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과 같이 보시(布施)하라
마음 법이 정해진 법이 없는 것은 이 마음이 본래 정해진 마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마음은 어디 한군데나, 한 물건에나 주(住)하고 있다고 하면,
이것은 이 마음의 참 주처(住處)가 못 되는 것이니
마음의 주처는 무주처(無住處)가 주처이기 때문입니다.
주가 없으므로 일체 상을 놓아두게 될새,
우리들의 마음을 이 무주(無住)에다 붙잡아 매어 놓으면 이것이 주가 됩니다.
주가 된다는 말은, 마음이 제자리에 있게 된다는 뜻이니,
마음이 제자리에 있게 되면 종일 먹어도 먹는 것이 아니요,
종일 입어도 입는 것이 아니요. 종일 가도 가는 것이 아니요.
종일 울어도 우는 것이 아니요. 종일 웃어도 웃는 것이 아니요.
종일 보아도 보는 것이 아니요. 종일 들어도 듣는 것이 아니므로 언제나 마음은 제자리,
즉 무주(無住)에 주(住)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부처님이 말씀하시되,
보살은 마음을 응당 색에 주(住) 하지 않고 보시(布施)한다. 하니라.
상(相)이 상 아닌 줄 알면, 이것이 곧 상에 주한 게 아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상이 상 아닌 것이 되는가?
이 세계는 상 밖에, 한 물건도 없기 때문이니 상(相)이니, 상(相) 아니니가 무엇일까?
이 상(相)이 어디서 나왔을까?
모두가 이것이다. 이것도 이것이요. 저것도 이것이다. 산과 산, 물과 물이다.
진여 아님이 없고 꽃과 꽃, 풀과 풀이 무엇하나 반야가 아니랴!
마음만 제자리에 주(住) 하여 보아라. 무엇하나 딴 물건이 있을 것인가?
주(住) 한다고 하여도 이것이요 주(住) 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이것이요.
상을 여의었다 하여도 이것이요. 번뇌라 하여도 보리라 하여도 이것이요.
참이라 하여도 이것이요 열반이라 하여도 이것이요. 지옥이라 하여도 이것이요. 천당이라 하여도 이것이요.
불이라 하여도 중생이라 하여도 이것이요. 있다고 하여도 이것이요. 없다고 하여도 이것이요.
마음이라 하여도 이것이요. 마음이 아니라 하여도 이것이니,
이것밖에 한 물건도 없는 줄 믿어서 알면 이것이 곧 상(相)이 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일체 상으로써 보시할지라도, 이것은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임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보살들은 일체중생을 위하여 허공과 같이 보시를 하나니라.
- 해안 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