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기억하는 경기천년] 이천 신대리 백송
경기일보 기사 승인 2017-10-16 20:46
손의연 기자 kiteofhand@kyeonggi.com
은회색빛 줄기 싱그러운 녹색 잎 신비로운 자태 뽐내
신대리 마을 뒤쪽 산비탈에 우뚝 솟아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천 신대리 백송. 아름다운 수형과 희귀함으로 이름 나 있는 나무다. 국내 백송 중에서도 예쁘고, 보존이 잘 돼 있는 나무다.
백송은 나무껍질이 넓은 조각으로 벗겨지며 회백색 빛을 띄는 희귀종 소나무다. 그래서 백골송(白骨松)이라고도 불린다. 전국에 10여 그루밖에 없는 만큼, 이천 백송은 그 자체만으로 존재 가치가 있다.
지난달 27일 이천 도립리 반룡송에 이어 백송을 찾았다. 그 희귀함을 알고 나니, 가는 길이 설레었다. 도립리와 신대리의 거리는 멀지 않아 차를 타고 10여 분 달리니 도착했다.
신대리 마을에 들어서자 낮은 산 하나가 보였다. 거기 백송이 우뚝 솟아 있었다. 과연 줄기와 가지가 흰 빛을 내뿜어 등대처럼 마을을 비추는 것 같았다. 신대리마을회관 앞에 차를 대고, 좁은 길목길을 걸어 백송에 다가갔다.
멀리서 본 백송은 마치 솜사탕처럼 보였다. 곁가지와 솔잎이 풍성했다. 가까이서 보니 굵은 밑동에서부터 올라온 줄기는 두 갈래로 갈라졌다. 언뜻 뿌리가 다른 두 나무가 서로 엉켜 한나무처럼 자라는 연리지와 비슷해 보인다. 다른 소나무의 짙은 갈색 줄기는 익숙해 편안한 느낌이지만 백송의 회백색은 낯설어 신선한 충격을 줬다.
백송은 중국의 북부가 원산지이며 동남아시아에 퍼져 분포한다. 우리나라에는 300여 년 전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당시 중국 당나라를 드나들던 우리나라 사신들이 백송의 아름다움을 보고 가져왔다는 추측이다. 따라서 중국과 오랜 교류관계를 알려주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번식력이 약하기 때문에 국내에 있는 백송을 손으로 꼽을 수 있다. 서울 통의동, 원효로, 제동, 수송동, 경북 밀양, 충남 보은, 예산 등과 함께 이천 백송은 전국에 10여 그루 밖에 없는 백송 중 하나로 그 가치가 높다. 때문에 지난 1976년 천연기념물 제 253호로 지정됐다. 수령은 230여 년으로 추정한다.
높이는 약 16.5m, 줄기의 가슴 높이 둘레는 1.92m다. 이천 백송은 두 줄기에서 나온 가지와 잎이 모두 고르게 발달한 아름다운 수형으로 잘 알려져 있다. 좌우가 거의 대칭인 안정적인 우산 모양으로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던 나무였다. 그 아름다움을 손장섭 화백이 작품에 담기도 했는데, 그 그림이 청와대 본관 로비에 걸려 있다.
그러나 지금 백송은 한쪽 가지가 무너진 안타까운 모습이다. 내한력과 공해에 견디는 힘이 강하기는 하지만 겨울에 가지에 쌓인 눈 무게를 견디지 못해 한쪽이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한쪽이 쑥 들어간 모습이다.
희귀함 때문에 수난도 겪었다. 나무의 하얀 껍질을 약재로 사용하기 위해 사람들이 일부러 껍질을 벗겨 갔다고 한다. 나무 발치에는 소나무 껍질이 떨어져 있었다. 하나 주워 향을 맡아 보니 아직 상쾌한 향이 은은하게 남아 있다.
반룡송보다 수령이 적어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가 전한다. 마을에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이천 백송은 조선시대 때 전라감사를 지낸 민정식의 할아버지 민달용의 묘소에 심은 것이라고 한다.
왜 조상의 묘소 앞에 백송을 심었을까 궁금증이 앞섰다. 백송은 회백빛을 띤 나무 껍질과 녹색 잎이 묘하게 조화돼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옛부터 승려나 학자가 사원이나 정원에 기념수로 가꿔왔다고 한다. 이런 연유도 있겠지만, 희귀한 나무를 심을 수 있다는 가문의 힘을 나타내기 위함 아닐까. 지금은 이장을 해서 민달용의 묘소는 없지만, 그동안 백송은 기념식수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백송은 마을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 백송에서 불과 3m 떨어진 곳부터 민가가 있다. 이때문에 마을 주민들의 기억에는 백송은 친숙한 나무다. 마을에서 자란 주민들은 정월대보름날 나무껍질을 주워 쥐불놀이에 이용하기도 했다고.
“근처 산수유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처음에는 백송이라고 해서 무엇이 하얄까, 이파리가 흰색일까 했는데 직접 보니 줄기가 하얘 놀랐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남들한테 백송은 우리나라에 별로 없고, 교과서에도 나왔다고 소개하기도 합니다.”(이미순·백사면 도립리)
지금 나무 주위는 보호 울타리가 둘러싸 전처럼 나무를 타고 놀 순 없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후 나무의 보호를 위해서 시에서 여러 조치를 취했다. 나무 옆에는 피뢰침을 설치했다. 피뢰침은 흉하지 않게 나무 모양으로 조성했다.
이천 명물로 자리잡은 반룡송과 백송. 이천 시민들의 자부심도 크다. 또 반룡송과 백송이 있기 때문에 시민들이 자연히 지역 내 나무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데 의미가 있다.
시민들은 마을에 방치되고, 베어진 나무라 해도 그속에 숨은 깊은 사연이 있음을 알고 있다. 나무를 기점으로 즐거운 마을 잔치가 펼쳐지기도 하고, 기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시민들은 기민기록자로서어릴 때부터 보아온 고목에 관심을 갖고 나무가 가진 이야기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인환씨(52)는 “보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무마다 스토리가 있으면 좋겠다”면서 “앞으로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찾아올 수 있도록 노거수와 마을의 스토리를 연결해 사람들이 나무를 친근하게 여기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동준 이천문화원 사무국장은 “시민들이 나무를 대상으로 마을기록자로 활동하며 그분들의 시야가 넓어지는 걸 느낀다”며 “나무를 보고 스쳐지나가면 그뿐이지만 이제 시민들은 나무를 마을 공동체를 이루는 일원으로 생각하고, 식구라는 개념의 생구로 인식한다”고 말했다.
이런 이천과 시민들의 노력 덕일까. 반룡송을 벗어 나는 길에 자라고 있는 작은 백송을 봤다. 독립수로 자라는 소나무는 수정이 잘 안 되고, 양묘하기도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백송은 주로 독립수 형태로 자리 잡고, 더디게 성장하고 집단 식재도 어렵다. 이천의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일광덕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지역사회의 노력과 손길이 맺을 결실을 예고하는 것 같아설렜다.
도립리 반룡송 근처 키 작은 백송이 신대리 백송 만큼 자랄 수 있기를 소원하며 이천 땅을 벗어났다.