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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몇장의 사진은 스마트폰 사진입니다. |
사금지맥 제 3구간을 마치고.......
人間은 자유로운 動物이다.
산으로 가면 사회에서 상처 받은 심신(心身)을 치료 받을 수도 있고 산은 우리 인간에게 스스로 일깨울 수 있는 힘과 능력(能力)도 주는 것이다.
산은 自然과 人間이 조화롭게 呼吸 할 수 있는 환경적(環境的)인 차원으로 인식하는 산악인에게는 산의 존재가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이고 정치적(政治的) 의미로서의 산은 우리나라와 민족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쳐 왔는지를 일깨워 줌으로서 우리에게 새롭게 認識되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백두대간 같은 경우 산을 가지 못하게 막는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도망갈 자리도 없이 쫒아버린다면 너무 심한 처사가 아닌가 싶다.
우회 할 길이라도 만들어 놓고 막아야 할 것이라 보아진다.
도법자연(道法自然)이라고 길(道)은 자연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人間의 길이 다시 動物의 길이 되고 우리는 다시 동물의 길을 따라 봄으로서 그 길은 새로운 生命의 길이 열린다고 본다.
세상을 제대로 만난다는 것은 자연과 산을 떠나서는 하늘이 내려준 건강과 幸福을 누릴 수 없다는 말과도 같은 말이라 믿고 싶다.
우리가 갖고 있는 지도를 보면 땅과 물 뿐이다.
땅의 높은 곳은 산이고 낮은 곳은 들(野)로 되어 있고 물이 많은 곳은 바다(海)이고 산에서 흐르는 물은 강을 따라 결국 바다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한 여름의 푸름을 재촉하는 비 내린 후에는 나뭇잎에서 반사되는 푸른 녹색을 맑은 하늘과 어울려 하나 되는 느낌이고 몸이 날아갈듯 한 가벼움을 느끼며 정말 자유와 평화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새삼 삶의 의욕(意慾)을 느끼게도 될 것이다.
사금지맥 전체는 워낙 깊은 오지에 있으면서 오랫동안 출입이 통제되어 있었기에 자연보존이 잘 되어 있고, 옛날 이곳 처녀들은 평생에 쌀 두말을 못 먹고 시집간다는 이야기 까지 있을 정도로 화전에 의지하며 어렵게 살아온 오지의 척박한 곳 이었으나 이제는 포장도로가 문의치를 넘어가고 터널까지 뚫려 전기까지 들어 온지가 오래되어 옛날의 이야기가 되어 버린 지 오래되었다.
길이란 사람의 길과 짐승의 길이 따로 있다.
가끔은 짐승의 길을 이용하여 사람이 덕을 보는 경우도 있지만 짐승은 사람의 길을 이용하다 보통 죽음을 당하기도 한다.
때론 사람의 길을 차가 막아 설 때도 있지만, 역시 찻길은 사람이 다니다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일찍이 서양인에게 자연은 정복(征服)과 이용의 대상 이였지만, 일본에서는 자연이 지진, 태풍, 해일로 인해 공포(恐怖)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대신 중국은 자연을 경의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면 우리 한국은 어떠한가? 우리는 자연을 닮은 소박한 민족이기에 자연에 순응하고, 그 자연의 상황에 맞추어 슬기로운 생활계획으로 같이 살아온 자연 친화적인 민족 이였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어떤 사람이 나쁜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가는 간단히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다만 예나 지금이나 나쁜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은 아무리 강한 태풍이 불어와도 해변의 모래가 없어지지 않는 것처럼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더불어 인간은 존재 그 자체로 고귀하다는 생각을 가져야하고 고귀(高貴)하기에 누구에게나 존경을 받아야 할 것이다.
요즘 한일(韓日)관계를 볼 때 무엇 때문에 저러는지 우리가 먼저 생각해봐야할 것이고 우리도 이럴 때 한 수 더 배우는 중요한 기회로 생각하며 새롭고 지혜로운 길을 모색 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이왕 이리 된 것 대립(對立)하는 것 보다는 보듬어주고 그 안에서 조화(造化)를 이루는 길을 찾는 것이 우리가 그들에게 이기는 결론이 될 것이다.
이는 자연의 섭리(攝理)와 통하는 것이고 발전의 기본 생리와도 맥을 같이하는 귀중한 기회로 본다면 이런 기회가 바로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중요한 찬스로 생각하고 정치인들의 사고방식(思考方式)을 다시 재정비 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무사히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즐겼음에 감사드리면서 오늘의 산길을 정리해 본다.
아름다운강산 정병훈 하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