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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변론을 들으라!
참고말씀: 창22:2; 신30:11-14; 룻1:20,21; 왕상3:4; 욥15:4; 겔33:17
읽을말씀: 미6:1-16
주제말씀: 미6:2
“너희 산들과 땅의 견고한 지대들아 너희는 여호와의 변론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변론하시며 이스라엘과 변론하실 것이라.”
첫째,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변론하시다! (1-8절)
“너희 산들과 땅의 견고한 지대들아 너희는 여호와의 변론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변론하시며 이스라엘과 변론하실 것이라.”(미6:2)
본문에는 무엇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이스라엘, 곧 자기 백성을 향한 여호와의 변론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는 일어나서 산을 향하여 변론하여 작은 산들이 네 목소리를 듣게 하라 하셨나니 너희 산들과 땅의 견고한 지대들아 너희는 여호와의 변론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변론하시며 이스라엘과 변론하실 것이라.”(2절)
왜 산들을 향하여 변론하게 하셨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못이 뻣뻣하고 완악하여 그 말씀에 도무지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너는 일어나서 산을 향하여 변론하여 작은 산들이 네 목소리를 듣게 하라 하셨나니 너희 산들과 땅의 견고한 지대들아 너희는 여호와의 변론을 들으라...”(1,2절)
변론의 내용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자기 백성들에 대하여 공의롭게 행하셨어도,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공의롭게 행한 일을 알리라 하실 것이니라.”(5절 하)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제껏 자신들을 괴롭혀왔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이르시기를 내 백성아 내가 무엇을 네게 행하였으며 무슨 일로 너를 괴롭게 하였느냐 너는 내게 증언하라.”(3절)
그러고 보니 지나간 모든 일들이 모두 공평했으며, 공의롭지 않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일부터 시작하여, “내가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어 종노릇 하는 집에서 속량하였고...”(4절 상) 모세와 아론, 미리암 같은 훌륭한 지도자를 보내신 일,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네 앞에 보냈느니라.”(4절 하) 모압 왕 발락이 바람을 시켜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였어도 이를 복으로 바꿔주신 일, “내 백성아 너는 모압 왕 발락이 꾀한 것과 브올의 아들 발람이 그에게 대답한 것을 기억하며...”(5절 상) 그 이후로 계속 말입니다. “...싯딤에서부터 길갈까지의 일을 기억하라...”(5절 중)
더군다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요구하신 것들도 모두 어떤 것들뿐이었습니까? 솔로몬의 경우처럼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기름을 바치는 것이었습니까?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왕상3:4) 아니면 아브라함의 경우처럼 자신의 맏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이었습니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22:2)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하신 것은 그렇게 부담스러운 일도 그렇게 무겁고 괴로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6,7절)
오히려 정의와 인자, 동행처럼 간단하고 쉬운 일들뿐이었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8절)
혹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해 지금까지 공의롭게 행하셨어도,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시는 분으로 그분을 오해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룻1:20,21)
지나간 모든 일들이 모두 공평했으며, 공의롭지 않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불구하고 그분의 길이 불공평하다고 원망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네 민족은 말하기를 주의 길이 바르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의 길이 바르지 아니하니라.”(겔33:17)
또한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그리 어렵지도, 거창한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신30:11-14)
그것조차도 안하면서 세상이 요구하는 괴로운 일이나 무거운 것들은 그리도 열심히 하면서 살아갑니까? 원컨대 이제라도 이런 것들을 모두 멈추기를 바라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선한 일들에 매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법을 배우고 지켜나가야 합니다! (9-16절)
“여호와께서 성읍을 향하여 외쳐 부르시나니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 너희는 매가 예비되었나니 그것을 정하신 이가 누구인지 들을지니라.”(미6:9)
이스라엘의 산들을 향하여 변론하셨던 하나님은 이제 다시 무엇을 향하여 외쳐 부르십니까? 이스라엘의 성읍입니다. “여호와께서 성읍을 향하여 외쳐 부르시나니...”(9절 상) 어째서입니까? 그들을 향해 매, 곧 심판이 예비되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매가 예비되었나니...”(9절) 누가 그것을 정하시고 또 예비하셨습니까? 하나님입니다. “...그것을 정하신 이가 누구인지 들을지니라.”(9절 하)
이스라엘은 어쩌다가 이 지경에까지 이른 것입니까?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것이 그들의 지혜임에도 불구하고,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9절 중) 경외하기는커녕 오히려 불의한 재물을 축적하고, “악인의 집에 아직도 불의한 재물이 있느냐...”(10절 상) 부정하고 가증한 방법으로 상거래를 일삼으며, “...축소시킨 가증한 에바가 있느냐 내가 만일 부정한 저울을 썼거나 주머니에 거짓 저울추를 두었으면 깨끗하겠느냐.”(10,11절) 강포와 거짓으로 만연했기 때문입니다. “그 부자들은 강포가 가득하였고 그 주민들은 거짓을 말하니 그 혀가 입에서 거짓되도다.”(12절)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어찌 한다고 하셨습니까? 그들을 쳐서 병들게 하고, “그러므로 나도 너를 쳐서 병들게 하였으며...”(13절 상)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황폐하게 하실 것입니다. “...네 죄로 말미암아 너를 황폐하게 하였나니.”(13절 하)
즉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고, “네가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고 항상 속이 빌 것이며...”(14절 상) 감추어도 보존되지 못하며, “...네가 감추어도 보존되지 못하고 보존된 것은 내가 칼에 붙일 것이며.”(14절 하) 뿌려도 거두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네가 씨를 뿌려도 추수하지 못할 것이며 감람 열매를 밟아도 기름을 네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 포도를 밟아도 술을 마시지 못하리라.”(15절)
흔히 사람은 보고 들은 대로 행한다고 하거니와, 이스라엘 족속은 도대체 누구에게 배워서 이 지경에 이른 것입니까? 사람의 계명, 즉 오므리의 율례와 아합 집의 모든 예법과 전통을 듣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오므리의 율례와 아합 집의 모든 예법을 지키고 그들의 전통을 따르니...”(16절 상) 하나님께 보고 들었다면 이리 될 수는 없었겠죠.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혹 하나님 경외하기를 그치고 세상의 불의한 길로 나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참으로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일을 그만 두어 하나님 앞에 묵도하기를 그치게 하는구나.”(욥15:4) 또한 하나님을 본받지 않고 이 세대를 본받음으로써 우리도 이 세대의 사람들과 같이 악하여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라도 돌이킬 수 있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통해 부지런히 하나님의 법을 배우고, 그 길로 힘써 나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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