는 데 성공했다. 초오유산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 높은 봉우리로, 에베레스트에서 서쪽으로 약 30km 떨어져 있다.
그리고 마침내 2018년 라마는 에베레스트 정상을 발아래 뒀다. “제 가이드는 호주 출신 여성이었다. 등반 적응 기간 저는 가이드에게 캠프 2에서 에베레스트 정상까지 바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22시간 안에 하고 싶었는데 가이드가 그만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구조 작업으로 지체돼 라마는 39시간 6분 만에 정상에 올랐다. 그래도 여성 최단 시간 등정 신기록이었다.
그런데 2년 뒤 홍콩 등반가 장인헝이 25시간 50분 만에 에베레스트 정상 등반에 성공하며 이 기록을 깼다. 친구와 동료들은 라마에게 다시 도전해 보길 권했고, 라마는 에베레스트산을 17차례 등반한 베테랑 등반가이자 가이드인 텐디 셰르파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셰르파는 “라마는 강한 팀원을 찾고 있었다”면서 “우리는 라마에게 최고의 훈련, 산소, 텐트, 신발 등을 지원했다”고 회상했다. 아울러 셰르파는 각각 21차례, 여섯 차례 에베레스트 정상에 가본 가이드 2명도 데려갔다.
베이스캠프에서 2주의 적응훈련을 마친 라마는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셰르파는 해발 8000m에 있는 ‘사우스 콜’ 근처 ‘캠프 4’에서 라마의 진행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라마는 “몇 분의 대화 끝에 서둘러 에베레스트를 향해 길을 떠났다”고 한다.
사우스 콜과 에베레스트 정상은 약 1.7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무척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따라서 셰르파는 라마가 정상에 오르기까지 적어도 20시간은 걸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르게 정상에 도달했다.
그렇다고 라마가 여느 등반가들이 겪는 난관을 마주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해발 6000m에 도달하니 숨을 쉬기도, 정상적으로 먹기도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고도가 높아지면 공기 중 산소 농도가 낮아지기에 달리기와 같은 신체 활동이 무척 어렵다.
“캠프 4로 가는 길에 약간 긴장되기도 했습니다. (다른 산악인들 행렬 때문에) 길이 막혔거든요. 1분 1초가 매우 중요했기에 기다리는 동안 무서우면서도 초조했습니다. 한 시간이나 오도가도 못했습니다. 그것만 빼면 전반적으로 순조롭고 아름다운 등반이었습니다.”
그녀는 부처님 오신 날인 23일(한국은 15일이었다)에 정상을 밟았다. 셰르파 부족이나 구르카 부족은 에베레스트산을 성소로 여긴다. 라마는 “(이번 등반은) 제겐 좋은 업보”라고 말했다. 라마는 하산하기 전에 부처가 그려진 깃발을 꽂고 기도를 올렸다.
“베이스캠프에서 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언젠가 자신이 제 기록을 깨겠다고 하더군요.” 열두 살 딸은 TV를 통해 이미 엄마의 성공 소식을 알고 있었다.
기록을 세워도 등반가들은 인생을 바꿀 만큼의 돈을 만지지 못한다. 라마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평범한 사람이죠. 특별하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스스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누구나 뭔가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불가능이란 없다고요. 그래서 전 산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등반은 매우 위험할 수 있는 일이다. 네팔 당국에 따르면 올해 등반가와 셰르파를 포함해 600여명이 고산 등반에 나서 등반가 다섯이 숨지고 셋이 실종됐다고 한다. 그리고 실종자들이 살아서 눈에 띌 가능성은 매우 적다.
텐디 셰르파는 “에베레스트는 거대한 산이다. 체력도 좋고, 팀원들이 훌륭히 지원해 줘야 하며, 날씨도 좋아야 하고, 등반 조건도 좋아야 한다”면서 앞으로 누군가 라마의 기록을 깨기 위해선 엄청난 노력, 계획, 행운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그의 팀은 라마가 등반 중 마주칠 수 있는 등반가들, 날씨, 눈사태 가능성 등을 평가하고 필요한 지원이 무엇일지 계획했다.
한편 남성 최단 시간 에베레스트 등반 기록은 지난 2003년 락파 젤루 셰르파가 작성한 10시간 56분이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다.
텐디 셰르파와 라마 모두 이번 라마의 기록이 언젠가는 깨질 것이라 믿는다. 관건은 ‘언제이냐’다. 라마는 활짝 웃으며 “누군가 내 기록을 깬다면 멋진 일이다. 나는 정말 기쁠 것”이라고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